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은 동북아시아 3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협력 이슈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공동으로 논의한 뒤 3국의 입장을 정리하여 각국 외교부에 반영하는 정부간 기구로, 본부가 서울에 위치하고 한국의 외교부에 소속해 있다. 사무국장은 한국의 대사급 인사, 사무차장은 중국과 일본의 참사급 인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1년 설립되었다. 여기서 왜 이 기구가 한국 외교부 산하기구로 자리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정부 조직이 한국에 가져오는 이점과 한국에게 부과하는 책임을 안 뒤 삼국 간 협력에서 각 분야 별로 다른 협상 대상자가 어떻게 국내정치와 연계하여 win-set을 형성하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2008년에서 2012년까지의 경과 보고서에 따르면 협상 분야는 삼국 정상회의, 외교부장관급 회의, 외교부 고위급 관료회의, 아시아 문제, 아프리카 문제,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문제, 대테러 조치, 재해관리, 핵안보, 민간교류, 무역 및 투자, 교통 및 물류, 관세, 지적재산권, 금융,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산업, 재생가능에너지 및 효율, 표준화, 소비자보호, 기후변화, 환경교육, 생태다양성보존, 황사, 대기오염, 친환경사회, 쓰레기 처리, 화학물 처리, 환경 거버넌스, 환경 관련 산업, 순환경제 모델, 보건복지, 농업, 어업, 수자원, 임자원, 문화, 관광, 교육, 청소년 교류, 스포츠, 인적자원관리, 연구기관 교류,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담당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포함한다. 여기서 제외된 것은 국방과 대미관계, 대EU관계, 국회 사무, 선거, 법무, 지방자치단체, 고용노동이다.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은 이 분야에서 대립을 가지고 있거나 각국 외교부에서 권한을 위임받지 못하여 이 분야의 협력을 주무 범위로 삼지 않고 있다.
특히 국방과 남북통일의 문제는 국가군과 관련되므로 공개적인 협력 부처로서 고정된 부서를 만들어 관리할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한계가 있지만,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논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이슈인 FTA와 EPA에 대해서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이 아무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사무국이 아직 ASEAN+3의 지역협력의 주도권을 공동의 것으로 양보하지 않고 서로가 쟁탈하고자 초반 기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최근 미국과 EU와의 FTA 체결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무역 중심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한국은 사무국을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로서 주변국에게 절대 미국과 EU와의 FTA에 관련된 사항은 협력을 고려하면서 논의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무국의 지난 해의 활동 보고를 살펴보면 빠진 내용은 모두 한국이 핵심적 국익을 위해 숨기고 있는 내용이다. 사무국의 조직 편제, 그리고 설립 배경으로 볼 때 한국은 정부간 기구를 통한 협력 논의에서 먼저 한국이 제안할 것과 제안하지 않을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 여러 나라에게 정책을 공개하고 얻을 것과 받을 것을 보다 열린 공간에서 논의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국제사회에서 강한 의견을 발휘할 수 없는 한국의 약점이며, 한국은 약점을 조직 편제를 통해 보완하고 있다.


    다만 사무국의 활동의 결과로 최근 한중일 FTA가 논의되기 시작되었다는 점은 일단 삼국 외의 행위자를 생각하지 않은 지역 범위에서의 협력이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한중일 FTA의 협상 당사자가 고려해야 할 Level I의 변수는 국내정치 하나로 단순하다. 다만 다자간 참여를 고려하고 삼국 FTA를 바라본다면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win-set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구속력 있는 조약이 비준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국내정치 즉 국회와 정당 그리고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을 이어주는 끈 사이에는 미국과 외교부라는 엄청난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은 협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통의 창구로서, 각국 외교부의 역사 인식에 대한 굳건한 입장이 섞여 논쟁을 통해 변화하거나 한쪽의 우세가 형성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사무국 안의 회의의 장은 아이들이 만나 토론을 연습하기 위한 놀이터이고, 어른들은 따로 마루의 술자리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국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언제까지나 정부간 기구가 외교부의 국내정치만을 고려한 기존 결정들의 집합을 정부간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삼국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정상도 과거의 이념이나 역사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언급을 통한 외교관계의 악화는 모두 외교부 중심의 양자 회담에서 이루어졌음을 주지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의 잃어버린 동아시아 외교 5년 간에는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점에서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이념과 역사 논쟁을 조금씩 공개적으로 삼국 간 대화의 장에 내놓고 이를 통한 완전한 대립과 고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하여 평소의 협력 어젠다와의 혼합이 이루어지는 쪽이 될 것이다.


     그동안 양자주의, 다자주의, 열린 지역주의 등 국가를 행위자 단위로 생각했을 때의 한중일 협력은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은 많이 있어 왔지만 국가를 입법부, 행정부, 외교부와 외교부 내 정부간 기구로 나누어 미시적으로 바라본 한중일 협력에 대해서는 특히 대중의 고민이 없었다. 시각이 바뀌면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고, 정부간 기구 안에 기업과 시민단체의 거버넌스 참여를 강화시켜 정부기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수도 있다. 색다른 관점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장으로서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의 역할은 막중하다. 그리고 이는 과거 1950년 EU에서 평화를 위해 필사적으로 연대한 것과 달리 삼국이 이미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한 뒤 서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는 경쟁과 협력의 양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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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사회의 거버넌스가 하나의 이슈로 첨예화되었다는 점은 온라인에서 보다 깊은 숙의에 의한 사실 중심의 토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하나의 이슈만 가지고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접목하여 네트워크를 보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노사모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팬클럽 차원에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민주화운동의 권력화와 제도화라는 포괄적 이슈를 위해 만들어졌고, 중심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출석하고 사적인 취미를 공유하게 하기도 하는 강력한 응집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 노사모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으며, 이는 노사모가 단순하게 구체적인 이슈 하나에 한정된 단체가 아니라 연대적 유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현재 반값등록금을 위해 전국 대학생 네트워크를 조직한다 한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서는 많은 '좋아요'와 '팔로워'를 쉽게 확보할 수 있겠지만 오프라인으로 참가를 유도하고 일방향의 토크콘서트식 행사가 아니라 작은 단위로 나뉘어 자체적으로 조직화를 통해 개별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심된다.


     반값등록금 네트워크가 실제로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다음에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조직의 존속을 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이 없다. 반값등록금 네트워크가 플래시몹을 기획한다면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아 흥할 것이지만 행사가 끝난 뒤에는 모두 언제 그런 행사를 했느냐는 듯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반대로 노사모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당원의 기존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네트워크로 주변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당의 입지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플래시몹과 같이 갑자기 확 사라지는 경향이 있을 수 없다.


     전국 단위로 적용되는 이슈별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은 마련되어 있는 상태다. 그것은 크게 다음 아고라와 같이 집단 정체성을 가지지 않은 자유 토론게시판 플랫폼과, 개인들의 일시적인 소통과 그에 따라 개인들의 기대에 의해 네트워크 위상이 수시로 바뀌게 해주는 SNS 플랫폼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현대의 SNS는 집단보다 개인을 중요시하는 서구식 개인주의에 맞추어진 웹 서비스이고, 이렇게 SNS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방향은 노사모와 같은 조직이 만들어지는 방향과는 정반대이다. 노사모의 회원 계정은 블로그나 트윗 목록이나 게시물 타임라인을 많은 양의 컨텐츠로 가지고 있지 않다. 노사모 웹사이트에서 한 개인이 올린 글만을 검색하는 기능은 게시판에 존재하지만, 그 기능이 이 웹사이트의 핵심적인 기능은 아니다. 반면 SNS에서는 개인이 다양한 이슈 혹은 특정한 이슈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어떻게 관심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이력이 중요하고 그것에 따라 형성된 울타리 없는 개방적 네트워크가 개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그룹과 페이지가 있지만 이들은 노사모 홈페이지가 했던 '거대 목적 달성을 위한 광범위한 이슈의 축적'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을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한 후에 일어나는 관심이 아니라, 그저 개인이 살면서 그때그때 생겼다 사라지는 관심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빠른 정보의 유통을 이루는 이슈별 논의가 만들어질 뿐, 조금 더 나아가봤자 온오프믹스와 같은 서비스에서 SNS로 모은 사람들이 일회성 대회를 개최하는 정도이다.


     공동체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금의 파편화된 인터넷에서 다시 일깨워야 하는 개념은 '길드'다. 게임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집단에 소속하여 서로 게임 안에서의 능력 향상을 도와주고, 집단으로서 성과를 올리고,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통해 사적으로도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중세의 노동자 집단과 같은 개념의 길드를 만들었다. 특히 이중에는 지리적 영역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길드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에서 길드를 형성한 사람들은 프리챌, 네이버, 다음 카페를 이용하여 길드 사람들끼리 지속적인 소속감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겨갔다. 이 점에 착안하여 점차 개인 계정의 자유로운 선택과 개인의 업적이 중요시되고 있는 지금의 인터넷 거버넌스를 숙의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지속적인 공동체 형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환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온라인 사이버공동체 운영에서 접속 속도, 사용자 인터페이스, 편의성 등의 문제는 이미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다. 중요한 것은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이 특정 문제를 다루고 시민들의 거버넌스 참여를 이룰 수 있도록 형성되게 만드는 일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연동이 없으면 새로운 회원가입을 하기를 주저하는 게으른 지금의 네티즌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웹사이트는 적극적으로 SNS와의 연동을 추진해서 지방자치단체 웹사이트에서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참여한 글과 댓글이 SNS를 통해서도 빠르게 유통되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 뉴스 사이트에 개별적으로 로그인하여 다는 댓글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익명성 때문에 건전하지 못한 토론이 이어진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여러 소셜 댓글 서비스가 등장한 적이 있다. 이러한 유행이 다시 한번 불 때 목적지는 언론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며, 이때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지금과 같이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에 대한 시민 참여가 이루어지기 전에, 인터넷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 정치학은 정당, 선거와 정치과정을 세밀한 것까지 공부하며 보다 많은 수의 지속적인 참여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했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집중하는 정치학이 인터넷을 만난 지금, 이제 집중해야 할 것은 웹 생태계, 지배적 웹 서비스나 플랫폼과 사용자의 행동 패턴, 인터페이스와 사용 편의성 등이다. 수단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과거에 걱정하던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인터넷 상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적 토론,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통해 더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결정자가 인터넷에 얼굴을 많이 비출수록 시민들의 반응은 더욱 더 활발해졌다. 앞으로의 숙제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개인화와 파편화를 만들었던 웹서비스의 구조와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같은 사소해보이는 수단의 개선에 달려있다. 공동체를 만들어서 계속해서 참여하는 행태에 시민들이 소극적인 태도나 부끄러움이나 자기 시간을 버린다는 회의감 없이 동화되도록 하는 작업은 곧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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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주의에서는 국제적으로 모두가 지킴으로써 역외 행위자를 배제하지 않으려는 GATT체제와 같은 움직임이 있고, 그리고 양자간의 무역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의 움직임이 있다. 경제에서는 철저히 자국 국익을 생각하면서 타국에 양보할 것과 양보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자국에 유리한 국제적인 공급사슬을 만들기 위해 특정 국가를 선택하여 협력할 수 있다. 무역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원수와 무역 담당 정부부처는 계산한 대로 타국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하고 우월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세계화에 따른 황폐화를 저지르기도 한다. 


     반면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관리 능력에 관한 비교우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게 독점적인 이득을 가져다주고 다른 나라에게 반대로 비교열위와 차별을 제공하지 않는다. 관리를 잘하는 국가는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에너지의 수급과 경제발전을 지탱하기 위해 환경을 보존하고, 이차적으로는 주변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댐을 만들고 환경정화시설을 설치하고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에 신경을 쓴다. 재화와 서비스 시장이 보여주는 독점의 폐해와 상관이 없는 대신 환경은 긍정적 및 부정적 외부효과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이며, 이에 따라 외부효과를 시장 질서로 해결하기 위한 탄소배출권 거래 등의 논의가 EU 국가 안에서 있어 왔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권에 대해서도 점유율을 막대하게 가지고 있는 기업이 등장했다. EU 기후행동집행위원회(DG CLIMA)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 내에서 각 기업이 공장 가동을 하면서 배출권을 경매 방식으로 사고 판 이후 추후에 배출한 양만큼의 배출권을 EU에 반납하는 시점을 조절할 수 있다. 배출권의 가격은 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집약적인 대기업이 배출권 경매 판매로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인 키프로스와 에스토니아에게는 무한의 배출권을 제공해주는 특혜도 EU가 강한 제도적 틀로 실시할 수 있다. 주변국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강제성 있는 경제통합체가 작동하는 결과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다양한 경제발전 단계와 소득의 격차,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정체성의 형성이 다른 점이 이러한 시장을 통한 해결조차 불가능하게 하고 있고, 무엇보다 경제통합이 되기 이전에 OECD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탄소배출권 거래는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에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탄소배출을 공업화 단계부터 시작한 뒤로 어느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거래 대상국 간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국가간 GDP 수준이 비슷해질 정도로 산업화나 정보화를 위한 탄소배출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한 국가라도 GDP 성장을 위한 저기술 고오염의 경제발전을 이제 밟아나가고 있는 단계라면 그 국가와 거래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경우는 자국의 경제를 이끄는 자국의 기업이 공장을 자국 내에 가지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경우는 한 나라의 기업이 공장을 다른 나라에 이전해놓고 있는 형국이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거래 방식의 설정은 매우 어렵고 또한 논란거리를 낳을 뿐이다.


     2011년 8월에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제안한 동아시아탈원전네트워크는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는 면에서 여론 형성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 어떤 방안이 구체적으로 가능한지를 국민들의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는 근본 원인인 낮은 에너지 사용을 국민적 아젠다로 설정할 수 있는 캠페인 진행 능력과 관련 조례 및 규칙을 통해 강제성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서울시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궐 취임 이후 ‘원전 하나 줄이기’ 라는 제목으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시는 약 200만 TOE를 2014년까지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 서울의 에너지 소비량인 1,696만 TOE의 11.7%에 해당한다. 참고로 국내 원전 중 최대 규모인 영광5호기는 79만 TOE이다. 이러한 지자체의 노력에서는 노하우를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있고 그 나라로 전해줄 수도 있다. 이러한 노하우 공유는 경제적인 보상과 함께 맞물려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추후에 동아시아탈원전네트워크가 제안하는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 중단 및 기존의 가동중인 발전소의 안전 점검 강화 혹은 가동 중단이나 폐쇄 결정은 결국 정부의 에너지 담당 부처의 최종적인 결정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권력기관의 의사결정에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하고 그것이 한일 협력의 범위로 확장된다 하여도 실제로 정부 부처 관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자력의 피해를 모든 시민들이 인지하여 꼭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반대 여론이 충분히 형성되어야 시민들에 의한 압력을 받아 정부의 행동이 바뀌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국내정치 차원에서 이러한 압력의 인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의 시민들이 일본 경제산업성, 적어도 원자력발전소 입지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상당히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시민과 언론 차원에서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이해 증진과 피해지역 일본 시민들과의 정서적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마침 저번 주에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 주최로 열린 ‘제3회 한중일 캠퍼스 하모니’  에서 이러한 목적의 후쿠시마 시민 컨퍼런스를 제안한 바 있다.


     환경 문제는 그 본래의 특성상 협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부정적 외부효과가 크고 환경 문제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틀과 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 더욱 협력의 의지가 각 국가 행위자에게 증대된다. 함께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는 행위는 전략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안보나 무역 차원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보다는 보다 행위자의 자율성이 떨어지는 행위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환경 문제가 지역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때 국가들이 이슈 중심적인 ad-hocracy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이러한 행위의 반복이 추후 협력을 위한 제도 형성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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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의 대중이 가진 폭력적 성격에 집중할 때 그러한 군중의 형성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할 때 이루어지는 반면, 지금과 같이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대중의 공론장 참여가 열려있는 때는 군중의 형성 가능성을 낮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치즘 프로파간다는 1940년대 강력한 통제를 받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에 의해 효과적으로 군중을 조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는 지금의 북한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우선 케이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공중파에 합쳐서 매스컴을 바라보면 하나의 군중으로 모여서 이성을 상실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기 전에 개인은 개인이 좋아하는 채널을 선택해 보면서 소집단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소집단은 한 물리적 공간에 대량으로 모여있지 않으며 전국적으로 조금씩 퍼져 있기 때문에 온라인의 힘을 빌려서 집단 형성과 의견 취합을 한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정치 참여의 핵심 과정이 탑재되어있는 현재의 스마트 몹의 형성은 기존의 파시즘에서 나타났던 집단반지성과는 달리 지도자를 추종하는 충성파의 열정이 없다. 오히려 지도자를 비판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집단이 더 큰 목소리를 내서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 운동이나 지금의 윤창중 대변인 사건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과 비판의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두 세기의 차이점을 개략적으로 바라보면 20세기 한국은 찬성해야 힘이 세지는 사회였다면 21세기 한국은 반대해야 힘이 세지는 사회이고, 지금은 인터넷에 대한 참여가 건전한 토론을 유도하고 비폭력적이며 논리적인 정치 참여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문과와 이과를 불문하고 토론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국가의 상황은 인터넷의 발전 정도나 정치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과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공격적인 군중의 형성 가능성은 극도로 약화된 현대 사회이지만, 아직 무식하고 순응적인 군중의 형성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점이 지금의 인터넷에 기반한 정치활동에서 경계해야 하는 점이다. 인터넷과 정보화의 시대에 집단지성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생각 없는 대중'을 동원하는 일본 정치인과 그를 따라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 B층에 대한 오마에 겐이치의 지적은 정보사회의 도구가 수단적 힘을 더욱 갖게 되면서 더욱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정치인에 의한 인터넷의 조작과 달리 사기업에 의한 인터넷 조작은 보다 더 은밀하게 이루어지지만 대중의 반발력은 두 경우에 비슷하다. 브로드밴드나 이동통신 상품과 결합한 계열사 상품 및 서비스 혜택이 한쪽으로 편중된 데 대해서는 네티즌들이 반발심을 가지고 다른 상품으로 소비 패턴을 전환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만 검색순위 조정, 소프트웨어 설치, 배너 광고나 PPL에 대한 네티즌의 반발은 소극적이다. 로렌스 레식의 말처럼 코드는 중립적이거나 투명하지 않으며 무엇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될지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사기업에 의한 인터넷 조작이 이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정치의 차원에서는 대중이 생각이 없으면 이 의견이 옳은지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경영의 차원에서는 생각이 없으면 이 제품과 서비스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독도 관련 사이버테러와 같이 우리와 그들을 나누어 그들을 공격하자는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극히 일부 관심있는 집단의 몫이지만, 이것이 좋으니 이것을 하자는 담론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기 쉽다.
     집단지성의 개념이 형성되는 패러다임 자체부터 과거 산업사회의 계급투쟁을 벗어났다는 점은 긍정적인 논의의 토양을 제공한다. 그 토양 위에서 인간 본성에 내재된 광기와 감성의 본능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도록 다스리는 문화적 장치는 이미 인터넷으로 결정되어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집단반지성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을 도입했지만 인터넷에서 다시 집단반지성이 태동하고 있다. 21세기의 대중은 20세기 국가간의 전쟁을 유발하는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모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간의 자제를 촉구하거나 말싸움으로만 그치는 수준에 머물지만, 대중의 지지를 업은 실제 행동은 대중 개인도 모르는 사이에 순응적으로 이루어지며 대중의 구성원들은 이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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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지난 5월 15일 열린 북극이사회 각료회의에서 정식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였다. 한국은 이제 북극이사회 산하 6개 위원회에 참여해 발언권을 행사하고 프로젝트나 사업구상도 제안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의존하여 그들이 만든 프로젝트에 따라 자원을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자주 개발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정책 전환 때문이다.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천연가스 개발과 확보에서 한국, 일본, 대만과 같이 자원 외교에 필사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자원 빈국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 조건이 개선되어 재정수지 흑자와 국부펀드 운용을 누리고 있는 여유로운 러시아는 앞으로의 무역체제에서 WTO가 예외로 하고 있는 자원에 대한 패권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철광석, 구리, 원유, 석탄, 밀 등 러시아가 아직 강하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지 못하는 광물에 대해 WTO체제에 힘입어 축적한 부를 이용하여 대량 구매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중국과 러시아는 대립하는 국가로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가 천연가스에 대한 협력을 동아시아 국가들과 진행할 경우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북한이 수혜자가 될 뿐 중국과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전망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2000년대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력을 구하기 힘들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출을 위해서는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대량생산 능력도 뒷받침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삼국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보고 진출을 진행해왔다. 동아시아 내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노동 분업은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졌고, WTO체제와 자유무역 및 기술협력의 흐름이 이러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력, 설비, 금융 자본도 필요하지만 천연 자원 또한 못지 않은 비중으로 중요하다. 그 동안 천연 자원의 확보를 당연하게 여겨온 이 3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여 석유를 운반하였다. 그런데 미국과 중동, OPEC과 IEA가 러시아와 중국과 GECF의 등장으로 그 입지를 잃어가고 있고 석유보다 값싼 천연가스의 대량 공급이 이어질 경우 3국의 대응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자원 빈국의 자원 외교는 자원의 국가지배와 지정학화가 강화될 경우 줄타기 외교의 양상을 보일 것이며 이는 자원이 빈약한 3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협상을 진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 자원의 시장화와 글로벌화가 강화된다면 자원 외교의 중요성은 약화된다. 물론 자원의 수입국 입장에서는 시장화와 글로벌화를 더욱 더 환영하고 있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시장경제체제를 위해서는 그 쪽이 더 바람직하다. 이는 중국을 제외하고 현재 경제성장이 진행중인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같이 적용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린란드를 가지고 있는 덴마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린란드 역시 서시베리아와 같이 천연가스가 대거 매장되어 있고, OPEC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는 석유뿐만 아니라 금, 다이아몬드, 텅스텐 또한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린란드는 따로 정부가 경제사법권을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작은 나라인 덴마크 그리고 북유럽 국가간 높은 무역 비중을 감안하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에 해당하는 지역은 러시아와 같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배후 지역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미국, 캐나다, 러시아와 함께 북극이사회 회원국이다.


     반대로 한국, 일본, 대만의 주변에는 언제나 협력적인 자세를 끊을 수 있는 강대국들만이 존재하고 있고, 이는 아시아 국가의 필사적인 해외 순방과 탐사에 대한 협력을 낳은 원인이다. 어찌 되었든 부산이나 도쿄에서 로테르담까지 이어지는 북극항로가 개척되면서 한국과 일본에게 매우 생소하기만 했던 덴마크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담론이 생긴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들려오는 뉴스는 강소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국가들이 전세계적으로 협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 글로벌라운지에 DENMARK DAY라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했을 당시에는 덴마크와 한국이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굉장히 먼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자원외교와 북극항로를 중심으로 양국 관계를 바라보니 더욱 거리가 가까워 보였고 같은 강소국 지향 국가로서 협력의 여지가 보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석유 매장량의 고갈이 시야에 들어오면서부터 일관된 자원외교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다른 자원 빈국에 비해 항상 대응의 속도나 규모가 떨어진다는 자기 비판을 줄곧 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간 관계를 살펴보았을 때 러시아와 가장 쉽게 신뢰도 높은 협력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도 하다. 북한이라는 요소만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한국의 자원 외교는 세계 속의 강소국으로 정착하는 일을 도와줄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국에게는 천연가스에 대한 패권국가의 등장 여부가 미래 정책을 수행하는 데 큰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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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중국에 대해 국력의 우세를 유지한다면 중국으로서는 분쟁지역화를 먼저 시도하려는 국익을 가진다. 분쟁지역화와 강한 해군의 분쟁지역 내 주둔은 다른 문제이다. 미국이 일본, 필리핀과의 군사 협조로 분쟁지역 내의 이들 국가 입장을 강화시킬 목적으로 먼저 해군을 지원하고, 그 다음 중국이 전쟁을 두려워하여 대응 목적의 해군을 내보내지 않더라도 중국은 분쟁지역화 성공에 따른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판단할 수 있다. 


    2010년 7월에는 하노이에서 남사군도와 관련하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외무부 장관과의 의견 대립이 있었고, 9월에는 센카쿠 열도 문제를 두고 미중 양국 외교부의 충돌이 있었으며, 12월에는 로버트 윌러드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동펑-21C 대함탄도미사일의 위험을 언급하였다.  중국의 현상유지 전략은 미국으로 하여금 불만 표시의 다분한 소재를 낳고 있다. 지속적 경제성장에 상관없이 중국은 영원히 패권과 군사적 팽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중국은 자국의 국방력이 앞으로 계속 증대될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분쟁지역화에 성공한 섬을 대상으로 한 항공모함 진수와 같은 군사적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남사군도, 서사군도, 황옌다오가 자국의 핵심적 이익이라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것 또한 최선의 선택이다. 핵심적 이익 개념에 대해서 당연히 미국은 반대하지만, 천명을 해놓고 국내에서 해군력 강화를 조금씩 여유롭게 시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 연안에 한정되어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는 개념이 강했던 작은 해군은 이제 자원을 획득하고자 하는 목적도 함께 달성해주며 중국의 활동 저변을 넓히는 근해적극방어 형태로 바뀌었다. 중국은 해외 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지칭하고 있듯이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와 같이 중국연안에서 남중국해, 말라카해협, 인도양, 아라비아해 및 걸프해역으로 통하는 중국의 해상교통로 상에 항구 사용권을 확보하여 기지로서 활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미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려는 노력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력, 군사력, 과학기술력, 그리고 국민적 단결력을 망라한 ‘종합국력’을 증강하기 위해 미국 및 주변국과의 때 이른 군사대립을 피하는 동시에 경제발전과 군사현대화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자 한다.  종합국력에서 경제력에 미국의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미국과의 전면전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중국이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는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개입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강대국으로서의 배후세력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되 견제는 하는 정도로 안정시키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미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중국 주변의 각종 분쟁을 중국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카리브해 개입에 중국이 함께 개입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해상국력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중국은 이를 역이용하여 군사력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중국에 유리한 분쟁지역화와 영토 야욕 드러내기에 성공했다. 또한 일본을 거점으로 한 아시아 중시 정책은 일본의 우경화에 가로막혀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2013년 2월 미국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일 동맹 복원’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영토 분쟁에 대한 침착한 대응을 주문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만 강조했을 뿐 분쟁 대응의 지지 성명을 내놓지 않았다. 2012년 12월의 미국의 센카쿠는 미일방위조약의 적용대상이라는 입장에서 전환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관된 친미 진영 국가로의 정책 수행을 위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원으로 스카보러 섬의 필리핀 영유권을 지지하는 행위도 소강상태로 접어들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 중 양국간 대결구도에 영향이 없는 독도, 일본 북방영토 4개 섬, 그리고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 대한 해결책은 당사국 국내 정치에 따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진다. 권력을 빌려 쓰려 하면 결국 주도적인 외교를 펼치는 국가에 지는 한계가 있고, 적절한 권력을 행사하면 현상 유지와 균형을 만들 수 있다. 한국, 러시아, 필리핀, 베트남은 일본과 중국의 해군 전력 강화에 대응한다는 목표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나라의 영토 분쟁에 대해 자제를 촉구하거나, 어느 한쪽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양보를 하는 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4개국은 중국과 일본 중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며 함께 미, 중 양국간 대결구도가 특정 지역 내에서 무력 충돌로 격화되지 않는 다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게 되고, 결국 각국의 군전력 강화는 특별한 재배치 없이 국내에서만 이루어지는 평화적인 공존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 현실주의 국제관계에서 진영이 셋 이상이 되도록 각국이 협력하는 것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임을 지금의 영토 분쟁 상황에서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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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엘 카스텔스가 전세계 차원에서의 디지털 격차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가간의 정치문화에서 유래한 디지털 격차였다. 그 예로 권위주의적인 학교 내 교수법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를 들었는데 그것은 아주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파리의 대학교에 유학했던 시기에도 그들의 창의성은 말하고 쓰는 본질적인 능력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에 국민소득의 증가와는 상관없이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이나 기술로 보완한 강의 혹은 발표의 가치가 많이 평가절하되어 있었다. 반면 신기술의 통합을 이용한 창의성을 국가경쟁력으로 삼고 있는 영국, 독일, 네덜란드의 경우는 EU 정부 차원에서도 디지털 집행위원회의 많은 관심을 통해 교육 부문의 IT 통합을 점차 고도화하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신기술의 습득과 활용이 널리 퍼지는 것을 국가발전을 위한 장기적 투자로 생각하고 있어서 브로드밴드 보급률과 인터넷 품질에도 앞선다.


     국가의 경제적 수준이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전에 먼저 정부가 IT를 얼마나 자국 산업과 연계시키는가에 따른 정책기조가 디지털 격차 문제나 인터넷 인프라 수준 문제를 결정하는 독립변수가 되어야 한다. 중공업, 관광 그리고 해외직접투자로 한국과 비슷한 경제규모를 이룩한 체코의 경우 유럽 지역 내에서 경쟁적인 통신회사 시장을 유치하고 있고 미국과 한국을 벤치마킹하여 IT산업 육성을 실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낮은 국민소득과 작은 인구를 인지하고 신기술의 융합을 통한 혁신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고, 작은 인구에 따른 엄청난 비율의 해외 직접투자와 정부 업무의 단일화를 이용하여 극도의 일률적인 효율성으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정부 및 민간 분야의 업무 범위를 확대했다.


     디지털 격차가 적은 국가들은 국가 경제를 해외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이는 인터넷과 유무선 네트워크의 활용 범위가 본질적으로 전세계 단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결과 해제가 쉽게 이루어지고 해외의 교역상대를 수시로 교체하는 것이 자유로운 시장 질서의 무역을 수행하며 높은 도시화를 바탕으로 정보산업이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인적 자원이 천연 자원보다 중요한 국가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자 교육부터 힘쓴다. 마지막으로 전자정부의 활용성이 높은 국가들은 작은 디지털 격차를 가지고 있다. 전자정부의 발전이 모든 국민들이 전자정부 서비스에 참여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웹표준 준수, 접근성 가이드라인, 공공 PC 인프라 구축 등을 기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카스텔스는 보다 많은 글로벌 경제와의 연계가 디지털 격차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이는 그가 주장한 대로 노사간 협의가 아니라 투자에 관련한 법률에 의거한 노동 규약 때문에 불안정한 노동력이 발생하여 그들의 소득 감소에 따라 유선 네트워크나 모바일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는 관점에서 사실이며, 반대로 보다 글로벌 경제가 확산된다면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IT에 대한 시민들의 활용능력이 증대된다는 차원에서 디지털 격차가 줄어든다. 격차가 줄어든다는 점은 하드웨어의 활용능력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를 이용한 유용한 정보의 수집능력 또한 평준화됨을 의미한다. 이는 전자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다. 


     국제 범죄경제와 온라인 금융을 활용한 자금세탁은 정보기술의 부작용을 보다 드러내어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의 디지털 격차를 점차 줄여야겠다는 여론 형성을 방해하며, 정보 범람에 따른 정부의 합법성의 위기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저해한다. 이러한 부정적 현상을 사전에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지식과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각국의 디지털 격차 수준을 알고 있어야 하고 제도의 합법성을 추구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는 정보통신기술에 관련된 인프라 구축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학습 과정을 생성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보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인터넷의 속도로 변화되는 환경에 모든 행위자가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지적재산권의 변화된 입지, 매체와 내용이 이전 출판 시대와 같이 합쳐진 게 아니라 분리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전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지속적인 디지털 격차 해소가 가능해진다. 인터넷과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요인들이 동시에 발현되어야만 디지털 격차가 조금씩 해소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여러 주체들의 협력과 공동의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면 개방형 혁신에 참가하는 주체의 수가 늘어난다. 개방형 혁신은 필수적으로 같은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의 협업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어든 디지털 격차에 따라 더 많은 시민들이 다음 단계인 개방형 혁신에 참가하기 위한 기본적 요건을 충족하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끌어모을 규약이 만들어진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듈 조직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것은 빈부 격차를 줄이는 것과 다르다. 부자에게 과세를 하여 가난한 사람의 복지를 향상시켜주는 빈부 격차 감소는 부자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줄이지만,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과정에서는 자원이 줄어들지 않는다. 물적 자원이 아닌 인적 자원을 다루기 때문이다. 인적 자원은 꾸준히 성장하고 그 속도에 개인적 차이가 생길 뿐이지 인적 자원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는 이해관계의 정면대치가 없기 때문에 노력의 이행이 보다 더 쉽다. 다만 다른 과제와 비교했을 때 우선하는가 아닌가가 지금의 국가별 디지털 격차 수준의 차이를 낳았을 뿐이다. 그래서 경제규모나 IT 인프라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기조나 국민들의 문화가 수준 차이를 낳는 근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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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내가 연세대학교 안에 참여하고 있는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과 이번 중일 협조체제와 동아시아 내 전자민주주의 가능성을 같이 묶어서 본다면 이 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질 수 있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조재욱과 전재성의 두 논문은 세 국가 간의 관념, 규범, 정체성에서 겹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는 국가를 구성하는 일반 대중의 다수가 띠는 모습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다.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양보하고 민족주의를 억제하고 국익을 내세우기 전에 지역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주장이고 현재 논문은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이 정치연구원의 후원을 받아 20대의 젊은 한중일 3국 대학생들이 모여 공통의 겹치는 관념, 규범, 정체성을 형성하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젊은 시절 이렇게 동아시아 협력을 목표로 훈련된 학생들이 국가의 결정자가 되었을 때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 통합을 논의할 수 있게 만든다.


  무역협정, 경제동반자협정과 같은 경제적 이익이나 동맹과 같은 안보적 이익을 위해서는 사전에 두 국가 이상이 왜 그러한 이익을 서로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야 하고, 그 명분은 국가, 기업, 시민사회 모두에서 교류를 통해 만들어지며, 모든 영역에서 명분이 만들어져야 국제정치에서 비판 없이 이익 공유의 실행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 일본은 중국 중심의 ASEAN+3에 대해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중국은 타 아시아 국가들에게 패권국가로 자리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태도를 결정한 행위자는 현재 각국의 외교부 지도자들이고, 그들의 개인적인 관념, 규범,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는 대개 냉전의 최후반기와 탈냉전기 초기이다. 반면 지금 한중일 대학생 리더십포럼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냉전 질서나 과거의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경험하지 않았고 지금의 외교부 지도자들처럼 그 때의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과거의 역사와 영토분쟁에 대해 최대한 양보하고 시장의 가치를 옹호하여 삼국 간 포기하고 얻을 항목을 논의를 통해 정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전반적인 정체성이 각국의 학생이기 이전에 동아시아의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담론은 최대한의 협력과 신뢰로 이어진다.


   구성주의를 따른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정체성의 구성이 시민사회의 극히 일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현재는 활발하지 않다. 교환학생 제도와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대학 내에 도입되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국가 사이에서도 대규모로 이루어진 지는 25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역사로 본다면 일본이 APEC을 주창하기 시작한 이래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교환학생이 시작하였다. 중국과 한국의 교환학생으로 본다면 한중수교 이후부터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동의하는 담론이 한중일 삼국 모두에 형성되기 이전과 달리 시장경제와 무역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형성된 후부터는 과거의 국민국가 중심적이고 권력과 이익 중심적인 지역구성을 벗어나 정체성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경제적 이득의 배분을 토의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전환되었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이러한 협력의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며, 시민사회에 참여하는 일부 국민들 특히 외국인과의 접촉과 대화로 상호 이해를 강화한 엘리트 계층에 한정되어 의식 전환이 이루어졌다. 


   한중일 삼국의 대학생들이 모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사용에 익숙하고 온라인으로 의견을 표출하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동아시아 내의 전자민주주의 또는 전자공론장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는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의 현재 모습과 향후 계획에 매우 적절히 들어맞는다. 중국 샹하이 푸단대학 학생들의 경우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접속을 우회하는 방법을 모두 알고 있고, 한국과 일본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일에도 자유롭다. 행사에 같이 참가하는 학생들이 세 국가에 나뉘어 있다보니 토의를 하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과 공식 웹사이트가 되었다. 민족주의의 성향을 가진 학생이 한 명도 없고, 현재 아무도 현실 정치처럼 주변국 정부기관과 같은 이익 결정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이다 보니 지역정체성 형성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 이는 NEAT와 같은 민간 시민사회 싱크탱크에서도 똑같이 진행되는 일이며 이 대학생 포럼은 그러한 시민사회의 영역을 벤치마킹하여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 의존한 협의는 디지털 기기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협의의 결과를 알림받지 못하게끔 하고 그들 중 민족주의나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논의된 내용을 출판하고 기존 정치 메커니즘을 통해 보고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면 정보기술의 발달이 만든 새로운 동아시아 정체성과 지역주의의 논의는 온전히 국가에 반영될 수 없게 된다. 


   지금의 정치는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외국인 상대에게도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건네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대중의 풍토에 기반한 정치이다. 과거에도 국제전화가 있었고 대사관 및 정부기관 사이의 연락 수단으로 쓰였지만 지역적인 협력에 대한 논의는 직접 만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한정된 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역 협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생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범위는 정보기술의 풍토가 만들어지기 전과 비교했을 때 아주 약간 더 넓어졌을 뿐이다. 동아시아 지역협력 담론의 이러한 소수 독점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쉽게 생각한다면 대중의 의견 형성에 국가 정책결정자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때 왕래가 자유로운 유럽의 경우는 대중의 지역통합 의견 형성이 강하여 국가간 지역통합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왕래가 비행기로 한정되어 힘든 동아시아의 경우는 대중의 지역통합 의견 형성도 약해서 지식질서가 소수의 전유물로 남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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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마스가 정치사상가로 활동하던 20세기 초에는 공적 의견은 지배층의 판단과 해석이 동반된 대중을 향한 매스컴을 통해서만 발현된다고 보았다. 당시의 기술적 미비로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형성이 아무나 쉽게 시작하고 다수의 공론장이 수시로 변하는 이슈 위주의 SNS 공론장과 같은 모습을 띨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텍스트가 현재에 주는 시사점은 상당하며 특히 변화된 미디어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과거의 미디어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비추어 예상해볼 수 있다.


     현재의 정보기술 진보와 그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중도층, 부동층,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 의견이 파편화되었던 사람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하버마스가 국가와 공적 영역을 겹치지 않고 대치하는 공간으로 정의한 만큼 정보기술을 이용한 의견 형성은 대통령, 국회, 정부 기관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박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적 영역은 엘리트와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참여를 용인하므로 그에 따른 미디어의 정부 규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SNS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미디어 회사의 존속 권한이나 개별 사원의 신상과 연결지어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있는 신문사나 방송국은 규제에 잘 따를 수밖에 없지만, SNS는 의견의 생산과 유통이 불특정다수와 중립적 기관으로 이원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견의 유통 기관이 어느 국가에 소속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견의 유통이 초국가적 성격을 띠어 국내법으로 규제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YouTube와 Twitter는 모두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지만 미국 국내법으로 전세계 개인들의 의견 형성을 제한할 수는 없다. 단 국가 권력이 유통 기관으로 하여금 공적 영역의 권력을 제한하게끔 하는 경우는 있다. 중국에서는 접속이 안 되게끔 하는 방화벽의 만리장성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특정 종류의 개인만 공적 영역에 참가할 수 없게끔 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국가 단위의 정치에 대한 여론 형성은 온라인에서 극도로 자유롭다.


     과거에는 집단의 대표 의견을 모아 발의했고 현재는 각자 제시한 의견이 기술적 가공을 거쳐 집단의 의견으로 바뀌는데, 미래에는 기술이 정치적인 여러 선택지를 인간이 움직이기 전에 제시해주어서 추후에 그 선택지를 선택만 하면 되게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마치 스마트폰 간의 통신 즉 사람과 사람간의 통신이 사물통신(M2M)으로 진화되어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사람이 원하는 결과가 알아서 산출되듯이, 평소 집단의 개인이 자신의 활동의 자취를 남기거나 개인의 움직임을 기계가 기록한 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기계가 제시해준다. 사람은 숙의의 과정을 기계가 일부 대행한 결과에 참여하여 인간의 공적 이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몫만 해낸다. 이를 통해 정치활동이 기술의 도움을 받는 수준은 더욱 향상된다.


     제도와 규제 그리고 권위가 수반된 대중매체의 활용은 난잡함을 막고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기술이 뒷받침함에 따라 그러한 목적이 정당성을 잃었다. 사람들의 의견이 형성될 미디어의 수는 매우 많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정보의 홍수가 있는가 한편 의견의 홍수도 있다. 따라서 정보기술이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는 이를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는 미디어는 의견 형성을 제도로 제한하기보다는 제도가 제한하려 했던 부적절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어내거나 숨긴다. 이로서 개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매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개인의 모든 행동이 효과적인 소통으로 이어지지는 않게 하는 인터페이스와 구조가 무정부적인 상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쓰레기를 버리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리게 하는 대신 초대형 청소기로 손쉽게 길거리를 청소하는 기술을 개발한 격이다.


     이 방식의 미디어 활용과 정치는 기술의 가치중립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종류의 정치이기 때문에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의 성숙이 기술의 뒷받침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정향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 곳에 끼워맞출 수 없이 모든 정향에 적용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며, 굳이 말한다면 권위주의에 대응하는 민주주의 정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최근 논의되는 '새 정치'의 구체적인 단면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종류의 새로운 연구를 하는 자세는 브루스 빔버의 논의에 따르면 비민주국가의 입장에 더 가깝다. 컴퓨터와 정보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하지 그것이 정부의 관할 아래 놓여야 하는가 여부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하버마스가 알고 있던 매스컴 위주의 미디어가 SNS를 포함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기술적 발전을 꾀함에 따라 제도의 역할은 약해지고, 기술의 제도 대체에 따라 무정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공적 영역이 보장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적 성질 자체만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다 정치적으로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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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nking about recent disputes of Japanese legislators’ behaviors to bow to the Yasukuni Shrine in Tokyo between Korean and Chinese governments, their conception of holding Japanese traditional value follows the historical principle of Justice just as what Nozick said. Since being a Japanese means respecting all of its history that started from the 4th Century, and all of its changes in dynasties and political systems, including imperial Japan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Japan seems to stick to its entitlement theory of justice in holdings and transfer.
     When we discuss about material gains improperly acquired to Japan at the expense of Manchuria and Joseon, transfer of holdings does not fit into justice without doubt. However, theories of expanding Japanese sophisticated system in order to promote East Asian growth together in order to fight against expansionism of West European empires remain a just initial holding for the Meiji Dynasty in late 19th Century in Japan’s point of view. At the time, there was a bounty of field of thought that any country can fix its scope of political thought and develop it in a first-come-first-served basis. Lack of cooperation between nation states at that time had a similar situation to the tragedy of the commons that Adam Smith discussed in England. Just as the enclosure movement suggests that anyone can do anything inside the fence without causing harm to others, Japan did anything inside the realm of concept of ‘East Asian region.’ So Japan thinks that it is the first country that attempted to seize the political thought of making East Asia as a region led by Japan, while other countries had an equal chance of participation but could not be earlier than Japan because of their lack of skills and political quality.
     If throwing out past imperialistic values, imperialism-related materials, capital and technological advancements is obligatory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n the world order or regional order is said to follow the current time-slice principle of justice. For the benefit of most countries in East Asia including countries having been victims of Japanese Grand Asian Commonwealth, Japan should forgo its ideological background and try to yield some of its product to other countries for the most utility in this region. When Japan decided to make Joseon its colony to expand its influence in Manchuria, it violated the difference principle to give autonomy to the least developed country to develop on its own, without imperialistic management. However, denouncing Japan in applying the theory of justice as political liberalism or utilitarianism is hard, especially when we discuss the power game between the two ‘empires’: Russia and Japan. Russia being in the position of an empire so that it cannot be any inferior than Japan, means that Russian intention to expand its influence in East Siberia is equally bad to Japan, causing less political benefits to countries which do not have imperialistic expansionist ideas.
     Current values of a nation-state that Japanese legislators have are led to a historical principle of justice. As we can see from an interview of one Japanese legislator from Liberal Democratic Party, they bowed to the Yasukuni Shrine because they have Japanese nationality, and the Shrine represents its history of 20th Century having a true Japanese nationality that corresponds to the people. In this sense it is forbidden to talk about colonialism that seized and stole capital and resources in neighboring countries in East Asia that Japan violated the principle of transition, because current issue is limited to transition of national values inside generations of Japan as a sovereign state. According to this idea, it is even the side that could have attempted a military coup to stop the emperor’s intention that is to be criticized, because that attempt would have led to stealing and preventing national values. So if Japan continues bowing to the war criminals in Yasukuni Shrine without causing lethal or material harm to Korea or China, then the behavior of legislators is totally just, not more than respecting its national values hand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Korea and China can thus refute Japanese current political action more persuasively, not just based on hatred sentiments, but by clarifying that expansionist political thought of a Japanese empire cannot be acquired initially following the principle of acquisition, but expansionism is the only result of stealing the political thought of making a peaceful country refraining from territorial expansion. Imperialism cannot be acquired for the first time. But setting up a nation-state or dictatorial dynasty in a certain limited borderline guarantees the principle of acquisition for its political ideology. So there is a way to logically pose a limit of imperialism in order to stop their behavior.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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