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함께 기획하고 시작할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언제나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뉘어 반응하고 행동한다. 두 가지 다른 반응을 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많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같은 성향의 사람이 있으면 서로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모르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의 성향을 '이카루스'와 '지렁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본다. 나와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충만한 자신감과 재빠른 정보 수집, 잘 짜여진 이론에 기반한 장기적인 계획 그리고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한 사람이 리더를 맡아 가열차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언젠가 사람들 간의 오해나 행동의 불일치 때문에 순식간에 소강 상태로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이카루스와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족한 기술을 가지고 그때그때 쉬엄쉬엄 같이 모여 계속 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며 아주 천천히 일을 진행해 가는 지렁이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일단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여럿 모였을 때 아이디어를 먼저 구체적으로 내놓은 사람이 선두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획안을 제공해준다면 일의 처리가 상당히 빠르다. 날개를 달고 빠르게 하늘로 솟구치는 이 방법은 절대로 민주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의 생각을 아주 극렬히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취지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고 효율적인 진행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도 좋다. 문제는 효율성과 인간관계의 부드러움이 극도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가치라는 사실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계가 일보다 중요하며 심지어 '관계가 일이다'[각주:1] 라는 말까지 나온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그 생각을 모두 허무로 돌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수많은 만남과 놀이가 계속된다. 일의 진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든 활동이 전개되면서 전체적인 프로젝트는 세부적인 점에 대한 섬세한 고려 없이 성기게 과정을 밟아 나간다. 이카루스와 그 사단이 기분은 깔끔하지 않겠지만 결과물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면서 일에 몰두할 때, 지렁이들은 서로 기분 좋은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으며 업적보다는 모두의 만족을 지향한다. 그래서 누가 무슨 제안을 했을 때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그거 좋네! 해보자' 하는 주저하지 않는 이카루스의 반응과는 달리 지렁이들 사이에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근데 있잖아..'가 계속해서 나온다. 

  그중에서 나는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다 좋다는 줏대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이 있으면 일단 강하게 주장하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일을 추진해버리는 이카루스형의 사람이다. 아무런 의견이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았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일단 어떤 하나로 집중이 되기 시작하면 독단적이고 빠른 집중이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진행되고 있는 계획을 뒤집거나 번복하는 일이 없다. 차라리 계속 진행을 하면서 갈 때까지 가다가 죽음을 암시하는 태양 바로 앞까지 가서 날개가 녹아버려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낫다. 적어도 해놓은 일은 수북이 쌓인 파일들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그 기록은 훗날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이카루스와 같은 나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앞서가지는 않았는가, 남들이 열심히 하기로 기획해놓은 일을 내가 먼저 선점해 버려 그 사람이 준비한 것을 그의 공으로 돌리기 전에 준비가 수포로 돌아가게끔 하지는 않았는가에 관한 생각이다. 가장 나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제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입을 다물고 일단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듣고 있는 나에게 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는 전혀 없지만, 잘 지낼 필요는 절대적이다. 내가 일을 나서서 시작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들일 기회를 돌려버리고 나는 뒤로 빠져버리는 자세를 계속해서 배워야 하겠다.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땅 위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신중해져야지.

  1.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한 선배로부터 인생의 교훈으로 배운 가장 중요한 말 중 하나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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