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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11.

 요즘 나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항상 하루는 숭례문 옆에 있는 프랑스문화원에 간다. 그곳의 미디어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군대 안에서 읽은 후 다음 휴가 나올 때 반납하는 식의 독서를 한 지도 이제 2권째다. 사실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고 또 반복해서 외워야 하기 때문에 바쁜 군생활(요즘 국군장병들은 절대로 그냥 팅가팅가 놀지 않는다) 중에 프랑스어 책을 읽으려면 많아야 1권밖에 안 된다. 그러다가 저번 휴가때 미디어도서관 안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대학생 정도 되는 여자분이 다소곳이 한적한 도서관을 지키고 계신 것을 보았다.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그때 시각은 16시 40분. 도서관을 주로 찾는 불문학과 대학원생들과 멋진 정장을 빼입은 종로 스타일 할아버지들 그리고 한국에 사는 극소수의 프랑스 현지 사람들도 슬슬 저녁 먹으러 나간 시각에 나는 대학교 동아리에서의 모임이 오늘이 아닌 내일임을 알고 시간이 붕 떠서 도서관에서 계속 박혀 있기로 했다. 나는 DVD를 하나 꺼낸 다음 여자분께 TV 리모컨과 헤드폰을 빌려서 DVD 플레이어가 있는 곳으로 갔다. 1시간 40분 정도 되는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운 다음 저녁에 다른 친구를 만날 계획이었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그 시간 동안 정말로 프랑스문화원 미디어도서관 안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와 그 대학생 정도 되는 여자분 빼고는 정적만이 흘렀다. 솔직히 난 머쓱한 기분이 들었고 만약 내가 솔로였으면 이 상황은 완전히 저 여자분께 작업을 걸기 위해 내가 괜히 DVD를 본다는 핑계로 들어왔다고 해석될 수도 있었다. 그냥 멍하니 영화만 보고 있기는 마음이 동하지 않아 여자분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보았다. 역시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 초년생이 확실하다.

 그 분은 어떻게 이곳에서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실까? 인터넷의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서 면접을 보고 오게 되었을까? 이러한 방법이 가장 정상적이지만 내 경험상 이렇게 작지만 권위 내지는 진입 장벽을 가진 곳의 아르바이트는 공개채용보다 인맥에 의한 추천 혹은 스카우트가 우선한다. 가장 높은 확률은 대학교 선배(이자 친한 언니이기도 한)가 자기가 원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가 교환학생이나 취업 등의 다른 일이 생겨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사무실 직원 분에게 후배가 참 괜찮다고 소개하며 칭찬을 해주고 떠난 경우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나름의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도서관 알바 자리와는 그리 개연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아는 사람, 혹은 두세 다리 건너 알게 된 사람과의 관계와 대화를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자리를 주선하는 게 도서관 알바와 더 어울린다.

 나는 아직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전역을 하게 되면 프랑스문화원도 더 자주 올 것이고 (물론 휴가때마다 꼭 하루 이상씩 발도장은 계속 찍고 간다) 아르바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내년 5월에는 내가 본 여자분에서 다른 분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원래 프랑스문화원 직원인 슬림 피트의 하얀 얼굴에 단정한 커트 머리를 지닌 똑똑해보이는 남자분은 그대로 계시겠지만 말이다. 이제부터 나는 도서관에 가서 직원과 알바생의 눈길을 피해 구석에 들어가서 책 찾아보고 대출 처리 한 다음 휙 도망갈 게 아니라 대화를 시도해 보아야겠다. 안면을 아는 단계를 지난 후 교환학생 상담을 옆의 CampusFrance 사무실에서 받아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단계까지 가면 그때 슬그머니 알바 얘기를 하면 되겠다. 인간성이라는 묘약은 꽤 많은 경우에서 온라인의 차가운 이력서 시장을 생략하게 해준다. 돈과 지위를 얻는 방법에 보다 유연하고 쉬운 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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