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학기를 지내고 나니 공부하는 요령에 대한 틀이 만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틀을 만든 다음 이 안에서 얼마나 집중적으로 먹을 것을 구워내느냐이지만 틀 또한 공부의 시작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4학기를 보냈으니 난 벌써 대학교의 약 24개 과목을 경험한 셈이 되는데, (참 시간도 빨리 간다.!) 이 24개 과목을 종이에 적어놓고 각 과목을 예전에 공부할 때 어떤 식으로 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일정한 공부 패턴의 특성에 따라 과목들이 크게 두 가지 그룹에 들어가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Pattern 1. 수업전 예습 - 수업중 복습 - 시험공부는 3일만 팽팽하게
최대한 성실한 대학생으로 살고자 한다면, 학교 공부 이외에도 다른 일들도 함께 잘 버무려가면서 학기를 보내고자 한다면, 시험 일주일 전부터 폐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방법은 충분한 예습으로 준비를 해놓고 수업이 끝나면 그날 다루고 생각한 것들은 머리에 잘 저장해 놓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부가 지연되거나 공부 외의 활동(먹기, 수다, 졸기 등)과 결합되어 비효율적으로 변할 염려가 없다. 하지만 공부 외에도 할 일이 많고 약속이 무작위로 잡히고 단기적인 건강과 심리 상태가 왔다갔다하는 대학생에게 이러한 패턴을 모든 과목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이 패턴은 적극적인 시험공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패턴을 유지하는 과목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① 교수의 강의가 체계적이지 않다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은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교수의 강의법이라는 지적의 대상으로 볼 수도 있고 보다 교수의 재량을 확대하여 오직 대학의 그 사람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지식이 오고 간다는 칭찬의 대상으로 볼 수도 있다. 교수가 수업자료를 충분히 준비해 오지 않거나, 수업자료를 주었을 때 기호의 표시나 글씨체 등이 학생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킨다면 체계적이지 않은 강의가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교수의 이력, 대학 밖에서의 경력 등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syllabus와 그에 따라 학생들을 즐겁게 자극할 수 있는 말들로 수업을 꾸며 나간다면 그 강의는 인기 과목이 되는 것이다.
② 시험을 보기 위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아야 한다
이건 솔직히 대학생인 나로서 고백하자면 '조금 귀찮다'. 도서관 서가를 배회하며 눈에 띄는 책을 찾아 물색하며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뽑은 책이 수업의 내용과 별 관련이 없을 때에는 스스로의 미스에 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교 공부가 '근사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렇게 혼자 지성을 찾아 헤매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③ 수업시간 중에 질문에 대답하거나 토론을 해야 한다
첫 번째 패턴과 연관된 과목들에서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교수와의 상호작용이 매우 크고 교수는 학생들이 이미 충분히 이 내용에 대해 알고 왔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토플 리스닝에서 만날 법한 그 다양한 학문 분야의 교수들처럼..(절대로 학생들을 가만히 듣고 앉아있게 하지 않는다. 존경을 표한다. 미국 대학에 대한 찬사라고 하면 비약이고 사실 대부분의 수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야 맞다고 본다.) 그리고 반짝 퀴즈를 내는 과목들도 이 특성에 속한다.
④ 시험문제는 대부분 주관식 서술형이다
B4 갱지 두 페이지가 주어지고 나는 계속 무언가를 써야 한다. 때로는 내가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를 때도 생기고 논술이든 많은 양의 계산을 하는 문제이든 대충 끼워맞출 때도 있다.
첫 번째 패턴을 쓰는 과목에서 학생들은 예습을 매우 철저히 하고 수업에 들어올 때 조금은 비장한 자세로 들어오게 된다. 우리들은 교수님께 조금이라도 더 멋진 말을 해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종종 생긴다. 수업을 할 때에는 우리가 미리 혼자 배운 내용과 교수님의 말을 대조해 보면서 우리에게 틀린 점이 없는지를 따져보아 틀린 점은 다시 고치고 그것을 변하지 않는 사실로 고정시켜 기억한다. 나중에 재방송 틀 일 없게 지금 할 때 다 해버리자는 생각으로 수업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수업 전에 잠은 다 충분히 자 놓고 수업 이후에 풀어진다. 수업 때 열심히 해 놓았기 때문에 시험 공부는 시험 3일 전부터 바싹 하면 충분하다.
이 패턴에서는 이런 식으로 공부할 것이다:
- Syllabus를 보고 다음 수업때 다룰 범위를 미리 읽는다
-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설명하는 부교재를 참고한다
- 모의 답안을 작성해 본다
Pattern 2. 예습 없음 - 수업 - 틈날 때 복습 및 시험공부는 2주간 느슨하게
한국의 대학생으로서 나는 아직 이 패턴에 더 익숙하고 이것이 첫 번째 패턴보다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시험 기간이 아닐 때에는 널널한 중앙도서관에 시험 2주 전부터 갑자기 폭발적으로 인원이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들이 모두 한국의 대학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패턴 역시 '할 때 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첫 번째 패턴과 같은 '할 때 하는' 모습에 비하면 박수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대학생의 현실적 측면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예습 없이 마음 편하게 수업에 들어가서 한적하게 강의를 들은 뒤 그 뒤에 슬슬 복습을 하고 자료를 찾아보는 방식이 자연스럽고 실현 가능하다. 이 패턴은 소극적인 시험공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패턴을 유지하는 과목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① 진도에 써있는 대로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강의를 진행한다
이런 강의는 체계적이다. 대부분 Syllabus에 기계적으로 톱니를 맞물린 것처럼 수업이 딱딱 맞추어 돌아간다. 학생들에게는 이것보다 합리적인 수업 전개가 없을 것이다. 예상한 대로,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지만 이러한 강의 중 절반은 지루하고 졸리다. 특히나 앞에 있는 사람이 교재와 똑같이 말하거나 약간의 주석 추가만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경우에는 그렇다. 교재에 스피커를 단 형상이 앞에 서 있으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아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의 스파크 또한 없고, 그래서 졸린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담이나 (지금 다루는 수업 내용과 관련되었든 삼천포로 빠지는 말이든 상관없다) 유머를 섞어서 재미있게 강의를 풀어나가시는 교수님은 수업계획서도 충실히 따르시고 학생들도 즐겁게 해주셔서 존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② 시험을 보기 위해 읽어야 할 자료의 범위가 좁다
이러한 패턴을 쓰는 과목들의 경우 수업 자료가 PPT인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혹은 PPT를 주교재로 하고 간혹 필요에 따라 학생들이 구입하고 나서 몇몇은 후회할 만한 두꺼운 책을 찾아보라고 교수님께서 짚어주신다. 자료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수능 공부할 때 표와 글머리 기호 목록이 무성한 과목 별 요약본을 달달 외우기 잘 했던 학생들은 유리하다.
③ 교수와의 상호작용이 별 필요가 없다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일방향적인 소통만이 이루어지는 교실 안에서는 대부분이 잔다. 특히나 수업 내용이 쉬운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학생들에게 기습 질문을 하지도 않고, 반짝 퀴즈를 하지도 않으니 학생들은 수업 중에 햇살이 내려앉은 창가를 가만히 보기도 하고 앞에 앉은 이쁘장한 누군가를 몰래 응시하기도 한다. 긴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편한 점도 있지만 더 배워갈 기회를 놓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패턴을 쓰는 과목 중에는 대형 강의가 많다.
④ 조모임/프로젝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 수업시간 외에 학습에 할애할 시간이 생긴다
중간/기말고사 말고 Open-book test나 조모임이나 프로젝트와 같이 장기간을 주어 서로 협력하면서 최선의 답이나 아이디어를 기획하라는 활동이 수업의 주된 내용이라면 학생들은 예습보다는 친구들과 모였을 때 그 때 비로소 열심히 복습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예습 안 한 빈 머리로 수업을 들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로서 동질감도 느끼고, 사람 여러 명이 모였기 때문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사회적 촉진도 활발히 일어나게 된다. 장기간이라는 점 때문에 수업시간 외에 학생들이 유동적으로 학습 자료를 파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⑤ 시험문제는 대부분 객관식이나 주관식 단답형이다
시험은 단순하다. 그리고 대부분 쉽다. 창의적인 생각을 표출하는 일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물론 중간/기말고사 말고 앞서 말한 다른 활동에서는 그 반대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패턴을 쓰는 과목은 수업 시간을 단순히 수업으로만 활용하지 않는다. 수업의 분위기가 조금 더 느슨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끼리 조금 더 친해질 기회가 많이 생긴다.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나중에라도 슬슬 수업자료를 읽어보면 그때 되면 다 이해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여러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면서 수업을 슬슬 들을 수도 있게 되고, 수업의 중요성을 조금 덜어서 그것으로 번 에너지를 대학교 외의 의미있는 활동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업 2주 전부터 중도로 달려가 장시간을 앉아 슬슬 복습의 속도를 높여가기 시작한다.
이 패턴에서는 이런 식으로 공부할 것이다:
- Syllabus를 보고 이번 수업때 다룬 범위를 나중에 읽는다
- 손에 쥔 슬라이드 자료의 정주행 혹은 역주행을 3번 이상 반복한다
- 수업 시간에 들었던 표제어를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에서 검색을 한다 (검색된 내용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자료' '범위가 넓은 자료'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비록 과학적이지는 않아도 경험을 통해 시험공부 방법을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누고, 그를 통해 과거의 시험공부 행태를 되짚어보면서 아울러 미래의 적절한 시험공부 방법을 구상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게끔 하였다. 나는 아직 1번 패턴이 2번 패턴에 비해 더욱 학생으로서 가치가 있는 시험공부 방법이며 따라서 더욱 지향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대학 공부(학점)에만 매달리는 것은 2000년대의 나와 같은 20대에게는 그다지 지혜롭지는 못한 일이기 때문에 결국 1번 패턴과 2번 패턴을 50대 50으로 똑같게 비중을 두는 방법을 택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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