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급히 자리를 뜰 때 이유를 분명히 말하면 그 사람은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다. 아무리 후배가 좋아서, 친구가 좋아서 아무 이유없이 후배나 친구를 잡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도 분명한 이유 앞에서는 갈 사람을 보내준다. 흔히 동아리나 반 등에서 같이 술집에 갔을 때 오래 있지 못하여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그 사람들이 일찍 집에 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집이 멀거나 통금 시간이 엄격하거나 (여자의 경우) 혹은 그 술자리가 별다른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신촌에서 술을 마시면서 어느덧 밤 11시가 되었는데 집은 상계동에 있다면 즉시 자리를 떠야 한다. 그리고 보통 11시면 모든 여학생들은 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결국 그 자리가 흥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만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다. 주위의 사람들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기 친구들이라면 '나 피곤해서 일찍 갈래' 정도로만 말해주면 되지만 만약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아리/반 선배라면 아무 이유 없이 혹은 컨디션의 문제로 집에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꼭 술자리에 가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는 그러한 강박관념은 대부분의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첫 만남을 최대한 길게 끌려고 애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이 어린 사람은 최대한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선배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이유를 현재 자신의 계획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내일의 계획을 그려보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 혹은 급한 일을 생각해 보라. 내일 아무 계획이 없는가? 혹은 내일이 토요일인가? 그렇다면 약간의 거짓말을 섞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집에 가는 길에 마을버스를 타야 되는데 마을버스의 막차 시간이 빨리 끝난다는 등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하든 진실을 말하든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자초지종을 많이 늘어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길게 이유를 제시하고 나면 선배 측에서는 거의 모두 보내준다. 보내주지 않는 사람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후배를 배려하지 못하는 험악한 사람이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에게 걸려서 대학 생활의 시작을 어두침침한 술집에서부터 전개해 나가면 그 사람의 장래는 그 수준에만 머물게 된다.


만약 어제의 술자리에서 만난 선배가 마음에 들지만 어제는 꼭 일찍 집에 들어가야 했거나 일찍 들어가고 싶었다면, 오늘 낮에 그 선배를 만났을 때 최대한 활기차게 반응을 해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을 통해서만 판단한다. 그 다른 사람이 남일 경우, 사실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상관 없는 사람일 경우 그러한 방식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전부다. 따라서 술자리 이후의 처세 또한 인간관계의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처세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처세하는 사람이 매우 계산적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만약 이 처세가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사람의 몸에 스며들어 있다면 그 사람은 똑 부러지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알려질 뿐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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