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에 온 다음부터
주위에 진정한 친구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나같이 공부가 인정(人情)보다 수십 단계나 위에 있는 걸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과 진짜로 인정이 오가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사이좋게 지내는 건 언제까지나 특정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학교 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학교 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란 거의 다가 원활한 학업을 말한다.
목적이 있어야 취득하는 이기적인 아이들이 여기 모였다.
나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는 게 원천적으로 싫다.
..
..
목적이 없는 진정한 인정은 여기에 없다.
내가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그 뜨거운, 지금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그 온기가 식지 않은
그 인정이 내 마음 속에는 그래도 남아 있다. 나는 그 온기로 버티고 살아간다.
여기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나의 히든 카드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벽.
그 히든 카드를 통해 남보다 더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 히든 카드는 진정한 인정이 우리 마음속에 자라는 것을 막는다.
여기 학생들은 겉과 속이 다른 공부벌레들이다.
이타적인 겉과 이기적인 속이 내가 말하는 외면과 내면이다.
그 外와 內의 차이가 아까 말한 히든 카드와 함께 진정한 상호간의 인정을 막는다.
여기서는 행복의 원천이 오직 좋은 시험 결과에 있다. 시험을 잘 보면 남을 밟고 올라섰다는 것에 행복하고, 시험을 못 보면 남에게 짓밟혔다는 것에 불행하다. 학업이 최상의 가치이므로 그것보다 작은 가치에서 얻는 행복은 아주 짧게 지속되다가 그친다. 나는 학업보다 작은 가치들을 더 중시해 오면서 학교 생활을 해왔는데 그것도 나의 불행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시험에 목숨 거는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이다. 나는 기계가 싫다. 벽이 없이 서로 인간으로서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이 모든 나의 고민이 내가 공부를 엄청 잘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싹 사라질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 기계다.
나는 인간이기에 성적이 바닥이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한다.
200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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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을 기억한다.
혼자 조용히 기숙사 화장실에서 찔끔 눈물 흘리며
앞으로는 나의 자아를 강하게 하고 남들에게 힘없이 기대는 포도넝쿨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비바람 눈보라가 쳐도 꿋꿋이 서있는 소나무가 되자는 다짐을 한 날...
그 이후부터 나는 지금처럼 혼자서도 잘 사는 놈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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