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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나의 10기와 9기 선배들 그리고 11,12기 후배들 몇 명이 주를 이룬 학생들은 결혼식장에 한자리에 모여 어색해하기도 하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힘겨운 고3 생활을 마친 친구들이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어서 기뻤다. 나도 대학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08학번 친구와 함께 결혼식장에 와서 다른 10기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다른 곳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후배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준 9기 형이 10기와 11기 후배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대화의 꽃을 피웠다. 멋지게 후배들을 갈구고 다독일 줄 아는 형이었다. 유쾌하고 듬직한 모습은 후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배의 상(像)이었다.

  그 형이 우리 10기 동생들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나는 말이 있다. 횡성군 안흥면 산골에 있는 우리 학교에 다시 찾아뵈려면 그곳에 있는 후배들을 많이 '심어놓아야' 찾아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평소에 고등학교의 후배들을 같은 고등학교의 사람들로 반갑게 맞아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후배들을 많이 심어놓기 위해서는 요즘 후배들이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며 성격적인 특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능력은 후배들과의 대화에서부터 나온다. 결국 후배들을 향한 관심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욕구만이 친한 후배들을 학교에 많이 심어놓을 수 있다.


  내가 가는 곳에 나와 친한 사람들을 심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깨달았다. 나에게는 '안녕, 잘 지냈어?' 와 같은 일반적이고 특색 없는 대화로만 무미건조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어색하게 서로 시선을 돌리고 지나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고등학교는 내가 몸을 담고 있었던 곳이고 앞으로도 내가 찾아가고 사람들을 만날 곳이다. 나의 진로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갈 길에 나를 반갑게 맞아줄 친한 사람들이 없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시들해지게 된다. 내가 머물렀던 추억의 그 곳에 나를 뒤이어 몸을 담은 동생들이 나와의 소통을 멈추면 나는 동생들의 동생들과도 더 나아가는 만남을 시작할 수조차 없게 된다. 내가 가는 곳에 내 사람들이 없으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같은 고등학교 동문이니까 서로간의 인맥은 형성된다. 하지만 인맥과 연줄이 통하는 사람과 나와 친분을 쌓은 사람은 매우 다르다. 만났을 때 나누는 대화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는 바로 그 차이에서 결정된다. 만남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그 차이에서 판가름난다. 누구나 사람을 만났을 때 어색해하는 것은 무척 꺼려하는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만남을 회피한다면 결국 나는 혼자고, 내가 가는 곳에 나를 반갑게 맞아줄 사람도 없게 된다. 외로울 때 찾아갈 수 있는 그곳에조차 나와 만남을 갖기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마치 비즈니스맨들처럼 대화를 하고 있다면 그 모습보다 슬픈 풍경이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몸을 담았던 그곳의 추억을 회상하며 나와 똑같은 고등학교 시절 모습을 간직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함께 있음이 가져다준 여행 일지'를 눈앞에 펼쳐보고 싶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선생님들을 만나 공부했으니까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사상과 태도가 비슷할 것이다. 그런 비슷한 것들로부터 '여행 일지'가 각자의 마음 속에 비슷하게 기록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여행 일지'를 바꾸어 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 그 모습이 즐거운 만남과 즐거운 대화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하여 나는 다른 친구의 나무가 되어 그가 나중에 다시 나 있는 곳을 찾아왔을 때 그를 반갑게 맞아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는 곳에 심은 사람의 나무가 일렬로 이어지고 무리를 지어 숲을 이룰 것이다. 건강한 만남과 즐거운 대화가 갖는 위대함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사람 사이가 어색해질 때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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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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