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갑을 도난당했다. 오늘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9시 20분에 백양관의 교수님 오피스에서 잠깐의 회의를 갖기까지의 1시간 20분 사이에 발생한 도난 사건은 나에게 충격의 원인이자 깨달음의 근원이었다. 원래 지갑이 도난당하면 나는 마구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나는 금방 침착해졌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던 중에 누군가 나의 지갑을 슬쩍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의 머리는 많은 사색으로 가득찼다. 물론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당황스럽고 슬프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다시 대책을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나는 평소에 매우 쪼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낙천적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아침에 교수님 오피스에서 회의를 가진 다음 나는 대강당으로 가서 채플 출석을 위해 지갑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내가 메고 다니는 에어워크 가방의 앞주머니가 텅 빈 채로 지퍼가 열려 있었다. 앞으로 3분 후면 대강당 입장이 끝나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쌍시옷 단어를 주문처럼 더듬어대며 당황하다 쿵쿵 뛰는 심장으로 결국 대강당의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첫째는 집에서 지갑을 안 가져온 상황이다. 오늘 아침에는 허둥지둥 나오다보니 지갑을 넣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고, 내가 지갑을 가방에 넣었다는 확실한 기억이 머리 속에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가정이 가능했다. 둘째는 걸어가면서 지갑을 떨어뜨린 상황이다. 하지만 몸을 요동치며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는 이상 이는 불가능하다. 마지막 상황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상황이다. 처음엔 설마 내가 소매치기를 당했을까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결국 남은 선택지는 첫째 상황이라고 단정지었다.

  채플이 끝나고 곧바로 수업을 듣는 2시간 동안에도 나는 지갑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잊었다. 사실 오늘 밤에 영화 약속을 해 놓아서 지갑이 오늘 반드시 필요했지만, 수업이 3시에 끝나므로 7시에 만나기 전 4시간 동안 집에 가서 지갑을 찾고 다시 오면 되겠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지갑에 대한 근심은 내가 집 현관문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하기로 유보해놓았다. 일단은 수업을 열심히 듣자고 생각했다. 내가 집에 들어와 집 안에 내 지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갑에 대한 근심은 불필요하다. 쓸데없는 근심은 가지치기 하듯 없애야 한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그 낙관이 아무 생각 없는 비합리적인 낙관으로 변질되지 않는 한 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 전화해본 결과 할머니께서는 내 방에 지갑을 못 찾으셨다고 말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내가 직접 집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희망은 남겨두었다. 이때 나는 친구와의 영화 약속은 취소했다. 일단 친구에게는 내 지갑이 소매치기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갑이 없으면 사람의 하루 일정을 바꿀 정도로 지갑은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귀중품은 괜히 귀중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귀중품은 한 사람의 능력과 가능성의 범위를 결정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품이다. 핸드폰, 지갑, 프랭클린 플래너, 드럼 스틱.. 나에게 귀중품은 이런 것들이다.

  결국 우리 반 친구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나는 근심 속에 집으로 왔다. 지갑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물론 근심 속에 집으로 올 때부터 나는 정말로 집에 지갑이 없을 거란 가능성을 90% 정도 상정해 놓은 채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지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화가 치밀었고 소매치기가 원망스러웠다. 생계형 범죄의 희생양은 나 말고 이 세상 누군가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가 막상 일을 당해보니 당황스럽고 화날 수밖에 없다. 순간적으로 나는 저소득층에 대한 혐오감과 재분배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완전 자유주의적 사상의 정점을 찔러 보았지만 이내 제정신을 찾았다.

  저녁이 되어 나는 자중하고 동사무소로 가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아 왔다. 학생증과 은행 카드는 내일 재발급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사실 내 지갑에는 별 거 없다. 추억이 담긴 딱 한장 뿐인 사진, 누구나 마음껏 긁을 수 있는 신용 카드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 지갑이 비록 예전에 선물받은 지갑이지만 '구찌'라는 사실과 어제 친척에게 받은 돈이 그 지갑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지갑이 '구찌'인 게 다시금 그리워져서 그런지 명품과 관련해서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 나는 명품같은 건 들고 다니거나 걸치고 다니지 않기로 했다. 어떤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사람은 그의 생활방식에 대응하는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풋풋한 고등학생이 평소에 용돈을 모아서 아무 것도 사먹지 않다가 갑자기 명품 지갑을 사서 갖고 다니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활방식과 소비행태는 비례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은 어리석다. 나와 같이 통학을 하는 대학생은 비싸 보이는 지갑이나 가방을 들고 다니기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도난 우려를 항상 마음에 품고 도시의 무서운 주위 사람들에게 수수하게 보여야 한다. 명품은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다니거나 김기사를 부르는 어른들의 것이다. 시장에서 팔고 나 또한 그 상품을 살 돈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상품을 살 정당성이 나에게 완전히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학생이라면 상품으로 매력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학력이나 특기, 성격 등으로 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나의 지론으로 굳어졌다.

  오늘 지갑 없이 몇 시간을 시내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지갑이 사라진 후에는 일종의 안도감이 긴장감의 뒤를 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소유'의 정신을 일부 맛보는 순간인 듯했다. 잃어버린 지갑과 그 내용물을 찾으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어졌다. 내 돈 뺏어간 인간아, 그걸로 좋은 여관방 잡아서 잘 자거라. 소매치기범은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나는 크게 화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고 살았던 자신을 반성할 뿐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오늘의 깨달음을 소중히 간직한다.

2007. 11. 12.

Posted by 마키아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