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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3 공군교육사령부 정보통신학교를 추억하며 6
공군 병 특기학교중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그곳 정보통신학교!! 
2009년 5월 15일부터 6월 16일까지 난 그곳에서 살았다.


 영국의 조용한 교외를 연상하게 하는 진주의 흐리고 쌀쌀한 기후와,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평지, 그리고 진록색의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의 각진 행렬, 군부대가 갖는 음침하고도 장엄한 풍경의 분위기.

 그 고요한 땅 한 구석에 사립 기숙사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벽돌의 2층 건물과 걸어서 5분 거리의 아담한 4층짜리 교육장 두세 동 그리고 언덕을 올라가야만 보이는 단층의 조촐한 식당.

 ㅁ(미음)자로 마치 정원과도 같은 평온한 잔디밭을 에워싸고 있는 건물 그리고 친근하며 소박한 느낌을 선사해주는 하얀 색의 울타리, 정원 가운데 있는 나무 한 그루와 그림같은 벤치, 자갈밭과 천막이 쳐진 구석의 흡연장과 생활관 옆의 잡동사니 기구들을 보관해놓은 창고. 생활관을 삼면에서 안아주고 있는 산과 숲의 울창함 그리고 그 사이로 청아하게 들려오는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낯선 새소리, 그리고 정문에서 길고 곧게 뻗은 이차선 도로.

 생활관 안의 200명의 젊은 청년들과 그 비슷한 또래의 4명의 훈육조교 그리고 사감선생님같은 간부들과 편한 옷차림 속에 계급과 권위를 숨긴 대대장. 100명의 선임과 100명의 후임이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며 질서 있게 조직을 갖추어 살아가는 모습.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내무실과 낮은 천장, 아침의 안개와 찬 공기를 생생히 들이마실 수 있는 낮고 큰 창문, 실내에 갇혀있는 느낌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안락함을 만끽하게 해주는 실외 계단, 유일하게 바깥 세상과 통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더욱 소중했던 8대의 하얀색 공중전화기와 학생들의 젊은 감성에 맞추어주는 아량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랑의 감동폰'(문자메시지)서비스. 80바이트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공책 찢은 종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세심한 글귀를 못생긴 손글씨로 적어나갔더랬다.

 동기들을 위해주는 착한 마음으로 자진해서 일하는 근무자들, 우리가 '대대'라고 불렀던 3명의 친구들은 정말 다른 97명의 사람들과 사회에 있을 때의 가면과 명찰을 다 떼어버리고 동기로서, 똑같은 순수한 사람으로서 친하게 지냈다.

 선임 기수는 후임 기수 앞에서 모범을 보이자 다짐하고, 후임 기수는 선임 기수 앞에서 부끄럽지 않자는 결의를 하루에 세 번씩은 꼭 했더랬다.

 아침에 안개를 마시며 혹은 햇살을 쬐며 기상할 때 이곳 정보통신학교는 절대 사람들에게 불쾌한 긴장감이나 강요를 유발하지 않았다. 갓 훈련단을 마친 우리의 먹을거리라고는 훈련단 때 먹고 남은 레모나, 레모비타, 생강차가 전부였지. 심지어 단 한번 뿐인 공동구매 때도 구입이 가능한 건 이것들 뿐이었으니까. 과자는 종봉(종교봉사) 가서 배터지게 열심히 먹었던 오예스<초코파이<가나파이<몽쉘, 써니텐, 짱구 정도가 전부. BX는 꿈도 못 꾸었지. 수료차 때 각 과정별 대표자 1명이 가서 더플백에 과자를 넣어온 게 전부여서 아쉬웠어. 간혹 내 친구들 중에는 종교타운에 가서 과자를 전투복 안에 갑옷처럼 두르고 온 친구들도 있었어. 그들은 친구들을 먹여살리는 영웅이었고 따라서 존경의 대상이었지.

 난 프로젝트팀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지만 안 시켜주더군. 학과 빼먹고 가점 받고 중위, 대위 분들과 같이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게 너무나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해서 난 대신 정보통신학교 홍보동영상을 UCC로 만들게 되었지. 훈육중대장님께서 우리 UCC팀에게 과자를 꽤나 많이 주셨는데, 수료차 때 먹기로 약속한 족발은 결국 허사였어. 그대신 진주에서 파는 동네피자 한판은 먹어봤지. 특기학교 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맛있는 치킨집과 피자집의 스티커가 내무실 안에 잘 찾아보면 붙어 있었어. 하루 있는 병사의 날 때는 위닝 대회, 족구, 농구, 축구, 계주, 영화, 그리고 저녁에 자습용 책상을 가운데에 모으고 먹었던 치킨과 피자가 기억나.

 공대같은 분위기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친근하고 희극적인 공간. 이곳의 그런 분위기를 강화시켜주었던 건 바로 TS(Tape Show)라는 저녁음악방송 DJ 프로그램이었어. 난 이게 너무 좋았는데...


  이제 우리 부대 안에서도 어느 정도 짬이 차고 조금은 편해졌지만 그래도 아직 이곳이 눈치를 보며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가야 하는 준(準)사회임은 분명해. 그때마다 나는 가난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시절의 유토피아였던 그곳을 떠올리곤 하지. 한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때처럼 고요함 속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마치 수도원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기회는 더이상 내게는 오지 않을테니까.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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