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젊은이들의 시서화(詩書畵),
document design skill
조선 시대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랑스런 덕목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지성인의 자세는 '시서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필수로 갖추어야 인정받는 덕목이자 지성인을 판가름하는 기준, 그렇다고 해서 그 덕목을 성취하기 위해 특별히 돈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도 없는 특성은 시서화가 가진 아름다운 문화적 맥락이다. 난 특히 이중 지성인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지금 우리 젊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능력은 수도 없이 많다. 학점과 어학능력은 기본이고 외부 기관으로부터 인정되는 자신만의 특기를 자격증이나 인증서 혹은 수상경력을 통해 보여줘야 된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사람의 외모와 행동에서 드러나오는 반듯하고 논리정연한 말과 글솜씨, 그리고 대화에서의 매너와 호감 있는 태도, 나아가서는 은근하게 풍겨 나오는 이성으로서의 매력까지.. 이상을 투사한 21세기의 대리석상은 과거 그리스의 맨들맨들한 하얀 석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화려하고 눈이 부시게 빛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보편적으로 하나의 문화 혹은 관습으로서 인정하고 있는 '시서화'와 같은 문화적 맥락이 과연 있을까? 설마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그것이 '토익 점수'는 아니겠지..
나는 젊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능력 중 조금은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result나 aptitude가 아닌 skill과 attitude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대학생으로서 나는 주변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본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 혹은 자기가 창조하는 결과물은 무엇이든지 더욱 근사하고 예뻐야 한다며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보다 근사하고 예쁘게 만들기 위해 개선한다. 반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무엇이 근사하고 예쁜지조차도 모르고 환경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대충 받아들인 것을 바탕으로 생산을 한다.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수업시간에 발표할 작은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때에도 색감이나 폰트 그리고 애니메이션 등에 관해 너무 튀거나 불균형적이거나 아마추어적인지는 않은지 심혈을 기울여 고민한다. (참고로 내 주변에는 아마추어적인 ppt 자료와 클럽 글이 넘쳐난다. 학생, 교수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들의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가면 단순히 상황을 '묘사'하기만 하면 되는 사진이 아닌, 사이트 주인의 이미지 그리고 밑에 써 놓은 글에 어울리는 사진이 마치 미술품처럼 걸려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남들보다 차별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 있다거나 대회 등지에서 입상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근사하고 예쁜 것을 모르는 사람들과 똑같은 대학생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바로 그들에게 미래를 보는 혜안이 하나 더 달렸다. 바로 새로운 사회의 보편적 욕구와 취향을 먼저 습득하는 눈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나 월등한 디자인 능력을 가져야 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세대는 보편적으로 개인 차원의 삶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측면에서 기초적인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미래의 젊은 인텔리들, 즉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자신들이 만든 각종 자료를 아름답게 꾸미는 능력, document design skill이 아닐까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 모든 정보 처리가 인터넷과 컴퓨터로 이루어지고 자신을 광고할 때 컴퓨터로 만든 자료를 증거로 내보이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료'들을 예쁘고 멋지고 일관된 테마를 갖게끔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띄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출판 기술에 한계가 있었고 모든 자료가 개별 보고서나 흑백판 단행본으로 출시되어 형식에 제한이 있었으며, 편의성을 추구한 나머지 디자인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핵심만 달랑 있는 자료들 가지고 먹고 사는 시대가 아니다. 핵심을 폭넓게 감싸고 있는 멋진 테마와 디자인이 결합된 자료를 가지고 노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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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의 어른들이 흔히 요즘 대학생들이 손글씨를 너무 못 쓴다고 툭 던지듯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어쩌면 점점 한 세대의 손글씨가 점점 미워지는 건 당연하다. 손글씨가 예쁘면 너도 나도 기분 좋아지는 시대가 아니라, 폰트나 레이아웃이나 배색이 예뻐야 서로 좋은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하지만 시대가 갖는 요구사항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 모두 보고서 레이아웃 만드는 법, ppt 디자인하는 법, 사진 멋지게 찍는 법, 포토샵 편집법, 글과 그림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법 정도는 기본 소양으로 알고 있자. 인터넷과 관련하여 네이버도 스마트 에디터를 내세워 멋지고 예쁜 것들의 수용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document design skill의 조류와 일치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우리 선비들이 문방사우를 주된 도구로 한 시서화를 기본 소양으로 삼았다면,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의 학생들은 컴퓨터를 주된 도구로 한 문서 디자인을 기본 소양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말한 기본 소양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교의 대상으로는 쓰이지 않고, 일종의 21세기 인텔리 대접을 받기 위한 최소 요건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예쁘고 아름다운 문서가 오고가는 사회를 만들어 기성 세대들에게 무시당하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 펴고 살아보자. 우리들은 정말 컴퓨터를 잘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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