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가 정치사상가로 활동하던 20세기 초에는 공적 의견은 지배층의 판단과 해석이 동반된 대중을 향한 매스컴을 통해서만 발현된다고 보았다. 당시의 기술적 미비로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형성이 아무나 쉽게 시작하고 다수의 공론장이 수시로 변하는 이슈 위주의 SNS 공론장과 같은 모습을 띨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텍스트가 현재에 주는 시사점은 상당하며 특히 변화된 미디어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과거의 미디어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비추어 예상해볼 수 있다.


     현재의 정보기술 진보와 그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중도층, 부동층,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 의견이 파편화되었던 사람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하버마스가 국가와 공적 영역을 겹치지 않고 대치하는 공간으로 정의한 만큼 정보기술을 이용한 의견 형성은 대통령, 국회, 정부 기관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박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적 영역은 엘리트와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참여를 용인하므로 그에 따른 미디어의 정부 규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SNS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미디어 회사의 존속 권한이나 개별 사원의 신상과 연결지어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있는 신문사나 방송국은 규제에 잘 따를 수밖에 없지만, SNS는 의견의 생산과 유통이 불특정다수와 중립적 기관으로 이원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견의 유통 기관이 어느 국가에 소속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견의 유통이 초국가적 성격을 띠어 국내법으로 규제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YouTube와 Twitter는 모두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지만 미국 국내법으로 전세계 개인들의 의견 형성을 제한할 수는 없다. 단 국가 권력이 유통 기관으로 하여금 공적 영역의 권력을 제한하게끔 하는 경우는 있다. 중국에서는 접속이 안 되게끔 하는 방화벽의 만리장성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특정 종류의 개인만 공적 영역에 참가할 수 없게끔 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국가 단위의 정치에 대한 여론 형성은 온라인에서 극도로 자유롭다.


     과거에는 집단의 대표 의견을 모아 발의했고 현재는 각자 제시한 의견이 기술적 가공을 거쳐 집단의 의견으로 바뀌는데, 미래에는 기술이 정치적인 여러 선택지를 인간이 움직이기 전에 제시해주어서 추후에 그 선택지를 선택만 하면 되게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마치 스마트폰 간의 통신 즉 사람과 사람간의 통신이 사물통신(M2M)으로 진화되어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사람이 원하는 결과가 알아서 산출되듯이, 평소 집단의 개인이 자신의 활동의 자취를 남기거나 개인의 움직임을 기계가 기록한 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기계가 제시해준다. 사람은 숙의의 과정을 기계가 일부 대행한 결과에 참여하여 인간의 공적 이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몫만 해낸다. 이를 통해 정치활동이 기술의 도움을 받는 수준은 더욱 향상된다.


     제도와 규제 그리고 권위가 수반된 대중매체의 활용은 난잡함을 막고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기술이 뒷받침함에 따라 그러한 목적이 정당성을 잃었다. 사람들의 의견이 형성될 미디어의 수는 매우 많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정보의 홍수가 있는가 한편 의견의 홍수도 있다. 따라서 정보기술이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는 이를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는 미디어는 의견 형성을 제도로 제한하기보다는 제도가 제한하려 했던 부적절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어내거나 숨긴다. 이로서 개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매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개인의 모든 행동이 효과적인 소통으로 이어지지는 않게 하는 인터페이스와 구조가 무정부적인 상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쓰레기를 버리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리게 하는 대신 초대형 청소기로 손쉽게 길거리를 청소하는 기술을 개발한 격이다.


     이 방식의 미디어 활용과 정치는 기술의 가치중립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종류의 정치이기 때문에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의 성숙이 기술의 뒷받침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정향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 곳에 끼워맞출 수 없이 모든 정향에 적용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며, 굳이 말한다면 권위주의에 대응하는 민주주의 정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최근 논의되는 '새 정치'의 구체적인 단면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종류의 새로운 연구를 하는 자세는 브루스 빔버의 논의에 따르면 비민주국가의 입장에 더 가깝다. 컴퓨터와 정보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하지 그것이 정부의 관할 아래 놓여야 하는가 여부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하버마스가 알고 있던 매스컴 위주의 미디어가 SNS를 포함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기술적 발전을 꾀함에 따라 제도의 역할은 약해지고, 기술의 제도 대체에 따라 무정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공적 영역이 보장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적 성질 자체만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다 정치적으로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Posted by 마키아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