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 젊은날의 초상> 중에서
...거기다가 책에 대한 턱없는 갈망ㅡ모든 것에 대해서 다 그러하지만, 갈망은 항상 더 큰 갈망을 낳기 마련이었다. 나는 무모하리만큼 열심히 읽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도서관의 서가에는 그만큼 더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났다. 그 발단은 나와 잘 맞아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전공 때문이었다. ... 나는 무슨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이 과목 저 과목의 책들 사이를, 강의실과 강의실 사이를 배회했다. 학구(學究)와는 거리가 먼 글자 그대로의 배회였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가 읽고 있던 것은 개론서였고, 내가 마치 그 분야를 다 알았다는 듯 다른 분야를 기웃거릴 때조차도 실은 입문의 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읽은 피상적인 지식의 단편들은 약간 고급한 교양이나 찻집 같은 데서 동년배의 감탄을 사기에는 훌륭해도 대신 내 독서범위를 더욱더 무한정하게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항상 책에 대한 갈망으로 허겁지겁하였지만 느는 것은 새로운 갈망뿐 결국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다만 모든 것을 다 아는 바보였다.
25일에 독서시험이 있다. 교재는 <이문열 - 젊은날의 초상> 이다. 이 책을 읽다가 75쪽을 넘기면서 뭔가 공감되는 글귀가 나왔다. 바로 위에 있는 글이다.
나는 법, 정치, 외교 쪽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과목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다른 과목의 책을 골라 보지만 실제로 그 책을 본다고 해서 내가 그 과목에 통달한 사람이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위에 소설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바보' 가 된다.
이제라도 이런 잡식성의 성격을 고치고,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공부에서 이 자질은 매우 중요하지만,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특출나게 잘 하는 운동이 없다. 다만 모든 운동을 '할 줄만' 알 뿐이다. 테니스를 열심히 해서 테니스를 잘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무튼 이 글을 읽고 내가 깨달은 것은 '한 우물만 파고, 피상적인 지식 습득으로 인한 현학적인 발상을 하지 마라' 이다.
200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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