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서 퍼질러 자는 게 아니라 우아하게 개인용 무인 침실로 들어가 자는 선진국형 서비스 napcabs를 사용해보았다. 독일 뮌헨 공항 게이트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과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문화의 정점에 있는 서비스였다.


사용 순서는 다음과 같다.

- 화면에서 언어를 선택한다.

- 요금 안내를 받는다.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8시간 이용하면 다 합쳐서 10유로이며, 그 외의 시간대에는 1시간마다 15유로이다.

따라서 나의 경우처럼 전날 한숨도 못 자고 오전 8시에 공항에 도착한 사람은 1시간마다 15유로를 내고 자야 한다. 따라서 6시간-7시간을 여기서 보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하지만 2시간까지는 쓸 수 있다.

- 요금 안내를 다 읽었음을 확인하면 바로 카드를 집어넣고 100유로의 보증금을 결제한다. 화면 언어는 영어지만 카드 결제기의 전광판 언어는 항상 독일어다. PIN 코드를 언제 입력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문제가 있었다.

- 보증금 결제가 끝나고 카드를 다시 뽑으면 잠깐 방을 나간 뒤 다시 들어올 때 입력할 임시 비밀번호를 설정한다. 임시 비밀번호는 한번만 입력하는데 왜냐하면 방 안에 들어가서 있는 화면에서 비밀번호 보기 버튼으로 내가 입력한 4자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다음에는 문의 잠금장치가 풀린다. 문을 당겨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손님이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문이 잠기며 방 바깥의 화면에는 '사용중'이라는 표시가 된다.


방안에는 침대, 조명, 난방, 테이블, 220V 전원 콘센트, LAN선, 블라인드, 그리고 500ml 물병과 컵이 갖추어져 있다. 캡슐호텔보다 조금 편한 기숙사식 호스텔 수준의 시설이다. 


침대의 발쪽에 있는 화면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조명 켜기/끄기: 현재 설정된 무드조명/형광등을 끄거나 켤 수 있다.

- 휴식 모드: 이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검정색 배경으로 바뀌어 어두워진다. 검정색 배경 화면의 아무 곳을 클릭하면 다시 원상복귀된다.

  - 휴식 음악 켜기/끄기: 랜덤으로 설정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켜거나 끈다. 휴식 음악을 바꿀 수 없는 것은 그 누구도 휴식 음악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휴식을 위한 음악을 들으면 듣지 클래식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피곤해 죽겠는데 버튼을 조작할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무드조명 켜기/형광등 켜기: 버튼을 눌러 두 가지 조명을 전환할 수 있다.

- 각성 모드: 이 버튼을 누르면 '잠깐 나가기'와 '체크아웃'의 두 버튼 선택 창으로 바뀐다.

  - 잠깐 나가기: 이 버튼을 누르면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며 밖으로 잠깐 나갈 수 있다. 나가는 손님에게 다시 주지시키기 위해 방 안의 화면은 다시 방으로 들어올 때 미리 설정한 4자리 번호를 입력하라고 알려준다.

  - 체크아웃: 이 버튼을 누르면 나가는 손님에게 짐을 모두 챙기고 나가라고 알려준다. 

- 알람 설정: 알람을 켜거나 끄고 시, 분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체크아웃 절차는 다음과 같다.

- 방안의 짐을 모두 챙기고 나와 바깥의 화면에서 체크아웃 버튼을 다시 누른다.

- 체크아웃 확인을 위해 체크인 시 사용했던 카드를 다시 집어넣는다. 이때는 따로 PIN을 입력할 필요가 없다. 전산 처리가 끝나면 총 몇시간을 사용해서 얼마가 청구되었는지가 화면에 나오고 이에 따라 보증금에서 얼마가 깎인 뒤 얼마가 환급되는지를 알려준다.

- 영수증을 이메일로 받을 건지 여부를 선택한다. 영수증을 받는다고 한 다음에는 이메일주소를 입력하는 쿼티 키패드 화면이 나온다.

- 두 가지 기준의 만족도 평가를 한다. 각 기준에 대해 웃는 얼굴(좋다) 무표정 얼굴(그저 그렇다) 삐진 얼굴(나쁘다)의 세 가지 평가를 한 뒤 확인 버튼을 누른다.

- 체크아웃 절차가 다 끝나면 화면은 '청소 및 정리 요망' 화면을 띄우고 관리인이 나중에 들어와 청소 및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비밀번호 입력으로 알릴 때까지 그대로 있는다.


 이렇게 생긴 사용 절차를 가진 서비스이다. 매우 사용하기 편리했고 방해받지 않는 안정감을 주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인터페이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 현재 방을 얼마동안 사용하여 요금이 얼마가 나왔는지 방 안의 화면에 표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이 기능을 뺐을 수도 있다. 피곤한 사람이 현재 얼마나 돈을 썼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면 좀 더 자자는 심리 때문에 돈을 더 벌 수도 있고, 현재 내가 돈을 얼마나 쓰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손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TOEFL 시험의 Reading 남은 시간 보이기/숨기기 버튼에서 알 수 있듯 사용자의 마음은 UI가 속단할 수 없다. 사용자의 마음에 따라 사용자가 UI를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해주어야 한다.

- 방을 잠깐 나올 때 4자리 번호를 크게 띄워주면 손님이 혹시나 번호를 까먹을 가능성을 아예 없애주어 더욱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가 되지 않을까.


 UI 외에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은 다음과 같다.

- 냉방은 잘 되는데 난방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에 이곳을 이용한 나는 냉난방을 끄고 2시간 동안 자다 나왔다.

- 벽의 방음이 되지 않아 수시로 나오는 게이트 탑승 안내방송의 시그널 음향과 나레이션을 그대로 들어야 했다.


 아울러 방에 몇명이 들어가는지를 감시하는 센서는 없다. 마음만 먹으면 남녀 둘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 여자친구와 같이 들어간 뒤 여자친구를 재우고 나만 나오는 경우도 가능하다. 누군가의 핫 플레이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http://www.napcabs.net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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