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가끔씩 뒷자리에 앉는 나는 앞에서 엎어져 조는 친구들을 본다. 선생님이 계속 진도를 진행시키고 있는 동안, 상습적으로 엎어지는 친구들은 오늘도 엎어져 있다. 나는 상습적으로 특정한 시간에만 엎어지는 친구들이 그 습관을 왜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게 되었다. 사실 나도 과거 화학 시간에 수업 시간의 80%를 엎어져 보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써본다.

 인간은 항상 외부의 세계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듯하다. 자신이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삶을 끌어나가겠다는 굳은 의지와 에너지를 느끼는 때가 바로 외부와 내가 대화를 통해 소통할 때이다. 학교의 수업시간, 나 혹은 내 친구들이 그 시간에만 유달리 엎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들이 선생님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만 조용히 있으면서 내 주위 360도 전 영역을 울타리로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말을 듣고 속으로 내가 선생님과 일대 일로 대면하여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보자.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 나의 머리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가득차야 한다. 매 순간마다 나의 주도적인 응답으로 수업은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응답이 현실에 표출되는 것이 바로 선생님의 의견에 비판을 가하거나 모르는 것에 질문을 하는 일이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이 쌍방으로 이루어지듯 아니면 나와 내 자신의 선생님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지듯, 나는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주어진 일인 공부에 온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어떤 일에 몰두하여 졸리지 않게 된다.

 외부와 소통한다는 것은 곧 내가 그 순간만큼은 외부의 어떤 특정한 요소에 신경을 곧추세워 경청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즉 내가 외부와 소통하고 있을 때에는 내 마음대로 엎어져 자거나 저 멀리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버릴 수 없다. 일종의 의무가 나에게 주어지면서 내가 조금 더 긴장을 하고, 그 결과 졸음은 싹 가시고 나는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통해 나의 발전을 하고 있게 된다. 한 예로 국제 연합의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가지 않게 최대한으로 긴장하고 주변국의 대표자들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그런 모든 외부와의 소통 활동을 위한 정신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회의장에서 엎어져 자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외부 세계에 참여하면서 한 인간은 좁게는 발언자로서의 자질을 기르게 되고, 넓게는 자기 발전을 실현한다. 발전하는 나를 본 친구들은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나와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게 되며, 나는 더 나를 존중하게 된다. 내가 나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면서 조금 더 노력하여 발전해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굳어지며, 힘들고 피곤하고 졸릴 때에도 그 의지로 즐겁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참여를 통해, 바깥 세계와의 소통을 통해 내 자신의 발전과 타인과의 인간관계의 발전을 동시에 누릴 수 있으며, 계속되는 참여가 이어진다면 발전 또한 확실하고 지속적인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책상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나로부터 '사고하는 나'를 저 멀리 하늘로 날려 보내지 말고, 생각하는 내가 바로 앞에 있는 친구 혹은 선생님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도록 하자. 바깥 세계와의 즐거운 소통은 약간의 긴장을 유발하여 삶을 더 건설적으로 끌어나갈 수 있게 만들 것이니.

200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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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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