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책이 지식을 기록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였던 시절, 학문과 예술의 수준이 높다 하는 사람들의 연구 대상과 지식의 범위는 그들이 사는 지역과 국가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에 한정되었다. 건축, 법률, 경전, 의술, 문학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해 문과와 이과의 구분 없이 통합적 지식경영으로 큰 업적을 쌓았던 다산 정약용 선생마저도 일본에서 대충 본 것으로 '땡'이었던 서양식 기어 메커니즘과 건축 장비에 대해서는 함부로 코멘트를 남기지 못하고 결국 한국산 기중기를 새로 만드는 우회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글만 가지고 지식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었고, 언제나 그림과 소리와 영상은 저장된 매체가 아닌 현실 속의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사람들에게 와닿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지역과 국가 범위에서만 멀티미디어와 텍스트를 조합한 학문 연구와 예술 활동이 이루어졌다. 외국으로 나갔다 온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는 것의 범위가 지역과 국가에 한정되었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모든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시대는 사진과 영상을 지역과 국가 간에 인쇄하고 전송하고 배포하기 시작한 시대부터다.
 
  나는 언제나 영상이 부족해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빈 속을 채워넣는 사람들이 '허접'하다고 생각해왔다. 어떻게 보면 자원과 기술이 부족하여 그렇게 허접해진 경우가 어쩔 수 없는 결과이지만, 지금의 시대에 살면서 다른 나라의 생생한 영상이 밥 먹듯이 당연한 나로서는 불과 20년 전까지의 몇몇 풍경들이 우스울 뿐이다.
 
  옛날 조선 시대의 현학적인 시인들이 묘사하고 화가를 시켜 그린 시와 그림들은 그 안에 소개한 동식물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먼 나라에 아마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시인들이 인터넷으로 중국 현지촬영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보다 현실적인 묘사도 같이 아우를 수 있을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단지 상상만 할 줄 아는 것은 발전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분명 잘못되었다.

  20년 전 나의 삼촌, 이모뻘 되는 사람들이 읽었던 아동용 그림책, 무명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그려진 그 번역서에 수록된 그림들을 보면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흔히 아이들이 읽는 소설은 (아직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에서 창작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20년 전 한국의 삽화가들은 이 나라 사람들의 의식주에 대해 지금처럼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생생하게 학습하지는 못했다. 요즘 사람들은 고해상도의 사진 자료가 섞인 외국의 복제, 민속문화, 건축, 도시환경, 자연환경에 대한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지금 나오는 아동용 그림책의 삽화에는 영국이면 영국, 프랑스면 프랑스의 지역 모습과 풍토가 생생하게 그려져 나온다. 그러나 사진과 영상 매체를 못 보았던 가난했던 시절의 책에는 디테일을 제거한 티셔츠 수준의 옷과 빵, 스프, 고기, 과일과 우유 등으로 정형화된 식사 장면,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했던 삼각형 지붕의 단순한 콘크리트 집 따위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한국산인지 영국산인지 그 국적이 명확하지 않은 그림으로 책을 채워넣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60년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영문학 연극 동아리와 로큰롤 밴드의 완성도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 모임의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들은 다음 저 먼 나라의 문화를 모방할 수 있었을까? 연극 동아리에 소속한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원문을 어느 정도로 깊게 이해했으며 무대의 의상과 조경을 얼마나 현지에 맞게 제작했을까? 그리고 로큰롤 밴드의 사람들은 카피곡을 연주할 때 얼마나 대상과 똑같게 기타 주법을 구사하고 무대매너를 따라했을까? 제대로 된 정교한 모방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된다. 모방을 통한 창조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모방, 즉 학습과 견문이 정교하지 못하면 창조는 주체성이 없는 이상 모두 다 허접해진다.

  그래서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컬러인쇄 기술은 학습과 견문을 정교하게 만들어주면서 지역과 국가 간 이질감을 극복하였고, 그래서 대단한 발명품이다. 나는 도서관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책과 인터넷을 통해 웬만한 전 세계의 지식을 모두 다 열람할 수 있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매우 감사하고 기쁘다. 그래서 그 생각으로 더 열심히 새로운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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