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창 나는 Barry Manilow의 When October Goes를 연습하고 있다. 처음에 잠깐 A로 4마디 Intro가 있고 그 다음부터 1절이 시작할 때는 E로 진행되다가 1절이 끝난 다음 Bridge가 되면 G로 바뀌는 곡이다. 조성이 많이 바뀌고 재즈 느낌이 나는 곡의 특성상 코드가 정말 다양하다.
 F#m7     B9b5 B7b9     E7sus Emaj7      Amaj7       D#m7b5 D#m7/G#         G#7b9         C#7sus      C#7 C#7b9
and when october goes the snow begins to fly. Above the smoky roofs I watch the planes go by.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그 곡의 조성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피아노를 칠 때는 내가 치는 모든 음의 '계이름'을 생각하면서 친다. 건반을 누르기 전에 내가 누를 건반의 계이름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 곡을 장악하고 완전히 이해함을 뜻한다. 어떤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든 기타로 연주하든 노래를 부르든 나의 연주에 대한 계이름을 실시간으로 떠올리지 못하면 그 곡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시작부터 끝까지 해낼 수가 없다.

When October Goes의 복잡한 A minor의 4마디 Intro를 열 번이나 반복해서 연습했지만 마지막 마디에서 나는 계속 막혔다. 오선지를 뚫어져라 보면서 하나 하나 음을 짚어보기도 하고, 마지막 마디의 코드가 무엇인지 조합을 통해 알아내기도 했지만 첫마디부터 다시 치면 꼭 마지막 마디에서 막혔다. 나는 마지막 마디를 피아노로 치기 전에 그 마디의 음들을 계이름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자동적으로 실시간으로 계이름이 입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왼손은 '시 시b 라b 시 미', 오른손은 '미 (레파시b) (레파시) (시레파#솔#)' 이었는데 이 계이름들은 내가 손으로 마지막 마디의 건반을 누르기 전에 당연히 생각이 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계이름을 실시간으로 생각해내지 못하면 막히게 된다. 조성이 A라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나는 매우 익숙한 흰건반 뿐이 없는 C 조성으로 이 마지막 마디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조성이 C로 바뀌어도 계이름은 그대로지만, C 조성으로 음을 하나 하나 조옮김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실시간으로 생각해내려고 훈련하는 그 계이름을 '생각의 과정과 동시간으로 보이고 들리는 C 조성의 건반'을 통해 배우기 때문에 훨씬 계이름의 학습 효과가 높아진다. 나는 어떤 조성의 곡을 연주하든 실제로 손가락으로 만지는 음은 그 조성의 음이지만 뇌 안에 그려진 계이름의 오선지는 언제나 C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첫번째 마디부터 마지막 마디까지 4마디를 A가 아닌 C로 실시간으로 연주해 보았다. 첫번째부터 세번째 마디까지는 계이름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A인 악보를 보고 쳐도 C로 바로 바뀌었다. 네번째 마디는 하나하나 조옮김을 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부터 앞의 마디처럼 실시간으로 연주가 되었다. 조성을 A에만 한정지어 연습했다면 이 마디에서 맨날 틀렸을 것인데, 틀을 깨고 곡에 다시 접근하니 해결책을 찾았다. C로 연습해서 실시간 연주가 가능해진 다음 나는 다시 A로 바꾸어서 연주를 했는데 역시나 끊김이 없었다.

이후의 마디들도 연습을 하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때마다 C로 바꾸어서 연주해보는 연습 방법을 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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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오고 파워블로거도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쓰고 싶어서 쓰게 되는 글이 어떤 필자의 역할을 가지고 쓰는 글인지를 알아야 한다. 글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문체를 따져보면 역할을 유추해낼 수 있다.

  사람들이 블로그를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블로그를 통해 얻으려는 목적도 다양하다. 네이버나 싸이월드 블로그에 가면 DIY, 여행, 요리, 육아, 인테리어, 패션, 미용 등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듯 여성들의 생활에 관련된 주제의 글들이 많고 이들 포스트 안에는 필자가 독자와 같은 수준의 '옆동네 OO엄마' 혹은 '교회에서 만난 언니'의 역할을 맡아 글을 써나간다. 올블로그나 블로터닷넷에 가면 IT, 자동차, 정치에 관한 남성 블로거들의 글들과 그에 따른 댓글 토론이 한창이다. 필자들은 실제로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관심을 통해 경력을 쌓은 대학생일 것이다. 한편 사람들의 방문을 그닥 신경쓰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아는 친구들의 댓글만으로도 반가워하며 블로그를 싸이월드 미니홈피처럼 사용하는 필자들도 있다. 이들은 단순히 누군가의 '친구'의 역할을 맡을 뿐이다.
 
  필자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 이웃사람: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도 해보라고 권유한다. 이 경험은 누구나 할 개연성이 있는 것들이다. 자신이 보고 듣고 먹고 온 것 중에 어떤 게 좋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린다.
  • 학생 및 연구원: 자신이 조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으로 가지고 연구를 해보고 그 기록을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한다. 조사 방법은 인터넷만을 이용할 수도 있고 오프라인을 포함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신이 연구원이나 교수일 수도 있고, 대학교 수업때 쓴 글이나 특정 시험/자격증/프로그램/취업 등을 준비하면서 만든 자료나 느낀 점 혹은 노하우를 공유할 수도 있다. 이들이 쓰는 글은 약간의 주장과 논쟁을 포함할 수 있다.
  • 전문가 및 기자: 자신만이 갈 수 있는 전문 영역의 견문을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해준다. 하지만 이들의 전문성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만 자료를 수집한다면 전문가 및 기자로서의 글을 절대로 쓸 수가 없고, 이 점이 바로 '스크랩북 및 백과사전' 역할을 맡고 쓴 글과의 차이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혹은 자신의 오프라인 사회에서의 입지나 권위를 취재력으로 활용하여 기존 언론이 하는 역할을 똑같이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때로는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예측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할 정도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 스크랩북 및 백과사전: 기존에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항목의 새로운 내용이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항목을 설명문 형태로 소개만 한다. 소개를 할 때 '..를 통해 본', '...를 아시나요?' 등의 형태를 띤 제목으로 불특정 다수의 이목을 끈다면 포털 사이트나 메타블로그의 메인페이지에 자주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이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특정 분야에 대해서 분야에 속한 항목을 발견하는 대로 블로그에 포스트로 넣는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블로그 안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포스트만 있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 리뷰어: 참여에 제한이 없는 여행이나 행사에 갔다 오거나 제품을 사용한 뒤 후기를 쓰거나, 직접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책, 영화 등)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분석하는 글을 써 나간다.
  • 선생님: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하거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어떤 일에 대해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해야 한다' 의 문체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
  • 친구: 오직 자신과 오프라인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신변잡기, 그리고 자신의 하루 일과와 그에 대한 일기만을 서술한다. 불특정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전혀 가지지 않는다.

이제 이렇게 나눈 필자의 역할을 바탕으로 인터넷 상의 포스트를 분류해 보도록 하자.

우선 오늘의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있는 '추천' (舊 요즘 뜨는 이야기) 을 보자.

  • 천천히 걸으며 전남 '청산도'의 풍광을 만끽하세요
  • 편안하고 세련됨으로 열풍을 일으키다 - '웨지힐'의 유혹
  • 필요한 물건 얻는 재미, '밴쿠버'에서 경험한 벼룩시장
  • 두고두고 활용하기 좋아요 - 베이킹에 유용한 커피시럽 

  •   포스트가 맡고 있는 필자의 역할은 제목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첫째와 셋째는 리뷰어+스크랩북 및 백과사전이다. 둘째는 스크랩북 및 백과사전이다. 넷째는 이웃사람이다.

     이번에는 블로터닷넷에 들어가 메인페이지를 보았다.

     


      첫째는 전문가 및 기자가 아니라 스크랩북 및 백과사전이다. 둘째가 전문가 및 기자다. 셋째는 학생 및 연구원이다. 넷째는 스크랩북 및 백과사전+리뷰어이다.




      이러한 유추 훈련을 거듭하다보면 반대로 내가 어떤 필자의 역할을 갖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역할에 충실한 주제와 문체의 글만을 뽑아낼 수 있다. 사실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얻고 싶은 것은 과연 '나는 어떤 필자의 역할을 맡고 포스트를 쓰는가'에 관한 답이다. 그런데 내가 쓴 글 제목을 본 결과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았다. 칼럼이랍시고 쓴 글들은 모두 '선생님'에 속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에게 '..해야 한다' 라고 추천하고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는 내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선생님'의 역할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내 블로그를 거만하게 만들고,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나는 '학생'일수밖에 없고 그래서 '학생 및 연구원'의 역할을 취해야 한다. 나는 절대로 '전문가 및 기자'는 될 수 없다. 오프라인의 취재력은 거의 없고, 게다가 나는 군복무중이어서 지리적인 여건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전문 분야에 대해 글을 쓰려면 오직 인터넷과 책을 통한 자료 수집밖에 방법이 없다. 이제라도 학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학생답게 글을 써나가 보자.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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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책 '아웃라이어'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에 놓였고, 또 어떤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 나갔고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빌 게이츠, 비틀즈, 빌 조이, 로버트 오펜하이머 같은 익숙한 인물들의 성공의 비결은 몇 가지의 비슷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인맥의 활용 - 나와 두 다리 이하로 이어진 사람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할 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 지리적 위치 - 내가 주 4회 이상 가는 곳, 여가가 아닌 나의 물질적/정신적 가치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그 생산을 보조해주거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해주는 장소나 기관이 위치해 있다. 혹은 내가 어떤 모임 장소에 갔을 때 내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앞에서 말한 '사람'이 서 있는 타이밍이 조성된다.
    • 책에서 소개한 '1만 시간의 연습'을 위한 여건 조성 - 대부분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또한 어떠한 제약도 없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준비과정이나 연습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조성된다.
    • 나를 수요하는 사건의 발생 및 그에 따른 연락 - 그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 나에게 결정적인 이메일이나 전화 연락을 하여 결국 나를 꼭 필요한 곳으로 인도한다. 이때 나의 공급에 대한 대가는 돈 아니면 인맥 아니면 직책이다. 공짜로 공급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상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게 성공의 비결을 정리해 놓았는데, 이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위의 항목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빌 게이츠의 고등학교 한 학년 선배는 C-Cubed라는 회사의 창업자인 Monique Rona의 아들이었고, 빌 게이츠를 그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그 후에도 게이츠가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지내도록 다른 아주머니들과 어머니회에서 끊임없이 소통하였던 게이츠의 어머니가 Monique Rona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어 각자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연결을 시켜주게 된 것이다. 이 사례에서는 첫 번째 항목인 인맥의 활용이 적용된다. 빌 게이츠와 Monique Rona는 두 다리로 연결된 가까운 관계이고, Monique Rona는 창업자로서 빌 게이츠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하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결국 빌 게이츠가 힘있는 사람에게 붙은 것이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만나는 것을 비열한 행동이나 편법과 같이 여겨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강자에게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단순히 성공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일에 불과하다.
      또한 워싱턴대학 의과부, 물리학 연구소에서 빌 게이츠가 컴퓨터를 공짜로 쓰도록 허락해주고, 이를 통하여 게이츠는 당시에 생소했던 공유 터미널을 이용한 전산처리와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연습할 기회를 갖게 된다. 게이츠에게는 밤에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이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하게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세 번째 항목인 '1만 시간의 연습'을 위한 여건 조성과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TRW라는 회사의 펨브로크라는 사람이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해달라는 전화 연락을 하였고, 그 연락을 먼저 듣고 손을 든 사람이 빌 게이츠였다. 빌 게이츠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수요하는 사건을 발생시킬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네 번째 항목과 관련된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우리는 성공을 흔히 개인적인 재능에서 찾곤한다. 그리고 대부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스토리에 열광하곤 한다. 자, 그럼 빌 게이츠는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아웃라이어"에서 주장 하는 성공하기 위한 "1만시간법칙" 즉, 빌게이츠는 어떻게 1만시간의 프로그래밍 연습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가? 

    1. 부유한 부모(아버지: 변호사, 어머니: 은행가의 딸)덕분에 레이크 사이드로 보내졌다. 세계 어떤 고등학교에서 1968년에 공유 터미널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겠는가?
    2. 레이크 사이드의 어머니들은 비싼 컴퓨터 사용료를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3. 사용료가 부담스러워지는 시점에서 부모 중 하나가 C-Cubed의 공동 창업자가 되었고, 그 회사는 주말에 코드를 확인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며, 부모들은 주말 내내 프로그래밍을 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4. 게이츠가 ISI라는 벤처기업을 발견했고, ISI는 장부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5. 게이츠는 워싱턴 대학까지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6. 워싱턴 대학에서 새벽 세시에서 여섯 시 까지 컴퓨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있다.
    7. TRW(회사명)가 버드 펨브로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8. 펨브로크가 알고 있는 최고의 프로그래머는 두 명의 고등학생있었다.
    9.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가 학교에서 벗어나 프로그래밍에 매진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이 모든 행운의 공통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그 모든 기회를 통해 빌게이츠가 추가적인 연습시간을 얻었다는 점이다.

    출처 :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저



      이 외에도 영국의 비틀즈는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라이브 공연에 빨리 데뷔하는 성급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작은 라이브 클럽 사장과 만나 그 클럽에서 1년 동안 매일 3시간씩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사장의 수완으로 관객을 동원하여 초보 밴드 비틀즈가 많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 Mountain View라는 곳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산업단지 바로 옆의 마을이었고, 바로 옆집에 HP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살고 있었으며, HP의 창업자인 Bill Hewlett에게 어린 나이에 부품을 부탁한 게 기특하게 보여 공장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의 이야기와 위에서 말한 네 가지 항목에 대응되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바꾸어 위의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공란으로 남겨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 나는 _____ 덕분에 _____로 보내졌다.
    • 나의 ______는 _____를 할 만큼 여유로웠다.
    • 내가 아는 _____는 내가 하는 일인 ____와 아주 관련이 높은 기관인 ____에서 일하는 _____였고, 나는 _____를 통해 _____와 만날 수 있었다.
    •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____가 있었다.
    • 나는 ____를 돕는 대신 ____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_____에서는 나에게 공짜로 ____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 _____가 나에게 ____를 해달라고 전화를 했다.
    • _____가 알고 있는 최고의 ____는 나였다.



      이런 식으로 문장을 만들고 성공한 사람의 행적을 요약적으로 나타내는 문장 옆에 그대로 대조시킨 뒤 나에 대해 곰곰이 고민한 다음 신중하게 공란을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종이 한 장을 두 단으로 나누어 왼쪽 단에는 내가 존경하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 오른쪽 단에는 나의 이야기를 써 본다. 성공한 사람과 나의 각자의 속성을 일대일 대응시켜서 그와 같이 나도 동위원소가 되게끔, 그와 닮아가게끔, 조성만 바꾼 같은 곡을 연주하게끔, 선택적 모방을 위한 아이디어를 빨리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낸다.

      단 공란 안에 들어갈 단어(고유명사 포함)는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코웃음을 치거나 비웃거나 '말도 안돼!'라고 소리치거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더 채우기 힘든 것이다. 당장 손쉽게 채울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면 당신은 성공을 위한 환경 조성을 잘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면 당신은 단어를 채울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이란 무엇일까? 이것을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렵다. 주어진 환경, 태생, 유전, 자격, 타이밍, 시대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 누구에게나 도전이나 참여의 기회가 열려있는 일 말이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건 슈퍼스타K, 스타킹, 아메리칸 아이돌, 행정고시와 같은 국가고시, 길거리 공연, 무작정 소매를 붙잡고 호소하거나 빌기 등이다. 모두 누구나 도전하고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이 일들 중에서는 경쟁의 틀을 가지고 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하지만 경쟁의 틀이 없다고 한다면 나의 '성품이나 인정'이 다른 성공한 사람들의 '주어진 환경'만큼 대단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들을 시작하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고 넉넉히 예상할 수가 있다.

      책 '아웃라이어'는 조금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 시대의 수많은 패배자, 낙오자, 서민, 무능아 등의 약자들에게 '너희들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명, 조건, 환경이 있어 주어야 돼.' 라고 실망감을 안겨주면서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은 위에서 말한 조건과 환경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너무 높게 쳐다보는 열등감에 가득차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웃라이어'는 모든 사람, 범인(凡人)들에게 성공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다만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도와주기 위해 사례만 성공한 사람들로 끌어다 쓴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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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거의 1년만에 다시 편지를 쓰면서 나는 지금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 도구의 홍수 속에서 편지를 왜 굳이 써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미 전화로도, 싸이월드 방명록으로도, 미투데이 글로도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와 나인데, 전달이 오래 걸리고 바로 답을 받아볼 수도 없는 편지만이 가진 아름다운 매력은 무엇이기에 나는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일까? 나는 편지지에 한 문장 한 단어 써내려가며 편지 아니면 안될 말들만 걸러내고 추려서 정성어린 깨알같은 글씨를 새겨넣어 가며 이 시대의 편지의 역할과 입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두가 손글씨보다 키보드가 편한 이 시대에 어려운 손글씨는 그만큼 정성을 나타낸다. 나의 타자 실력은 이제 550타를 거뜬히 넘게 되었다. 블로그는 잠시 쉬었지만 미투데이라는 걸 하면서 군생활 중 정말 짧게 주어지는 몇 분의 시간 안에 평소 가지고 다녔던 농축된 말들을 빠르게 풀어나가는 일이 하루의 일상이 되었다. 문서의 서식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디자인 요소를 넣어서 사람들 앞에 예뻐보이게 하는 기술도 컴퓨터를 항상 끌어안고 사는 지금의 일 때문일까 상당히 성숙해졌다. 하지만 나의 손글씨는 바쁘게 전화 내용을 대충 끄적거릴 때에나 써서 그리 예쁘지 못하다. 평소의 날림체가 나의 급한 성격과 웬만한 사소한 일은 대충 처리하려는 습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그 순간 펜촉에 시선이 집중되고 마치 표적지를 바라보며 사격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나는 긴장을 하였고 볼펜에는 힘과 정성이 들어갔다. 한장을 꽉 채웠을 때에는 뿌듯했으며 이 글 쓰려면 시간 꽤나 걸렸겠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 한 장의 글을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적으면 모니터의 반 장 정도밖에 채우지 못할 정도로 졸렬할 뿐이다. 하지만 손글씨로 쓰여진 글은 문장력에 상관없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노력이 느껴지는 것처럼 손글씨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에서 정성과 진실함이 느껴진다.

        편지는 아날로그다. 잉크가 만들어낸 글씨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라가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비공개를 하고 '비밀이야' 체크를 하더라도 결국은 서비스 공급자의 서버에 그대로 저장되고 누군가는 네트워크 장비와 서버를 침투해 들어와 내가 꽁꽁 숨겨둔 글을 훔쳐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더구나 그 훔쳐보기를 경험해보고 인터넷 네트워크에 올라온 정보의 기분 나쁜 공개성에 흠칫 놀란 나로서는 더욱 더 아날로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친구와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를 통해 쪽지나 방명록을 주고받을 때에는 그 친구와 단둘이 닫힌 방 안에 있는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 방에 아무도 없고 분명히 그와 나의 이야기를 엿보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사람 북적거리는 명동에서 20m 밖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편지, 이 편지는 나의 손을 떠나면 꽁꽁 봉투에 담겨져 있다가 그의 손에 바로 쥐어진다. 편지는 매체를 통하지 않으므로 가장 사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에 가장 사적인 내용을 채워넣으면 그 편지의 독보적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나 오늘 ..했다?' 혹은 '지금 나는 이러이러한 기분이 들어.' 같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하기에는 편지지가 너무나 아깝다.

        과거에 잠깐 생각났던 건데 전화로 말하거나 방명록을 통해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면 느긋하게 편지로 이야기하면 된다. 앞뒤 맥락도 없이 외워놓은 대본을 갑자기 낭독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 지금 현재 그와 내가 긍정적으로 지내고 있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된다거나, 명랑한 대화만 주고받던 그녀에게 응큼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평소 말싸움이 잦아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피하는 상황에서 사과를 빨리 해야 하거나 할 때 편지는 해답이다. 일상 대화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이 편지에서 나온다. 편지에서는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지연을 남긴다. 아무리 바로 옆 동네로 편지를 써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가 걸린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거나 전화를 하고 있거나 둘 다 네이트온에 로그인해 있을 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쪽에서 대답이 오지 않으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왜 대답을 안 하냐는 생각에 상당히 걱정되고 불안해지고 불쾌해진다. 싸이월드 방명록 역시 우리가 언제나 24시간 접속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지연을 남기지는 않기 때문에 편지와 조금 다르다. 편지에서 하는 말은 상대방에게 대답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본 다음 하라는 숨겨진 당부의 말을 같이 한다. 편지에서 내가 어떤 화제를 꺼내더라도 그것이 생뚱맞을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모든 감정은 평소의 의사소통보다 더욱 진해지고, 생각은 더욱 더 질서와 논리를 갖추게 된다. 철학적인 사색이나 공상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해줄 때에도 편지 이외에는 적합한 수단이 없다. 일상 언어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정한 주제의 에세이 형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자 할 때, 충분한 설명을 통해 한번 내 뜻을 전한 다음 오해의 피드백이 생기지 않을 것을 간절히 원할 때, 그때 편지를 쓰면 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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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 방송에서 한 20대 초반의 남자가 사연을 보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고등학교 때에는 여자에게 말 한 마디 못 붙이던 숫기 없는 그가 대학교에 들어와 2학년이 되어 한 후배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처음 그녀를 본 이후부터 호감이 생겼고 그녀가 먼저 자기를 학교 복도에서 처음 불러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 때 그녀도 자신을 조금은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달 뒤 중간고사로 바빠지기 전에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했는데 뜸을 들이던 그녀는 좋다는 말을 전해와 같이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둘이서 처음으로 본 거라 많이 떨렸고 그때 이게 나의 첫사랑이구나 생각했단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중간고사 때문에 각자 공부로 바빠졌고 그 이후에는 문자도 받지 않고 먼저 약속을 잡지도 않는 뜸해진 그녀가 섭섭하다.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나는 군대에 들어온 일병이다.

       싱거운 첫사랑을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이는 이 미성숙한 남자의 사연을 받은 DJ는 이렇게 답했다.

       "많이 간절하지 않으셨군요. '아이 뭐 그때는 아프더니 이제는 괜찮네요.' 이정도로 끝나면 그건 아직 아픔을 겪은 게 아니잖아요. 뭐 여자애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되는 거에요.
       첫사랑,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이라는 거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다시는 이렇게 사랑할 수 없겠구나, 이게 나의 첫사랑이구나, 평생동안 나의 술자리에서, 또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나의 아이를 붙잡고도 늘 한번쯤은 꺼내야 할 첫사랑. 정말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움직여서 했을 때, 그래서 그게 끝났을 때 너무나 앓고 힘들었을 때 그걸 이제 처음 사랑했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군대도 갔다오시고, 더 필요하실 때, 애인의 필요성을 느끼셨을 때, 그럴 때면 아마 OO씨가 노력을 해서라도 여자들과 말도 좀 섞고, 장난도 좀 자연스럽게 치고, 그런 성격으로 점점 변해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0. 03. 14. '푸른밤 문지애입니다' 중에서..

      문DJ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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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주 하게 되는 , 발생 빈도가 높은 일은 쉽게 접근해서 처리하게끔 조치를 취한다. 자주 전화를 걸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 바로 전화기가 있고, 자주 쓰지 않는 핫라인 전화는 곳에 비치해 두었다. 바탕 화면의 바로 가기나 빠른 실행은 자주 가는 사이트나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구성할 있다. 웹사이트에서 댓글은 아래 바로 위치해 있어서 댓글을 달고 싶을 바로 있다. 이처럼 일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어 놓으면 소요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소요시간이 짧기 때문에 일의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이 쓰는 수첩은 짧은 시간 동안의 단발성 처리를 목적으로 하므로 항상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바로 메모를 , 내일의 20 동안의 일정이 갑자기 잡혔을 , 처음 만난 사람이 전화번호를 알려줄 , 검색창에 입력해보아야겠다는 키워드가 떠올랐을 잠깐 수첩을 펴고 적고 덮는 것과 같이 수첩은 소설책처럼 시간 동안 연이어서 들여다보는 물건이 아니다. 이와 같이 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일의 접근성이 좋아서 소요시간이 짧다는 당연한 사실이 아니라 소요시간이 짧기 때문에 일의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이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소요시간이 짧은 또한 접근이 용이하도록 해야 함은 일을 함으로써 생산하는 양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잠깐이면 일을 수많은 준비 절차와 시간을 거쳐야만 있게 된다면 본론보다 서두가 길고 배보다 배꼽이 상황에 따라 오는 좌절감은 상당하다. 시간을 꽤나 많이 낭비했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더불어 나는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죄책감도 느낄 있다. 알맹이보다 껍질에 쏟는 시간이 많으면서 그래도 껍질은 까고 있으니 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혹은 일이 충분히 보람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은 타성에 젖어 발전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싶다.

       또한 자주 하지 않는 일이라도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놓는 사전 환경 수립은 불필요한 공간이나 에너지를 잡아먹도록 하지 않는다. 사전 환경 수립이란 아니다. 수첩을 항상 들고 다니기, 빠른 실행에 넣어둘 파일을 잠깐 열어볼 파일로만 추려서 등록하기, 여럿이 쓰는 컴퓨터에는 서로 약속한 대로 폴더와 파일 조직을 만들기 공간이나 에너지의 추가적인 소비는 없다. 서로가 같은 문서를 여러 컴퓨터 안에 저장해 두어서 불필요하게 하드디스크 공간을 쓴다던가(데이터베이스 안의 데이터 중복과 같은 문제) 어느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파일 검색을 돌려야 하는 등의 시간적 낭비는 줄어든다.

      생산하는 양이 미미한 이유 외에 다른 이유로는 일의 빈도를 예측할 없는 경우를 있다. 손님이 와야만 하게 되는 일들, 예를 들어 대여장부를 기록하거나 창고의 물건을 빼서 가져다 주거나 하는 경우 하루에 손님이 명이 올지는 예측할 없다. 분명한 대여장부 기록이나 창고의 물건 빼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1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여장부를 꽁꽁 숨겨 놓거나 창고를 잠가 놓고 열쇠를 곳에 두는 바람에 1분도 걸릴 일을 3 걸려 처리한다면 그것은 비효율이다.

      사실 사소한 하나까지도 수많은 준비과정을 필요로 하는 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어 놓은 수많은 비밀번호, 규칙, 설정, 조절 장치와 같이 절차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서 공문서의 hwp 파일에 첨부하고자 한다면 일단 인터넷 PC 있는 곳으로 가야 하고 CMOS 윈도우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 로그인 프로그램에 로그인을 하고 인터넷PC 전용 USB메모리를 사용하여 사진을 저장해야 한다. 다음 USB 메모리 안의 내용을 다른 PC 거쳐 공문서를 쓰는 PC 복사를 3 와야 한다. 50킬로바이트의 사진을 가져오는 데에도 10분씩 걸린다. 겨우 이거 하는 가지고 이렇게나 의미 없는 많은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는 푸념이 하루에 대여섯 번씩 터지지만 규정에 따르다 보니 어쩔 없다. 하지만 규정으로 금지되지 않은 영역의 소요시간이 짧은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환경을 바꿈으로써 빠른 접근성을 확보하도록 만들 있다.

       반면 일의 소요시간이 경우에는 준비과정이 있어도 상관없다. 우선 소요시간이 일은 일을 하기 전에 충분한 검토와 계획을 수반한다. 언제 누가 있을 어느 장비 혹은 도구를 사용하여 일을 해내자는 시나리오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일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아 중간에 갑작스럽게 취소되거나 중단되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를 테이프에 백업하는 작업이 계획되어 있고 백업을 하기 위해 관리자가 서버의 초기 설정을 명령어를 통해 바꾸고 있는데 갑자기 백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준비 과정과 절차가 길더라도 과정과 절차에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분하더라도 준비는 필요하기 때문에 싫지는 않게 느껴질 있다. 반면 사진을 인터넷에서 퍼오기 위해 인터넷 PC 켰는데 사진이 필요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솟구친다. 외에 인터넷으로 블로그를 작성하는 일도, 개인폴더의 엑셀시트에 읽고 싶은 책을 적어넣는 일도 소요시간이 길기 때문에 준비 과정의 클릭 수가 많아도 상관이 없다.

       소요시간이 짧으면 접근성을 좋게 만들도록 노력하고, 소요시간이 길면 접근성이 좋지 않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일상 업무를 하나 하나 생각해 보면서 불필요한 과정으로 소요시간을 늘리고 있지는 않나 점검해서 짧게 끝낼 있는 일들을 진짜 짧게 끝낼 있도록 물건을 옮기고 파일을 옮기는 사소한 작업만 해준다면 보다 피곤하지 않은 업무가 가능해지며 의미있는 시간들로만 하루를 채워나가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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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장을 따로 공책에 만들어서 평소에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겠다고? 그건 어떻게 일정이 생기고 누구에게 끌려가거나 부탁을 들어줄지 모르는 우리 대학생과 어른들에게는 이제는 구식의 방법이다. 단어는 외워야겠는데 휴대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적어놓은 단어를 2~3일 안에 외워서 바로바로 섭취할 현실적인 가능성이 그에 따라 낮아진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스마트폰 안의 app에 단어장을 넣어서 직접 스마트폰으로 입력도 할 수 있고 컴퓨터의 데이터를 import도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휴대성의 장점을 이용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하지만 평소에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고작 단어 외우겠다고 스마트폰을 살 수는 없다.

        기존의 종이로 된 단어장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단어장의 부피가 공책 하나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대학생이 책가방에 전공서적이나 노트북과 함께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평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수시로 꺼내 볼 수 없다. 집에 가서 책상에 앉은 다음에 책꽂이에서 꺼내 읽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들의 5~60%는 책상에 앉은 다음에 컴퓨터부터 켜거나 졸려서 이만 TV를 보다 잘 것이다.
      • 단어를 열심히 외워서 해치워야 한다는 압박을 주지 않는다. 예전에 사전을 한 페이지씩 찢어서 먹거나(!) 버리는 사람들은 그만큼 단어를 외워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다수의 지금 단어장을 만드는 학생들은 당장 머리에 안 들어오니 나중에 외우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단어장의 페이지를 채운다.
      • 단어장에 단어를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이 번거롭다. 따로 단어장이라는 수첩이나 공책을 옆의 영어/제2외국어 소설책이나 신문과 같이 들고 움직여야 한다. 짐이 하나 더 생기면 실현 가능성은 그만큼 더 낮아진다.
      • 앞의 몇 페이지 조금 쓰다가 남은 70페이지는 언제 다 채우나 하며 기가 죽는다.

        그렇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이면지 A4 1장만 들고 다니자' 이다.

      우선 A4를 가로로 놓고 가로 5~7cm의 구역을 나누어 접는다. 그 다음 '외국어 | 한국어' 식의 자신만의 format을 가지고 적어나가면 한 column에 20~25 단어가 채워진다.(나는 글씨를 작게 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나누어 접은 선을 꽉 눌러 접고 두 손으로 찢는다. 이렇게 하면 하루 분량에 적합한 양의 단어가 나온다.

      이 종이를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플래너의 Weekly Compass에 끼우고 플래너를 들추어볼 때마다 외운다. 의식적으로 외우려는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슬쩍 눈길이라도 준다.(슬쩍 눈길만 주어도 이 눈길이 10번이 되고 20번이 되면 굳게 마음을 먹고 집중하여 3번 본 것의 효과를 낸다. 우리가 그 많은 광고카피와 광고음악 그리고 그 안의 특정 장면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플래너가 싫다면 지갑의 지폐와 함께 넣어도 좋다. (딱 들어간다) 돈 쓸 때마다 슬쩍 눈길을 주면 플래너에서와 똑같은 효과를 본다.
       그리고 다 외웠다 싶은 단어장 종이는 따로 서랍이나 케이스에 모아서 보관한다. 버리지 않고 보관하면 혹시나 나중에 까먹어서 들추어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들추어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A4이고 이면지여도 상관없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고, 자르기 위해 자나 칼이 필요없으니 번거롭지 않다. 번거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율성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다. 이건 일종의 nudge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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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표가 등장하고 앞으로의 몇 주간 혹은 몇 일간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예정해놓는 문제는 20세기 산업화와 기계적인 일상이 부상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거나 마음 가는 대로, 느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태도는 생산을 하는 '일하는 시간'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앙숙이 되었으며 대신 그러한 태도는 여가에서만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하지만 여가뿐만 아니라 일하는 시간 중에 틈틈이 나는 쉬는 시간, 장소를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에도 즉흥적인 행동은 이루어진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어떤 옷을 입을지는 그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각해보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별히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야 한다거나 장례식에 조문을 가거나 드레스 코드가 있는 클럽에 갈 때가 아니라면 당일 전부터 그날 어떤 옷을 입을지를 계획하지 않는다. 옷장 앞에 선 그 순간 창밖의 날씨, 어제의 좋고 나쁜 기억, 잘 보이고 싶은 사람 등을 고려하여 우리는 별 특징 없는 하루의 옷차림을 고른다. 내가 디자이너의 패션소를 보조해주는 모델이 아닌 이상 내 옷차림은 시계열 단위에 짜맞춰진 계획표를 따를 필요가 없다. 옷 입기는 즉흥적인 행위이다.


        먹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로 점심, 저녁 시간이 되었을 바로 그 때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무엇을 먹을지는 그 순간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가, 전날에 먹지 않는 새로운 메뉴가 무엇인가, 가까운 외식 장소가 어디인가, 같이 밥을 먹을 친구는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가에 의해 단시간에 결정된다. 현재 자신이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식이요법을 수행중이지 않은 이상 먹는 행위 역시 즉흥적이다. 즉흥적인 행위는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취약할지 몰라도 그것이 주는 만족감은 단연 뛰어나다. 그리고 행위자를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어준다.

        공부도 이렇게 입고 먹는 것처럼 할 수 있다면 공부는 최고의 여가 활동으로 우리 곁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 연등시간(군대의 야간자율학습)에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공부를 바꾸어가면서 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독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게 빨리 흘러간다. 내가 하는 공부는 6개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모두 다 전역 후의 내게 피와 살이 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특정 시기에 반드시 이 과목을 공부해야만 한다는 의무는 나에게 한번도 주어진 적이 없다. 언제 어느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계획표는 매우 장기적인 계획이어서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큰 축복이다. 수능을 죽어라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의 한가로운 천성이 가져온 나이브한 생각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니 불안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의무가 없기 때문에 나의 학습 활동은 여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여가는 언제나 즐겁기 때문에 공부도 즐겁다.

        그런데 대학생 신분일 때의 나의 모습은 지금의 여유로운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시험 일정에 나를 맞추어야 했고, 조를 구성하여 공동 프로젝트를 할 때는 친구들의 개인적인 일정과의 충돌을 통한 타엽에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공부는 아예 안 했던 것 같고, 책이나 프린트물 하나를 볼 때마다 그 순간 나는 곧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결과물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한 의무와 목적이 나를 옥죄던 상태, 그 때의 나는 지금의 '全無한 의무와 잠재적인 목적' 상태와 완전히 달랐다.

        의무가 있을 때는 의무감을 에너지로 성취를 하고 결과물을 만든다. 반면 의무가 없을 때는 즉흥성과 자유를 에너지로 삼는다. 이는 공부가 일이냐 여가냐라는 이분법과도 서로 통하는 이리다. 공부가 일인 상황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은 많이 있다. 그런 종류의 공부법 설명서를 구매하는 독자들은 실제로 큰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자라나는 10대 초중반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공부가 여가일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공부가 여가인 상황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절박한 사람만이 책을 구입하는 소비성향에 출판업계가 굴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의무감이 없고 공부가 여가라면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고르듯 즉흥적으로 공부할 책을 집도록 권하고 싶다. 순간의 느낌이 최고의 만족감을, 나아가 고도의 집중력과 지식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낼 결과물을 낳는 시초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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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입대를 하고 나서 휴가에 민감해진 건 휴가 때 보다 의미있는 일을 평소에 계획해 놓았다가 한꺼번에 하자는 식의 작전을 항상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냥 8주마다 다가오는 휴가 당일이 온 다음에야 아, 쉬는구나 하고 이제부터 뭘 할지 계획하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이 선약에 매여 있어 못 만나고, 밖에서 하는 공연이나 전시에 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이미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분명 나에게는 휴가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은 매 휴가 때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여러 차례의 휴가에 걸쳐서 커다란 범주는 같았다. 그래서 나의 다이어리(이제 프랭클린플래너 2010년판을 쓴다)에 그 범주를 적어놓았다. 매 휴가 때마다 하지는 않는 일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내용을 적었다.

      • 가족들 만나기 - 특히 자주 못 보았던 친척
      • 월 1회/연 1회 열리는 행사 참여
      • 쇼핑-교보문고, 낙원상가, 백화점
      • 특별한 가치(음식 외의)를 갖는 레스토랑/카페 방문
      • 특성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인터넷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잡지/단행본 열람
      • 밴드공연 관람/주최
      • 은행 업무/자금운용
      • 라리 고구마케익 먹기(진정 여기서만 먹을 가치가 있다)
      • 공씨책방/홍대,신촌 헌책방 가서 책/CD 구입
      • 디브러리 Global Lounge에서 TV5MONDE 위성방송 보기
      • 최신영화 보기

       

       이렇게 순서 없는 리스트를 만들어서 휴가 때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으면 휴가 때 한 번 계획으로 한꺼번에 약속과 모임과 일을 끝낼 수가 있었다. 마치 여행가이드가 상품 고객들을 위해 예약을 해놓은 관광지의 방문 일정을 하루의 시간표 안에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끊김 없이 모아놓는 것처럼 나는 스스로의 휴가를 위한 여행가이드가 되었다. 물론 이번 17일부터 20일까지의 휴가 때는 애초부터 열심히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원래 나의 휴가는 전역 후의 할 일 중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틈틈이 땡겨오는 개념의 휴가이다.

       하지만 내가 영내에 있을 때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처리할 때도 있었다. 내가 스스로 계획하고 마감 기한을 잡아놓은 일이 영내에 있을 때 끝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끝나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계획한 일이 미처리 상태로 남아있는 상태에 자극을 받아 마감 기한 이후에 언제라도 여유로워지면 그 일을 끝낸다. 이렇게 나는 지나간 일 중에 미심쩍은 게 있으면 불안하다. 프랭클린 플래너를 계속 써서 생긴 심리적인 증상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부대를 빠져나와 아무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의 활동적인 시간 속에 놓이게 된 그 순간, 내가 여유롭다는 사실만으로 이전의 부대 안에서 하기로 되어 있던 일을 하면 그 일을 하는 내가 얻게 되는 효용은 낮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고 간섭할 사람이 줄어들어 자율성이 커졌을 때에는 자율성이 커졌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효용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된다. 이 순간에 자율성이 적어도 할 수 있는 일, 시공간과 업무 우선순위의 제약이 없는 일을 하면 나는 높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기회비용을 따진다면 항상 기회비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특정한 때와 장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차질없이 여유롭게 수행하기 위하여 언제 어디서나 해도 상관 없는 일은 특정한 때와 장소에 놓이기 전에 미리 다 처리해버려야 추후 기회비용의 낭비가 없다. 이 때문에 일상적인 일은 비일상의 기간을 맞이하였을 때 절대 하지 않는다. 휴가를 나왔는데 굳이 부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공부할 필요가 없고, 굳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회비용이란 자율성이 늘어날수록 커지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실천에 대해 제약이 적어질수록 커진다.

       나의 경우 공부 / 블로그 / 쇼핑 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내가 하는 일의 실천에 대한 제약은 쇼핑이 제일 많고 공부가 제일 적다. (블로그는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따로 있다. 사지방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부대 안의 근무장 및 근무시간 / 생활관 내 독서실,사지방 / 주말과 공휴일의 정보화교육장과 점심시간의 인터넷PC /부대 밖(휴가) 을 예로 들자면 자율성은 근무시간에 근무장에 있을 때 제일 적고 부대 밖(휴가)일 때 제일 많다.

       (표) 시간/장소에 따른 할 일의 최적화 전략. 빨간 색으로 셀을 칠한 영역은 실현 불가능을 나타낸다.

       이렇게 행에는 시간/장소를 자율성의 정도에 따라 낮은 순서대로 쓰고, 열에는 할 일을 실천에 대한 제약이 많은 순서대로 쓴다.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영역에 X표를 치거나 색칠을 한 뒤 각 열의 가장 위의 행에 있는 셀에 O표를 한다. 할 일은 수십 가지로 확장될 수 있으므로 열 또한 수십 개가 될 수 있다. 행도 마찬가지이지만 개인의 행동 범위에 따른 시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열보다는 덜하다. 표를 보면 휴가때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높은 기회비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하고 나면 분명 그때 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할 걸, 하고 후회할 것이다.

       아울러 같은 행에 O표시를 해 놓은 일을 여유롭게 추진해 나가기 위해, 앞서 미처 끝내지 못한 '실천에 대한 제약이 적은 일'들이 방해를 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 실천에 대한 제약이 적은 일들은 특히 실천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과 장소에 바로바로 해치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물은 다 빨아먹자' 원칙이 있다. 늘어난 자율성은 시간이 경과하면 다시 줄어든다. 휴가를 갔다가 다시 오면, 멋진 사람들이 모인 화려한 파티가 끝나면, 나를 만나러 온 그녀가 떠나면 자율성은 줄어든다. 자율성이 줄어들면 표에서 나의 위치는 보다 위에 있는 행으로 올라가게 되고, 그에 따라 실현 불가능한 영역(빨간 색으로 셀을 칠한 영역)은 점점 많아진다.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밀도 있게 계획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내가 만든 표가 급작스럽게 생각해낸 거라 아직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몇 개 있다. 앞에서 말한 자율성은 주위에 상관, 선임이 몇명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여행을 갔을 때에는 자율성이 분명 높아지지만 그 자율성은 어디까지나 특정 분야에 대한 자율성이다. 즉 각각의 표가 개인의 복수 개의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조금 더 연구해 보면 도식으로 표현하여 계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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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에 초보인 모든 젊은 남자들을 위해 이 논문같지 않은 작은 논문을 써 보냅니다. 전화를 했는데 그녀가 전화를 안 받는다면? 남자의 마음에는 각종 추측과 상상이 나래를 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때일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차근차근 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의 작은 글은 제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직후 휘갈겨 쓴 글을 약간 손본 것입니다. 전화 건 사람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경고하는 글이지요.
      ...
        전화를 항상 손에 들고 다니며 하루 중 무슨 일이 있어도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화가 울리든 말든 일단 자기 할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전화를 책상 위에 내팽개쳐 놓는 사람도 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이 반드시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전화를 받는 것이 의무라면 그 전화의 목적은 공적이어야만 하면 업무에 관련되어야만 한다.

        부재중 전화가 상대방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답신 전화를 할 것이다. 이 때 그 사람이 부재중 전화 기록을 그냥 보고 만다면 그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우선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전화라 답신 전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또한 답신 전화를 해도 받는 사람이 전화를 못 받을 상황일 것임을 미리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 왜 내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따지려 드는 것은 그 사람의 삶과 시간을 나의 명령에 구속시키고자 하는 매우 권위적인 행동이다. 그 사람을 진정 좋아한다면 최선의 방법은 침묵한 채 계속해서 전화를 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간대, 일과에 매여 있지 않은 시간대를 먼저 헤아리고 그 시간대에 전화를 걸면 나를 극도로 혐오하지 않는 이상 일단 전화를 받게 된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가 나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라는 멘트를 듣는 것은 용기내어 전화를 건 자에게는 분명 좌절이다. 한 가지 의문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수신자가 수신거부를 했을 경우에는 송신자의 전화에 과연 어떤 메시지를 알려주는가다. 만약 그 메시지가 정말 상대방이 부재중이 아닌데도 부재시의 멘트와 같다면 그 메시지는 본래 의도했던 목적인 송신자의 안심과는 달리 수신자의 진심을 송신자에게 왜곡해서 전달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핸드폰에 벨소리가 울리는데 전화 건 사람이 꼴도 보기 싫어서 수신거부 버튼을 눌렀는데 전화를 건 사람의 수화기에는 마치 상대방이 부재중인 것처럼 자동응답 메시지가 나온다고 상상을 해보자. 그건 작은 기계적 장치가 인간관계를 틀어버리는 크나큰 문제이다. 핸드폰 기종 그리고 이동통신사마다 수신거부시 전달하는 메시지의 형태가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가식적인 예의가 지극히 필수적이지 않은 이상 수신거부시에는 솔직하게 자동응답 메시지로 "상대방이 당신의 전화 수신을 거부하였습니다." 라고 말해주어야 훨씬 깔끔할 것이고 전화를 하는 사람의 각종 상상을 애초에 단절시킬 것이다.

        전화는 사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싫어지는 경우, 혹은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좋아지는 그 전환점은 대면 속에서만 존재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전화를 통해서 진심의 핵이 전달되는 경우는 없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포옹이나 키스가 이루어지거나 혹은 상대방을 홱 돌아서거나 상대방의 뺨을 후려치기 전의 한마디는 전화나 문자와 같은 정보통신 매체를 통해 도저히 실어나를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언제나 통신 매체는 무거운 진심이 전달되기 전의 상황 구성을 위한 도움만을 줄 뿐이고, 혹은 이미 노출되고 서로 나눈 진심을 다시 재현하거나 그 효력을 유지할 뿐이다. 전화 통화만으로 관계의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힘들고 그 시도는 유치하다. 전화 한 통화를 통해 관계의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쉽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고려와 예의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사귀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혹은 헤어지자는 문자를 받았을 때 받은 사람의 기분은 어떠한가? 처음 전화나 문자를 받은 그 순간 그 전화나 문자는 절대로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중에 그 내용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의 기분은 '찝찝하거나 더럽다'. 전화나 문자를 통해 오고가는 말들은 그래서 가벼워야만 한다. 무겁지 않은 일상 속의 질문, 대답, 이야기, 묘사, 감탄 등의 대화가 전화라는 통로에 걸맞는 전달 물질이다. 그러므로 우리 남자들은 여자에게 전화를 할 때 괜히 무게를 잡지 마는 것이 현명하겠다. 무게를 잡는 순간 대부분의 여자는 부담을 갖고 불쾌하게 느낄 것이 자명하다.

        전화를 대면 대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때라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먹고 당장 전화로 무언가를 바꾸고자 생각하지 않는 게 제일 현명하다. 인공적인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감추어지기 전에는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진심이 쉽게 고개를 들지 않는다. 인공적인 요소로 치장된 상태에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미적 감상, 혹은 팬덤(fandom), 혹은 자기도취이다. 무조건 여자의 얼굴 사진만 보고 인간적으로 끌리는 남자, 스포트라이트와 환호성을 받는 화려한 스타에게 마음이 쏠리는 여중생, 멋지게 차려입고 돈을 많이 들여 이벤트를 해주고 자신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인터넷 채팅을 통해 소개받은 남자의 글을 보고 좋아하는 여자가 생각한 사랑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깊게 들어가 봤자 사랑의 전 단계일 뿐이다. 진정 사랑하고 싶다면 직접 마주보고 만질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결국 에로스의 판정승을 이야기하고 싶다.

        앞서 열심히 논했듯 관계의 변화를 위한 무거운 말은 대면 중에만 적절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 공간에서 만나지 못하면 '연애의 시작과 전개'는 불가능하다. 장거리 연애는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두 사람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고 여기서 군인과 대학생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전화의 가장 값진 용도는 따라서 대면을 위해 약속을 잡고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확인하는 사전 탐색 작업이다. 유쾌하게 농담도 던져가면서 이 사전 탐색 작업에 열중해 보자.

        전 군대에 있으므로 연애는 나중에나 해야겠습니다. 그렇지만 전화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진짜 사랑의 전 단계까지는 도달할 수 있겠지요. 잡념이 저를 감쌀 때엔 그 생각만 하며 남은 나날들을 보내야겠습니다. 저와 같이 맘 졸여하시는 모든 남자분들 힘내세요! 사랑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용기 내어 다가서서 보여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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