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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8 동아시아에서 환경 문제가 가지는 협력의 본질

     지역주의에서는 국제적으로 모두가 지킴으로써 역외 행위자를 배제하지 않으려는 GATT체제와 같은 움직임이 있고, 그리고 양자간의 무역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의 움직임이 있다. 경제에서는 철저히 자국 국익을 생각하면서 타국에 양보할 것과 양보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자국에 유리한 국제적인 공급사슬을 만들기 위해 특정 국가를 선택하여 협력할 수 있다. 무역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원수와 무역 담당 정부부처는 계산한 대로 타국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하고 우월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세계화에 따른 황폐화를 저지르기도 한다. 


     반면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관리 능력에 관한 비교우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게 독점적인 이득을 가져다주고 다른 나라에게 반대로 비교열위와 차별을 제공하지 않는다. 관리를 잘하는 국가는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에너지의 수급과 경제발전을 지탱하기 위해 환경을 보존하고, 이차적으로는 주변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댐을 만들고 환경정화시설을 설치하고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에 신경을 쓴다. 재화와 서비스 시장이 보여주는 독점의 폐해와 상관이 없는 대신 환경은 긍정적 및 부정적 외부효과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이며, 이에 따라 외부효과를 시장 질서로 해결하기 위한 탄소배출권 거래 등의 논의가 EU 국가 안에서 있어 왔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권에 대해서도 점유율을 막대하게 가지고 있는 기업이 등장했다. EU 기후행동집행위원회(DG CLIMA)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 내에서 각 기업이 공장 가동을 하면서 배출권을 경매 방식으로 사고 판 이후 추후에 배출한 양만큼의 배출권을 EU에 반납하는 시점을 조절할 수 있다. 배출권의 가격은 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집약적인 대기업이 배출권 경매 판매로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인 키프로스와 에스토니아에게는 무한의 배출권을 제공해주는 특혜도 EU가 강한 제도적 틀로 실시할 수 있다. 주변국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강제성 있는 경제통합체가 작동하는 결과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다양한 경제발전 단계와 소득의 격차,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정체성의 형성이 다른 점이 이러한 시장을 통한 해결조차 불가능하게 하고 있고, 무엇보다 경제통합이 되기 이전에 OECD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탄소배출권 거래는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에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탄소배출을 공업화 단계부터 시작한 뒤로 어느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거래 대상국 간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국가간 GDP 수준이 비슷해질 정도로 산업화나 정보화를 위한 탄소배출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한 국가라도 GDP 성장을 위한 저기술 고오염의 경제발전을 이제 밟아나가고 있는 단계라면 그 국가와 거래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경우는 자국의 경제를 이끄는 자국의 기업이 공장을 자국 내에 가지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경우는 한 나라의 기업이 공장을 다른 나라에 이전해놓고 있는 형국이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거래 방식의 설정은 매우 어렵고 또한 논란거리를 낳을 뿐이다.


     2011년 8월에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제안한 동아시아탈원전네트워크는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는 면에서 여론 형성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 어떤 방안이 구체적으로 가능한지를 국민들의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는 근본 원인인 낮은 에너지 사용을 국민적 아젠다로 설정할 수 있는 캠페인 진행 능력과 관련 조례 및 규칙을 통해 강제성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서울시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궐 취임 이후 ‘원전 하나 줄이기’ 라는 제목으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시는 약 200만 TOE를 2014년까지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 서울의 에너지 소비량인 1,696만 TOE의 11.7%에 해당한다. 참고로 국내 원전 중 최대 규모인 영광5호기는 79만 TOE이다. 이러한 지자체의 노력에서는 노하우를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있고 그 나라로 전해줄 수도 있다. 이러한 노하우 공유는 경제적인 보상과 함께 맞물려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추후에 동아시아탈원전네트워크가 제안하는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 중단 및 기존의 가동중인 발전소의 안전 점검 강화 혹은 가동 중단이나 폐쇄 결정은 결국 정부의 에너지 담당 부처의 최종적인 결정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권력기관의 의사결정에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하고 그것이 한일 협력의 범위로 확장된다 하여도 실제로 정부 부처 관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자력의 피해를 모든 시민들이 인지하여 꼭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반대 여론이 충분히 형성되어야 시민들에 의한 압력을 받아 정부의 행동이 바뀌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국내정치 차원에서 이러한 압력의 인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의 시민들이 일본 경제산업성, 적어도 원자력발전소 입지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상당히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시민과 언론 차원에서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이해 증진과 피해지역 일본 시민들과의 정서적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마침 저번 주에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 주최로 열린 ‘제3회 한중일 캠퍼스 하모니’  에서 이러한 목적의 후쿠시마 시민 컨퍼런스를 제안한 바 있다.


     환경 문제는 그 본래의 특성상 협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부정적 외부효과가 크고 환경 문제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틀과 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 더욱 협력의 의지가 각 국가 행위자에게 증대된다. 함께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는 행위는 전략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안보나 무역 차원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보다는 보다 행위자의 자율성이 떨어지는 행위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환경 문제가 지역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때 국가들이 이슈 중심적인 ad-hocracy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이러한 행위의 반복이 추후 협력을 위한 제도 형성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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