<빠리의 기자들>은 1993년에 <기자들> 이라는 소설로 먼저 출판된 것을 고종석 작가가 21년만에 다시 손을 보아 재출간한 책이라 한다. 나 또한 프랑스 파리로 교환학생을 갔다온 경험이 있고 잠시나마 한인신문에서 기자 비슷한 일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산 기억이 다시 난다. 하지만 2014년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정신이 없었고 7월 한달도 정신이 없었다. 마침내 8월이 되어 나는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시야가 탁 트이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2012년 8월의 파리를 생각나게 하는 듯한 요즘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쁘다. 덮어두었던 앨범을 다시 꺼내 보는 기분. 이 분의 삶이 곧 나의 삶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해도 그 시절을 되돌아보기만 하면, 내 가슴의 아련한 두근거림은 멈출 줄을 모른다. 유럽에서의 그 아홉 달 동안, 나는 충일감이라는 말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살로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말한 <유럽의 기자들> 재단이 위치한 구글 스트리트뷰에서 루브르 거리 33번지를 실제로 찾아보았다. 나의 생활로 비추어봤을 때 여긴 그냥 옷가게와 은행이 많은 북적북적한 거리였는데 다시 찾아보니 간판이 달려있지 않은 폭이 좁은 건물이었다. 오오..

그리고 이 재단은 실제로 존재하는 재단이었다. 프랑스어로 하면 Syndicat National des Journalistes(SNJ). 공식 웹사이트도 있다.

 

 책 첫 장 부터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1993년의 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공보과의 기자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발신: <유럽의 기자들> 재단

내용: <유럽의 기자들> 1992-1993 프로그램에 관한 건

<유럽의 기자들>이 1992-1993 프로그램의 지원자들을 모집합니다. ... 참가 기자들은 유럽을 현지에서 직접 배우고, 유럽 각국 간, 또 유럽과 다른 지역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며, 유럽공동체와 다른 유럽 국가들의 형편을 취재하게 됩니다.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에 의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 세미나와 열흘 남짓 걸리는 취재 활동의 되풀이로 이뤄집니다. 참가 기자들은 그 세미나와 취재 활동을 통해, 잡지 유럽<EUROP>을 만들게 됩니다. 참가 지원자는 적어도 다섯 해 이상 신문, 잡지, 방송 등 언론 매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야 하고, 프랑스어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지원서와 관련 서류들은 92년 1월 15일까지 파리에 도착해야 합니다. 자세한 문의는 프랑스어나 영어로 된 서신을 통해 해주십시오.


"며칠 전에 편집국장 앞으로 그 공한이 왔대. 오늘 편집회의에서 그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6년차 이상 기자로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장인철 씨밖에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장인철 씨 얘길 꺼냈지. 잘 생각해 보고, 지원을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이런 제도가 있었다니.. 물론 지금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래 내용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점이다.

  • <유럽의 기자들> 단체도 스태프와 기자들이 서로 반말을 쓴다. Sciences Po의 학생회, 정당, 동아리 학생들도 모두 서로 반말을 썼다.
  • 그리고 책을 보면 기자들이 프랑스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기 때문에, 세미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프랑스어가 사용됐고, 일상생활에서의 잡담은 대개가 영어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영어 환경 때문에 결국 내 프랑스어를 아주 어설픈 상태에 정지시킨 채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 하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 '칼 포퍼도 영어로 책을 썼잖아. 프랑스도 마찬가지지. 미국에서 인정을 해야,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니.' 여기에 한국이 빠질쏘냐.
  • '영어나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의 경우, 동포와의 사적 통화는 대개 그 귀에 선 언어로 하게 되는데, 그 언어란 폴란드어, 덴마크어, 불가리아어, 스웨덴어, 베트남어, 체코어, 아이슬란드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헝가리어, 일본어, 한국어 들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다음 문장에 중국어는 없었다. 그건 1993년이었기 때문이겠지.
  • '한 여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한 여자에게 슬픔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슬픈 이법이다.' 벨기에 친구 귄터가 그가 좋아하는 포르투갈 여자 이사벨과 맺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웨덴 친구 잉그리드와 혼성 복식 탁구 대회 결승을 한 주인공 장인철은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져주었다. 잉그리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과 스웨덴은 전세계에서 탁구를 제일 잘 하는 나라 군에 속한다는 것을 앎과 더불어 남자들끼리의 멋진 우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공공연해지자 이자벨이 따돌림을 받았다는 점은 가슴 아프다. 모든 인간 사회는 똑같구나.
  • 80-90년대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정치 상황을 한국 현대사 공부하듯 설명해주는 작가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되었다. 한편으로 이런 내용을 공부하지 않고 파리로 간 내가 참 무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불가리아 기자 페치야에 대해 '그녀는 정약용과 김소월과 이기영과 김대중과 김지하에 대해, 나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라고 서술한 점과 관련, 불가리아에 관심이 더 생기기 시작했다. '불가리아가 컴퓨터 전문가로 넘쳐나는 나라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환기된다. 불가리아 대학생들이야말로 세계 제일의 컴퓨터 해커, 바이러스 프로그래머, 백신 프로그래머들인 것이다.' 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 헝가리와 불가리아는 많이 닮았다. 내게 먼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와준 교환학생 시절의 헝가리 남학생과 불가리아 여학생이 생각났다.
  • 장인철이 껄끄럽게 생각했던 폴란드인 로베르트 바르셀로비치에 대하여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폴란드인은 코페르니쿠스, 쇼팽, 퀴리 부인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상도 하지, 동유럽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동포들이란 대개 서유럽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하기야 그들이 서유럽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이름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역학의 무서움!' 이라고 말했다. 나의 교환학생 시절에도 폴란드의 한 남자애는 나에게 매정하게 굴었다. '정 문화'가 통할 줄 알았는데 걔는 정을 경멸하였다. 그러면서도 독일은 또 싫어하고.. 정치 역학의 무서움에 대해서는 한국 버전이라면 갑신정변~갑오개혁 시기의 일본 유학파 김옥균 유길준, 미국 유학파 서재필이 지금도 추앙받는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시간을 중시하는 독일과 공간을 중시하는 프랑스. 내게는 그것이 마치 왜 음악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대개 독일어 이름을 지녔고, 왜 미술사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쓰여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왜 파리가 그렇게 기하학적으로 정교한 아름다움을 지녔고, 왜 베를린이 뭔가 어수선하고 투박한 느낌을 주는가에 대한 민족심리학적 이유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 장인철의 집에 화재가 나 어렸을 때부터 모아놓고 밑줄을 긋고 공부했던 책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 축적한다는 것의 허망함을 맛보았다고는 할까, 라고 한다. 나도 축적하는 것보다는 나의 언어로 글을 써서 사방에 퍼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터넷과 클라우드 드라이브에 감사한다.
  • "'외국에도 독일인들이 있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데." "나 자신이 외국에 살고 있는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독일인들은 외국인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아주 비싼 값을 치렀다. 이제는 충분하다. 더러운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장인철이 동베를린의 독일 기본법 제16조 외국인들의 자유 망명 신청 헌법 개정 반대 시위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참석한 프랑스 파리 거주 독일인 학생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재특회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도쿄에서 열려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직장인이 휴가를 내고 도쿄까지 가서 위의 문장에서 나라 이름만 바꾸어서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았으나, 그런 시위가 일어날 만큼 현실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에 안도하였다.
  • '그러고 나서는 말투를 갑자기 튀투아망으로 바꿔 덧붙였다.' "아니, 일카(일로나 의 애칭)라고 불러줘. 더 다정하게." 아 여자는 다 똑같아 ^^ 한편 이전에 나는 내게 먼저 반말을 쓰던 여자 동생들에게 왜 충분히 잘해주지 못했는가. 후회 막심..
  • '내가 이 나이에, 동갑내기 외국여자와 결혼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 국제적 연대는 얼마나 꼴불견일까?' 현실의 벽을 알고 외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외지를 떠난 건 나도 마찬가지..그래도 1993년과 2014년에 한국 사회의 시선은 많이 달라져있을 것으로 믿는다. 결혼 생활의 남녀 평등적 관행의 정착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 때문이다. 이는 완전한 자유 결혼까지는 어렵다는 말인데, 즉 한국인 남자가 국제결혼을 하려면 반드시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여자'와 결혼을 해야지, 한국인 남자가 아내를 따라 외국에 가는 수준으로까지는 인식이 개방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 '그러고 보니 그랬다. 마르크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에 이르기까지 내가 사회주의의 선구자라고 쓴 독일인들이, 모두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대부분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제3공화국이 내건 갈등의 증폭 원인이구나. 아울러 책에서 소개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대역사박물관에 가고 싶어졌다. '나라 없던 때의 유대인이 사회주의의 국제주의적 구호에 매력을 느꼈을 만도 한데.'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낀 1920년대의 우리 조상들을 연상시키는 이 발언을 장인철은 일본인 동료 사부로와 이야기하고 있구나. 싸움 나겠네 하는 생각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역시나 했다. '그럼 너는 일본의 문부대신이 조선인을 욕하듯 유대인을 욕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겠구나.'
  • 에리봉의 뒤메질 변호 에피소드를 들으며 든 생각이지만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어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는, 한 뛰어난 학자에 대한 변호가 곧 그의 반유대주의 혐의에 대한 반박으로 수렴되는 것,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유대인들의 힘이었다. 그 유대인들의 힘은, 그 얼마 뒤 미테랑이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페탱의 묘에 헌화했을 때 유대인 단체들이 보인 격렬한 반발과 미테랑의 뒤이은 굴복에서도 다시 한번 씁쓸히 감지됐다.' 유대를 한국으로 고치면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 헝가리 사람들도 성-이름, 년-월-일로 표기하고 민속음악에서 5음계를 쓴단다. 더 알고 싶어졌다. 아래 내용은 지난 학기때 적은 2014년 5월 8일 주한헝가리대사 특강 노트.
  • 장인철, 주잔나, 주잔나 아들 토마슈 셋이서 스위스 여행에 가서 살라미를 먹으면서 이야기한 구조(構造)의 비유, 그리고 둘이서 '서로를 좋아해 걱정'이라고 토마슈가 못 알아듣게 프랑스어로 말하는 장면. 베스트 신으로 추가. 토마슈가 "엄마는 아빠의 아내가 아녜요. 아빠도 엄마의 남편이 아니고." 에서 "응, 그걸 탈구조라고 한단다." 라는 대사에 웃음.
  • 자크 랑그(랑)의 행정과 선전의 결과로 모든 장르에 걸쳐 '센터' '연구소' '극장' '문서 보관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했다. 주변문화를 정리하여 재즈와 전자음악이 음악학교의 정식 과목으로 채택왰다. (La Gaîté Lyrique와도 관련이 있었다!! 아래의 관련기사 Le Nouvel Observateur 국립어린이극장이래 귀엽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던 장소들이 이 분의 추진 의지 덕택임을 알게 되었다.
  • OBS0452_19730709_013.pdf
  • "프랑스인의 문맹률이 20퍼센트에 이르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런 통계가 있기는 하다." "교육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예컨대 일본이나 한국처럼 문맹률 제로가 될 수는 없다." 자크 랑은 한국과 일본을 이렇게 언급했다. 소설 속에 인용한 실제 발언이다.
  • '사부로의 이 욕구불만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고는 말이다.' "방법은 하나야. 네가 도쿄로 돌아가서 <아시아의 기자들> 재단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 첫 번째 프로그램 참가자로 앨릭스를 뽑는 거지. 그런 다음에 네가 앨릭스의 일본어 기사 데스크가 되어 걔 기사를 난도질하면 돼. 하루에 세 번씩 '네 기사에는 논리가 없어' 하구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야." 영어를 못하는 사부로가 자신의 영어 기사를 난도질하는 미국인 앨릭스 얘기를 하자 장인철이 우스갯소리로 조언한 내용. 아시아의 기자들 진짜 만들면 좋겠다. 요스케 같은 친구에게 말해봐야겠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문제는," 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사부로가 말했다. "<아시아의 기자들> 프로그램이 생긴다고 해도, 거기서 쓰이는 공식 언어가 백이면 백 영어가 될 거라는 데 있어."
  • '묘하게도 유럽의회 의원들 대부분에게는 매스컴이 연일 보도하고 있는 독일 정계와 사회의 우경화가 별로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판도라의 상자이든 아니든, 이 거대 독일과 프랑스 집권당 사이의 강력한 유대는 유럽을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해왔었다.' 지금의 동아시아와 판박이네. 하지만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집단적자위권은 완전 다른 이슈지. 그보다는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 '사마리텐 부근이 미도파 앞길과 비슷하기도 했다.' 그렇다, 나도 파리와 서울을 (그리고 도쿄를) 지하철 역별로 일대일 매칭을 하는 작업을 교환학생 때 했다. 완성하지는 못했다. 관심있는 분들은 다운받아서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지 가감없는 비판을 해주기를 바란다. 실제로 나는 나비고 카드 덕분에 1존의 모든 지하철역에 내려보는 등 메트로 오타쿠 짓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시간 아까운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젊고 가난할 때에만 의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젊고 가난할 때 끝내 놓았으니, 나중에 돈을 조금 더 벌고 여유로울 때 파리에 다시 오게 되면 교환학생 때 보지 못했던 것들만 골라서 봄으로써 파리에 대한 이해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 계획적인 마인드로 친구들과 만나서 어느 카페를 가자고 하면 나는 안 가본 동네를 구글 지도로 찾은 뒤 '얘들아 13호선 타고 메트로 어디의 1번 출구에서 봐'라고 이야기해서 기어코 그곳에 가곤 했다.
  • 파리도쿄서울_작업중.xlsx
  • 338쪽부터 기자는 어때야 하는지, 르 몽드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한국 신문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니 기자가 되고 싶은 후배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 장인철이 스페인어 공부를 위해 1백 통이 넘는 펜팔 편지를 주고받았던 스페인의 수사나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점은 내가 일본어 공부를 위해 여러 명의 일본 여자들과 페이스북과 라인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점과 겹친다. 하지만 장인철의 대화는 나의 대화보다 훨씬 고상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나는 초급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 신변잡기식 토크를 나열할 뿐이었다. 아버지 세대를 따라갈 수 없어 더욱 그 세대가 존경스럽다. 나중에도 공개적으로 발언할 것이지만, 나의 '쿠소 니혼고'를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준 남녀를 가리지 않은 일본인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상처를 받았을지 모르는 두 명에게 미안하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 자기 동포에 대한 욕설, 욕설까지는 아니어도 경멸이 얼마나 주변인들에게 혐오감을 자아내는지를 로베르트와 장인철의 대화 회고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한없는 숭앙 역시 해당된다. 한때 나는 로베르트와 같은 이런 부정적 태도로 빠질 뻔하였는데 YKRF 리더십포럼을 하면서 한국의 정체성 살리기가 우선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그 뿌리를 자를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순간 로베르트한테서 내가 정말 역겨워하던 한국인들을 발견했던 것 같다. 한국 대학들의 불문학과, 프랑스 문화원, 프랑스 회사 같은 곳에서 이따금 할 수 없이 스치게 되는 그 역겨운 한국인들을. 천박한 친미주의를 고상한 친불주의로 바꾸고 싶어 하는 골 빈 한국인들을. 자랑스러운 레지옹도뇌르족들을. 그것이 관성의 힘일까? 그 빌어먹을 관성의 힘 탓에 나는 친구 하나를 잃었다.' 이 문장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책은 장인철이라는 한국인 기자를 중심으로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각국의 기자들을 한명씩 소개하고 그중 몇명과의 에피소드를 자기 이야기를 하듯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다. 나처럼 전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조금씩 다양하게 잡다하게 아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에게 정말 제격인 여러 나라 맛보기용 책이다. 그리고 그게 남자의 시점이고 공간이 파리이기 때문에 내가 이끌린 것이기도 하다. 책을 비판하자면 기승전결이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같은 보통 소설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보면 옴니버스 영화처럼 장과 장의 흐름이 끊어져있다는 점이다. 기사를 취재한 도시별로 장이 나누어져 있어서 자기 기자 경험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지 소설가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할 소지가 있다. 허나 꽤나 문학적인 책을 별로 접해오지 않고 정보성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해온(그래서 사회과학을 선택한) 나로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책을 다 읽은 다음 자기 전에는 영화 <퐁뇌프의 연인들>을 다시 보고 자야겠다. 이 책과 이미지가 이어지기 때문에.....'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자전적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틀린 판단으로 밝혀졌다.

책을 읽는 중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서 자물쇠를 해제한 보너스 스테이지에 들어간 느낌. 이 시점에서 취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내의 국내 대/공기업 취업을 이야기한 것이다.)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메인이 아닌 보너스 스테이지요, 오늘 내가 모처럼 내게 자유시간을 허락했기 때문에 자물쇠를 해제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프랑스에서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즉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의 재정적 지원까지는 아니어도 번역 감수 등으로 일정 부분 기여를 받은 뒤 기관명을 삽입하고 프랑스에서 한국 관련 컨텐츠에 이 책을 추가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대학생들 중 유럽 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정외과 후배들에게 추천을 해야겠다.

밤새 책을 읽고 날이 밝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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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책 '아웃라이어'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에 놓였고, 또 어떤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 나갔고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빌 게이츠, 비틀즈, 빌 조이, 로버트 오펜하이머 같은 익숙한 인물들의 성공의 비결은 몇 가지의 비슷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인맥의 활용 - 나와 두 다리 이하로 이어진 사람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할 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 지리적 위치 - 내가 주 4회 이상 가는 곳, 여가가 아닌 나의 물질적/정신적 가치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그 생산을 보조해주거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해주는 장소나 기관이 위치해 있다. 혹은 내가 어떤 모임 장소에 갔을 때 내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앞에서 말한 '사람'이 서 있는 타이밍이 조성된다.
  • 책에서 소개한 '1만 시간의 연습'을 위한 여건 조성 - 대부분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또한 어떠한 제약도 없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준비과정이나 연습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조성된다.
  • 나를 수요하는 사건의 발생 및 그에 따른 연락 - 그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 나에게 결정적인 이메일이나 전화 연락을 하여 결국 나를 꼭 필요한 곳으로 인도한다. 이때 나의 공급에 대한 대가는 돈 아니면 인맥 아니면 직책이다. 공짜로 공급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상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게 성공의 비결을 정리해 놓았는데, 이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위의 항목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빌 게이츠의 고등학교 한 학년 선배는 C-Cubed라는 회사의 창업자인 Monique Rona의 아들이었고, 빌 게이츠를 그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그 후에도 게이츠가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지내도록 다른 아주머니들과 어머니회에서 끊임없이 소통하였던 게이츠의 어머니가 Monique Rona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어 각자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연결을 시켜주게 된 것이다. 이 사례에서는 첫 번째 항목인 인맥의 활용이 적용된다. 빌 게이츠와 Monique Rona는 두 다리로 연결된 가까운 관계이고, Monique Rona는 창업자로서 빌 게이츠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하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결국 빌 게이츠가 힘있는 사람에게 붙은 것이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만나는 것을 비열한 행동이나 편법과 같이 여겨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강자에게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단순히 성공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일에 불과하다.
  또한 워싱턴대학 의과부, 물리학 연구소에서 빌 게이츠가 컴퓨터를 공짜로 쓰도록 허락해주고, 이를 통하여 게이츠는 당시에 생소했던 공유 터미널을 이용한 전산처리와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연습할 기회를 갖게 된다. 게이츠에게는 밤에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이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하게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세 번째 항목인 '1만 시간의 연습'을 위한 여건 조성과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TRW라는 회사의 펨브로크라는 사람이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해달라는 전화 연락을 하였고, 그 연락을 먼저 듣고 손을 든 사람이 빌 게이츠였다. 빌 게이츠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수요하는 사건을 발생시킬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네 번째 항목과 관련된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우리는 성공을 흔히 개인적인 재능에서 찾곤한다. 그리고 대부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스토리에 열광하곤 한다. 자, 그럼 빌 게이츠는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아웃라이어"에서 주장 하는 성공하기 위한 "1만시간법칙" 즉, 빌게이츠는 어떻게 1만시간의 프로그래밍 연습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가? 

1. 부유한 부모(아버지: 변호사, 어머니: 은행가의 딸)덕분에 레이크 사이드로 보내졌다. 세계 어떤 고등학교에서 1968년에 공유 터미널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겠는가?
2. 레이크 사이드의 어머니들은 비싼 컴퓨터 사용료를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3. 사용료가 부담스러워지는 시점에서 부모 중 하나가 C-Cubed의 공동 창업자가 되었고, 그 회사는 주말에 코드를 확인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며, 부모들은 주말 내내 프로그래밍을 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4. 게이츠가 ISI라는 벤처기업을 발견했고, ISI는 장부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5. 게이츠는 워싱턴 대학까지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6. 워싱턴 대학에서 새벽 세시에서 여섯 시 까지 컴퓨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있다.
7. TRW(회사명)가 버드 펨브로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8. 펨브로크가 알고 있는 최고의 프로그래머는 두 명의 고등학생있었다.
9.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가 학교에서 벗어나 프로그래밍에 매진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이 모든 행운의 공통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그 모든 기회를 통해 빌게이츠가 추가적인 연습시간을 얻었다는 점이다.

출처 :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저



  이 외에도 영국의 비틀즈는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라이브 공연에 빨리 데뷔하는 성급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작은 라이브 클럽 사장과 만나 그 클럽에서 1년 동안 매일 3시간씩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사장의 수완으로 관객을 동원하여 초보 밴드 비틀즈가 많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 Mountain View라는 곳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산업단지 바로 옆의 마을이었고, 바로 옆집에 HP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살고 있었으며, HP의 창업자인 Bill Hewlett에게 어린 나이에 부품을 부탁한 게 기특하게 보여 공장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의 이야기와 위에서 말한 네 가지 항목에 대응되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바꾸어 위의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공란으로 남겨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 나는 _____ 덕분에 _____로 보내졌다.
  • 나의 ______는 _____를 할 만큼 여유로웠다.
  • 내가 아는 _____는 내가 하는 일인 ____와 아주 관련이 높은 기관인 ____에서 일하는 _____였고, 나는 _____를 통해 _____와 만날 수 있었다.
  •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____가 있었다.
  • 나는 ____를 돕는 대신 ____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_____에서는 나에게 공짜로 ____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 _____가 나에게 ____를 해달라고 전화를 했다.
  • _____가 알고 있는 최고의 ____는 나였다.



  이런 식으로 문장을 만들고 성공한 사람의 행적을 요약적으로 나타내는 문장 옆에 그대로 대조시킨 뒤 나에 대해 곰곰이 고민한 다음 신중하게 공란을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종이 한 장을 두 단으로 나누어 왼쪽 단에는 내가 존경하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 오른쪽 단에는 나의 이야기를 써 본다. 성공한 사람과 나의 각자의 속성을 일대일 대응시켜서 그와 같이 나도 동위원소가 되게끔, 그와 닮아가게끔, 조성만 바꾼 같은 곡을 연주하게끔, 선택적 모방을 위한 아이디어를 빨리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낸다.

  단 공란 안에 들어갈 단어(고유명사 포함)는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코웃음을 치거나 비웃거나 '말도 안돼!'라고 소리치거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더 채우기 힘든 것이다. 당장 손쉽게 채울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면 당신은 성공을 위한 환경 조성을 잘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면 당신은 단어를 채울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이란 무엇일까? 이것을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렵다. 주어진 환경, 태생, 유전, 자격, 타이밍, 시대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 누구에게나 도전이나 참여의 기회가 열려있는 일 말이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건 슈퍼스타K, 스타킹, 아메리칸 아이돌, 행정고시와 같은 국가고시, 길거리 공연, 무작정 소매를 붙잡고 호소하거나 빌기 등이다. 모두 누구나 도전하고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이 일들 중에서는 경쟁의 틀을 가지고 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하지만 경쟁의 틀이 없다고 한다면 나의 '성품이나 인정'이 다른 성공한 사람들의 '주어진 환경'만큼 대단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들을 시작하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고 넉넉히 예상할 수가 있다.

  책 '아웃라이어'는 조금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 시대의 수많은 패배자, 낙오자, 서민, 무능아 등의 약자들에게 '너희들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명, 조건, 환경이 있어 주어야 돼.' 라고 실망감을 안겨주면서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은 위에서 말한 조건과 환경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너무 높게 쳐다보는 열등감에 가득차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웃라이어'는 모든 사람, 범인(凡人)들에게 성공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다만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도와주기 위해 사례만 성공한 사람들로 끌어다 쓴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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