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제적인 무명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는 김정은의 무력 도발을 규탄하고자 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북한의 대남 주 선전매체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한 뒤 그 증거인 원본 DB를 공개했다. 하지만 어나니머스는 국제적인 무대로 활동하는 해커 그룹이며 그 안에 어느 한국인이 한국어로 트윗을 보내며 다중과의 소통을 하는지, 어나니머스가 국내 네티즌들과 함께 연대하고 결사체를 형성할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방면의 한국 국민과 얽힌 사이버 액티비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주목할 점은 어나니머스의 해킹 기술력으로 북한 사이트를 헤집고 난 잔해를 철저히 분석하고자 하는 네티즌의 결사 현상이다. 


     회원 명단이라는 지식을 생산한 뒤 어느 ID가 한국에 사는 누구인지를 밝히는 후속 작업으로서의 지식 생산은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개인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내에 민주화 이후로 북한에 대해 친근한가 적대적인가가 사람의 정치적 지향성을 가르는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 된 이상 종북-반북 이슈는 그 어떤 이슈보다도 단독적인 이슈에 따른 현안집단 결성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수일간 진행된 '신상털기' 과정에서 네티즌의 행동은 기존의 2008년 촛불시위나 2004년의 국민연금 개정 주장 등과 같이 근거와 논리를 이용한 같은 편의 설득이 이루어지고 정부라는 명확한 대상을 향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을 결여하고 있다. 즉 지금의 리더 없는 개인들의 협업은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며, 오히려 최근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본연의 이적행위 수사 업무에 참고하겠다고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네티즌들이 손발의 역할을 해주는 격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네티즌의 과격한 참여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명예를 훼손할 수 있으며 또한 잘못된 이적행위 신고로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사이버 액티비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단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위, 개혁운동, 혁명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고 인터넷으로만 뜻이 맞는 네티즌들이 한국 내의 종북 인사 색출을 목표로 하여 행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번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실제로 스크린샷과 함께 글을 게재한 네티즌들은 이번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조사 활동에 관심이 없던 다른 한국인 집단에 대해 설득이나 참여 유도를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활동 내역을 게시판에 올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내용을 공유하지만, 내가 이만큼 했고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동참해야 한다고 다수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요청하지는 않았다. 완전히 다른 생각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던 다중을 설득하고 자극하는 여러 개의 사건을 통해서 기존에 없던 형태의 넓은 결사체를 만들어야 촛불시위의 경우와 같은 대규모의 잘 조직된 사이버 액티비즘이라 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에는 굳이 설득과 자극이 필요없어도 관심있던 사람들이 알아서 움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어나니머스의 미국, 이란, 중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각종 해킹 활동은 정치적 목적을 내걸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을 형성하여 네트워크를 만들고 기성 권력에 도전하는 차원에서 완벽한 사이버 액티비즘의 사례이다. 어나니머스가 공격하는 국가는 국제정치적 질서에 따라 한 편으로 쏠려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터넷에 대한 검열과 인권 침해를 주도하는지 여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그리고 어나니머스의 네트워크는 전세계적이며 이는 YouTube에 업로드된 개별 사건에 대한 개요와 해킹 참가 예정 소집단의 목록과 'We are legion'이라는 슬로건, 그리고 어나니머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수많은 계정이 얽히고설킨 무질서해보이는 조직에서 드러난다. 


     만약 현재의 수준으로 다중을 대상으로 설득을 하고자 하는 동영상을 공유할 플랫폼이 없고, 어나니머스의 주장이 맞는지 주변의 다른 시민들과 온라인으로 숙의할 수 있는 웹사이트와 기능이 없었다면 해킹은 단순히 활동가들의 비밀 집단으로 그들끼리만 소통하는 채팅창이나 이메일만을 통해서 숙의 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고 관심과 의견을 계량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어나니머스의 사이버 액티비즘을 지지하는 일반 다중의 집단을 만들고 집단의 반응은 추후 어나니머스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어 어나니머스가 소통하는 정치체의 지위를 인정받도록 한다. 특정 국가, 이념, 제도 안에 고정되어 있는 정치적 행위자라면 그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에 따라 행위가 강압적으로 쉽게 중단될 수 있지만 어나니머스의 경우는 모호한 국제법을 근거로 활동하는 초국가적 행위자이기 때문에 현재 어느 다른 행위자가 어나니머스를 체포하거나 고소할 것인지도 쉽게 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여러 국가의 시민이 참여한 네트워크는 상황에 따라 규모가 변하는 유연성을 보일 수도 있고, 이슈가 특별히 발생하지 않으면 활동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이 행위자의 가장 큰 강점이며 인터넷이 그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한 그들은 인터넷에 전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걸도록, 즉 검열 없는 자유로운 인터넷이 없으면 각자의 정치활동과 경제활동에 지장을 받도록 상황을 조성하여 그들이 초국가적 패러다임의 구조적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게 만들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국제 단위로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논의와, 누가 어나니머스가 부당한 피해를 유발했을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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