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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고 싶고

자고 싶고

기 빠지고 싶고

악의 무리들과 마주치기 싫고

쪼잔한 놈들과 얘기하기 싫고

룸메에게 욕하기 싫고

청소 걸려서 법정가기 싫고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친구를 만들고 싶은데

이 민사고라는 놈은

하나도 못하게 한다.


200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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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불만이 많았던 그 시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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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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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에 온 다음부터

주위에 진정한 친구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나같이 공부가 인정(人情)보다 수십 단계나 위에 있는 걸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과 진짜로 인정이 오가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사이좋게 지내는 건 언제까지나 특정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학교 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학교 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란 거의 다가 원활한 학업을 말한다.

목적이 있어야 취득하는 이기적인 아이들이 여기 모였다.

나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는 게 원천적으로 싫다.

..

..

목적이 없는 진정한 인정은 여기에 없다.

내가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그 뜨거운, 지금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그 온기가 식지 않은

그 인정이 내 마음 속에는 그래도 남아 있다. 나는 그 온기로 버티고 살아간다.

여기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나의 히든 카드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벽.

그 히든 카드를 통해 남보다 더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 히든 카드는 진정한 인정이 우리 마음속에 자라는 것을 막는다.

여기 학생들은 겉과 속이 다른 공부벌레들이다.

이타적인 겉과 이기적인 속이 내가 말하는 외면과 내면이다.

그 外와 內의 차이가 아까 말한 히든 카드와 함께 진정한 상호간의 인정을 막는다.


여기서는 행복의 원천이 오직 좋은 시험 결과에 있다. 시험을 잘 보면 남을 밟고 올라섰다는 것에 행복하고, 시험을 못 보면 남에게 짓밟혔다는 것에 불행하다. 학업이 최상의 가치이므로 그것보다 작은 가치에서 얻는 행복은 아주 짧게 지속되다가 그친다. 나는 학업보다 작은 가치들을 더 중시해 오면서 학교 생활을 해왔는데 그것도 나의 불행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시험에 목숨 거는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이다. 나는 기계가 싫다. 벽이 없이 서로 인간으로서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이 모든 나의 고민이 내가 공부를 엄청 잘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싹 사라질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 기계다.


나는 인간이기에 성적이 바닥이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한다.


200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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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을 기억한다.
혼자 조용히 기숙사 화장실에서 찔끔 눈물 흘리며
앞으로는 나의 자아를 강하게 하고 남들에게 힘없이 기대는 포도넝쿨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비바람 눈보라가 쳐도 꿋꿋이 서있는 소나무가 되자는 다짐을 한 날...

그 이후부터 나는 지금처럼 혼자서도 잘 사는 놈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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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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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께 외국인노동자 문화축제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빨간 1000번 버스를 타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내렸다.


아아~~ 역시 세종로는 좋았다.

문화관광부 건물, 교보생명 건물, 미대사관 건물, 조선일보 건물, 보신각 (맞나?), 충무공 동상..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좋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에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훨씬 쾌적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특히 세종로가 끝나고 사직로와 교차하는 지점에 우뚝 서 있는 광화문의 모습이란..

광화문이 그렇게 크고 마음씨 넓은 사람같이 보인 적이 예전에는 없었다.

이런 느낌을 받고 싶다면 화창한 날 아침에 세종로로 가보시길.


어쨌든 세종문화회관에서 LG25 (아참 .. 이제 GS25지.. GS가 GoldStar의 약자랜다. ㅋㅋㅋ)

들려서 웰치스(1300원 ㅍ) 사서 마시면서 세종로의 아침을 즐겼다.

강남 코엑스몰보다 여기가 더 좋은 것 같다. 뭔가 한국적인 세련됨이 느껴지지 않는가?


 시청 앞에 도착했다. 전날 리허설(리허설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막노동) 할 때에는 막 비도 오고 무대 세팅도 덜 되고 했는데 그때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시청앞 광장이 허허벌판 잔디밭으로 바뀐 것에 대해서 나는 한 1년 전만 해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생각없이 그냥 만든 잔디밭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6월 5일 아침 시청앞 광장의 잔디밭은 참 아늑하고 탁 트여 있었다.

시청 주변의 NOx와 SOx로 얼룩진 공기도 나에게는 맑게만 느껴졌다.


9시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진행요원 팀에 있었는데, 이게 가장 힘든 것이라 했다. 우리 팀 대빵인 대학교 4학년(실제로는 23살보다 더 많은 듯) 형이 나보고 '고등학생은 담배 안 펴? ' 막 이랬다. -_-  암튼 나는 CJ 부스로 가서 '쿠스타' 와 '맛밤' 을 나눠주는 것을 맡았다.

한 사람당 쿠스타와 맛밤 중 한개 택해서 한 개만 가져가는 것이 원칙. 그런데 막 두개 세개 가져가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곳에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인들만 그렇게 비양심적인 행동을 한 것이었다. 한국의 수준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아쉬운 순간이었다.


CJ부스에 사람이 뜸할 때 쯤 나는 옆의 각 나라 부스로 가보았다. 진짜 나무로 만든 실로폰이 필리핀 부스에 있었고, 몽골 부스에서는 막대기로 줄을 때리는 악기가 있었다.(아쟁 비슷했다.) 몽골 전통 옷을 입은 몽골 사람들은 한국 사람과 똑같았지만 뭔가 순수한 표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미얀마, 베트남 부스에서는 미얀마 사람들이 훌라춤 비슷한 걸 추면서, 옆에 나룻배 모형에서 한 사람이 물을 끼얹었다. (나룻배 안에 물을 반쯤 채워 놓았다) 나는 돌아다니다가 물을 맞았는데 기분이 좋았다. 뭔가 즐기는 문화에 같이 참여하게 됨을 의미하는 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남아 사람들은 참 순수하고, 모이면 춤추고 노래하는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곁에서 북치고 춤추는 것을 보기만 해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CJ에서 식품을 다 나눠주고 나는 횡단보도 일을 맡았다. 친구와 1시간동안 횡단보도에서 그 정지 깃발 들고 서있었는데, 죽는 줄 알았다. 누가 음료수 갖다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만 했다. 횡단보도에 서기 시작한 지 한 40분 쯤에 나는 일사병이 어떤 것인가를 조금 체험할 수 있었다.


횡단보도를 다 끝내고 나는 쉬엄쉬엄 쉬면서 쓰레기 좀 줍다가 다른 나라 부스에서 놀다가 그렇게 했다. 그런데 CJ 부스 앞에서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봤다.

 세팍 타크로라고 하는 족구 비슷한 건데, 파키스탄인가 방글라데시인가 하여튼 사람들이 그걸 하고 있었다. 서로 주고받기 하는 식으로. 공은 축구공과는 달리 나무(?) 비슷한 걸로 엮어서 만들어져 있었다. 구의 모양을 취하고 있는 그 공은 컨트롤하기 매우 편했다. 축구공 리프팅은 10개도 못하는 내가 그걸 가지고 얼마나 잘 놀았는지 모른다.

또 한가지 내가 인상깊었던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가 슬쩍 같이 노는 것에 참가해도 아무 소리 않고 같이 놀아줬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너 왜 왔냐?' 하는 식으로 째려보거나 한마디 하는 경우가 일쑤인데, 이곳 외국인들은 참 마음이 좋은 사람들만 모인것 같았다.


7시부터 공연을 했다. 잔디밭에 누워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친구들과 앉아서 공연을 보았다. 각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기를 들고 모여 있었는데, 네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와서 그들의 춤추는 습은 정말 가관(佳觀) 이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온 드러머와 플루티스트(플룻은 아니지만 네팔 전통 악기였다. 참 소리가 좋았다.) 가 연주하는 것에 그렇게 흥분하고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있는 광경인가.


이렇게 공연을 보다가 9시 반에 우리 학교 봉사활동가들은 모여서 해산했다. 집에 올때 1000번이 늦게 와서 집에 오니 11시였다. 피곤했지만, 참 보람된 하루였다.

200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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