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조작을 잘못 하거나 조작이 느슨하고 게으르면 Game Over가 되어야 한다. Game Over가 될 확률이 너무 높아서는 게임이 진행이 되지 않고 지나친 어려움과 복잡함에 유저는 떠날 것이고, 반대로 절대로 Game Over 될 수가 없으면 그것은 게임이 아닌 단순한 interaction에 불과하다.
- 나의 조작은 상황을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으며, 그 결과는 객관적으로 숫자나 그래프나 악당의 숫자 등으로 표현된다. 조작이 지나치면 상황이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게임의 끝(흔히 '왕'이라고 하는 스테이지의 그 이후나 엔딩크레딧 등등)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뜬금없이 게임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정기적으로 할 일을 많이 정하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참고: 예전에 쓴 포스트 "관심의 대상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습관을 갖자") 피부미용을 위해 스크럽이나 마사지를 하기, 인터넷에서 신문기사를 읽고 인쇄하고 트위터에 코멘트를 달기, 운동, 라디오 방송 듣기, 가족들과 외식, 블로그 포스팅, 과/동아리 커뮤니티 접속과 같은 일들을 누구나 몇십 개씩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들은 머리에 깊이 박혀 잊혀지지 않는다. 이러한 일들의 조합을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해도 큰 오류는 없을 것 같다. 스타일은 지속적인 일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내가 주도하여 계획한 일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빨리 해야 하는 급박한 일이 아니고, 힘들거나 다른 사정이 생기면 안 해도 되는 일이다. 타인이나 외부환경이 만들어낸 일(예를 들면 자신이 속한 단체의 매월 실시하는 총회)일 수도 있지만 이 일은 어차피 무조건 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순회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정기적으로 하기로 계획한 일 말고 조금은 다른 성격의 일이 있다. 바로 수시로 등장하거나 쌓여서 수시로 대처하고 처리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단 그 일이 등장하고 쌓인다는 것은 내가 그 일과 관련된 일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긴급하게 터진 예상치 못한 문제는 논외로 한다. 수시로 하는 일은 내가 주도하여 계획한 일일 수도 있고, 내가 택한 직업이나 직책에 따라 타인이나 외부환경이 만들어내는 일일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지속적으로 하는 일' 안에는 '정기적으로 하는 일'과 '수시로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 수시로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 프랑스어 모르는 단어 찾기
- TV나 라디오에서 본 좋은 음악/광고/패션아이템/웹사이트 혹은 궁금해서 더 알아보고 싶은 것 인터넷 검색 및 스프링노트/미투데이에 글쓰기
- 자주 못 만난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기, 혹은 자주 못 만난 친구의 연락을 확인하기 위해 메일함이나 쪽지함을 확인하기
- 청소와 빨래 같은 집안일
- 피아노나 기타 곡 연습
그 방법은 바로 '기록'과 '거시적 관찰'이다. 우선 기록은 모르는 단어를 써놓은 종이를 자주 확인하기 쉬운 곳(나의 경우는 프랭클린 플래너의 속주머니)에 넣어놓거나 프랑스어 테스트를 해서 점수를 확인하기, 인터넷에 검색할 것들을 키워드 형태로 써놓고 검색을 안 하면 그렇게 써놓은 종이가 쌓이도록 하기 등의 방법으로 실행에 옮긴다. 거시적 관찰은 싸이월드 방명록이나 트위터 멘션 글 수의 동향을 확인하기,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단체 모임에 나가서 몇명이 나에게 어떤 종류의 말을 얼마나 걸어오는지 대충 확인하기, 나의 옷차림과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을 비교하기 등의 방법으로 실행에 옮긴다. 기록과 거시적 관찰 덕분에 우리는 모든 수시로 하는 일들을 안 했을 경우에 생기는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시 앞서 말한 플래시 게임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 이야기를 한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이런 게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버튼이 6개가 있고 각각의 버튼에는 게이지가 달려 있어서 0에서 100까지의 눈금이 달려 있다. 6개의 게이지는 동시에 다른 속도로 상승한다. 우리는 버튼을 눌러 이 게이지를 낮추어야 한다. 하나의 게이지라도 100을 넘어가면 Game Over가 되며, 버튼을 누르면 게이지가 낮추어져서 0~30이라는 적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최대로 누를 수 있는 버튼의 수는 3개이다. 적정 수준에 게이지가 들어가 있는 시간만큼 포인트가 올라가게 된다. 게임의 끝은 없다.
이 게임은 앞서 말한 수시로 하는 일의 메타포를 담고 있다. 버튼은 수시로 할 일, 게이지는 문제의 정도를 의미한다. 최대로 누를 수 있는 버튼의 제한은 우리가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의 제한을 의미한다. 이런 게임이 있다면 우리는 단순한 interaction이 아니라 진짜 게임처럼 목표의식을 가지고 즐길 수가 있다.
그런데 만약 버튼이 하나밖에 없다면 어떨까? 혹은 버튼이 6개 있지만 6개를 동시에 누를 수 있다면?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항상 적정 수준 안에 게이지가 들어가게 되어 포인트는 계속해서 쌓이고, 유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게임을 계속 진행하게 만든다. 재미는 전혀 없는 게임이 되고 Game Over가 될 가능성은 0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수시로 하기로 계획한 일이 하나밖에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목표의식이 없는 인생이 된다. 너무 잔인한가? 글쎄, 진짜 '하나'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계획한 일을 한꺼번에 다 해치울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목표의식을 없애는 불행의 시작이다. 물론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은 목표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다. 목표의식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버튼을 너무 많이 만들면 Game Over가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하는 일의 개수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만들어 놓아야 한다. 개수 정하기의 기준은 내가 버튼을 눌렀을 때 게이지가 내려가는 속도이다. 요 속도를 보고 '아, 나는 버튼이 몇개 정도면 지속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적당한 수의 버튼과 부지런한 조작은 안정세를 이어나가기도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하면서 계속 포인트를 쌓아나간다.
내 프랭클린 플래너에는 끊임없이 내가 적어놓은 종이가 끼워지지만, 나는 종이가 계속 끼워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작은 O링이 달린 바인더를 가지고 다닌다. 가끔씩은 daily 속지 안의 오늘의 우선업무나 예정일정이 최소 몇 건 이상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내가 정한 규칙은 플래시 게임의 규칙이라는 메타포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지속 가능한 게임을 위해서는 스스로 정한 엄격한 규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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