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 중 한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내가 스스로 개설한 대학 과목과도 같다. 대학교에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수강신청을 하고 최대 18학점, 20학점 등의 한도를 정해놓고 2학점, 3학점 단위의 과목을 신청하듯 내가 스스로 과목의 개수, 각 과목의 학점, 내가 들을 최대 학점을 정한다. 이러한 방식의 계획은 현재 내가 휴학중일 때에 매우 유용하다. 휴학중이어도 재학중인 것 같이 탄탄한 스케줄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일 안에는 우선순위 A와 B가 뒤섞여 있다. 시간관리 매트릭스의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소중한 일)이 모두 들어 있다.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C)은 들어있지 않다. 이 일에는 공부도 있고 여가도 있다. 오늘의 우선업무에 적어넣는다면 하루 중에 한번에 끝나는 일도 있고(소요시간과 양을 측정 가능), 하루 중에 자투리 시간을 조금씩 써먹는 일(소요시간과 양을 측정 불가능)도 있다. 이 일은 아직은 소요시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일의 형태로 쓰여 있지 않은 대신 대학교의 과목명의 형태로 쓰여 있다. 소요시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일의 형태는 오늘의 우선업무에서만 볼 수 있다.[각주:1]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정기적으로 할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부분집합이다.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종합하여 계획할 수 있는 일의 다이어그램을 새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이 다이어그램은 시간관리 매트릭스에 몇가지 분류를 추가하여 만든 다이어그램이다. 철저하게 대학생의 관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공부가 일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우선순위 C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누면 1번부터 14번까지의 영역이 나뉘게 된다. 이제 자신의 계획과 평소 하던 일과 라이프스타일을 돌이켜보면서 1번부터 14번까지의 영역에 어떤 일들을 집어넣을지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보자. 나의 경우 1번부터 14번까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자잘한 독서(사회과학, 공학, 프랑스 책)
2. SAS통계패키지, 수학 복습, JSP프로그래밍, 프랑스어 단어장, TCF, 읽을 책 목록에 있는 책 중 사회과학, 공학, 프랑스 책의 독서
3. 1주일에 한번씩 하는 영어번역, 1주일에 3편씩 올라오는 TV5MONDE 7 jours sur la planete exercices, 매주 월요일의 Le Monde+L'Express+La Croix 신문기사
4. 매주 월요일 17:00에 발행할 블로그 포스팅
5. 트위터 Timeline 보기+프랑스 tweet, HanRSS 구독
6. 자잘한 독서(음악, 미술, 인문학)
7. 자잘한 독서(주력분야 밖의 기타 분야)
8. 수면보충
9. 웹서핑목록(살면서 이거 찾아봐야겠다 싶은 걸 키워드 형태로 써서 축적해놓은 종이) 보면서 웹서핑
10. 웨이트트레이닝
11. 주말 TV편성표 확인
12. 미투데이, 기타 악보 따기+연습, 테니스, 탁구, 당구, 볼링, 자전거 등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할 운동, 여행정보 웹서핑 후 스크랩
13. 친구를 만나서 하는 모든 일들, Torrent 다운로드
14.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하지 않을 운동

 2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 요즘 뭐 공부하고 있어'에 해당되는 일들이다.
 8번, 9번, 12번, 13번에 무엇을 집어넣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이 피곤한 사람이다. 조금 더 여가를 즐길 필요가 있다. 단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인생이 피곤하다고 단정지어질 수는 없다. 자연스럽게, 혹은 본능적으로 놀거나 쉬는 활동은 1번부터 14번까지의 어느 영역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즉 계획할 수 없다. 이러한 활동을 충분히 하고 있다면 인생의 피곤함은 느끼지 않겠지만 놀거나 쉬는 것도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이렇게 목록을 만든 다음 2번, 3번, 4번, 5번, 9번, 10번, 11번, 12번만을 가지고 키워드를 뽑아내면 다음과 같다.
 SAS, 수학, 프랑스어, 영어번역, 블로그, 트위터, HanRSS, JSP

 그리고 이 키워드를 우선순위에 따라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어, 영어번역, SAS, 수학, 블로그, 트위터, HanRSS, JSP
 이것이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이며 내가 만든 과목이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은 최소 1달 단위로 유효하다. 목록 안에 있는 일을 다 끝마쳤다면 목록에서 없앤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추가한다. 목록은 이번 학기의 수강신청 내역이나 이번 달에 방송하는 드라마 목록과도 같다.

 이 목록에 있는 일들을 오늘의 우선업무에 추가했을 때의 소요시간이 얼마까지 가능할까 측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한계를 알아낸 다음 한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이 목록 안의 일들을 마치 양동이에 물을 넘치기 직전까지 붓는 것처럼 채워넣어야 한다. 한계는 목록에 있는 일들을 일주일의 오늘의 우선업무에 측정할 수 있는 형태로 써넣었을 때 매일의 우선업무가 모두 실행 가능한지를 따져봄으로써 알게 된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한계는 이렇게 계산한다. 우선 24시간에서 기본적인 먹고 씻고 자는 시간을 뺀 후 직장/대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하거나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시간, 즉 스스로 계획할 수 없이 얽매여있는 시간을 뺀다. 이제 남은 시간을 가지고 다음의 일을 하면서 보내면 된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 지속적이지 않은 일, 계획 없이 놀거나 쉬기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낸 뒤 완료 혹은 진행중(미완료)인 업무에 한해 이 세 가지 시간 중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합계를 내면 그 합계가 곧 한계이다.

 자투리시간을 이용하여 계획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자투리시간은 스스로 계획할 수 없이 얽매여있는 시간 안에 조금씩 나뉘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한 일도 오늘의 우선업무에는 적는다. 단 그 일을 끝내기 전 혹은 끝낸 직후에 적는 게 아니라 하루를 다 마무리한 다음 오늘 한 일을 반추해보는 도중에 적는다. 따라서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기록할 수 있다.

 남은 시간은 가용 시간, 내가 주도하여 계획하며 쓸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고정되어 있다. 직장이 08시부터 17시라면 그 시간은 평일에 항상 그 시간으로 고정되어 있다. 대학교의 요일별 시간표는 고정되어 있다. 매번 변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시간과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시간의 비율이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과 지속적이지 않은 일은 측정할 수 있다. 하루 중에 한 번에 끝낼 수 있고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적이지 않은 일은 측정할 필요가 없다. 측정을 하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한계를 알아보는 것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측정은 전자시계의 스톱워치, 고3때 쓰던 타이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만약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 지속적으로 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면 측정을 중단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할 때 측정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자투리시간에 하는 일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도구를 통해서는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자투리시간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스톱워치나 타이머를 꺼낸다는 것은 매우 의도된 행동이기 때문에 꺼내야겠다고 기억이 잘 날지 의문이 든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시간은 측정할 수 없다.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워서 음료수도 마시고 친구랑 수다도 떨고 네이버나 동아리 클럽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하는데 이러한 활동(일이 아니다)을 스톱워치로 측정하고 있을 것인가.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활동의 측정은 정신건강에 해로울뿐더러 전혀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시간은 측정될 수는 없는 대신 계산될 수 있다. 가용 시간은 고정되어 있고,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시간은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뺄셈을 하면 된다. 따라서 측정할 필요가 없다.

 오늘의 우선업무 목록을 작성할 때에는 우선 위에서 뽑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을 보고 우선순위를 고려한 다음 측정이 가능하도록 양을 정하여 업무를 하나씩 적는다. 예를 들자면 지속적으로 하는 일 중 '수학'을 보고 '수학의 정석 몇페이지부터 몇페이지까지 복습'이라는 업무를 적는다. 그 업무를 끝마치고 나면 소요시간을 업무 칸 맨 오른쪽에 적어넣는다. 진행중(미완료)이어도 소요시간을 적는다. 하루가 끝나면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합계를 낸다. 나는 모든 소요시간을 분 단위로 적는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초기의 지속적으로 하는 일 목록에 쓰인 일을 최대한 다 하려고 노력하면서 소요시간의 합계를 내면 내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 안에 최대 몇 개의 일을 써넣을 수 있는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이렇게 주별 소요시간 합계에 대한 자료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면 내가 요일별로 평균 몇 시간 몇 분을 지속적으로 하는 일을 위해 쓸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요일별 평균값은 누적평균으로서 일주일이 지나면서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특정 주의 소요시간 합계를 막대그래프로 그리고 지금까지의 주별 소요시간 합계의 누적평균을 꺾은선그래프로 그리면 자신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는 일에 치중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수치화된 그림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그래프 그리기는 프랭클린플래너가 할 수 없으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이 역할을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각각의 업무별로 예전의 실제 소요시간은 오늘의 예상 소요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오늘의 우선업무를 (ABC)(업무)(예상 소요시간)/(실제 소요시간) 의 형태로 써나갈 수 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예상 소요시간을 써놓고, 업무가 끝난 뒤 실제 소요시간을 써서 예상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꽤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고, 매달마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을 갱신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얽매여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계획적으로 살 수 있다면, 혹은 그 시간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이처럼 스스로 계획할 여유가 없다면 계획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체계적인 계획은 어디까지나 자유롭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잉여상태'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방지책으로 기능하며 계획하는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게끔 도와줄 뿐이다.
 

<별지: 조금 더 정밀한 소요시간 측정>
 오늘의 우선업무 목록 안의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또한 좀 더 정밀하게 그 일을 구성하는 단위로서 소요시간을 측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책을 한 장(章) 읽는 일이 있으면 한 쪽 단위로 소요시간을 측정할 수도 있다. 한 문제, 한 건, 한 문단 등 단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구상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버튼을 누르면 1/10초 단위 시간 측정이 시작되며 다시 버튼을 누르면 앞선 측정값이 저장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간 측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간 측정을 다 하고 나면 저장된 여러 개의 순차적 측정값이 목록으로 제시되며 첫번째 측정값에 레이블을 붙이고 두번째 측정값은 엑셀의 셀 값 자동 채우기를 하듯 자동으로 채워진다. 첫번째 측정값이 85쪽이었다면 두번째 측정값은 86쪽..과 같이 채워진다. 목록의 측정값들은 기존에 저장해놓은 다른 목록에 뒤이어 합쳐질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다른 목록으로 이동될 수도 있다. 이처럼 기능이 단순하기 때문에 공부나 일을 하면서도 쉽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 소요시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목표(일이 아니라)의 형태는 월간 주요 업무 리스트의 '월간 목표'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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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의 책상, 그리고 우리의 시간

 나와 같은 20대 소년 소녀 대학생들은 끊임없이 기존에 자기가 몸담고 있던 곳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지독하게 듣고 들었던 '창의'와 '도전'과 '혁신'을 땀과 눈물을 짜내며 계속해 나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삶의 많은 부분을 헌신하고 있는 곳은 바로 책상 앞이 아닐까 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인생의 1/3은 잠으로 보낸다고 해야 맞지만 우리의 마음의 고향은 역시 편안하고 정겹고 그래서 때로는 잠도 잘 오는 낡은 책상 앞이다.  (개별 사진 출처: Flickr)

 그리고 한번 내 방 책상에 앉으면 1시간 정도 있다 이내 졸려서 즐겁게 싸이월드나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잠에 들 날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정말 올바르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몇 시간에 걸쳐 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싶기도 한다. 그중에는 가끔씩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거나 혹은 책에 몰입하기가 너무나도 쉽거나, 공부하는 게 유달리 재미있게 느껴져서 그에 따른 흥분에 취해 서너 시간 동안이나 지치지 않고 책에만 몰두할 때도 있다. 이런 경험은 천재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충분히 가져본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책상에 앉은 지 얼마 정도 지나면 눈앞의 컴퓨터 화면에서 드넓게 펼쳐진 정보의 바다가 나를 유혹하거나, 마루에서 TV를 보시는 엄마, 아빠, 오빠, 언니가 침묵의 추파를 던지는 식으로 (같이 보자~)이내 자리를 떠 애써 모아놓은 주의와 집중을 마치 검은 콩을 실수로 바닥에 좌르르 쏟아내듯 흩뜨리곤 한다. 마룻바닥 깊숙히 들어간 검은 콩은 주워담기도 힘들다.

 집중은 주변 환경이 조금만 움직여도 깨져버리고, 따라서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박수를 보내야 할 천재들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참 고민이다. 특히나 나는 도서관이나 조용한 로비보다는 내 방에 있기를 좋아하는데 이 세상은 나만 사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책상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20대 80 법칙

 이탈리아의 유명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 빌프레드 파레토가 소득 불균형의 20대 80 법칙을 주장하였으나, 이는 비단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영계의 담론을 거쳐 모든 종류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모든 영역에서는 이러한 20대 80의 법칙이 인간의 불완전성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작동하는 듯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책상 앞에서의 20대 80 법칙'도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도서관에서 자신을 환경적으로 고립시켜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들은 다른 지역 사람 얘기같이 낯설게 들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 공부를 하거나 자취방에 있는 이들은 언제나 복잡다단하고 예상할 수 없이 변하는 주변 상황에 마음이 홀려 공부를 하다가 금방 다른 일을 했다 이내 다시 의자 앞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즉 몇 시간 계획을 해 놓고 '오늘은 오후 내내 4시간 동안 여기 앉아서 책 어디서 어디까지 보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어도, 정작 그 책을 열심히 몰입해서 읽어보는 시간은 4시간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800미터 달리기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 시간, 한 곡의 재즈에서 후련한 드럼 솔로를 내지르는 시간, 혼자 있는 오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 생각을 휘갈겨 적는 시간, 하룻밤의 사랑에서 절정에 이르는 시간(나는 아직 경험은 없다만), 협상 테이블 맞은 편 상대에게 숨막힐 듯한 제안으로 비수를 꽂는 시간,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책을 제대로 보는 시간, 모두가 전체를 아우르는 시간의 20%도 못 되는 시간이다.


우리는 나머지 80%의 시간에는 도대체 무얼 하는가?

 이런 질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괜히 우쭐해지기도 하고 왜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냐며 건강한 자아를 의심하기도 한다. 서너 시간 책상에 앉아있노라 계획한 그 시간 동안 내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처럼 온전히 꿋꿋하게 앉아 있지 않고 분명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딘가를 막 돌아다녔던 게 분명하다면, 돌아다닌 시간이 얼마이며 그동안 나는 무얼 했는가에 대해 아주 정밀하게 기록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기관리에 관심이 없는 낙천적인 사람은 쉬엄쉬엄 하는 스타일이 더 맞기도 하여 이런 일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있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분명히 중간에 목이 마르지 않는데도 부엌에 나가 물을 마시고, 물을 마시니 먹고 싶어지기도 하여 바나나나 쥬스나 과자 등을 집어먹기도 하고, 할머니와 함께 집안일을 잠깐 도와드리고, 끝나고 마루를 지나는데 갑자기 눈앞에 TV가 보여 괜히 뉴스 한번 틀어보고, 뉴스가 별거 없으면 노트북을 켜 네이버로 들어간다. 그리고 네이버가 짠. 하고 뜨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는다. 여기저기 기쁨을 찾아 돌아다니는 눈먼 나그네, 어디 갈 수 있는 사이트가 네이버 뿐인가. 다른 사이트로 가보면 내가 평소에 관심 갖고 있던 자료가 펼쳐지고, 언젠가는 꼭 보아야 하겠다는 진로에 관련한 정보도 들추어 보게 된다. 그럼 또 스크랩 하고... 이 뜻밖의 여행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친구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에 그닥 취미가 붙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책상 앞에 앉은 나를 유혹하는 환경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기본적인 책과 연필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이와 같은 홀림에 빠져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홀림을 철저한 자기 통제로 완벽히 제압하여 장시간 동안 오직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근성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도서관이 아닌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무조건 내방 책상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내 책상은 열람실보다 아늑하고 쾌적하며, 다양한 장비와 도서를 펼쳐놓고 작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경우에는 분명 자율적인 활용이 가능한 책상이 좋다.) 하지만 자기 주변의 환경을 통제하고 자신의 행동 패턴을 수정한다면 그러한 홀림은 상당량 줄어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홀려 계속 돌아다닌 그 80%의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여 나중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고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위치와 한 일이 변할 때마다 그 추이를 간략하게 적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로그(log)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는 3시간, 4시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자기의 행동 패턴에 대한 자기 주도적 실험이다. 마치 심리학이나 기타 사회과학 분야의 실험과 같이 변인 통제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로그 작성을 위한 조건>


 1. 책상에 장시간 앉아 무언가를 하도록 계획을 해놓은 상태여야 한다

 2. 최소한 10분마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주변에 큰 시계가 있거나, 전자 시계나 핸드폰 등으로 알람이 설정되어 있거나, 중간에 책상에서 빠져나오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10분 이상 시간을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지 (예. 시간을 정해놓고 해보는 모의 test) 않는 등. 가장 좋은 방법은 실험 시간 동안 손목시계를 차는 것이다. 꼭 10분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10분+-5분 정도의 간격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20%의 집중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계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시계를 보고 활동을 기록하는 일이 그리 집중을 산만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책상에서 계획해놓은 일 외의 일을 의도하는 순간 로그를 적어야 한다 - 일을 하는 도중 혹은 하고 나서 로그를 적는 것과 병행, 이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4. 타인의 부름이나 강요에 의해 이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이렇게 되면 절대 자신의 시간으로 회복할 수 없는 시간들까지 로그 안에 포함되어 실험의 변인 통제가 훼손된다

5. 장시간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책상에 돌아왔을 경우 바로 이전의 일에 대하여 로그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 다른 일의 소요시간이 너무 길면 안 된다


 이렇게 실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실험을 실시하여 로그를 작성해 보고 장시간 책상에 앉아있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로그 작성을 반복해 본다면 자기가 어떤 일 때문에 주의를 흩뜨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후 눈에 띄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일은 더이상 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조작하고, 집중하는 시간은 더욱 확대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간헐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를 한 덩어리로 모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든다. 아직 나에게도 이 실험같지 않은 실험은 계획 단계에 있다. 하지만 분명 실효성은 있으리라 믿으며, 보완할 부분은 실험의 순조로운 진행 가능성에만 국한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실천에 옮길 기회가 생기면 그때 한 번 해보아야겠다.


희망찬 결론은 산뜻하게

 대학생으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책상 앞이기 때문에, 나는 내 삶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고 그와 더불어 모두의 삶도 소중하기에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각박해지는 이 현실을 여러 가지 자기관리 기법을 통해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88만원 세대'같은 이야기는 훗날의 빛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 정도로 보이리라.

대학생들!! 모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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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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