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집을 어떻게 장만할 것인가라는 사람들의 질문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항상 전세가 아닌 월세로 15평 이하 되는 원룸에서 살겠다고 이야기한다. 집이 넓고 또는 집을 소유하는 것은 40세가 될 때까지는 사치이며, 그 전에는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집에 불필요한 가재도구를 들여놓지 않으며 외부의 서비스를 최대한 이용하고, 창고나 옷장처럼 쓰는 공간을 가족 집 창고로 대신하여 왔다갔다하면서 필요한 물건만 옮기는 등 집의 크기를 최대한 압축하자는 생각이다. 나는 도시 속을 갈망하고 도시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만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 내 집은 허름해도 좋다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노원구 상계동은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선택이다. 주변에 수락산과 중랑천이 있고, 건물과 거리는 조금씩 리모델링되어 세련된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게 가장 매력적인 곳은 중구 순화동과 광화문 일대다. 역사 유적에 둘러싸여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교통 이용 시간을 걱정하지 않고 도시 생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한 채 밖으로 한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가 주는 공감에는 절반밖에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자신의 집에, 즉 내 자신이 디자인한 자그마한 집에서 살기 위해, 1/4에이커 정도 되는 자그마한 땅뙈기의 한가운데 있는 집에서 물과 그늘과 잔디와 침묵을 즐기며 혼자 살기 위해 기꺼이 루브르 미술관, 뛸러리 궁전, 노트르담 - 그리고 방돔의 열주(列柱)까지 덤으로 끼워 - 을 포기해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집 안에 조각을 하나 들여놓을 생각이 들더라도 주피터나 아폴로 - 이처럼 멀쑥한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또는 런던이나 로마, 콘스탄티노플 또는 베니스의 풍경을 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한 장소에는 전혀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그곳에다 내게는 없는 것 즉 산, 포도밭, 목초지, 산양, 소, 양, 추수하는 사람들과 양치기를 두고 싶다.
- P. J. Proudhon, Contradictions économiques, op. cit., p. 256.
여기서 동의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들의 거부와 자그마한 집에 대한 찬미다. 겸손하면서도 쿨하기를 원하는 나는 무조건 작은 집에서 적지만 모두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되고 배치된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 어떻게 디자인이 잘 되었지만 사치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물건을 살 때 자기가 추구하는 일관된 디자인의 물건을 골라왔다면 그 물건들이 세월에 걸쳐 축적되었을 때 한 장소에 멋있고 조화롭게 배치될 수 있다. 물론 조각같은 사치품은 절대로 들여오지 않는다. 나는 나의 삶과 가장 밀접하다고 보는 전자제품과 악기를 가지고만 디자인하고 그것으로 끝낼 것이다. 다른 것은 새로 구입하는 일 없이 예전 살던 집에서 모두 가져올 예정이다.
하지만 침묵을 즐기거나 귀농과 같은 선택을 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귀농은 분명 도심에서 그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바탕으로 사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그러나 귀농보다 더 검소하게, 왁자지껄하고 바쁜 곳의 후미진 곳에서 언덕 위에 집이 있다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객관적인 삶의 질보다는 주관적인 만족감에 따라 산다면 비용이 더 적게 들 수도 있다. 집에 관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옷과 문화생활의 비용을 높이며, 공동체적인 삶으로 들어가 도심 속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게 나의 목표이다. 파리에 있을 때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리고 현실적인 자금 제약으로 인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방식을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어나가고 싶다.
혜택을 많이 받는 서울 한복판에서 큰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치이므로, 작은 집에 월세 들어 살면서 겸손함, 그리고 매달 월세를 내면서 나중의 내집마련을 위한 자금운용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면서 항상 도전할 거리가 주어져있는 주거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권역 도시 지역의 주상복합이나 큰 아파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시골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갈 것인가. 20대 중반과 30대 초반에서조차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사회 통념에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켜버리는 것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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