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아시아 지역협력이 논의된 지난 10년간 어느 것이 지속적으로 모든 국가가 동의하는 유일한 지역통합기구로 자리하여 계속될 것인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동아시아는 선진국과 신흥개발국 간의 협력이 가져오는 이득을 모색하는 경제협력 중심의 지역으로 EU와 그 성격을 달리한다.
1997년 금융위기 때 실질적 지원책을 내놓지 못한 APEC은 정보수집 및 교환 차원에만 머물렀다. APEC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소속 국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정보만을 미국과 일본에게 가져다주었고, 두 나라 외의 국가들은 협력을 통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얻는 선에서 그쳤다. 과거 APEC의 실패가 동아시아 지역 역내 국가들간 본격적인 지역협력을 추진하게끔 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APEC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통합을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국가는 일본이며, 최영종의 논문과는 달리 한일 FTA는 포기하고 한중일 FTA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보아 결국 경제규모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수준의 한중일 3국만이 지역주의에 가장 확실한 자세로 뛰어들고 있음이 감지된다. 한국은 이전에도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공동체 협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APEC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적 역할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자국의 향후의 경제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 현재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GDP면에서 약하다고 평가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지역협력 안으로 포섭하려 한다.
일본 외무성과 통산성은 미국과의 단독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안행행 경제성장으로 ASEAN 국가들을 점차 설득하며 그들과의 수평적인 협력을 모색했다. 만약 일본이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커뮤니티 구상, 일-싱가포르 신시대 경제 연계협정을 넘어서서 ASEAN과의 관계 강화에 열심히 참여한다면 APEC에 미국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동력을 상실했다는 배긍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의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ASEAN 국가들이 미국과 교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APEC의 참여 국가 확대가 논의되고 있고, 중간에 일본의 역할이 증대되면 그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던 APEC 의 긍정적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할 증대는 APEC에는 도움을 주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주인공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국가이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일본의 미국에의 의존, 미국의 hub and spokes 모델의 존중,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경쟁심리이다.
지역공동체는 지리적 근접성, 문화의 상대적 공통성, 운명의 공동성, 문제의 공통성을 지닌다고 히라노 겐이치로 교수는 이야기하였다. 이제 한중일은 비슷한 공통성을 지닌다 해도 ASEAN과 한중일 사이의 공통점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무역상대국이 아닌 지역공동체로서 ASEAN 국가를 받아들이려면 과거의 역사나 문화와는 상관없이 미래를 보고 새로운 공통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지역주의란 경제정책의 협조나 조정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정치적 과정이고, 이때 인종의 차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연합에서 프랑스와 튀니지는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다양한 상품의 교역관계 때문에 서로 연합에 참가하였고 이는 중국과 호주, 일본과 호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동안 호주가 설립을 주도했던 APEC이 아시아 국가들, 미국, 그리고 호주를 포함하는 구속력 있는 제도를 만들지는 않았다. 호주는 언제든 내부 정치상황에 맞추어 그때그때 자국의 이익에 따라 지역협력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백인 사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그 정치과정에 주변의 황인 국가가 전혀 간섭을 할 수 없음은 내부에서 가장 잘 조율된 이익을 반영한다는 Frieden, Milner, Rogowski 등의 국내적 지역주의 설명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2007년 노무현 정부, 2010년의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농산물 분야와 같이 농민과 서민의 삶에 직결되는 분야를 제외하고 자유무역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미국과의 통상교섭에 나서는 대표는 야당이 FTA를 반대하더라도 외교통상부의 찬성론에 따라 꾸준히 협정을 구체화하고 체결해왔다. 이제 한국은 ASEAN과의 경제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호주와 같이 불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점은 유리하지만, 중국과 일본 중 어느 국가의 이익에 더 부합하도록 한국에 적용되는 제도를 만들어갈 지를 결정할 때 삼국 협의체 안에서 주도권이 약해질 소지가 있다. 2001년과 2002년의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동아시아 비전그룹과 동아시아 연구그룹은 연구 단계였기 때문에 한국이 주도하였지만, 막상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어떤 국가가 현재 더 큰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무역관계에서 우위에 있는지를 따지고 나면 한국의 주도권은 약해질 것이다. 싱가포르는 일본과 양자적 경제협력을 추진하면서 한국이 제시한 동아시아경제공동체 아이디어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같이 ASEAN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에 맞추어주면서 경제적 협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현재 한국의 동아시아 대상 경제협력 양상은 TPP에 참여하기로 해 미국과 더욱 가까워진 일본보다는 중국에 더 가깝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논의할 때 중심국가는 중국이 되고, 중국과 미국의 주도권 하에 일본이 두 지역기구 간의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현재의 난립하는 지역협력기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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