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동아리 So What에 들어오고 드럼을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드럼을 어떻게 잘 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보았고, 드럼을 같이 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 사귀었다. 우리 드럼라인의 맏형인 종엽이형, 설계를 비롯하여 전공수업이 힘든데도 누구보다 열심히 드럼을 연습하여 '칼박'의 제왕이 된 재경이형, 같은 89라서 마음이 잘 맞는 광표..

  드럼이 두드리기만 하는 단순한 악기여서일까, 드럼을 치는 나로서는 이 단순하게 보이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각종 생각에 사로잡힌다. 종교적인 수행을 하는 사람들 중 특히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 등지에 있는 사람들은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단순한 일의 반복을 일상 속에 깊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도 단순한 드럼 두드리기가 일상의 큰 부분으로 자리잡아서 잡념이 사라지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내가 이 드럼이라는 악기를 자신감 있게 치고 있는지는 나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가는 나 또한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고 무기력한 채 드럼을 치다가 내 안의 부족한 자신감을 다시 채우려고 하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드럼이든 공부든 사회생활이든 모두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 자신감을 갖지 않으면 중도에 자신감을 회복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탈리아의 아마추어 호르니스트 Giovanni Hoffer라는 분의 '7:30 PM' 을 연주했다. YouTube에 올라온 동영상에 첫눈에 반하여 이 곡을 연주하겠다고 대뜸 지원했다. 하지만 매우 복잡하고 생소한 라틴 리듬이 참 어려웠고, 나는 그동안 연주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라틴 리듬을 기피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연주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과 고민을 많이 했다. 나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씩 아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이 곡의 드럼 패턴을 모두 채보한 뒤 거의 원곡을 카피하는 식으로 연습을 했다. 두혁이와 헌광이 그리고 준렬이형과 같이 맞추면서 합주를 할 때에도 처음에 자신감이 없던 나는 악보를 베이스드럼 위에 올려놓고 악보를 보면서 드럼을 쳤다. 어떻게 생각하면 바로 눈앞에 악보가 있으니 악보가 득이 되면 되었지 절대로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드럼을 치는 나에게는 이 악보는 커다란 해가 되었다.


  악보에 매달려 나의 느긋한 자세와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마음가짐이 퇴색되었기 때문에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음악의 흐름에 맞게 내 마음이 자연스레 가는 대로, 내가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노트들을 찍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그린 악보가 나에게 명령을 하면 나는 그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내가 풀어놓은 밧줄에 내가 묶인 것이다.


  드럼을 칠 때의 마음가짐은 나의 성향과 본능을 존중하고 내 안의 흐름을 살려 나의 음악을 만들겠다는 자신감이다. 얼마 전에 우리 동아리의 큰형인 종범이형(01학번)이 나의 드럼 치는 모습을 보고 '동욱아, 조금 더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이 드럼을 지배한다, 라는 거만한 생각을 가져봐. 그리고 몸에 힘 빼고' 라는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조언을 들은 뒤 잠깐 동안 내 연주가 멋지게 고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는 악보를 만들고 그 패턴을 학습함으로써 조금 더 다양한 연주를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른 연주자들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키웠고, 결국 점점 나의 연주는 자신감을 잃게 되고 스트로크에는 힘이 빠졌으며 그에 따라 박자도 흔들렸다. 차라리 패턴은 다양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스트로크도 깔끔하게 하고 박자도 맞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공연이 끝나고 신촌으로 향하는 171번 버스를 타면서 나의 모습을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내가 신나면 신날수록 연주의 질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자신감이 가지면 신날 수밖에 없다. 아무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 내 스타일대로 악기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항상 이 점을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연주를 계속해야겠다고 나는 마음 속 깊이 다짐을 각인시켰다.


* 구성을 정하고 서로 약속을 하고 믿음을 바탕으로 연주하여 음악 중간에 같이 시작하고 같이 끝내는 것은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멤버들이 더욱 친해지게 한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돋보였던 곡인 Autumn Leaves가 바로 그런 곡이었다. 7:30 PM도 모든 세션들이 동시에 음악을 끊음으로써 임팩트를 선사했다. 내년 재즈바 때에도 임팩트 있는 곡들을 많이 연주하면서 우리들과 관객들 모두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


2007. 12. 24.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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