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욱아, 나 학생회장 나간다."
  "이야, 이제 학생회장 나와서 우리 연희관 앞에 싹 다 바꿔주는거야?"

  "요즘 나 새로 블로그 하기 시작했어. 이제는 전처럼 작심삼일 안 할거야."
  "그래 자주 놀러오마. 내가 투데이 300 만들어줄게. 아니 뭐 내가 하루에 한번만 오면 300이고 두번만 오면 1000 넘어가게 생겼네."

  "이번에 미국 갔던 미숙이가 돌아온대."
  "이야, 미숙이 서울 오면 진짜 미인 되겠다. 완전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처럼 되는 거 아니야?"

  사실 나는 이렇게 이쁜 소리를 잘 안 한다. 워낙 성격이 솔직하고 있는 사물과 상황을 최대한 겸손하게 보려 노력한다. 다른 사람이 내가 보기에 허접하면 그냥 허접한 거다. 별로 그 사람을 띄워주거나 비위를 맞춰주거나 하지 않는다. 정말 뛰어난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또 정말 솔직하게 껌뻑 죽어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이렇게 사람들을 띄워주는 말들을 조금씩 많이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거나 그 사람이 기대하고 꿈꾸고 있는 것들을 더 커다랗고 아름답게 상상하도록 옆에서 바람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 아이는 참 말을 이쁘게 해." 우리 누나가 나보다 이런 말들을 참 잘한다. 외향적인 누나는 교회에서도 대학교에서도 계속 같이 다니는 단짝 친구들 그룹이 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는 하나도 없는 듯하다.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의 그 말은 '립 서비스'다. '비행기 태워주는 말' 이라는 다른 풀이로도 사용된다. 나는 립 서비스를 '그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사물과 상황과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언급' 으로 정의하고 싶다. 지금 너와 내가 있는 이 공간, 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확신할 수 없지만 머지않아 OO이 찾아올 것이다, 라는 축복의 말이다.

  아름다움, 성공, 유명세, 재화 등등 축복을 위해 OO에 대입하는 사물과 상황과 비물질적 가치는 참 다양하다. 생각해보니 옛날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끼리 축제를 하거나 전통신앙의 의례를 통해 이러한 축복의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명절인 설날에는 꼭 빠지지 않는 '덕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20대 친구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말에는 축복의 말이 예전보다 많지는 않다. 같은 마을(물리적 마을이라기보다는 모두가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상황에서 생기는 공동체로서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무엇이든 구하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각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상상을 펼칠 수 있게끔 씨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는다면 그것보다 더한 에너지가 있을까 한다.
 
  립 서비스는 서로가 어려운 때에 더욱 큰 효과를 가져온다. 지금 이 자리에 내 손 안에 없다 해도 말을 들음으로써 구체화된 '그것'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불황기에도 영화와 뮤지컬이 그렇게 잘 풀리는 현상은 영화와 뮤지컬이 일상 속의 립 서비스, 이쁜 말들과 똑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같은 시점에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다 하나씩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고민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말들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한다. 이쁜 말이 열 마디가 모여 그 친구의 고민 열 개 중 하나라도 해소해줄 수 있다면 나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도 열심히 이쁜 말들을 하며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언어를 통한 구체화를 선물해주며 살겠다. 내가 없는 곳에서 친구들끼리 "쟤는 말을 참 이쁘게 한다" 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도록..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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