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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1일 늦은 11시 잠깐 쉬러 나왔다..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책상이 넓으면 넓을수록, 한눈 안에 들어올 물건의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효율적이다. 그만큼 더 풍부한 자료와 접한다는 뜻이고 흥미와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시험은 찾아오고, 나는 내 책상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면서 공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이 상반된 감정의 활동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마치 수백 개의 버튼과 레버와 스틱이 설치되어 있는 파일럿의 조종칸에 처음 탑승했을 때의 설렘과 같은 기분을 책상 위에서 간직한 채 지식을 찾아 비행기를 띄우듯 말이다. 

1 더 넓은 시야와 더 풍부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인터넷 그리고 컴퓨터
  나는 수업시간에 나누어준 리딩 자료나 PPT, 교수님의 말씀 그리고 나의 필기만 가지고 공부해서는 그 과목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못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조금 더 많이 자료를 찾아보려고 한다. 때로는 수업 시간에는 언급을 하지 않은 자료를 읽어봄으로써 이미 언급한 중요한 몇 가지 사실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데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이는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와 비슷하다.
  브라우저의 여러 탭을 열 수 있는 기능은 참 편리하다. 이를 통해 내가 공부를 하는 시간 동안 항상 켜놓는 사이트는 구글과 위키피디아다. 리딩 자료나 PPT를 보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나 용어를 검색창에 입력하여 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읽으면 잘 이해가 안 되도록 설명해 놓은 수업 자료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 훨씬 높은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맞는지를 새로운 자료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대조하고 검사함으로써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현재 진행상황을 알게 해주는 프랭클린 플래너 데일리 속지
  하루의 공부할 범위를 여러 개의 작은 task로 나누어 하루의 업무 리스트에 적어놓은 다음 30분에서 1시간 단위의 하나의 공부 task를 끝낼 때마다 체크를 하면 성취감도 높아지고 현재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알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내일과 모레의 속지에도 이와 같은 자세한 task를 기록해 놓으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했다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나침반 마크에서도 알 수 있듯 시스템 다이어리는 사람을 한 방향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감독당하거나 까칠한 선임을 위에 두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철저한 방향 설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 있으면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하는 나에게는 시스템 다이어리가 참 좋다.

3 리딩 자료 / PPT
  자료는 최대한 많이 꺼내놓는다. 특정 항목에 대해 공부할 때마다 관련된 자료는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꺼내 놓아 여러 개로 펼쳐 보아야 한다. 특히 주교재를 집에서 알아서 읽어오게 하고 수업 시간에는 PPT로 계속 나가는 수업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이 두 가지 수업자료를 같이 대조해 보면서 공부하는 방법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4 쓰면서 공부하기 위한 메모장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 중에 혈액형 별 추천하는 공부방법이라는 내용의 작은 잡지의 한토막이 있었다. A형인 나에게는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데, 실제로 나에게 이게 효과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어차피 실제 시험은 쓰는 시험이지 말하거나 듣거나 읽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쓰면서 공부하기는 가장 실제 시험과 비슷한 형태의 경험이다.
  따라서 나는 리딩 자료나 PPT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읽은 것들을 이곳에 조직하여 풀어 써본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 시간을 최대화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머릿속의 내용을 글로 단순히 옮겨 적는 프로세스는 최소화하여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많은 항목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한다. 메모장으로는 이면지가 참 좋다.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도통 생각이 잘 나지 않는 이면지를 아무 생각없이 버리지 말고 이런 일에 활용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5 필기 공책
  나는 필기 공책은 따로 만들지 않는 편이고, 리딩 자료나 PPT의 여백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넣는 편이다. 관련된 내용은 한자리에 모아 놓아야 한다는 나의 원칙 때문에 굳이 같은 항목에 관한 설명을 두 가지의 틀에 나누어 넣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울러 필기 공책 위에 있는 망나뇽은 삭막한 책상 위를 귀엽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오늘은 정외과 교수님 방 서재에서 버락 오바마의 플라스틱 인형을 봤는데 무지 탐나더라. 미국에서 지금 엄청난 인기라고 한다.

6 다양한 색깔 펜
  여러 가지 색의 펜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이렇게 나의 공간인 집에서 여유롭게 물건들을 펼쳐놓는 경우밖에 없다. 1시간짜리 수업을 듣는 와중에 다양한 색깔 펜까지 꺼내놓기란 가능은 하지만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차라리 검정 펜만 가지고 줄기차게 필기를 해대는 것이 한가롭게 펜 색깔을 바꾸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여유롭게 공부할 때에는 다양한 색깔 펜을 이용해서 많이 밑줄을 쳐보고 다이어그램도 그려보면서 이미 있는 자료의 조직에 힘을 쏟는다.

7 우유
  한달 전부터 나는 밤에 공부할 때마다 우유를 한 컵 마신다. 우유 안의 세로토닌 성분이 숙면을 촉진시켜 밤늦게까지 피말리며 공부를 해도 침대에 누웠을 때에는 잡생각 없이 바로 노곤함을 느끼게 해주고 숙면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해준다. 매스컴이 만들어낸 이미지인 스니커즈나 콜라보다는 몸에 좋은 우유가 백배 좋다. 아! 나는 우유는 냉장고에서 꺼내서 바로 마시지 않고 책상 위에 15분 정도 올려놓았다가 적당한 온도(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기에 적합한 물의 온도 정도)가 되면 컵에 따라 마신다.


  대학교에서 시험을 하도 많이 쳐봤기 때문에 (이번이 무려 7번째이고 과목 수로 따지면 지금까지 나는 35개 정도의 시험을 쳤다)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는 법이 무엇인지 나만의 방도를 어느 정도 뚫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학점이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성취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면접을 통해 들어오는 인턴십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쓰기 시작해야 하는지 하나도 잡히지 않는다. 혼자서 이렇게 판을 벌리는 일 말고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휘젓고 돌아다니는 일을 이제부터 하나씩 생각하고 연구해 볼 때가 온 듯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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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블로그를 못한 원인은 이중전공에 따른 부담과 동아리의 정기공연 준비 이 두 가지에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의 무서움을 파악하고 소문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괴력을 절실히 느낀 어떤 한 사건 때문에 나는 내 모습을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조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블로그에 아주 직설적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공대와 사과대를 넘나드는 첫 학기의 첫 시험 준비는 어느 정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맨 처음 과목은 조금 망치긴 했지만 앞으로의 학기를 어떻게 버텨야 되나 하는 거대한 절망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공부법을 연마하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특히 이번에 언어와 수학을 병행해 가는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 할 게 훨씬 많아졌다. 그동안 쪼들리는 일정에 블로그 주제는 머리 안에 있었지만 늦은 하루의 피로감 때문에 그것을 포스팅으로 옮길 힘조차 없었는데, 오늘 아침은 참 개운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포스팅하기 좋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주의를 기울여왔던 주제는 새로운 정보다. 이는 기존의 내가 배워놓은 지식을 보존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오늘 당장 내 눈 앞에 새로 펼쳐진 정보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새로운 정보는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교수의 말 한마디를 필기로 옮겨 적으면서 빛을 발한다. 새로운 A라는 정보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가장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은 지금 이 정보를 저장할 때 아주 특수한 모습으로 가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책의 몇 페이지에서 이 정보를 발견했는가를 생각해보고 그 페이지를 스크린샷처럼 기억하는 방법, 이 정보가 툭 튀어나올 당시의 나의 심정이라던가 주변 사람들의 대화하는 상황 등을 연계시켜 함께 기억하는 방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전에는 글귀를 있는 그대로 단지 글의 형태로만 머리에 저장하곤 했는데, 이는 어렸을 적의 성경구절 암송처럼 10-20회의 반복적인 읽기를 통한 암기에만 적합한 방법이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 우리가 정보를 얻기 위한 소스가 글, 그림, 하이퍼텍스트 문서, 동영상, 친구나 다른 어른들의 말 등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특정 정보 A를 아주 독특하게 기억하기 쉬워졌다는 사실이다. 눈과 뇌만 가지고 글을 읽어 정보를 달달 외우는 것과, 여러 감각기관이 모두 열심히 가동하여 똑같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이 정보가 내 안에 저장된 이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일이다. 정보를 처음에 받아들일 때 그 정보가 완전한지 혹은 올바른지에 대해 의심을 한다면 그 정보는 뒤틀리고 기억 속에서 쳇, 하며 빠져나간다. 슬롯머신의 빙빙 돌아가는 그림들처럼 어떤 형태를 취할지가 불안한 정보가 차분히 굳어진 프레스코화와 같이 뇌에 저장되도록 처음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때 온 정신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 정보가 나에게 온전히 들어올 수도 없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다른 정보와 아무런 의미 없는 연결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러한 쓸데없는 연결관계를 처음 정보를 접하는 순간에 떠올리기를 삼가할 필요가 막대하다. 예를 들어 막스 베르트하이머라는 심리학자가 가현운동의 원리를 처음 제시했다는 지식을 처음 접할 때에는, 1920년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를 쓸데없이 떠올리면 안된다. 농담이나 유머를 위해서는 이러한 경우처럼 정연한 논리를 비틀지만, 공부를 할 때에는 진지하게 정연한 논리를 천천히 따져가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은 서로 관련이 있다. 정보를 특수한 모습으로 가공해 놓으면 그 A라는 정보는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저장해 놓은 수백만 개의 단편적인 정보와 아무런 혼란을 빚지 않게 되어 불변하는 분명한 지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관련된 두 가지 원칙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방법과 원칙은 능력의 필수적인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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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역사에는 언제나 삶의 특정한 부분에서의 방식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커다란 사건이 개입하였다. 그 사건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같은 방대한 자연과학/철학 영역에서의 사고방식의 변화일 수도 있고, mass SP에서 개인 SP나 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으로의 전환과 같은 경영, 정치, 심리 등에서의 방법론의 변화일 수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핸드폰, 인터넷, 자동차 등의 구체적인 기술이나 도구를 통한 변화일 수도 있다.

  모든 종류의 '창의적인 것들'은 결과로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전환시켰다. 어떤 새로운 물건, 생각, 사상 등으로 인해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리거나 역사의 박물관으로 저장해 놓고 사람들은 즉시 새로 등장한 것으로 대체하였다. 이러한 추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의 하루를 보내다가 그 하루를 보내면서 반복적으로 느꼈던 ( ) 에 대해 새로운 행동 패턴으로 '완전한 대체'를 추구하였고, 그러한 추동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낳았다. ( )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다.

( ) :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 패턴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부정적인 모든 사건/현상/감정
- 불편한 사건 -  명령어를 다 외워야 했다 -> GUI
- 불가능한 사건 - 미국에서만 파는 물건은 못 사왔음->해외구매대행 사이트
- 실패한 사건 - 돈이 없어서 지식이 부족했고 그에 따른 실패->무료 인터넷강의
- 비효율적인 사건 - 너무 긴 행정 절차, 쭉 가면 될 길을 돌아서 가는 경우->키오스크, 사이버민원

기존의 생활 속의 모든 행동패턴 A1, A2, A3, A4......An
아이디어가 적용된 새로운 행동패턴 B1, B2, B3, B4....Bn
그리고 각 An과 Bn을 이어주는 방법인 아이디어 I1, I2, I3, I4....In
  A1은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 I1에 의해 새로운 행동패턴 B1로 변한다. A1과 B1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보자.

이 도식에만 신경쓰고 이 세상 60억 인구가 1일 24시간 동안
24 x 6,000,000,000 개의 행동 패턴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고 있고 그중에서
부정적인 사건/현상/감정을 느끼는 행동 패턴이 무엇인지 골라낸다면
최소한 하루 동안의 생각으로 5개는 골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잠자는 시간도 있고 몇 시간째 같은 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정도 값으로 생각)

  여기서 주장하는 창의적 사고방법은 기존의 모든 사람들이 따르도록 예상된 절차, 규범, 제도 등을 완전히 논의에서 배제한 채 오직 사람들이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만 조명한다. 사람들의 행동이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행동을 보다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요는 많으니 아이디어를 찾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하루 동안 생활하면서 겪는 1분 1초의 사건들을 관찰해야 한다. 즉 도서관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책들을 읽어보고 기존에 다른 사람들이 주장했던 이론을 배운다고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이전 연구 결과는 효용성 있을 만한 아이디어를 찾은 후 그를 다듬어가는 과정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


  우선 사람들이 어느 때에 무슨 구체적이고 사소한 일 하나를 하다가 짜증을 내거나 피곤해하거나 불편해하거나 해결책을 찾지 못해 절망하는지, 그 부정적인 순간을 잡아 놓는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순간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은 기존에 만들어진 사상/방법론/기술을 찾아본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힘들지만,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덩어리를 재료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은 이에 비해 훨씬 쉽다. 그 다음은 부정적인 순간과 기존의 것들을 합쳐서 그 합친 결과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이 때부터 여러 자료를 찾아서 연구한다. 아이디어를 다듬는 과정에서는 그것이 사람들이 행동 패턴을 기존의 것에서 '완전히 대체'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 즉 효용성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하여 판단해야 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불편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의 구체적 실천 방법을 조곤조곤 이야기했을 뿐이다.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나름 생각해볼 만한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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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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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는 말과 글에 대한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기억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예전에 들었던 음악이나 예전에 보았던 그림을 회상하는 것보다 열 배는 힘들다.  옛날에 수능 공부할 때에도 언어가 제일 낮게 나왔고,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길게 말하는 것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말이나 글과 같이 한 줄씩 쭉 뽑아내는 듯이 기억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꺼번에 포괄적으로 기억해내는 매체에 대해서는 아주 또렷이 머리에 그려낸다. 생각해보니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생각해낼 수 있게 해주는 매체에는 지도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 그리고 한꺼번에 정보를 인출하기 쉬운 지도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책의 내용을 생각해낼 때 지도를 기억해내는 것처럼 함으로써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남자들도 지도와 같은 자료는 금방 다 외워서 나중에는 지도 없이도 장소를 곧잘 찾아간다. 결국 책과 지도를 인식하는 과정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알아본다면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읽은 책의 내용을 더욱 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을 기억하고 인출하는 방법 중에 '영상기억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모든 내용을 비디오와 그림으로 환원시켜 우리의 감각 중 가장 발달한 시각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실제 나도 대학교 시험을 치를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자료들을 3번 정도 반복해서 읽으면서 각 페이지를 눈이라는 DSLR을 통해 고화질로 한 장씩 저장해 놓은 뒤 시험 시간에는 머릿속의 사진들을 고속 인쇄기를 통해 바로 출력해내어 내 눈앞에 펼쳐 놓고 그 상상의 출력된 사진을 보고 답안을 적어나간다. 물론 프린터에 고장이 나 출력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이런 느낌으로 텍스트 자료를 영상으로 만들어 학습하면 매우 좋은 효과를 얻는 것 같다.


  내가 텍스트와 사진에 비유하여 영상기억법을 소개했지만 이러한 방법은 단순히 텍스트가 인쇄된 페이지(어떻게 보면 이것이 영상이다) 자체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지도'는 그러한 '페이지 자체'와는 다르다. 지도는 텍스트를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영상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제 더 알아보아야 할 것은 텍스트를 영상으로 환원하는 구체적인 인식론이며, 이를 위한 기본적인 단계로 책과 지도의 연관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글보다 재미있는 것이 그림이고 영상이고 지도다. 무언가를 정말로 잊어버리지 않고 장기기억 속에 꽁꽁 동여매려면 재미있는 결과물'만' 가지고 학습을 해야 되는 것 같으며, 그래서 그냥 글보다는 그 글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멀티미디어 자료를 함께 보면서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텍스트는 가장 상위의 매체이며, 텍스트에 딸린 하위 매체로 그림과 소리와 비디오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는 텍스트를 변환한 결과물이며 하위 매체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인터넷으로 말하자면 멀티미디어에 하이퍼링크가 걸려있는) 결과물이다. 또한 지도는 학습자가 실제로 학습한 내용을 집행(기본적인 말하기, 쓰기, 그 외에도 영상 제작, 작곡, 이미지 편집,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등)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되는 매체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그림과 비디오를 많이 보았다 할지라도 나중에 그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그러한 학습에 소모한 시간은 모두 쓸모 없이 날아가버린다. 특히 인문계열인 사람들이 이를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문과는 계속해서 지도를 그려나가야 하고, 계속해서 지식을 표현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li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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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 말하기/쓰기

- 목차

- Chapter

- Clause

- 내용


- 키워드
- 핵심 논지

- detail의 정도(이 책을 개략적으로 훑고 넘어갈 것인가, 완전히 정독하여 모든 내용을 숙지할 것인가)





지도c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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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그리기 (백지도 완성)

- 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지리를 파악하기

- 지역간 경계선

- 시 이름

- 지역 이름

- 지도에는 나타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그 지역 속의 수많은 건물과 자연물 그리고 지형에 관한 모든 지리의 내용

- landmark

- 여행 일정/노선 (itinerary)

- 축척




<사진 출처: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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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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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과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특정 주제에 대해 말하거나 어떤 질문에 대해 답하거나, 혹은 2쪽 정도의 답안지에 논리적으로 생각을 배열하여 쭉 써내려 가는 능력이다. 흔히 말하는 '썰 푸는 능력'이다. 대학 시험을 볼 때에는 이 능력이 4년 내내 필요하고, 한시라도 이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예의주시해야 한다. 하지만 나도 가끔씩 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반성하면서 보다 나은 능력을 위해 어떤 학습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고민한다. 여기서 보다 나은 능력이란 내가 그 내용을 말하거나 쓰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속 준비한 후에 바로 유창하게 말하고 쓰게 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시간적·정신적 조건에서든 그 내용을 차근차근 생각해낼 줄 아는 능력이다. 차근차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로 풀어쓰는 것은 그냥 하면 된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질문을 할 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등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 키워드 몇 개에 의존한다. 이것이 바로 speech와 writing이라는 '야간 하이킹'을 도와주는 '야광 막대기'로서의 이정표다. 이는 마치 예전의 우리가 담력훈련을 할 때 깜깜한 산길에 드문드문 놓여있는 야광 막대기를 보고 길을 찾고 걸어가는 원리와 같다. 강의노트에 있는 하나의 키워드, 하나의 이정표, 하나의 야광 막대기는 내가 이만큼의 거리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에 키워드만 간략하게 써 있어도 그 자리에서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말하는 내가 키워드를 바로 참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실제 시험이나 면접이나 교수님과의 질의응답에서 그렇게 쉽게 키워드를 참고해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키워드가 쓰여 있는 그 어떠한 종이도 들고 갈 수 없다. 다만 머리 속에서 내용을 끄집어내야 할 뿐.. 몇 시간에 걸쳐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그 내용이 해독할 수 없는 흐름으로 뇌에 기억되어 있다면 다시 끄집어낼 수 없다. 한 권 독서의 결과로 지리산, 설악산만한 등산로를 머리 속에 그려냈지만 야광 막대기가 없으면 그 길의 입구 조차 들어갈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많이 말하는 것보다 조리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야광 막대기 3개만 가지고 여기서 저기까지 가서 찍고 다시 오는 정도의 산책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고 능력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적인 '이정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멋진 말과 글을 생산하기'를 위해서는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리는 우리가 평소에 썼던 그 키워드 종이와 꼭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머리 속의 눈으로는 보이는 종이 쪽지를 100장이고 200장이고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종이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길고 조리있는 말과 글에 어려움이 없게 된다.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0.3초 후에 '아,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느낌이 들어. 자신감이 생기는군! 벌써 머리 속에 3분 분량의 필름 롤이 뽑아져 나왔어. 이제 천천히 영사기를 돌리면서 차근차근 말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대해 이러한 경지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노력을 하면 반드시 이러한 경지를 달성할 수 있다.

 노력이 말이 쉽지 어떻게 하루아침에 되냐고?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 모든 서술형 시험문제는 정말 문제 내기 귀찮은 교수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에 대해 쓰시오. 논하시오. 이런 것들) 최소한 포괄적인 clue는 제시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따른 서술형 답을 써내려가면 된다. clue의 도움으로 답을 쓰기 위한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 쉽기 때문에 나는 그 가이드라인을 좀 더 쉽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보면 된다. 가이드라인 만들기가 쉽다는 말은 연상이 쉽다는 말이다.

 연상 작용이 쉬워지기 위해서는 머리에 떠올리는 내용이 쉽게 조작될 수 있어야 한다. 내용 자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을 머리 속에서 새롭게 조직하거나 구성 따위를 할 능력과 시간 같은 건 없다. 바로바로 그 내용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하고 연상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또 다시 '흐름'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참 다행스럽게도 이 '흐름'이라는 것이 그리 길 수가 없다. 그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뇌의 능력이 가진 한계에 근거한다. 즉 누구나 하나의 speech와 writing을 풀어나갈 때 길이는 그리 길지 않으며, 생각할 내용도 그리 많지 않으며, 많은 내용을 풀어내는 것이 요구된다면 이미 누구에게나 여러 개의 speech와 writing을 풀어나갈 기회를 준다. 하나의 아주 긴 흐름은 필요하지 않고 대신 매우 다양한 짧은 흐름이 필요하다.

 따라서 키워드 종이를 만들 때에는 매우 구체적인 주제에 관하여 만들어야 한다. < > 안에 주제나 질문을 써 넣고 < > 아래의 내용을 조금 더 짧게 쓰려 해보라. 흐름을 쪼개는 것이다. 학습이나 암기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쪼개면 쪼갤수록 더 좋다."

 나는 재즈 동아리에서 드럼을 치고 있는데, 관객들 앞에서 드럼을 치면서 리듬 패턴과 솔로를 뽑아내는 느낌은 꼭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음악에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나는 그 흐름을 제대로 탔을 때 멋지고 박수 받을 만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나의 음악도 형편없이 추락하게 된다. 또한 자연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흐름을 한꺼번에 만들어내려는 욕심을 버리면 훨씬 정교한 리듬을 구사해낼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음악 연주의 매력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연주와 말하기와 글쓰기가 결국 하나에서 출발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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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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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지식은 내가 책의 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하여 도움을 주는 지식을 말한다. 배경지식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가 우리가 글을 읽기 시작하면 그 글을 잘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 순간 튀어나온다. 지금 내가 말하는 책은 소설책 뿐만이 아니라 어떤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는 글, 그리고 특정한 주제에 대한 연구 자료 등도 포괄한다. 즉 모든 종류의 글이다.

  글은 글이 보여주는 상황을 100% 묘사하지 못한다. 영화가 스크린에 투사하는 활동사진과 음향이 어떤 한 상황을 100% 묘사한다 가정했을 때 글은 묘사가 필요한 100개(난 이것을 묘사 단위라고 부르겠다) 중 가장 중요한 50개만 묘사해줄 뿐이다. 혹은 100개를 모두 묘사하긴 하지만 독자가 스스로 상상을 통해 더 묘사해야 할 여지를 남긴다.
우리가 글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이 묘사하지 않은 50개까지도 상상해낼 줄 알아야 하고, 그것(상상)을 위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작가는 100개의 묘사 단위가 모두 존재하는 상황에서 50개만 뽑아 글에 표현해낸다. 우리는 그 50개를 상상의 시발점으로 삼고 나머지 50개도 상상해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100개 중 50개를 뽑는 일에 주의를 다하고, 우리는 50개에서 작가가 느꼈던 100개를 도출해 내는 것에 주목한다. 따라서 서로 역할이 정반대이다.

 
나에게 있어서 상상은 곧 영화의 장면을 내 머리에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쉽게 전달해준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영화 장면 생성은 곧 완벽한 글의 이해와 같은 말이다.  

  상상은 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주어, 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등이 글 속에서 어떤 장면을 생성하는 재료로 작용하는 지 명확히 알고 그 단어들을 바탕으로 상상을 하는 것이다. 여러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문장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내가 생성하는 장면이 뒤엉키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상상을 할 대상은
첫째 눈에 보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
둘째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
셋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것,
넷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이다.

시각적인 묘사 단위 외에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의 묘사 단위는 위의 네 가지 상상의 대상에 상황에 따라 해당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첫째 눈에 보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소설에서 말하자면 인물들의 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고, 의견을 피력하는 칼럼에서 말하자면 현 상황 속에 들어있는 모든 물건이다. 글에서 추상명사 외의 명사의 역할은 눈에 보이고 가만히 있는 것을 독자들에게 이해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형용사가 덧붙어서 명사에 의미를 추가한다. 추상명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

  I got dressed. 라고 누가 말했다면 그 사람이 입은 옷의 모습까지도 상상해낼 줄 알아야 한다. 그 옷이 하늘거리는 연두색 드레스여야 그 상황에 어울린다면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에게 연두색 드레스를 입히고 영화 장면에 집어넣어야 한다. 정말 연두색 드레스인지는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지만, 드레스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조적으로 추가되는 '묘사 단위'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연두색 드레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사진을 통해서도 혹은 실제로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을 상상해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평소에 많은 시각 자료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은 아무리 묘사가 정확하고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글 자체는 수천 수만 개의 단어들이 '독자'와  '이해의 대상'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는 종이에 불과하다.

  둘째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은 소설에서 말하자면 인물들의 행동과 움직이는 사물의 모습 등이다. 특히 대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에서 누가 따옴표 속의 말을 하고 있는지,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상상해 내는 것은 중요하다. 글에서 동사의 역할은 우리가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사가 덧붙어서 동사에 의미를 추가한다.

 내가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하나의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을 때 나는 다른 것들에 대한 상상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장면 안에 2개 이상의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이들을 한꺼번에 같이 떠올리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씩 상상해서 장면 안에 채워넣되 2개 이상의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러 가지 묘사 단위들이 동시에 묘사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긴다.

  셋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소설에서 말하자면 추상명사와 추상형용사를 기반으로 묘사해주는 것들이다.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도 셋째 묘사 단위와 관련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다고, 추상적이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이해가 힘들다고는 말할 수 없다. 추상적인 것들이 글에 등장한다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결국 그것들을 어떤 모습으로 가시화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가장 단순한 예로 surprise라는 명사이다. 혹은 He was surprised with joy. 와 같은 경우다. 그가 희열을 느끼며 놀랐다면 그의 제스처는 어떨까, 그의 표정은 어떨까 등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상상은 글에 있는 50개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는 글에서 대부분의 경우 셋째 묘사 단위는 어떤 큰 범위의 상황을 상징하고 있는 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격세력이 맥아더의 동상을 쓰러뜨리려 했고, 미군 평택기지를 반대하는 시위대는 국군을 구타했다. 이 사건 뒤에는 북한의 촉수가 있었을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 촉수가 바로 셋째 묘사 단위이다. 촉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우리가 상상해야 하고, 한 편의 짧은 글은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촉수가 상징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상상할 수 있는지는 우리의 배경지식에 달려있다.

  넷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이다. 추상적인 논리의 전개, 상황의 선후 관계, 심리 상태의 변화와 같은 것들이다. 소설에서는 심리 묘사에서 넷째 묘사 단위를 건드린다. '난 너를 저주한다.' 라는 문장이 글 속에 들어있을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저주한다니 어떻게 저주하지?' 그리고 그때 저주의 주체가 이전에 경험했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쉽게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다. 소설에서는 넷째 묘사 단위에 대한 이해가 쉬운 편인데, 문제는 이 '넷째 묘사 단위'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에 너무나도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의 오피니언, 사설, 칼럼 영역은 집중해서 읽어야 하고, 많이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추상적인 논리의 전개에 많이 쓰인다. 한 예로 주장이 깨졌다. 와 같은 말에서 '깨졌다'는 단순히 접시가 깨지는 것과는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에서 쓰이는 동사는 단순히 사물이 주어가 되었을 때의 의미와는 다르게 추상적인 개념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다. '남한이 체제와 동맹의 끈을 풀다.' '북한이 민노당이란 진보정당을 겨냥한다.' '당이 당 속의 적색 기운을 씻어낸다.' 와 같은 예문에서 '풀다', '겨냥한다', '씻어낸다' 등은 운동을 하다가 신발끈이 풀려졌을 때의 '풀다'와 오늘 잡아먹을 꿩을 '겨냥한다' 와 손에 묻은 케찹을 '씻어낸다' 등과 같은 쉽게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묘사 단위와는 다른 것이다.

  결국 자신의 상상력이 글의 이해력을 좌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Power라고 나는 규정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경험론을 믿는 사람이다. 경험론이라는 말이 나의 생각을 100% 포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나는 미리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하는 경험이 있어야 책과 글을 읽을 때에도 이해가 잘 된다고 믿는다. '생생'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풍부한 '상상'의 날개를 펴간다면 글을 읽을 때마다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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