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08-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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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파리 감성, 도쿄는 런던 감성 이라는 게 나의 일종의 개략적인 일반화였는데,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나의 생각에 동의한 문단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이 파리에 비해 뒤쳐지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서울에도 파리 크로아상 같은 프랑스 빵집이 많다. 그런 곳에 가보면 프랑스 거리를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런 그림에는 전통시장의 노점상이 꽃이나 빵을 팔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면서 로맨틱한 프랑스에서나 있을 법한 정겨운 장소를 연상시킨다. 한국인들은 이런 그림을 보며 현대인의 생활에서 찾기 힘든 친밀함과 자연스러움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도시 곳곳에서 질 좋은 먹을거리, 전통 음식, 수공예품을 파는 야외 시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빵집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시장이 한국에도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식, 그중에서도 유럽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의 전통시장을 그리 낭만적인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한국의 전통시장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시장 중에서는 유지보수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지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통문화를 깨끗하게 보여주지 않고 산업화 시대의 '현대식' 장식만 달아놓았다. 그리고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시장 안의 골목길은 제대로 꾸며지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시장은 더 많은 사람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을 안고 있다. 시장 안 골목을 잘 가꾸거나 수제 나무 간판을 달고 아스팔트보다는 돌을 이용해 골목길을 만들며 진열 방식을 개선하는 등 예술적 요소에 신경을 쓴다면 한국의 전통시장은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일러한 약간의 변화가 한국의 도시 환경에 혁명을 가져다줄 수 있다. 커피숍이나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랑스 이미지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의 모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혁명은 사고방식만 바꾸면 일으킬 수 있다. 건물을 부술 필요가 없다. 건물은 그대로 두고 생각만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공간을                                                                     이런 느낌으로


          


서울의 246개 전통시장이 모두 인사동처럼 바뀐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온누리상품권은 얼마나 백화점상품권처럼 우아하게 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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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좋아하는 한국, 그래서 닮은 유럽의 나라라 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농촌 마을에 위치한 공장들은 전통과 역사로 빛나는 프랑스의 포도주 양조장, 즉 와이너리를 본떠 재구성돼야 한다. 그러한 농촌의 생산품들은 보르도의 포도주나 존작의 코냑이 그랬던 것처럼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판매될 수 있다. 지역 생산품의 독특성을 강조하고 상품을 더욱 매력적이며 가치 있게 부각함으로써 한국 농촌 지역의 가치는 극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지역 생산품들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효과적으로 판매되면서 우리는 세계 사람들이 한국 농촌을 방문해 이런 생산품들을 쇼핑하며 즐기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와 같이 먼 나라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그런 공장은 전통적인 외관을 지녀야 하고 어떻게 500년이라는 엄청난 전통을 이어왔는지에 대해 강조점을 둬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연속성은 한국 농촌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단한 것을 건설했다는 것만 강조할 뿐 1,000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된장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외면해온 것이다. 이제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고자 한다면 오랜 전통을 이어온 다양한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한국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탈리아가 농촌의 멋진 생활을 선전하면서 거둔 성공을 고려해보면 아시아에서도 그에 뒤지지 않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충남의 한 전원주택이 서울에 사는 사람은 물론 아시아나 세계 전체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생활로 여겨지는 시대가 오리라는 벅찬 상상을 현실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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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아메리카!!! (미국인이 이 말을 하고 있다)


국가 홍보 고객은 70억 인류


한국을 소개하는 문건이나 자료를 보면 홍보 대상자가 극히 제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미국에서 보면 각종 홍보 자료나 행사가 백인 중심으로 돼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자료를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이 보면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홍보 자료를 만들 때, 특히 영어로 된 홍보 자료를 만들 때는 특정 인종에 속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게끔 극도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따 꼼프리???


그리고 단지 미국인만을 상대로 제작된 홍보 자료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 홍보 자료는 미국 사람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이나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아랍 사람, 아프리카 사람도 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국가 차원의 홍보를 하거나 국가를 대표할 때 이런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 정도를 떠올리고 나머지 나라들은 인식에서 제외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나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청계천 한국관광공사 안에는 다양한 인종의 주무관급 외국인들이 직원으로 고용되어 regional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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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거 하고 싶다. 4학년 2학기라도. 아는 곳은 인사동 뿐. 사람도 적게 뽑아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방문자가 찾아갈 수 있는 한국 문화 홍보 센터를 상설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홍보 센터는 유명한 관광지 곳곳에 설치되며 정부가 인정한 자격증을 보유한 자원봉사자들이 항시 대기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정부가 제시한 학습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일정한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들로 외국어가 가능하고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업은 소규모의 예산만 있으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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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교류의 중요한 과제, '한국은 어떻게 중국과 일본과 다른지를 한중일 외부에 알리기'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가려서 존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놀라운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저명한 비평서인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을 독립적인 문명으로 분류하면서도 한국은 중국과 같은 문명으로 묶었다. 이는 한국 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계 지식인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전개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각국의 학자와 분야별 전문가, 그리고 언론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펼쳐야 한다. 이들을 상대로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일본과 유사한 또 다른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점을 꾸준하게 홍보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고유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들이 쓰는 책이나 청소년 교과서에서 한국에 대한 수식어가 달라질 것이다. 또 그들이 작성하는 칼럼에서 한국을 지칭하는 용어도 변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일반 국민으로 파급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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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자 에즈라 보겔 교수의 '일등 국가 일본' 

 미국인들은 갑작스럽게 일본에 대해 알게 됐고 그동안 값싼 장난감이나 만들던 나라로 치부했던 일본의 성장에 대해 재평가하게 됐다.

읽어보자 제임스 클라벨의 '쇼군'

 '쇼군'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선 철학과 사무라이 법도를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마치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신세계처럼 일본은 신비롭고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왔다. 자동차나 소형 전자제품으로 미국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던 일본에 역사적/철학적 배경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과거를 주제로 삼았으며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국화와 칼'은 워낙 유명하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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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친구들에게 좀 더 엄해지자


외국인 대상의 한국어 교육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점은 한국어 취득 수준이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고급 한국어를 구사할 정도까지 공부하지 못한다. 복잡한 표현이나 멋진 에세이를 쓰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는 한국어 교육 지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교재가 부실한 탓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견에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것을 기대하지 않다. 외국인이 언어상으로 실수해도 좀처럼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외국인 대학교수나 학생들의 한국어 작문 실력이 형편없어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이런 봐주기는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외국인들은 한국에 있는 동안 고급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살릴 수 없다. 미래의 한국 전문가가 될 수도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소홀히 가르치는 일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도 상당한 손해다.


한국 교수들과 한국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를 말하거나 한글을 쓸 때 한국인과 가깝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 학생들도 이에 호응할 것이다. 오히려 적당한 봐주기가 학습에 걸림돌이 된다. 만약 한국인들이 내가 쓰는 글이나 말에서 잘못된 부분을 솔직하게 지적해주었다면 나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한국어 구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쓰면서 실수를 해도 그것이 실수인지조차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한국어 구사와 작문을 요구하면 그 실력이 확실히 더 나아질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도 괜찮다는 선입견이 있는 한 외국어의 한국어 실력 향상은 있을 수 없다. 친절과 관대함이 결과적으로는 불친절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쇼코는 돌아갔지만 쟌 누나랑 마리옹 각오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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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적 공동체 의식 '병세의식倂世意識' (공교롭게도 '병세의식'이다.)


(중략)..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 간에 심각한 수준의 역사적 앙금이 존재하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앙금으로 말하면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통합에 성공했다. 역사적 앙금 그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지식인들의 교류가 충분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지식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내부 정책 기조도 결정되고 외교 정책도 가닥을 잡는다.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의 상호 교류는 세 나라 사이에 어떤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한적이다. 그나마 진행되는 교류의 질도 매우 낮아 비관적인 상황이다. (YKRF리더십포럼은 질 높은 교류에요!!@@!@#!@$!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일단 臥龍이 되어야지)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식인 교류는 200년 전보다도 훨씬 못하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역사적 퇴행을 보인다. 200년 전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은 서로 활발하게 교류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형성하는 지적 공동체 인식, 즉 병세의식倂世意識도 존재했다.


당시 한/중/일 지식인 사이에는 지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한문을 이용해 편지와 필담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영어 물론 지리적인 제약으로 여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식인들 사이의 평화적인 교류는 18세기를 갈등과 간섭이 크지 않은 평화로운 시대로 만들었다.


특히 한국의 영조-정조 시대에 이러한 문화적/지적 교류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러한 교류 덕분에 동북아시아 평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보편적으로 보급되었다. 일본의 타카하시 히로키高橋博巳의 '동아시아의 문예공화국東アジアの文芸共和国'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병세의식을 연구한 한양대 정민 교수의 논문에서 관찰되는 18세기 조선의 국제적 지식 교류의 모습을 폐쇄적인 양반의 이미지를 뛰어넘는다. 이규상(1727-1799)은 동시대 문인, 학자, 예술가의 전기를 엮어 '병세재언록'을 펴냈다. 윤광심(1751-1817)은 당시 활동 중이던 동시대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시문을 모아 '병세집'을 엮었다. 유득공(1748-1807)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동시대 외국인의 시를 모아 '병세집'을 엮었다. 대부분 문집으로 간행되기 이전의 원고를 취합한 것이다.


'병세재언록'은 신분의 제약에서 자유로웠고 유득공의 '병세집' 역시 동시대성을 코드로 신분과 국경의 제약을 넘었다. 유득공의 '병세집'은 국경의 경계를 훌쩍 넘었다.


근엄한 유학자와 시정의 재주꾼을 나란히 배치한다거나, 조선 문인의 글 사이에 중국인과 일본인의 시문을 함께 두는 수평적 사고의 확장은 전 시기까지만 해도 용인되기 어려웠다. 멀리 안남(현재의 베트남 지역)과 유구(현재의 대만 지역으로 추정됨) 琉球면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인데.. 의 시인까지 포괄하는 동시대 선집을 기획한 것도 놀랍다. 의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홍대용은 한 차례의 연행에서 만난 중국 문사들과 평생에 걸쳐 서신을 왕래하면 교류를 지속했고 그 자취를 '회우록' 또는 '천애지기서'란 이름의 책에 남겼다. 이는 한/중 문사의 사적 교류에 불을 붙였다.


다음 시기 연암 그룹의 일원이었던 박제가의 제자 추사 김정희가 소동파를 매개로 하여 한/중 지식인 교류를 더 밀착시켜 나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 시기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조선 지식인들과 일본 문사와의 사적 교류도 흥미롭다. 이전과 달리 상대를 얕잡아 보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일본 지식인을 지식 교류의 장에서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기 병세의식은 내부에서는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는 수평적 확장이 이뤄졌음을 반영하고 외부로는 타자에 대한 변모된 인식과 대응을 보여준다. 병세의식의 성장은 단절 일로에 있던 동아시아가 개방의 길로 접어들고 국수주의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폐쇄적 사유가 열린 사고로 전환되는 변화를 전제한다. 그 사이 수많은 지식/정보가 오갔고, 그것은 자국 학술 문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다시 현대의 한/중/일 관계를 생각해보자. 독도 문제와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국의 학자들이 일본을 칭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에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지식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일본을 공격 목표로 해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학술 포럼이 열리고 있지만 흉금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뤄지는 대화 없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던지고 헤어지는 형편이어서 생산적인 토론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 YKRF리더십포럼은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했는가. 고민해봐야 한다.



난 가려졌뜸..


18세기 한/중/일 지식인들의 교류와 병세의식 형성 과정을 돌아보면 한국 지식인들의 주도적 역할이 특히 눈에 띈다. 중국의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보다는 한국 지식인들이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일본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한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 학자들이 통신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본을 자주 다녀온 것이 병세의식이 생기게 된 물리적 배경이다. 2세기가 지난 지금도 중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 한 쪽이 3국 간 지적 교류를 주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훨씬 부드러울 것이다.


한국이 한/중/일 3국의 지적 교류 프로그램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한다면 그 여건은 매우 좋은 편이다. 초국적 사업에 의해 경제적 교류가 확장되었으며 금융 쪽으로는 통합의 경향이 분명하고 기술적인 교류도 크다. 다만 진정한 지적 교류만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적 교류는 정부가 먼저 시작하기 어렵다. 대학이 시작하기는 무지 쉽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저명한 교수나 지식인은 지역학적인 접근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심도 있는 대화와 교류를 나누지 않고 있다. 다른 국가의 한 분야에 대하여 전공하지 않은 이상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 중국의 장관이나 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저명한 인사와 식사를 하고 대담을 나누는 경우는 있지만 이것이 지적인 발전을 이루는 교류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의지만 있으면 다양한 교류의 기회를 지적 교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변수는 한국 지식인들의 의도이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한국 고위 관료, 교수, 기업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가 있다. 여기서는 분야별 한/중/일 모임도 자주 열린다. 서로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지만 심도 있게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화, 무역, 지원, 사회 문제, 기회와 전망, 오해 등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는 행사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단순히 보여주기용 행사도 열린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옛날보다 자주 모임을 갖지만 200년 전 필담을 나누면서 우주의 원리를 토론하던 지식인들처럼 함께 고민하는 장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와 있는 중국과 일본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하고 한평생 친구가 돼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 기회가 YKRF리더십포럼 이라고 믿고 2년을 살아왔다.


진정한 교류는 예의를 차리는 인사치레와 형식적인 대담을 벗어나서 현대가 직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류는 굳이 물리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과거처럼 문서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동 없이도 토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는 18세기에 비하여 지리적인 제약과 시간적인 제약이 훨씬 줄어들었고 교류에 대한 어려움도 줄었다. 의지가 있는지 그 여부가 관건이 된다.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 18세기 병세사상은 역사가 남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한/중/일 세 나라의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훌륭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의한 교류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통합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국 지식인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식인의 적극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캬.....



이 책을 보고 감동한 지 2주가 지난 뒤 TCS(삼국협력사무국) 웹사이트 공지사항에서 우연히 강의 공지를 봤다. 연사는 바로 이 책의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연사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님을 섭외합시다!!

지혜로운 후배들의 적극성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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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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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주의에서는 국제적으로 모두가 지킴으로써 역외 행위자를 배제하지 않으려는 GATT체제와 같은 움직임이 있고, 그리고 양자간의 무역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의 움직임이 있다. 경제에서는 철저히 자국 국익을 생각하면서 타국에 양보할 것과 양보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자국에 유리한 국제적인 공급사슬을 만들기 위해 특정 국가를 선택하여 협력할 수 있다. 무역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원수와 무역 담당 정부부처는 계산한 대로 타국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하고 우월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세계화에 따른 황폐화를 저지르기도 한다. 


     반면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관리 능력에 관한 비교우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게 독점적인 이득을 가져다주고 다른 나라에게 반대로 비교열위와 차별을 제공하지 않는다. 관리를 잘하는 국가는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에너지의 수급과 경제발전을 지탱하기 위해 환경을 보존하고, 이차적으로는 주변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댐을 만들고 환경정화시설을 설치하고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에 신경을 쓴다. 재화와 서비스 시장이 보여주는 독점의 폐해와 상관이 없는 대신 환경은 긍정적 및 부정적 외부효과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이며, 이에 따라 외부효과를 시장 질서로 해결하기 위한 탄소배출권 거래 등의 논의가 EU 국가 안에서 있어 왔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권에 대해서도 점유율을 막대하게 가지고 있는 기업이 등장했다. EU 기후행동집행위원회(DG CLIMA)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 내에서 각 기업이 공장 가동을 하면서 배출권을 경매 방식으로 사고 판 이후 추후에 배출한 양만큼의 배출권을 EU에 반납하는 시점을 조절할 수 있다. 배출권의 가격은 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집약적인 대기업이 배출권 경매 판매로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인 키프로스와 에스토니아에게는 무한의 배출권을 제공해주는 특혜도 EU가 강한 제도적 틀로 실시할 수 있다. 주변국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강제성 있는 경제통합체가 작동하는 결과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다양한 경제발전 단계와 소득의 격차,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정체성의 형성이 다른 점이 이러한 시장을 통한 해결조차 불가능하게 하고 있고, 무엇보다 경제통합이 되기 이전에 OECD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탄소배출권 거래는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에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탄소배출을 공업화 단계부터 시작한 뒤로 어느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거래 대상국 간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국가간 GDP 수준이 비슷해질 정도로 산업화나 정보화를 위한 탄소배출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한 국가라도 GDP 성장을 위한 저기술 고오염의 경제발전을 이제 밟아나가고 있는 단계라면 그 국가와 거래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경우는 자국의 경제를 이끄는 자국의 기업이 공장을 자국 내에 가지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경우는 한 나라의 기업이 공장을 다른 나라에 이전해놓고 있는 형국이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거래 방식의 설정은 매우 어렵고 또한 논란거리를 낳을 뿐이다.


     2011년 8월에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제안한 동아시아탈원전네트워크는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는 면에서 여론 형성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 어떤 방안이 구체적으로 가능한지를 국민들의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는 근본 원인인 낮은 에너지 사용을 국민적 아젠다로 설정할 수 있는 캠페인 진행 능력과 관련 조례 및 규칙을 통해 강제성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서울시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궐 취임 이후 ‘원전 하나 줄이기’ 라는 제목으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시는 약 200만 TOE를 2014년까지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 서울의 에너지 소비량인 1,696만 TOE의 11.7%에 해당한다. 참고로 국내 원전 중 최대 규모인 영광5호기는 79만 TOE이다. 이러한 지자체의 노력에서는 노하우를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있고 그 나라로 전해줄 수도 있다. 이러한 노하우 공유는 경제적인 보상과 함께 맞물려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추후에 동아시아탈원전네트워크가 제안하는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 중단 및 기존의 가동중인 발전소의 안전 점검 강화 혹은 가동 중단이나 폐쇄 결정은 결국 정부의 에너지 담당 부처의 최종적인 결정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권력기관의 의사결정에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하고 그것이 한일 협력의 범위로 확장된다 하여도 실제로 정부 부처 관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자력의 피해를 모든 시민들이 인지하여 꼭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반대 여론이 충분히 형성되어야 시민들에 의한 압력을 받아 정부의 행동이 바뀌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국내정치 차원에서 이러한 압력의 인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의 시민들이 일본 경제산업성, 적어도 원자력발전소 입지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상당히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시민과 언론 차원에서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이해 증진과 피해지역 일본 시민들과의 정서적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마침 저번 주에 한중일삼국협력사무국 주최로 열린 ‘제3회 한중일 캠퍼스 하모니’  에서 이러한 목적의 후쿠시마 시민 컨퍼런스를 제안한 바 있다.


     환경 문제는 그 본래의 특성상 협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부정적 외부효과가 크고 환경 문제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틀과 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 더욱 협력의 의지가 각 국가 행위자에게 증대된다. 함께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는 행위는 전략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안보나 무역 차원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보다는 보다 행위자의 자율성이 떨어지는 행위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환경 문제가 지역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때 국가들이 이슈 중심적인 ad-hocracy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이러한 행위의 반복이 추후 협력을 위한 제도 형성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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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지난 5월 15일 열린 북극이사회 각료회의에서 정식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였다. 한국은 이제 북극이사회 산하 6개 위원회에 참여해 발언권을 행사하고 프로젝트나 사업구상도 제안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의존하여 그들이 만든 프로젝트에 따라 자원을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자주 개발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정책 전환 때문이다.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천연가스 개발과 확보에서 한국, 일본, 대만과 같이 자원 외교에 필사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자원 빈국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 조건이 개선되어 재정수지 흑자와 국부펀드 운용을 누리고 있는 여유로운 러시아는 앞으로의 무역체제에서 WTO가 예외로 하고 있는 자원에 대한 패권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철광석, 구리, 원유, 석탄, 밀 등 러시아가 아직 강하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지 못하는 광물에 대해 WTO체제에 힘입어 축적한 부를 이용하여 대량 구매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중국과 러시아는 대립하는 국가로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가 천연가스에 대한 협력을 동아시아 국가들과 진행할 경우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북한이 수혜자가 될 뿐 중국과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전망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2000년대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력을 구하기 힘들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출을 위해서는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대량생산 능력도 뒷받침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삼국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보고 진출을 진행해왔다. 동아시아 내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노동 분업은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졌고, WTO체제와 자유무역 및 기술협력의 흐름이 이러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력, 설비, 금융 자본도 필요하지만 천연 자원 또한 못지 않은 비중으로 중요하다. 그 동안 천연 자원의 확보를 당연하게 여겨온 이 3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여 석유를 운반하였다. 그런데 미국과 중동, OPEC과 IEA가 러시아와 중국과 GECF의 등장으로 그 입지를 잃어가고 있고 석유보다 값싼 천연가스의 대량 공급이 이어질 경우 3국의 대응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자원 빈국의 자원 외교는 자원의 국가지배와 지정학화가 강화될 경우 줄타기 외교의 양상을 보일 것이며 이는 자원이 빈약한 3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협상을 진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 자원의 시장화와 글로벌화가 강화된다면 자원 외교의 중요성은 약화된다. 물론 자원의 수입국 입장에서는 시장화와 글로벌화를 더욱 더 환영하고 있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시장경제체제를 위해서는 그 쪽이 더 바람직하다. 이는 중국을 제외하고 현재 경제성장이 진행중인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같이 적용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린란드를 가지고 있는 덴마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린란드 역시 서시베리아와 같이 천연가스가 대거 매장되어 있고, OPEC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는 석유뿐만 아니라 금, 다이아몬드, 텅스텐 또한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린란드는 따로 정부가 경제사법권을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작은 나라인 덴마크 그리고 북유럽 국가간 높은 무역 비중을 감안하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에 해당하는 지역은 러시아와 같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배후 지역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미국, 캐나다, 러시아와 함께 북극이사회 회원국이다.


     반대로 한국, 일본, 대만의 주변에는 언제나 협력적인 자세를 끊을 수 있는 강대국들만이 존재하고 있고, 이는 아시아 국가의 필사적인 해외 순방과 탐사에 대한 협력을 낳은 원인이다. 어찌 되었든 부산이나 도쿄에서 로테르담까지 이어지는 북극항로가 개척되면서 한국과 일본에게 매우 생소하기만 했던 덴마크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담론이 생긴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들려오는 뉴스는 강소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국가들이 전세계적으로 협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 글로벌라운지에 DENMARK DAY라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했을 당시에는 덴마크와 한국이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굉장히 먼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자원외교와 북극항로를 중심으로 양국 관계를 바라보니 더욱 거리가 가까워 보였고 같은 강소국 지향 국가로서 협력의 여지가 보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석유 매장량의 고갈이 시야에 들어오면서부터 일관된 자원외교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다른 자원 빈국에 비해 항상 대응의 속도나 규모가 떨어진다는 자기 비판을 줄곧 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간 관계를 살펴보았을 때 러시아와 가장 쉽게 신뢰도 높은 협력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도 하다. 북한이라는 요소만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한국의 자원 외교는 세계 속의 강소국으로 정착하는 일을 도와줄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국에게는 천연가스에 대한 패권국가의 등장 여부가 미래 정책을 수행하는 데 큰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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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내가 연세대학교 안에 참여하고 있는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과 이번 중일 협조체제와 동아시아 내 전자민주주의 가능성을 같이 묶어서 본다면 이 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질 수 있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조재욱과 전재성의 두 논문은 세 국가 간의 관념, 규범, 정체성에서 겹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는 국가를 구성하는 일반 대중의 다수가 띠는 모습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다.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양보하고 민족주의를 억제하고 국익을 내세우기 전에 지역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주장이고 현재 논문은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이 정치연구원의 후원을 받아 20대의 젊은 한중일 3국 대학생들이 모여 공통의 겹치는 관념, 규범, 정체성을 형성하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젊은 시절 이렇게 동아시아 협력을 목표로 훈련된 학생들이 국가의 결정자가 되었을 때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 통합을 논의할 수 있게 만든다.


  무역협정, 경제동반자협정과 같은 경제적 이익이나 동맹과 같은 안보적 이익을 위해서는 사전에 두 국가 이상이 왜 그러한 이익을 서로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야 하고, 그 명분은 국가, 기업, 시민사회 모두에서 교류를 통해 만들어지며, 모든 영역에서 명분이 만들어져야 국제정치에서 비판 없이 이익 공유의 실행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 일본은 중국 중심의 ASEAN+3에 대해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중국은 타 아시아 국가들에게 패권국가로 자리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태도를 결정한 행위자는 현재 각국의 외교부 지도자들이고, 그들의 개인적인 관념, 규범,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는 대개 냉전의 최후반기와 탈냉전기 초기이다. 반면 지금 한중일 대학생 리더십포럼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냉전 질서나 과거의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경험하지 않았고 지금의 외교부 지도자들처럼 그 때의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과거의 역사와 영토분쟁에 대해 최대한 양보하고 시장의 가치를 옹호하여 삼국 간 포기하고 얻을 항목을 논의를 통해 정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전반적인 정체성이 각국의 학생이기 이전에 동아시아의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담론은 최대한의 협력과 신뢰로 이어진다.


   구성주의를 따른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정체성의 구성이 시민사회의 극히 일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현재는 활발하지 않다. 교환학생 제도와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대학 내에 도입되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국가 사이에서도 대규모로 이루어진 지는 25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역사로 본다면 일본이 APEC을 주창하기 시작한 이래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교환학생이 시작하였다. 중국과 한국의 교환학생으로 본다면 한중수교 이후부터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동의하는 담론이 한중일 삼국 모두에 형성되기 이전과 달리 시장경제와 무역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형성된 후부터는 과거의 국민국가 중심적이고 권력과 이익 중심적인 지역구성을 벗어나 정체성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경제적 이득의 배분을 토의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전환되었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이러한 협력의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며, 시민사회에 참여하는 일부 국민들 특히 외국인과의 접촉과 대화로 상호 이해를 강화한 엘리트 계층에 한정되어 의식 전환이 이루어졌다. 


   한중일 삼국의 대학생들이 모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사용에 익숙하고 온라인으로 의견을 표출하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동아시아 내의 전자민주주의 또는 전자공론장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는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의 현재 모습과 향후 계획에 매우 적절히 들어맞는다. 중국 샹하이 푸단대학 학생들의 경우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접속을 우회하는 방법을 모두 알고 있고, 한국과 일본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일에도 자유롭다. 행사에 같이 참가하는 학생들이 세 국가에 나뉘어 있다보니 토의를 하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과 공식 웹사이트가 되었다. 민족주의의 성향을 가진 학생이 한 명도 없고, 현재 아무도 현실 정치처럼 주변국 정부기관과 같은 이익 결정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이다 보니 지역정체성 형성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 이는 NEAT와 같은 민간 시민사회 싱크탱크에서도 똑같이 진행되는 일이며 이 대학생 포럼은 그러한 시민사회의 영역을 벤치마킹하여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 의존한 협의는 디지털 기기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협의의 결과를 알림받지 못하게끔 하고 그들 중 민족주의나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논의된 내용을 출판하고 기존 정치 메커니즘을 통해 보고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면 정보기술의 발달이 만든 새로운 동아시아 정체성과 지역주의의 논의는 온전히 국가에 반영될 수 없게 된다. 


   지금의 정치는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외국인 상대에게도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건네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대중의 풍토에 기반한 정치이다. 과거에도 국제전화가 있었고 대사관 및 정부기관 사이의 연락 수단으로 쓰였지만 지역적인 협력에 대한 논의는 직접 만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한정된 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역 협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생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범위는 정보기술의 풍토가 만들어지기 전과 비교했을 때 아주 약간 더 넓어졌을 뿐이다. 동아시아 지역협력 담론의 이러한 소수 독점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쉽게 생각한다면 대중의 의견 형성에 국가 정책결정자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때 왕래가 자유로운 유럽의 경우는 대중의 지역통합 의견 형성이 강하여 국가간 지역통합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왕래가 비행기로 한정되어 힘든 동아시아의 경우는 대중의 지역통합 의견 형성도 약해서 지식질서가 소수의 전유물로 남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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