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너머

저자
신현준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3-12-16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케이팝, 글로벌 구성물의 지리적 순환전 세계 소년 소녀들이 케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YKRF리더십포럼과 관련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책을 발견하여 이렇게 글을 남긴다.


국제대중음악학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tudy of Popular Music 와 인터아시아문화연구학회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학회에 우연히 참석한 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국제학계에 휘말려 들어간 신현준 박사는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문화 파트 특별 강연자로 반드시 초청하고 싶다. 초청은 후배들이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이 분야의 직장인이 되어 아주 약간의 조언이나 기업의 사회공헌/대외관계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이 되면 더욱 좋겠다.


영미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우연찮게 국제적 대중음악 연구자들, 특히 아시아권의 연구자들과 접속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 운 좋게도 2003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를 '직장'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아시아 대중음악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대상으로 한 영어 논문은 열 편 정도 축적되었고, 각각 두 편씩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내가 감명받은 사례는 1990년대 말의 우전소프트였다.


1990년대 말 한국 대중음악을 중국에 수출한 최대 공로자는 우전(宇田)소프트였는데, 이 회사는 국제 음악산업계는 고사하고 한국 음악산업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대표 김윤호는 회사를 퇴직한 뒤 사재를 털어 혈혈단신 베이징으로 가서 한국 대중음악을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방송국 경영을 시작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1998년 H.O.T.의 중국판 반을 시작으로 시디를 배급하고 공연 프로모션을 기획하여 중국에서 한류 폭발의 주역이 되었다. 우전소프트는 수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에 배급되는 단일창구로 기능했다.


아울러 유명한 SM


이수만은 2005년 '아시아 네트워킹' 이라는 그의 프로젝트를 피력한 바 있다. "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베세토' 통합 스타와 통합 아시아의 문화산업"에 관한 그의 구상은 이후 SM의 제품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2005년 데뷔한 13인조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한경은 중국에서 스카우트되었는데, 그는 한국에서 슈퍼주니어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과 더불어 중국에 역수출되어 슈퍼주니어 엠('엠'M이란 중국어 표준어인 '만다린'을 뜻한다)을 이끌었다. 슈퍼주니어 엠은 슈퍼주니어의 기존 멤버 일부와 현지에서 추가로 스카우트한 두 명의 중국인 멤버로 구성된 유닛이다. 2009년 데뷔한 5인조 걸그룹 에프엑스의 경우 중국인 한 명, 타이완계 미국인 한 명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아시아 팝댄스그룹'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팍스 뮤지카 '87 서울


조용필은 일본, 한국, 홍콩의 톱스타 3인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음악 페스티벌 '팍스 뮤지카 '87 서울' 에서 록 스타일의 곡 '아시아의 불꽃' 을 연주했다. "아시아의 젊은이여" 라고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는 "사랑도 하나 마음도 하나/ 우리의 숨결도 하나/ 여기 모여서 같이 가리라/ 우리의 노래를 부르리라" 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회고해본다면 1980년대까지는 이런 유형의 노래를 만들고 불러야 한다는 무언의 분위기가 지배했던 것 같다. 실제로 '팍스 뮤지카 '87 서울'의 오프닝은 "아시아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음악을 통해 평화와 우정을 나누는 평화의 대제전"이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했든 아니든,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라면 평화와 화합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대중음악이 아무리 탈정치적이고 탈역사적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정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은 곤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20대 중반일 때 똑같은 분위기로 이런 대축제를 했다는 게 신기하지 않는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서로 훨씬 가까워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형식적이라도 '아시아는 하나'라고 진지하게 상상하는 젊은 아시아인은 거의 없는 것같다. 최소한 이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창작하고 연주하려는 아시아의 스타는 더더욱 없는 것 같고, 팬들도 저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21세기의 한류/케이팝 나아가 케이팝이 매개하는 아시안 팝은 20세기 아시아 대중문화에 남아 있던 정치와 역사를 삭제하고 있고, 식민주의, 냉전, 국가주의 등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우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송페스티벌로 점프해 왔다. 


문화산업은 이제는 국가가 후원하는 '진흥'의 대상이 되었고, 국민이라면 당연히 문화산업의 진흥을 '응원'해야 하는 것이 규범이 되어버렸다. 중국만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키워드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문화융성, 일본의 쿨 재팬과 더불어 삼국의 국가 지원 형식의 문화산업 발전이 아시아 내에서 균형 있게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전반기는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을 이용해 한 명의 스타를 콘텐츠로 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개발되면서 몇 개의 기록적인 성공 사례가 탄생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2010년대는 보다 활발해진 오프라인 인적 이동과 함께 온라인 공동체 CPND를 통해 도시와 지방을 아우르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집단이 '멀티 소스 원 유즈', 여기서 원 유즈란 '다른 나라지만 비슷한 취향끼리 모이기' 가 되지 않을까.


Mayday의 킨텍스 공연을 보고 나는 CNBLUE의 도쿄돔 공연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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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판단기준은 내 집에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가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쾌락적인 것들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나는 축재를 위해 살지는 않아요(...). 나는 삶을 위해 삽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나는 순간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죠" 라고 덧붙인다.


 '그곳에는 광고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그는 집에서 '멋이 없는 더러운 바지'를 입지만, 일을 할 때에는, 아주 세심하고 우아하게 정장을 한다. 그는 파리의 빅토르 위고 거리에 있는 광고업자들을 위한 재단사인 반스Barnes의 상점에서 양복을 구입한다. "그곳에는 영국 산 직물, 영국 황태자가 입는 다소 호화스러운 체크 무늬 의류와 같이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위 공무원들이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 아니며, 은행가들도 이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죠(...). 은행에서는 단색의 셔츠가 필요합니다. 은행은 광고업계에 비해 그다지 과시적이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쓸 따름이죠(...). 직업상, 우리는 사회계급이나 사회적 카스트로 쉽게 사람들을 분류해 냅니다. 그런 일은 한 카스트에 어울리는 제품을 제대로 부여하는 문제죠. 어떤 새로운 사람이 대행사에 들어올 때, 곧 우리는 한 눈에 그를 판단합니다(...). 커다란 깃이 있는 우단 의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고,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그 의상으로 상쇄하는 사람이죠." 잠시 동안, 대행사에 '아주 평범한 배경을 가진 경리부장'이 있다 갔다. "그가 왔을 때, 그는 너무 보기 안 좋은 옷차림을 했기 때문에 사무를 방해했죠(...). 마치 무슨 젊은 노동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가령, 어울리지 않게 깃이 작고, 아래가 꼭 끼며, 다소 짧고, 화려한 색깔을 가진 셔츠와 꼭 끼는 넥타이와 함께 양복을 입는 것은,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보기 흉합니다."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는 남에게 상품을 권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여러 종류의 직업(판매, 마케팅, 광고, PR, 패션, 실내장식 등)과, 상징적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제도에서 자기를 실현하게 되는데, 그러한 제도에는 최근에 상당히 확산된 다양한 의료보건, 사회부조관계의 직업(결혼생활상담원, 성문제 전문가, 식이요법 영양사, 취직 어드바이저, 육아전문의 보모 등)과 문화생산 및 촉진에 종사하는 직업(문화활동지도자, 학외활동교육자, 라디오 및 TV제작자와 사회자, 잡지기자 등)과 더불어 공예가나 간호사 같은 기존 직업도 포함된다.


소유하는 자본이 크면 클수록 문화적 환경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가 가져다주는 이익은 커지고, 또한 집단의 문화자본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이 그 성원에 대해 가하는 순응 유도 압력도 커지므로, 파리사람과 지방사람 간의 격차는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커지게 된다.


현재 부르주아지와 쁘띠 부르주아지의 거리를 특징지우는 것처럼 17세기의 귀족과, 절약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거리를 특징지웠던, 돈을 일일이 세보지 않고 소비하는 기술은 그 존재 자체가 사회관계자본의 재생산에 종속되는 계급의 제한된 경우에서는 명백한 교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은 그 아들에게 대귀족처럼 돈을 쓰는 법을 배우도록 금으로 가득 찬 지갑을 넘겨주었다. 아들이 쓰고 남은 돈을 가져오자 공작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금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어디에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노동자는 명령의 실행자로서의 성향을 모든 생활영역에서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민중계급의 생활양식은 위스키나 회화제품, 샴페인이나 음악회, 항해여행이나 미술전람회, 철갑상어나 골동품 같은 사치재가 없는 만큼이나 이러한 재화에 대한 수많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샴페인 대신 '발포성 와인', 진짜가죽 대신 '모조가죽', 회화 대신 조잡한 착색 석판화chromo가 그것인데, 이런 것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화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제2단계에서의 박탈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대중문화culture populaire'는 '대중'과 '문화'라는 역설적인 말들이 결합되어 통용되고, 바라든 바라지 않든 지배자 측에 의해 문화의 정의가 부과되는 것인데..


(성과 계급에 무관하게 모두에게 의견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민주주의적 자발주의spontanéisme démocratique와, (이 권리와 의무를 '지성'intelligence과 '역량'compétence으로 인해 선출된 '전문가'들에게만 국한하는) 기술관료적 귀족주의aristocratisme technocratique 사이에 존재하는 이율배반은, 기술관료적 선발로 인해 모든 경우에 배제됐을 사람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게임으로부터 배제하게 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그 이율배반의 실제적 해결책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생산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뤼마니떼L'Humanité나 다른 극좌파 신문을 읽는 가장 정치화된 일부를 제외한다면)은 일간신문에서 정치적 안내자나 도덕적 문화적 조언자의 역할(신문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단지 '르 피가로'지의 일부 독자들에게서일 것이다)을 실제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며, 또한 정보획득, 자료수집과 분석의 수단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보도지presse d'information와 저속지presse de sensation 사이의 차이는 행동이나 발언이나 사고에 의해 정치를 실제로 하는 살마들과 정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 능동적 의견과 수동적 의견 사이의 대립을 결국 재생산한다.


(노동자) 그들은 상징적 투쟁수단을 선호하며, 맨 먼저 도덕적 지배관계를 정립하는 교육운동이나, 열광적 신뢰의 대상인 '정보', 그리고 오로지 동일한 '이유'에 의해서, 일종의 윤리적 독촉을 실행하려는 동일한 의지에 의해서 단합된 개인들의 엄밀한 계열적 집단편성인 협회association가 실현하는 집단적 행위의 특수형식이 있다. 봉사활동은 선의의 과시적 소비이고, 그 자체 이외에는 다른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순전히 무사무욕적인 윤리적 활동이며, 그것의 실행자에게 여러 권리를 부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큰 것은 의분(義憤)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 권리는 '자기 몫을 한' 사람, 자기의 의무를 완수한 사람, 특히 누구에 의해서도 승인되는 기성사실을 만든 사람의 완벽함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무사무욕'하고 '청결하고', '고결하고', '정치'와의 어떤 타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행위는 실제로 사회적 승인의 가장 완벽한 형태인 제도화의 기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인데, 모든 협회들이 다소간 비밀리에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의견에의 접근 가능성, 혹은 의견을 구성하는 수단에의 접근 가능성(전국지의 구독과 같은)이 박탈될수록 그만큼, 지방에 기반을 둔 집단들(또한 場들도)이 행사하는 스크린 효과effet d'écran (혹은 허구적 문맥화 효과)에 더욱 민감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가 사회공간 내에서 접하고 있는 위치를 평가하는 참조물로서 지리적 기반을 가진 사회적 하위공간(촌락, 인접집단 등)을 드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피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공간에서의 지배자들(소토지 구역에서 50ha의 토지소유자, 지방의 명사, 직공장 등)은, 나무를 보고 숲은 못 보듯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조화되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3기능 체계structure triadique(인도-유럽어계 제 민족의 신화가 기본적으로는 지상권을 맡는 사제, 힘을 행하는 전사, 풍요로움을 맡는 생산자라고 하는, 실제 사회에 있어서의 기능 구조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고 하는 생각)의 재현은 조르쥬 뒤비(Georges Duby)에 의해 그것이 정당화하는 봉건사회의 사회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적용되었는데, 3기능체계의 재현은 계급분화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2개의 분할원리가 교차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즉 하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분할이고, 다른 하나는 상이한 원리들의 이름으로 지배를 위해 경쟁하는 지배집단 내의 제 분파 간에 보이는 분할인데, 후자는 봉건사회에서는 전사bellattores와 학자oratores의 분할이고, 오늘날에는 경영자와 지식인의 분할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맥더미의 궤변

한 사람이 A=B, B=C 그리고 동시에 A<C를 가지고 있다. 혹은 A1=A2, A2=A3, ... A99=A100 그리고 A1<A100이다. 달리 말하면 비록 한 알의 소맥이 소맥더미를 만들지 못하고 두 알, 세 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소맥더미가 264알부터 시작되는지 265알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265알부터는 소맥더미가 되고 264알로는 소맥더미가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입된 분류법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배계급 측의 여러 가지 학문에 의해 생산된 수많은 윤리적, 미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법률적 분류법은 자신의 외견상의 중립성으로부터 특정한 효력을 이끌어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모두 사회적 기능에 종속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분류법은 상대적 자율성을 띤 여러 場의 고유한 논리와 언어에 따라서 생산되며, 지배적 아비투스의 분류도식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이러한 도식을 낳는 사회구조에 대하여 실제적인 종속dépendance réelle을 야기하는 동시에, 외견상의 독립apparence de l'indépendance을 추가하였는데, 외견상의 독립은 분류투쟁lutte des classements과 계급투쟁lutte des classes의 한 상태를 정당화시키는데 공헌한다. 확실히 半자율적인 분류체계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는 학교적 '성적평가'의 원리인 일련의 형용사의 체계(秀, 優, 美.. 可 등)이다.


남녀간, 연령층간의 대립이라든가 세대간의 대립처럼, 다양한 지배형식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여러 도식이나 상투어의 표현형 역시 비슷한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령 소위 '청년층'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연장자들이 제시하는 정의를 받아들여 많은 사회에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일시적 자유권('젊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을 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귀속된 적합한 일, 젊은이의 '고유한 미덕', 즉 용기, 사내다움, 열정 등을 실현하고, 중세귀족의 자제라면 무술 수행, 르네상스기의 피렌체 청년이라면 연애와 폭력,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라면 rule에 입각한 유희의 열광(스포츠나 록음악처럼)을 실천한다.각자 자신의 고유한 사안에 관여하면서, 요컨대 자신을 '젊음'의 상태로, 즉 무책임한 상태로서 유지하고, 책임 있는 행위를 포기하는 대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자유를 향유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아름다운 것beau'과 '매혹적인 것joli' 사이에,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쾌락plaisir과 향락jouissance, '아름다운 것beau'과 '쾌적한 것agréable', 즉 '뜻에 맞는 것ce qui plaît'과 '즐겁게 하는 것ce qui fait plaisir' 사이에 설정한 대립과 똑같은 대립을 설정하고, '매혹적인 것'을, '의지에 대해 그것의 성취와 만족을 직접 제공함으로써 의지를 자극하는 것', '미의 직관에 필요한 순수직관상태로부터 감상자를 끌어내는 것', '의지를 직접 만족시키는 대상을 보는 것에 의해 의지를 틀림없이 유혹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순수취향이 거부하는 것은 사실 대중적 관객이 굴복하게 되는 폭력이다(대중음악과 그 효과에 대한 아도르노의 서술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즉 그것은 자기에 대한 경의를 요구하는데 이는 거리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거리감이다. 순수취향은 예술작품에 대하여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은 궁극성으로서 존재하고, 관객을 칸트적 정언명령에 따라 취급하기를, 즉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대우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칸트의 순수취향의 원리는 향락을 부과하는 대상물에의 혐오, 그리고 그 부과된 향락에 만족하는 조야하고 통속적인 취향에 대한 혐오이자 거부이다.


만약 칸트의 '負量의 개념'의 논리에 따라, 극복된 악덕의 양에 의해 미덕의 크기를 재고, 부인된 충동과 정복된 통속성의 강도로 순수취향의 강도를 측정하려는 미학을 상정하고 그 미학의 함의를 추종한다면, 가장 완성된 예술은 문명화된 야망과 억제된 충동, 승화된 조야함의 대립적 명제를, 가장 긴장도가 높은 상태로 포함하는 작품들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 너무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쾌락을 억제하는 것은 '순수'쾌락의 경험을 위한 선행조건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쾌락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유미주의자의 쾌락의 가장 순수한 형식, 즉 정화되고 승화되고 부인된 감각기능은 역설적으로 금욕, 즉 훈련 속에,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감각기능과는 정반대로 단련되고 유지된 긴장 속에 존재한다.


칸트는 '자유로운 예술'과 '보수를 바라는 예술'을 대립시키는데, 전자는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그 所産은 자유이며(그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감상자에게 어떤 강제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賃金처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서만 매력적이고 따라서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예속적이고 비굴한 활동이며, 그 산물은 감각될 수 있는 매력의 노예화하는 폭력으로써 감상자에게 강요된다.


칸트는 먼저 (대학에 소속된) '동업조합적 학자' 혹은 재야의 '독립학자'와, 단순한 '학색수득자' 즉 성직자, 법무관, 의사처럼 대학에서 획득한 지식을 파는 '실무가와 학식의 전문직인'을 구별하고, 마지막으로 후자의 고객, 즉 '무지한 사람들로 구성된 일반대중'을 구별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세속적 차원에서 지배적인 제 학부, 즉 법학부/의학부/신학부와, 세속적 차원에서는 피지배적이나 비세속적 차원에서는 지배적인 학부, 즉 철학부를 대립시킨다. 철학부는 세속적 권력은 없으나 '정부의 명령에 독립적'이고,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인데, 그 자신의 법, 즉 이성의 법만을 알고 있으며, 그 비판력을 완전한 자유에 의해서 발휘하는 근거를 부여할 수 있다.


출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下,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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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s Changes

Ray Bryant Trio

Prestige 7098 (1957)

 

 

Blues Changes.pdf

 

모처럼 주말이 되어 피아노를 연습하다 예전에 악보를 인쇄하여 철해놓은 클리어파일을 발견했다. 피날레로 만든 이 곡 Blues Changes의 악보였다. 2006년 내가 대입을 준비하면서 자유시간이 날 때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이런 채보로 풀곤 했는데, 이 악보는 유일하게 N드라이브로 백업하지 못한 나의 피날레 악보였다.

 

인쇄를 안 해놓았으면 그때 어린 내가 열심히 만든 이 악보는 사라지고 없었겠지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지금 내 피아노 실력으로는 무지하게 어려운 반음계 덩어리의 이 곡을 2006년의 나는 어떻게 악보로 옮겨적을 수 있었을까 신기한 마음이 든다. 마치 지금 고등학생인 다른 후배를 보며 감탄하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나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무조건 능력이 상승하고 기억이 축적되는 것은 아닌 느낌이 든다. 머리는 마치 화이트보드와 같아서 치열한 시절에는 이색 저색 마커로 글과 도안과 낙서가 빼곡히 적혀있지만 성취와 안정을 얻고 늘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화이트보드의 절반 정도를 지워버리고 만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고대의 조상들은 당연하게 사용했던 문명의 이기를 전쟁과 무사태평한 시기를 거치면서 잃어버리고 까먹고, 나중에 다시 처음부터 발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2006년의 나는 자기 전에 이 음악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내 네이버 블로그를 날리지 않길 잘했다.

정말 이 곡은 자기 전에 들으면 그 cozy한 느낌이 참 따스하고 좋다.

 

 

예전에 나는 재즈를 좋아했구나. 그래서 재즈 동아리에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본다. 과거의 내 모습을 잃지 않게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음악(재즈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그리고 smooth jazz를 들었던 그 시절 ㅎㅎ)을 다시 들어야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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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일본을 좋아하는 태국



일본을 좋아하는 스페인



단지 나는 댄스를 별로 즐겨하지 않아서 (그리고 예전에 밴드를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비디오보다 이런 게 끌릴 뿐이다.

그리고 위의 세 나라는 모두 '라인'의 이용률이 높은 나라들이다.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대표는 "라인은 향후 전세계 10억명이 이용하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현재 2억3000만명의 이용자 가운데 일본 이용자는 30% 뿐이며 나머지 80%는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에 고르게 분포됐다"고 밝혔다. 참고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82113040581808&VBC)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위의 동영상을 찾아본 게 아니며, 평소에 우연히 발견해서 좋다고 생각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둔 동영상이 이 기사와 뭔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CJ E&M은 중국과 유럽에 한국의 댄스 중심의 음악의 포커스를 맞추었으며, 일본에는 드라마와 약간의 뮤지컬이 있을 뿐이다. 즉 한국의 밴드 중심의 음악을 수출하는 거대 자본이나 트렌드를 만드는 집단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아, 씨엔블루 FT아일랜드를 까먹었다. 그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좀더 '외모가 부각되지 않고 연주 실력과 단지 좋은 음악이 부각되는' 밴드 음악을 일본을 비롯한 위의 나라들에 알리고 수출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한국이 취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민트페이퍼이고, 그래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일본인 교환학생이나 다른 아는 친구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2012년 10월에 나는 프랑스로 교환학생 중이었으며, 2013년 10월에는 코엑스에서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뭔가 깨달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울러 서울소닉(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국, 영국과 싱가포르 공연 등)의 노력을 주목할 만 하지만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으로 한국의 밴드 음악이 진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건 마치 한국-중국-싱가포르-미국-영국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 진영과 일본-대만-인도네시아-태국-스페인의 일본 대중문화 수용 진영 사이의 구분일까?


구별이 제멋대로이고 임의적이고 성급한 일반화의 감이 없지 않아 죄송할 따름이지만, 브라질과 호주의 경우는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진영에 더 가까운지)는 궁금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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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극장, 오페라 혹은 전람회들(초연이나 야간 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은 상류층 관객들이 상류 사회의 일정이 갖는 통합적이면서도 독특한 리듬에 따라 상류 사회의 구성원임을 드러내고 체험할 수 있는 사회 의식의 기회나 구실이 된다.

- 샤롯데시어터, OO아트홀, 이태원 블루스퀘어 등등..

 이와 반대로, 미술관은 상류 사회의 의식과 결합된 사회적 만족을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의상에 관한 어떠한 강제도 없이, 필요한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입장시킨다. 더욱이, 극장, 특히 음악당과 버라이어티 쇼들과는 달리, 미술관은 항상 순수 미학적인 것이 요구되는 정화되고 승화된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점은 도서관과 다소 비슷한데, 미술관은 종종 소박한 기쁨을 지향하는 것만큼이나 경험과 지식의 축적 또는 승인과 해독의 즐거움을 강하게 지향하는 엄격하고 준(準)-학자적인 성향을 요구하는 것이다.

- 삼청동 아트선재센터, 인사동 미술관, 정독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등등..


미술관을 도서관과 관련짓는 경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중간계급 관람자들과 교수들이다.


실제로, 하나의 계급 혹은 계급분파는 지식인이나 예술가 일반에 대해 (반-주지주의가 쁘띠 부르주아와 부르주아의 어떤 분파들의 결정적인 특징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 계급이나 분파가 내리는 전체적인 판단에 의해 정의된다기보다는 생산의 장에서 제공되는 선택지 중에서 그 계급이나 분파가 택하는 예술가나 작가들에 의해 정의된다.

- 그래서 내가 속하고 싶은 계급은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내세워 놓았듯이 Fritz Lang, Jacques Tati, Jean-Pierre Jeunet 영화감독, 음악가로는 Yellow Magic Orchestra, 호시노 겐, 캐스커 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 세련되고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약자에 대한 관심도 갖되 쿨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


오스트레일리아의 신화에서, 주술적인 수단에 의해 20세에 가질 수 있는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면서 세대들간의 관계구조를 전복시키는 늙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나이에 젊은 좌파들과 교제하고 세도가와는 교제하지 않은 사르트르 식으로 사회질서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은폐되어 있는 기반의 하나, 스피노자가 공순(恭順)obsequium이라고 부른 것, 즉 '서로 존중해 주고' 그 존경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성향을 가끔씩 문제시할 수 있다.

- 내가 지도층이 되고 지배계층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같은 지배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부패하였거나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친한 척 하고 대접해주지만 속으로 저 먼 곳의 젊은 사람들이 가지는 혁신적인 생각을 키워주어 나중에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나와 정말 뜻이 맞는 사람에게는 피식 웃으면서 진심으로 내가 가진 능력과 정보를 모두 공유할 것이며,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문제 있다 싶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더 사근사근하게 대할 것이다. 약간의 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업들(또는 최소한, 의사들)은 다른 것들 중에서 가장 맬더스주의적인 지위접근의 조건들을 옹호함으로써, 지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와 그 지위가 요구하는 능력들을 성공적으로 유지시켜 왔다.

- 대학교 학회는 맬더스주의적인 지위접근의 조건들이다.

사실, 자격증과 승진에 따른 접근양식의 이중성, 그리고 그러한 이중성에 상응하면서 접근양식과 그것에 상응하는 특권에 대한 정연한 옹호를 방해하는 분할들로 인하여, 이러한 범주들은 교육연한의 연장이 가지는 효과들에 의해 훨씬 직접적으로 영향받아 왔다. 지위에 특권을 부여하는 자격증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교육연한의 연장은 자격증과 지위 사이의 실제 관계와 자격증 보유자와 비보유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위에 대한 경쟁의 형태를 변형시켜 왔던 것이다.

- 한국 대학생들의 졸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격증의 수(이력서의 한줄 한줄을 모두 이 '자격증'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많아지고, 이에 따라 경쟁의 형태는 변형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다면 사실 전문성까지 물어보지 않고 인성만 보는 일본식 채용 시스템이 이력서와 전문성을 모두 따지는 한국식 채용 시스템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르 몽드'지의 구인란에 대한 간단한 분석

새로운 관리직의 모습

1. 보다 높은 수준의 교섭 에 소질이 있는: 수완을 가지고 처신할 줄 아는, 모든 수준의 교섭에 예민한 감각, 모든 수준의 교섭, 보다 높은 수준에서 공무원과 교섭하는 데에 익숙한 아주 훌륭한 협상가, 은행과의 협상, 관공서들과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것, 직업 조직 내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것, 교섭과 추진에 대한 의욕, 과제 해결과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 화술의 유창함

2. 그리고 내부 협상에서, 다시 말하면 판매관리부의 책임자로서: 판매와 관리 사이의 조정과 중재에 대한 지속적인 활동

3. 새로운 상업학교들 중의 한 곳에서 공부한: 즉 HEC, INSEAD, 고등상업학교ESC나 고등실업학원Institut supérieur des Affaires(ISA)들이 대체로 함께 거명되는데, 이 학교들은 대개의 경우 '미국의 대학교에서의 이수기간'을 가진다.

4. 다국적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또는 국제 무역에 전념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 '반드시 필요한 영어실력'과 마케팅, 머천다이징 등에 관한 영어용어, 그리고 '기회opportunité' 등과 같은 영어식 표현들

- 프랑스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은 있었다.


'사업상의 관광여행'

업계의 용어로 '포상 세미나' 와 '고급 세미나'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현대적인 기업들이 자신들의 관리직들에게 제공하는 일련의 비밀스러운 이익들의 일부를 이룬다. '숙박 설비가 있는 세미나들'(다시 말해서, 하루 이상 지속되고 회사 밖에서 벌어지는 세미나들로서, 1973년에 25,000개의 세미나들이 개최된 것으로 추산되었다)은 '사업상의 관광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호텔들(노보텔, 프랑텔, 소피텔, P.L.M., 메리디엥, 메르뀌르, 모텔르리)을 수반하는 가장 번창하는 산업이 된다.

- 이름이 익숙한 저 호텔들이 세미나 전문 호텔로 지금의 호텔 체인을 가지게 되었구나.

세미나르크Séminarc는 인세아드INSEAD의 한 졸업생이 고안해 낸 것인데, 그는 가을과 봄의 여섯 달 동안 침체되어 있는 레자르끄Les Arcs의 휴양지가 가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그 곳을 세미나 센터로 만들었다. 이 뉴스를 실은 경제 주간지에 따르면, '가을과 봄은 상급 관리직들이 명상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성수기에는 최고 경영자를 위한 호화 세미나들과 주요 고객들을 맞아들이는 반면, 비수기인 겨울에는 '열심히 공부했던 판매부원들을 위한 재교육-포상 세미나들'로 예약되어 있다.

- 겨울에 대기업 신입사원들이 리조트로 많이 가는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사기업 관리직(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 보다 젊은 나이에 영향력 있는 위치에 도달하고, 대체로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고, 보다 대규모적이고 현대적인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보다 젊고 현대적이며, 거의 전부는 금융 일간지인 Les Echos와 경제/금융 전문 주간지들을 읽는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들은 대체로 세련된 동시에 활동적이고, 많은 경우에 요트, 스키, 수상스키, 테니스, 그리고 이차적으로 승마와 골프처럼 '인공두뇌적'인cybernétiques 스포츠에 열중하고, 브리지와 특히 체스처럼 '지적'인 동시에 세련된 오락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외국을 지향하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에 열려 있는 현대적인 관리직이 가지는 역할을 자신들과 보다 철저하게 동일시한다.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고, 외국어로 쓰여진 잡지들을 읽으며, 현대적인 집기를 가지고 있다.


취향 생산자들taste makers: 관광회사, 신문/잡지사, 출판사와 영화사, 의류업계와 광고회사, 실내장식회사와 부동산개발회사


신흥 부르주아지라는 계급분파는 학교, 교회나 회사에서처럼 은근한 강제manière douce에 기초한,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모든 표현들(특히 의복과 같은 것에서)에 대한 완곡어법과 그러한 거리 두리를 안정시키는 데 적합한 귀족적인 엄격함에 대한 계산된 포기로 나타나는 '느긋한décontracté' 생활양식에 기초한 새로운 지배양식을 창안하고,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계급분파이다.

- 정말 모든 '신'계급, '신'생활양식은 미국에서부터 왔구나. 전세계에서 표준을 만든 나라.


쁘띠 부르주아에게 가족관계와 친구관계는 더 이상 불행과 재난, 고독과 빈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험도, 필요한 경우에 도움의 손길이나 대부, 직업을 제공할 수 있는 원조나 보호의 네트워크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아직 인맥 즉 경제 및 문화자본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회관계자본이 아니다. 그러한 인맥이 가져다주는 사의(謝意)와 상호부조, 연대, 물질적 및 상징적인 만족은 장기적으로 또는 단기적으로 그들에게는 금지된 사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이 얼마가 들든 간에 제거해야 할 질곡에 지나지 않는다.

- 대학생의 대부분은 쁘띠 부르주아로 상승 지향적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만약 대학생이라는 집단이 상승 지향적이 아니고 쁘띠 부르주아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훨씬 행복하고 '안녕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대량으로 자기를 재생산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번식력을 거부하면서, 쁘띠 부르주아지는 제한적/선택적 재생산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자주 그들의 수입계급(輸入階級)인 부르주아 계급의 엄밀하게 선택적인 기대에 따라서 구상되고 형태를 갖춘 유일한 생산물에 한정된다. 쁘띠 부르주아지의 도덕은 엄격하고도 엄밀하여, 형식주의와 세심한 시선은 언제나 그 도덕을 편협하고 견고하며 경직되고 과민하며 옹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쁘띠 부르주아지는 그 자신의 사소한 배려와 필요를 좇아 작게 사는 부르주아지이다. 심지어 사회세계와 그 자신의 모든 객관적 관계가 표현되는 신체적 성향조차 부르주아 계급에로 이르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를 작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옷차림이나 말(과도한 경계심과 신중함으로 과잉교정된 말), 몸짓, 전체적 거동에서 엄격하고 절도있으며 신중하고 검소한 그에게는 언제나 자유활달한 여유나 폭넓고 통이 큰 너그러움이 조금은 결여되어 있다.

- 작년과 올해의 나를 보는 듯 하여 반성하는 마음이다. 쁘띠 부르주아지의 어두운 단면을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적나라하게 파악하는 문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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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집을 어떻게 장만할 것인가라는 사람들의 질문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항상 전세가 아닌 월세로 15평 이하 되는 원룸에서 살겠다고 이야기한다. 집이 넓고 또는 집을 소유하는 것은 40세가 될 때까지는 사치이며, 그 전에는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집에 불필요한 가재도구를 들여놓지 않으며 외부의 서비스를 최대한 이용하고, 창고나 옷장처럼 쓰는 공간을 가족 집 창고로 대신하여 왔다갔다하면서 필요한 물건만 옮기는 등 집의 크기를 최대한 압축하자는 생각이다. 나는 도시 속을 갈망하고 도시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만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 내 집은 허름해도 좋다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노원구 상계동은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선택이다. 주변에 수락산과 중랑천이 있고, 건물과 거리는 조금씩 리모델링되어 세련된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게 가장 매력적인 곳은 중구 순화동과 광화문 일대다. 역사 유적에 둘러싸여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교통 이용 시간을 걱정하지 않고 도시 생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한 채 밖으로 한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가 주는 공감에는 절반밖에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자신의 집에, 즉 내 자신이 디자인한 자그마한 집에서 살기 위해, 1/4에이커 정도 되는 자그마한 땅뙈기의 한가운데 있는 집에서 물과 그늘과 잔디와 침묵을 즐기며 혼자 살기 위해 기꺼이 루브르 미술관, 뛸러리 궁전, 노트르담 - 그리고 방돔의 열주(列柱)까지 덤으로 끼워 - 을 포기해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집 안에 조각을 하나 들여놓을 생각이 들더라도 주피터나 아폴로 - 이처럼 멀쑥한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또는 런던이나 로마, 콘스탄티노플 또는 베니스의 풍경을 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한 장소에는 전혀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그곳에다 내게는 없는 것 즉 산, 포도밭, 목초지, 산양, 소, 양, 추수하는 사람들과 양치기를 두고 싶다.

- P. J. Proudhon, Contradictions économiques, op. cit., p. 256.

 

 여기서 동의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들의 거부와 자그마한 집에 대한 찬미다. 겸손하면서도 쿨하기를 원하는 나는 무조건 작은 집에서 적지만 모두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되고 배치된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 어떻게 디자인이 잘 되었지만 사치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물건을 살 때 자기가 추구하는 일관된 디자인의 물건을 골라왔다면 그 물건들이 세월에 걸쳐 축적되었을 때 한 장소에 멋있고 조화롭게 배치될 수 있다. 물론 조각같은 사치품은 절대로 들여오지 않는다. 나는 나의 삶과 가장 밀접하다고 보는 전자제품과 악기를 가지고만 디자인하고 그것으로 끝낼 것이다. 다른 것은 새로 구입하는 일 없이 예전 살던 집에서 모두 가져올 예정이다.



 하지만 침묵을 즐기거나 귀농과 같은 선택을 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귀농은 분명 도심에서 그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바탕으로 사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그러나 귀농보다 더 검소하게, 왁자지껄하고 바쁜 곳의 후미진 곳에서 언덕 위에 집이 있다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객관적인 삶의 질보다는 주관적인 만족감에 따라 산다면 비용이 더 적게 들 수도 있다. 집에 관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옷과 문화생활의 비용을 높이며, 공동체적인 삶으로 들어가 도심 속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게 나의 목표이다. 파리에 있을 때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리고 현실적인 자금 제약으로 인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방식을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어나가고 싶다.


 혜택을 많이 받는 서울 한복판에서 큰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치이므로, 작은 집에 월세 들어 살면서 겸손함, 그리고 매달 월세를 내면서 나중의 내집마련을 위한 자금운용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면서 항상 도전할 거리가 주어져있는 주거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권역 도시 지역의 주상복합이나 큰 아파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시골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갈 것인가. 20대 중반과 30대 초반에서조차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사회 통념에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켜버리는 것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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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se Of You

James Blake

Enough Thunder



A Case Of You.pdf



Just before our love got lost you said

"I am as constant as a northern star"

And I said "Constantly in the darkness Where's that at?

If you want me I'll be in the bar"


On the back of a cartoon coaster

In the blue TV screen light

I drew a map of Canada Oh Canada

With your face sketched on it twice


Oh you're in my blood like holy wine

You taste so bitter and so sweet

Oh I could drink a case of you darling

Still I'd be on my feet oh I would still be on my feet


Oh I am a lonely painter

I live in a box of paints

I'm frightened by the devil

And I'm drawn to those ones that ain't afraid


I remember that time you told me you said

"Love is touching souls" Surely you touched mine

'Cause part of you pours out of me

In these lines from time to time


Oh, you're in my blood like holy wine

You taste so bitter and so sweet

Oh I could drink a case of you darling

And I would still be on my feet oh I would still be on my feet


I met a woman She had a mouth like yours She knew your life

She knew your devils and your deeds

And she said "Go to him, stay with him if you can

But be prepared to bleed"


Oh but you are in my blood You're my holy wine

You're so bitter, bitter and so sweet

Oh, I could drink a case of you darling

Still I'd be on my feet I would still be on my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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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그 적당함

XIA(준수)


11시 그 적당함.pdf


아침 11시5분
내 잠을 깨우는 햇살이 싫다

다를 게 없는 하루
세상이 밉다 머린 아프다

물을 마시고
나름 옷 매무새를 정리해봐도
나가긴 싫다

내 맘 가득 찬 우리
그 시간엔 난 혼자였다

미칠 것 같아

한번만 날 안아줄래
한번만

나 아닌 그 사람 몰래

사랑한다 몇 번이고
널 향해 외쳐봤지만

내 눈앞엔 니가 없다
니가 없다

내 곁엔 네가 없다

너무 괴롭다 눈물만 난다

나 혼자 슬픈 이 기분

온종일 꿈인 것 같다

미칠 것 같아

한번만 날 안아줄래
한번만

나 아닌 그 사람 몰래

사랑한다 몇번이고
널 향해 외쳐봤지만

내 눈앞엔 네가 없다
네가 없다

사랑한다 몇번이고
널 향해 외쳐봤지만

내 눈앞엔 네가 없다
네가 없다

사랑해 
사랑해...

니가 없다
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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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Cafe Macchiato/자아찾기 2013. 7. 10. 13:00

 남들 사는 대로 남들 가는 대로 그냥저냥 따라가며 사는 삶은, 설사 그런 삶이 그런대로 별 탈이 없다고 하더라도 유가의 온전한 삶이 되지는 못한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데서 유가의 삶은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삶의 중심에는 내면의 깨어 있음으로부터 연유하는 홀로 있음이 엄연히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 깨어 있지 않은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논어'의 한 구절이 이것을 말해준다.

공자가 말했다. 된 사람은 (사람들과) 화목하나 무리 짓지는 않고, 덜된 사람은 무리 지으나 화목하지는 않는다.



 남들 가는 대로 = 대기업이라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좀더 범위를 넓혀서 남들 가는 대로 = 한국기업이라면?

 무리 짓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소신껏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나로서는 중용의 철학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비주류라고 상처의 말을 듣는 길도 어엿한 선택이 될 수 있고, 그 선택을 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정도 살면 잘 사는 거 아니야? 솔직히 객관적으로' 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남 눈치를 보고 남들의 추천과 기대와 소문에 의지하여 좋다고 하는 직장에 가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 아닌가.

 인생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결국 나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이지만 중용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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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주일성소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가?


 사회 내에서의 체제나 제도가 나로 하여금 주일(안식일)을 지킬 수 없도록 만들었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을 묵인하고 내가 현재의 직업 상황을 유지하게 방관하는지, 아니면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끔 능력을 발휘하고 내게 대안을 제시해주는지가 궁금했다. 교회 내에서의 토의 결과 기도를 함으로써 대안을 제시받고 말씀에 따라 사는 궁극적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월화수목금토일은 초대 교회때부터 정해졌고, 그 후 모든 인류는 어떤 정치, 경제 체제에 상관없이 이 주일에 맞추어 발전해왔다. 어떤 체제든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일을 시키는 체제는 없었다. 아무리 강제수용소라 해도 종교적인 집회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뿌리째 뽑지는 못했다. (주일에 사람이 모이면 그곳이 교회가 된다.) 록펠러나 이랜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일요일을 안식일로서 지키고 충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례는 많이 볼 수 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간다' 가 먼저 정해진 다음 그 제약 안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살고 성공해야 성도로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는 조모임과 스터디를 못 이기겠지.


Q: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길래 회개할 수 있을까?

A: 예배를 드리러 왔을 때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다. 찬양의 노래와 반주 시설, 입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질적 차이가 없는 같은 교회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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