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12월 5일, 우리 동네 치킨집에서 나와 엄마와 이모 그리고 이모부가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를 했다. 엄마와 이모는 사는 얘기를 하고 나와 이모부는 또 다른 얘기를 했다. 대학교수이신 이모부에게 진로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2시간 동안 이렇게 몰입되어서 상담하고 토론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모부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경험과 '진짜 사회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내게 하나하나 짜릿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대화에서 오고 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메모해 놓고 계속 들춰볼 감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한가롭게 메모하면서 들을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교회에 가러 지하철 7호선을 타는 그 30분 동안 어제 이모부와 내가 나눈 말들을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흐지부지하게 잊어버릴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마들역에서부터 청담역까지 열차가 달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쉼없이 날림 글씨로 수첩을 채워 나갔다. 이모부와의 대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사회 인식과 허무맹랑한 꿈을 마치 헐렁해진 너트를 스패너로 꽉 조이는 것처럼 정확한 위치로 고정시켜 주었다.
아래 내용은 기존의 나의 의견 혹은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과 그에 대한 이모부의 대답이다. ★는 대답을 듣고 나서 바로 찌릿 하고 떠오른 내 생각이다.
Q. 인터넷을 이용한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에 전자정부와 정보통신 관련 법제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겐 네이버가 딱인데요?
A. 네이버라는 회사와 네이버의 사업 영역 그리고 서비스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내가 네이버의 직원으로서 소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Q. 사실 전 네이버에 들어가서 기존의 네이버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업 분야를 새로 제시하고 그를 위해 기업 외의 기관과의 협력과 조정 업무를 하고 싶었어요. 정보산업공학과는 제2전공에 불과하니까요. 제1전공을 살리면서 제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만지려면 네이버가 딱인데..
A.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다음 5년 정도가 되면 내 창의적인 생각으로 신규 사업분야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과 권위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현실을 하나도 모르는 유치하고 naive한 공상이다.
★ 대학생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러이렇게 해서 언제 뭐가 되면 그때 뭐를 할 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하고 나서는 그것의 실현가능성은 무시된 채 자신도 모르게 그 말대로 계획하게 된다. 사실 그 계획은 소설에 불과한데 말이다. 미래에 대한 정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므로 진로에 대해서만큼은 나의 능력을 믿기보다 반드시 지금 이 사회를 잘 아는 어른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검토를 받아야 하겠다.
Q. 교수가 되면 대학교 안에 갇혀있게 되지 않을까요? 창의성과 재미가 없는 직업 같아요.
A. 교수가 되면 네이버는 물론이고 수많은 IT벤처기업과 정부기관을 클라이언트로 받아 프로젝트 수주 비용으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엄청난 경쟁이 따르겠지만 회사에서의 경쟁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덜할 것이다. 교수의 위치에 서면 조교들이 데이터 수집을 비롯한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내가 그 집단의 리더로서 집단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평소 꿈꾸어 온 산업계의 큰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내는 주동자가 된다.
Q. 전 돈을 빨리 벌고 싶은데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면 월급이 제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할 거에요.
A. 꼭 대기업에 가야만 많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받는 전문직종에는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연구원, 정치인 그리고 교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은 기업 조직의 월급과 보너스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Q. 근데 교수가 되려면 석사, 박사를 한국이나 외국에서 아무튼 무조건 밟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돈이 계속 나가잖아요?
빨리 대졸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건 바로 그 우려 때문이에요.
A.석사과정부터는 학부와 전혀 다른 학문 활동을 하게 된다. 학부 때는 나의 output이 없거나 있더라도 습작(習作) 혹은 학점을 따기 위한 과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신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고 대신 내가 수업을 듣고 등록금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input이 output을 월등히 앞지르는 시기이다. 하지만 석사 때부터는 앞서간 교수의 도움과 그와의 조력자 관계를 통해 실제로 학계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함으로써 output에 대한 대가를 받기 시작한다. 대가는 단순한 돈뿐만 아니라 유학이나 포럼 등을 위한 지원금, 장학금 등의 특정 명목의 돈일 수도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 의논하며 연구할 기회와 인맥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한 푼도 내 돈을 받지 않고 석사·박사 과정을 마칠 수가 있는 것이니, 석사·박사 때 돈을 어떻게 낼까 막연히 고민하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인 대졸신입사원을 선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보너스로 중간 중간 이모부께서 해 주신 말들
대기업 사원의 경쟁은 파이 나누어먹기이지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가 아니다. 파이 나누어먹기는 지적 능력보다는 전술과 타이밍, 편가르기와 권모술수에 능해야 잘 할 수 있다. 나같이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린 사람에게는 파이 나누어먹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착하게 성공하는 법, 남을 짓밟지 않고도 부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노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한 비경쟁적인 정신노동을 통해 직업활동을 하는 직종 중 가장 좋은 것이 교수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경쟁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내가 세운 목표와 나 사이의 경쟁'이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는 등의 '실행'을 하기에 앞서 내가 이렇게 진로를 정하면 마음 편히 한 단계씩 차근차근 해 나가도 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명확히 해야 한다.
★ 큰 그림은 이 세상의 실제 모습에서 알 수 있는 요구사항, 실현 가능한 일들의 목록 그리고 어떤 경로로 가면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발전 단계 구성도(테크트리)를 담고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오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연구에 100% 힘을 쏟을 수가 없다. 큰 그림이 명확해야 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잠재력이 생긴다. (이모부는 대학교에 들어온 다음 사법고시/교수 두 가지의 10년치 진로를 미리 정해놓고 공부를 시작하여 사법고시에 떨어진 후 바로 교수의 길로 가셨다. 이미 닦아놓은 길을 가기 때문에 그냥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조교수가 되고 정교수가 되었다.)
2시간 동안의 쉼없는 대화 동안 난 이모부의 중학교 때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진로와 직업에 대한 인생길을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이모부가 몇살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와 나의 생각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이날의 대화를 통해 배운 건 내게 운명처럼 정해진 진로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맞는 진로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신중하고 현실적으로 정할 수 있느냐였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요소였다.
대학가 술집이나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못 나왔던 얘기를 동네 치킨집에서 했다. 얘기가 끝나고 이모부 아들(나의 8촌이다) 장난감 글록 소총을 고쳐준 뒤 엄마와 나는 나중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5분 거리의 단지 중앙도로는 엄청나게 추웠지만 마음은 극적인 흥분으로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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