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의 노래방, 별실, 요정을 보면 관계가 있는 사람들끼리 폐쇄적으로 만나는 숨기는 문화가 보인다. 영미권은 반대로 넓은 풀밭의 야외 좌석, 바닷가에서 즐기는 파티, 선상 회합, 동네 앞 펍과 같이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서로를 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콩고는 어떤가? 콩고는 동아시아 3국과 같이 겉으로는 좋은 것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레스토랑과 바를 숨기고 있다.

 겉보기에는 매우 허름하고 투박해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금으로 장식한 벽면, 외국의 멋진 장소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장식, 30년이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큼지막한 가구, 주인의 생활과 세월이 녹아있는 옷과 식기구가 가득하다. 간판도 어두운 밤에는 잘 안 보여서 찾기가 힘들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서라기보다는 프랑스어권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곳의 간판은 형광등이 안에 들어간 한국식 네모 간판도 네온싸인도 아닌 나무 위에 페인트로 글씨를 쓴 간판이 대부분이다. 조명이 있어도 백열등이나 할로겐등 몇 개를 옆에 달아놓을 뿐이다.

 벽은 또 어찌나 높은지 기본으로 3m를 넘는다. 그 위에는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망, 전기선, 깨진 유리병 조각 등을 잔뜩 심어놓았다. 한 공간과 그와 이웃한 공간 사이에는 신용을 찾아볼 수 없다. 신용은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뿐 그 신용이 물질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도둑질에 관대한 문화는 그 반작용으로 도둑질이 쉽지 않은 물질적 환경을 만들었다. 대신 벽의 바깥쪽은 모든 것이 소멸하는 폐허의 공간이지만, 그만큼 벽의 안쪽은 모든 것이 축적되는 공간이다.

 군부대같은 벽과 허름한 간판만 보면 가지는 선입견을 깨야만 킨샤사 구석구석의 좋은 곳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양철로 만든 커다란 문을 열고 보석상자를 열고 들어가면 당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세간에 떠벌리지 않았던 레스토랑과 바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안에 들어앉은 사람들은 안에 화려한 보석이 충분히 있으니 보석상자는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혹은 화려한 보석을 누구에게나 쉽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혹은 화를 면하기 위해 일부러 겉을 후줄근하게 방치해둔다.

 일본어에 ギャップ萌え(갭 모에)라는 말이 있다. 저 사람은 남성적일 것 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여성적인 면이 있다거나, 저 사람은 평소에는 투박해 보이는데 데이트를 할 때는 의외로 앞서가는 패션을 보여준다거나 할 때 겉모습의 선입견을 가끔씩 깨주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때 갭 모에가 있다고 말한다. 킨샤사라는 도시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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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에 대한 콩고인들의 인식은 아직도 좋다. 보두앙 1세와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배는 가혹했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서양식 식사예절, 주거 형태, 의복, 파티 문화 등은 아직도 건재하고 콩고 상류사회의 코드로 남아있다. 독립 이후 잔류한 벨기에인들의 조차지였던 UTEXAFRICA는 지금까지 주로 백인인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단지로 남아있다.


 EUSEC은 MONUSCO의 보조기관으로서 북동부 KIVU 지역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EU 수도가 브뤼셀인 만큼 벨기에의 영향이 큰 정부기관이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가족 중에는 벨기에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벨기에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사람들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관대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20세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차원으로 정부가 제도로 정착시켰다. 브뤼셀 안에는 마통게(Matonge)라는 콩고인 밀집지역이 있으며 도심에 위치해 있어 도쿄의 신오쿠보를 연상케 한다. 킨샤사 안에도 마통게 라는 quartier(한국의 洞) 가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자이르가 되기 전까지, 즉 벨기에령 콩고로 남아있을 때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최대 2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원래 쓰던 링갈라어와 스와힐리어를 쓰면서도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를 건너뛰고 네덜란드어를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안트베르펜(앙베르, Antwerp)은 전통적인 다이아몬드 유통의 중심지이다. 여기서 유통되는 다이아몬드가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와 남동부 그리고 다른 서아프리카 국가들(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시에라리온을 포함) 에서 채굴되는 것들이다.


 땡땡(틴틴, Tintin) 만화 중에 Tintin au Congo 편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벨기에가 콩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Monsieur를 Messie라고 말하고, 프랑스어 맞춤법이 틀린 미개한 흑인이 사는 곳에 백인이 자연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도착하고, 그 백인은 고장난 증기기관차를 고쳐주고 엽총의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그에 따라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된다. 흑인이 국가 건설의 주체가 되어 독립을 이룩하기 전에 나온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스토리다. 그런데 독립 후에도 콩고민주공화국은 독립 이전의 캐릭터를 수용하고 복제하고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 나무 조각품을 판매함으로써 벨기에에 대한 호의를 전파한다. 분명 일제강점기에도 만화가 있었을 것이고 경성에 여행을 하며 황국신민들의 존경을 받는 일본인 캐릭터가 있을 것인데, 독립한 대한민국은 그러한 캐릭터를 철저히 무시하고 은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대한민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의 태도는 여기서 갈린다.


 하지만 콩고 사람들이 비판을 제기하는 벨기에의 유산이 있다. 벨기에 식민 지배자들은 광신적인 기독교 교회가 번창하는 것을 방치하였다. 기독교를 들여온 사람은 벨기에인이고, 흑인 유대교(Lasalien 이라고 하는 흑인들이 유지해 온 종교)와 차별화되는 기독교는 벨기에의 식민지배 수단이었다. 전통 신앙인 주술을 미개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를 비판하는 종교로서 기독교를 정착시켰는데 기독교 교회의 콩고인 목사가 과도한 헌금을 걷고 국민들의 일요일 생활을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바치게 하여도 벨기에는 이를 비판하고 교정하지 않았다.


 결국 벨기에는 병 주고 약 준, 콩고민주공화국을 유럽과 연결시키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킨샤사에는 땡땡 나무 조각품으로 장식한 많은 레스토랑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VILLA TRICANA로, 포르투갈과 콩고 요리를 파는 곳인데 레스토랑 제일 안쪽에 야외 바와 연못이 있다. 직선으로 쭉쭉 뻗는 조명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탁 트인 수영장이 아니라 은은한 백열등을 간접조명으로 비춰주는 사방의 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연못. 이곳의 종업원들은 대사관 직원들을 주된 고객으로 받아서 그런지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고 유럽과 동아시아 선진국의 소식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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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 전에 이곳 킨샤사의 은질리 국제공항에 신청사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한번 가 보았습니다.



자동차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널찍한 주차장은 심지어 무료입니다. 신생 공항이라 한국처럼 복잡한 입장 절차가 없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기기는 터키산이었습니다.



다양한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인근 아프리카 국가가 아무래도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는 중국인과 유럽인이 많습니다. 건설 사업을 하러 중국 정부가 군인들을 이곳으로 보낸다는 말도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입국하는 중국 군인을 보니 응? 시외버스터미널인가? 하는 착각을 잠깐 했네요)



말끔히 단장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입니다. $20~30 이면 시내까지 데려다줍니다.



은질리 국제공항 신청사는 왼쪽이 도착 칸, 오른쪽이 출발 칸입니다. (정말 2000년대 후반에 리모델링한 한국 시외버스터미널처럼 생겼습니다.) 두 칸 사이에는 위와 같이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카페에는 가격을 써놓은 간판이 없습니다. 대합실에 아직 벤치가 없어서 카페에 앉기 위해 주문을 했습니다. 가격을 처음에 물어보지 않은 저도 어리석었지만 우선 주문하고 나서 자리에 앉은 다음 커피와 와플을 받고 다 먹은 다음 종업원이 돈을 받으러 왔는데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네스카페 1잔이 한국 돈으로 3000원, 와플 1개가 4500원이었습니다. 놀이공원에서 먹는 셈 치고 돈을 낸 다음 자리값은 보전하자 생각하여 몇시간 더 앉아있었습니다.



문제의 커피.. ㅋㅋ



중국이 인테리어를 해주었는지 대나무 장식이 있습니다.



도착 안내판을 보시면 알겠지만 모든 항공편의 도착 시각은 특정 요일에 대해 정해져 있고, 하루에 도착하는 비행기 대수가 20대를 넘지 않습니다. 정말 작은 공항이죠?



하지만 저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고 인테리어는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처럼 해놓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벤치는 계속 증설해야겠네요.



국적기 항공사인 Congo Airways의 사무실을 출발 칸에 많이 만들어놓았습니다. 아직 사무실이 텅 비어 있습니다.




여기가 신청사에서 구청사로 이동하는 통로입니다. 신청사에서 구청사로 가는 인도는 통행이 가능하나, 구청사에서 신청사로는 통행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이민국 직원이 통제를 합니다.



여기가 구청사 출발 터미널입니다.




구청사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3개 더 있습니다.





구청사에는 대신 출발 라운지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1실, 일반인을 대상으로 1실 있습니다. 일반인 출발 라운지는 1인당 $35를 내면 쓸 수 있습니다.




코이카에서 수돗물 필터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구청사에는 기업들이 들어와서 매장을 열었는데 아직 신청사에는 없는 상황입니다.



비행기가 멈추고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그리고 40분 정도 지나면 도착 게이트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도착한 뒤의 짐 검색대가 신청사에는 4대밖에 없어서 만약 같은 시간대(2시간 간격)에 3-4대 비행기가 함께 도착하면 짐을 찾는 데 1시간 반까지 걸릴 수 있다 합니다. 구청사에 9대가 있는 것에 비해 불편해진 것입니다. 시설은 현대화되었지만 시간은 오래 걸리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깔끔한 시설로 새단장했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아서 승객을 대상으로 하는 편의시설과 서비스 정신이 점점 더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세수가 없는 이 나라의 특성상 지금은 일종의 업적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기간이라 주차장 입장료가 무료지만 나중에는 다시 입장료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내로 오는 길은 이렇게 잘 뚫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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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굉장히 좋아서 밖에 안 나갈 수가 없네요!

조금 덥기는 하지만..


구글에는 햇살이 쨍쨍한 날씨의 킨샤사 사진이 정말 적어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직접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자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보노보 공원(LOLA YA BONOBO)도 가고 YACHT DE KINSHASA라는 모터보트를 타고 가는 강변 백사장 섬도 갔습니다.

그 사진들은 나중에 천천히 올리도록 할게요.


오늘은 직장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태원 해밀턴호텔같은 분위기의 레스토랑,

이름은 라 삐씬 (La Piscine)입니다.



소고기 수블라끼(Souvlaki, 그리스식 꼬치구이)와 까삐땐(Capitaine, 대구 비슷한 맛이 납니다) 후추 튀김과 응꼬이(Nkoyi, 링갈라어로 표범) 맥주입니다.



여기는 수영장과 바가 함께 있어서 분위기가 끝내줍니다. 언제 한번 단체로 토요일 저녁을 전세 내서 파티를 하고 싶은 곳이에요.


외국인들이 많이 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은 현지인도 가족이나 연인끼리 자주 옵니다.


킨샤사에 오기 전에 이태원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분명 아프리카에도 이태원 같은 곳이 있을거라 했는데 비슷한 분위기의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제 밥을 먹고 본방송에 들어갑니다.


6월 30일 대로를 아래로 타고 내려오다가 좌회전을 하면 Av. Kalume Mwana라는 작은 길이 있고, 그곳에는 유화와 나무, 구리, 상아, 말라키트 장식품을 파는 시장이 있습니다.


시장의 이름은 아직 몰라요. 나중에 물어봐야지



이렇게 풍경화, 인물화, 추상화, 사회 풍자 캐리커쳐 등 다양한 주제의 유화를 팝니다. 가격은 싼 건 40달러, 비싼 건 200달러까지도 합니다.


저는 풍경화보다는 한 명만 분명하게 그려진 인물화가 좋으네요. 다음달 정도에 하나 구입할 예정입니다.



시장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자, 이제 무얼 파는지 알아볼까요?


나무로 만든 동물 장식입니다. 기린, 코뿔소, 코끼리, 보노보, 오카피(사슴 비슷한 아프리카 동물), 얼룩말, 학 등이 있습니다. 새까만 것들은 목단이라고 해서 까맣게 압축되어 빈틈 없이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입니다. 목단은 작은 것이 10달러, 볼링공만한 건 30~50달러, 바닥에 놓는 큰 것은 100~200달러까지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손님들이 꽤 보였습니다. 이곳의 흥정은 엄청나지요. 마마! 아미! 심지어 빠트롱!(사장님) 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격은 손님이 먼저 얼마냐고 물어보면 터무니없이 높게 부릅니다. 그러면 저희는 그 가격의 1/4로 부르죠. 그러면 다들 어이없다는 듯이 '아~ 너무하네' 하고 말합니다. 그 모습에 속지 말고 꿋꿋하게 가격을 고수하면 점점 가격을 낮추어 부릅니다. 그리고 '도네 모아 피니 피니 피니' (마지막 가격을 불러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그 억양으로 상인 누구나 똑같이 말하니까 재미있어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광물입니다.



이게 말라키트(공작석) 장식품입니다. 목걸이, 팔찌, 보석상자, 재떨이, 펜꽂이 등등이 있어요.




구리로 만든 동물 장식입니다.



가면 장식, 나무 상자도 있고요.



저 횃불은 콩고민주공화국 이전의 국가인 자이르의 국기 안에 있는 횃불입니다. 






다른 외국인 일행도 쇼핑하러 왔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탐내는 구리 지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 좋아하는 (자아를 이입하기도 하는) 땡땡 나무 장식이 많이 보입니다.





결국 하나 사서 집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자동차를 타는 땡땡.. 저도 매주 일요일은 항상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닙니다.


장식품 시장은 이곳 말고도 야외 레스토랑의 주차장 입구 몇 군데, 킨샤사 대학교 옆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응갈리에마 꼬뮌의 언덕길 옆에도 많이 있지요.


킨샤사의 도시 속 건물과 도로 풍경은 솔직히 예쁘지 않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이렇게 예술품들을 펼쳐놓은 곳에 가면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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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 일본인 친구 2명을 만났다. 한명은 내가 대학교에서 한중일 교류 포럼을 할 때 알게 된 게이오대 친구와 같이 학원 과외를 하면서 친해진 아이고, 다른 한명은 그 아이의 대학교 후배였다. 아프리카 땅에서 외국인을 인연을 가지고 만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 것 같다. 친구의 친구로서 만나는 것과 예전에 알던 친구로서 만나는 것은 쉽지만 이곳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대뜸 만나서 놀거나 사업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렵다.


  어제 만난 친구와는 라인으로 조금씩 이야기를 하다가 한번 전화를 하고 만났다.


  저녁 7시에 오 뽀에따라는 피자 레스토랑에서 보기로 했다. 오 뽀에따는 화덕 피자와 포르투갈식 고기 요리를 주 메뉴로 하고, 안에 홀 형태의 건물과 수영장 옆의 야외 테이블 형태의 공간이 나뉘어 있다. 곰베(한국으로 치면 광화문+강남역 주변) 지역에 피자 배달도 하는데 이를 위해서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오 뽀에따 2호점을 만들어놓았다. 


 처음에는 빠리바게뜨 까페같은 빵집인 빠따슈(레바논 사람이 운영하는)에 가자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녁을 위한 곳은 아니라서 주위의 추천을 받고 장소를 바꾸었다. 나는 이곳에 온 뒤로 레스토랑에 잘 가지 않아서 위치를 잘 몰라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6시에 리메떼 공단 15번가를 나와 루뭄바 대로를 시원하게 달리면 좋을텐데 퇴근 시간이라 차가 엄청 막혔다. 경찰은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잘 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 컨테이너 트럭이 무지막지하게 좌회전을 해대는 바람에 교차로가 꼬여 옆길의 차들을 정리하러 갔다. 그래서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는 좌회전 차량과 직진 차량이 얽혀 그 교차로에서만 10분이 지체되었다. 


 처음 보는 건데 늦으면 안 되겠다 생각하여 교차로를 빠져나간 뒤 차가 하나도 없는 대로를 시속 110km로 달렸다. 내 차가 제일 앞에 있어서 시원하게 달렸다. 87.9MHz의 콩고 음악방송을 들으며, 서쪽의 커다란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곰베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마트가 있어서 계속 찾아다니던 탁상용 램프가 있는지 보았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골동품 느낌의 램프를 찾아서 바로 샀다.


 7시가 되기 전에 오 뽀에따에 가기 위해 구글 지도의 GPS를 켜보았다. 와이파이나 3G가 없어도 킨샤사에서 GPS가 잘 되었다. 킨샤사 지도는 내가 지리를 익히기 위해 틈날 때마다 지도 앱을 켜서 보았기 때문에 모두 오프라인으로 저장되어 있었고, 그래서 문제없이 잘 쓸 수 있었다. 내가 오 뽀에따에 도착해서 직원에게 혹시 아시아 사람 2명 안 왔냐고 물어보니까 안 왔다고 했다. 낌새가 이상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까 내가 온 데는 곰베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배달 위주의 2호점이고 1호점은 다른 데라 했다. 그래서 급히 차를 돌려 1호점 근처의 마트에 가서 만났다. 그 마트가 있는 교차로를 지나면 집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만난 뒤 길을 안내받기로 했다.


 시간을 잘 맞추어 잘 만났다. 내가 2명을 태워주고 오 뽀에따 1호점으로 갔다. 금요일이라 차가 많아서 주변 건물의 빈 주차장 근처에 차를 대야 했다. 그때 이 친구 H군이 링갈라어로 경찰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프랑스어만 하고 링갈라어는 못 하는데 이 친구는 반대였다. 링갈라어를 하는 일본인,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선진국 그룹에서 웅크리고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현지를 적극 포용하려는 모습, 나도 추구하는 그 모습이었다.


 수영장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H군은 게이오대 환경과학과 4학년을 마치고 미쓰비시상사 본사에 4월부터 일할 예정이다. 킨샤사 거주 경험은 다 합쳐서 2년. 대학교 생활 중 2012년에 킨샤사로 가서 스스로 프리즈비 스포츠 육성을 위해 NGO를 만들어서 현지인과 연락하고 킨샤사, 바콩고, 반둔두 3개 도시에 거점을 두어 프리즈비 국가대표 만들기에 힘썼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도 이러한 스포츠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을 해주었고, 국제대회의 실적에 따라 지원 자금의 수준을 차등 지급한다고 한다. 3개 도시를 오가며 정부 공무원을 만나며 스폰서를 얻기 위해 미팅을 하며 주된 활동을 하고, 부수적으로는 ISC GOMBE 대학교의 일본어 섹션(과보다 작은 단위)에서 과외를 했다. 링갈라어는 이때 배웠고, 일본에 돌아와서 2014년 봄에 취업 활동을 할 때 미쓰비시상사 면접에서 링갈라어로 자기소개를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이자 H군의 과 후배인 Y군은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도쿄 내 소바 체인점의 경영직을 물려받아 졸업 후 외식경영을 할 예정이다. 그와 관련하여 2달 간 소바를 만들기 위한 메밀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재배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Y군은 게이오대 여자 교수님의 세미나 차 왔는데, 이곳 ISC GOMBE의 교수가 게이오대에서도 교수직을 수행한 경험이 인연이 되어 교수님이 학생들을 이끌고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함께 왔다. 게이오와 JAICA 간의 협력 프로그램도 있어서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도 만나면서 지내고 있다. 병원에서 명함을 주고 자기소개를 한 Y군은 그 의사의 남편이 일하는 회사로부터 스폰서를 받고 있다. 

 

 이러한 20대 젊은이들, 내 또래의 해외 체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유대감을 느꼈다. 하는 일의 종류는 다르지만 어쨌든 각자의 고국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신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토요일인 오늘부터 이 친구들은 JAICA의 차를 타고 다른 일본인 친구들과 8명이서 바콩고 지역의 종고 (ZONGO) 로 1박2일 여행을 간다. 나도 처음 듣는 곳이라 구글로 찾아봤는데 멋진 폭포와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멋진 숲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검색결과) 파리에 있을 때 내가 파리의 골목 구석구석과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데 주력하여 프랑스의 전원적인 마을이나 중세 성 같은 곳에는 안 가본 것처럼, 이곳 킨샤사에서도 킨샤사 도시 안의 보물들을 찾는 데 매진하자 다짐했는데 그 다짐에 고집을 부릴 필요도 없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가루이자와 (軽井沢) 같은 곳이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4시간이나 걸리지만 이들에게는 가평 청평 같은 곳이다. 나도 나중에 꼭 가야지, 한국 사람들 모아서. 아니면 양국 혼합으로 가도 좋을까?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 2차는 곰베 6월 30일 대로변에 있는 5층 건물 옥상의 바에 가서 야외 좌석에 앉았다. 이름은 스카이라운지 킨샤사. 내가 레스토랑, 바, 클럽 정보 사이트인 voila.cd 에서 처음으로 발견해서 나중에 가보자 생각했던 곳인데 드디어 왔다. 가니까 크기는 아담한데 옥상에 소파가 있고 옆에 바가 있고 그 위에 2층으로 올려놓은 곳에 실내 좌석이 있어서 내 취향에 잘 맞았다. 이 바를 운영하는 남자는 벨기에 사람인 것 같았고, 웨이터인 벨기에 여자분이 우리들에게 아시아 사람들은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매주 토요일에 여기서 노래방을 하니까 놀러오라고 했다.


 잘 되던 트위터가 다시 안 돼서 어제의 즐거운 기억을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글로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다시 썼다. 앞으로는 블로그에 글을 써서 트위터로 자동 발행되도록 해서 트위터 팔로워들이 내 글을 볼 수 있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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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rospérité 2015년 1월 14일

 

  우편, 전신 및 정보통신 신기술부 차관이 어제 2015년 1월 13일 화요일 열린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들과의 연례 회담의 끝을 맺었다. 회장은 킨샤사 곰베의 플뢰브 콩고 호텔이었다. 어제부터의 날선 의견 교환 동안 또마 루하까는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들의 다른 의견에 대해, 그중에서 유심 박스와 광섬유의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 확신에 가득 찬 자세로 차관은 관계자들에게 수익 향상을 위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솔직한 협력을 약속했다.


  우편, 전신 및 정보통신 신기술부 차관 또마 뤼하까(Thomas Luhaka)에게는 주초부터 힘든 일정이었다. 2015년 1월 12일의 정보통신 및 인터넷 기업 사장들과의 만남 이후, 어제 차관은 회담을 종료시켰다. 회담의 결과로 차관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하여금 정보통신 신기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법과 인프라를 20세기 기술에서 21세기 기술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사회적이고 유도되고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이 업계의 역동성에 기인한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일자리와 헬스케어 및 교육에 특화한 운영 업체와 이용자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장기적인 성장을 지탱할 대중 이용자의 보고(寶庫)를 위한 정보통신업계의 직접적 효과를 고려한 재정 운영의 성과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전화 업체

 이 외에도, 전화 업계의 운영자들(보다꼼, 띠고, 오랑쥬, 에어뗄 및 아프리쎌)과 함께 의제에서는 최저가격 설정의 자유, 국제 유입 트래픽에 대한 세금, 유심 박스와 광섬유에 대한 사기 행위, 정부 서비스의 사적 네트워크 연결 문제, 4세대 이동통신에 관련된 규제 형태 및 관련 서류 등의 6개 항목이 논의되었다. 최저가격 설정에 대해서 사업자들은 만장일치로 결정된 가격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자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아질리스 텔레콤 국제 컨소시움'에 유입 트래픽의 관리를 위임했는데도 불구하고 사기가 계속되었다. 트래픽 사기를 처벌하기 위해 사업자들이 시너지를 꾀하는 이유다. 또한 사업자들은 해결책으로 일원화된 요금 징수체계와 요금 상한제의 도압을 제안했다. 아직 논의중이지만 정보통신업계를 대상으로 개정되어 적용된 법이 있는 만큼, 우편, 전신 및 정보통신 신기술 업계 사장들은 새로운 법이 기술적 진화에 적응하게 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요소의 기여를 제안했다.

 한편 사업자들은 3세대 이동통신의 실적이 양호하다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 훨씬 더 많은 기술적 요구사항이 있는 4세대 이동통신으로 이행할 필요가 없다. 바-콩고의 무안다에서 2012년 운영을 시작한 광섬유 접속점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점검을 위한 네트워크 감사를 요구하였다. 왜냐하면 서비스의 낮은 품질로 인해 비상 연결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중한 자세로 사업자들은 프라이버시와 국가안전이 확정된 법 및 규제를 따라 존중되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적합한 해결책의 필요성

  광섬유와 유심 박스 외에도, 인터넷 접속 위원회와의 회담은 비밀 사업자, 컨버전스, 승인, 단말기 및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에 대해 이루어졌다. 평온한 분위기로, 차관은 적합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솔직한 협력을 약속하였다.

  그 외에도, 삼성, 화웨이, ZTE, CITCC, 에릭슨 등의 장비 운영자들과 함께 그들은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규칙에 따라 이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인터넷 품질과 대중 시장 형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그들은 삼성이 겪고 있는 비열한 경쟁을 검토하여 이 문제에 대해 통제하기로 하였다. 회의의 마지막 스퍼트로 사업자들은 인터넷 품질의 위조와 인구조사 및 장비 승인을 요구하는 인터넷 품질 개선의 문제에 대해 상세히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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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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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준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전 주베트남 대사관 참사관의 주간조선 인터뷰를 읽고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배워 적용할 점을 발견하여 인용해 적어본다.


"베트남 정부는 처음엔 학교 건립 사업을 반대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거였죠. 우리의 입장을 까놓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피해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는 마을을 중심으로 학교를 건립한다고 결정했지만 정작 그 대상이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보도된 양민학살 마을도 당장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분명하지도 않았죠."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는 마을을 방문할 일도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가 막막했다. 베트남 정부나 한국 정부 어디에서도 관련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고 찾아낼 수도 없었다. 절망이 극에 다다를 때쯤 길이 열렸다. 베트남에 거주하던 한국 유학생의 제보와 자료 제공이 결정적이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군사 및 양민 피해상황에 대한 보고자료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 자료이니 참고만 하고 바로 폐기하라고 그에게 요구했다.


 한국 유학생처럼 나도 콩고민주공화국의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발간된 자료를 수집하고 한국의 정부 관계자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는 정부를 도와줌과 동시에 현지에 발을 딛고 있는 나를 위한 공부이고 아프리카 전문가로 한 단계 올라서게 해주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한달 넘게 밤샘 작업을 해가며 자료를 번역하고 분석했다. 예상대로 베트남 중부지역에 피해 마을이 집중돼 있었다. 해당 지역은 한국 교민도 전혀 없는 미지의 땅이자 금단의 땅이었다. 대체로 차량 출입도 힘든 산골 오지마을이었다.

 "사업단을 이끌고 마을에 들어서면 긴장을 안 할 수 없죠. 때로는 멱살을 잡히기도 했고 때로는 방문을 중단하고 도망치듯 나온 경우도 있었죠. 베트남 정부 공무원들과 요원들의 경호를 받긴 했지만 늘 불안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방문단을 에워싸고 따라다니던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었습니다. 경계의 눈빛 정도가 아니라 살기가 도는 정도였죠. 그래도 자꾸 다가가니 조금씩 마음이 열리더군요. 어떤 마을에선 주민들과 오찬을 했는데 얘기를 나누다가 눈물의 잔을 끝없이 주고받았습니다."


 킨샤사 시내에만 있을 것이지만 그 안에서도 한국인이 살지 않는 미지의 마을이 존재할 것이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을 관찰하고 수요를 파악해야만 기업의 발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마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철저히 외부인의 자격으로 접근하다가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흰색 방호복을 뒤집어쓴 의사들에게 경계심을 갖듯 나에게도 경계심을 가질 수 있다. 같은 도시 시민으로서 만나자는 태도로 다가가면 나에게도 현지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줄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 2014년 10월 4일 황금연휴 기간에는 전국 곳곳에서 세계적인 축제, 전국 단위 축제, 지역 단위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야외에서 열렸는데, 이 아프리카 도시에서도 분명 그러한 행사가 있을 것이다. 그럼 같이 오찬도 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비교군과 통제군의 개념을 적용한다면, 나는 CIS/중동/아세안/남미 중 한 지역에 진출해 생활하는 외교관/무역관/주재원들의 경험담을 듣고 이를 아프리카 지역에 적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 기후와 언어와 문화 차이가 있을 뿐 외국인으로서 생활에 임하는 자세나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원칙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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