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차를 지급해주지만 그 차가 나만 쓰는 게 아니라 두 명이서 쓴다면 싸우지 않고 차를 같이 쓸 수 있게 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곧 나도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놓으면 형평성을 유지하고 가동률을 최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시간대를 정한다. 야구로 치면 이닝(회). 토요일 저녁 7시에서 11시까지, 저녁 7시에서 일요일 오후 2시까지, 일요일 오후 2시에서 저녁 11시까지, 월요일 저녁 7시에서 11시까지, 등으로 각자의 자유시간을 모아 시간대를 나눈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점수가 높은 사람이 탈지 말지(양보할지)를 정한다.
점수가 낮은 사람은 못 타고 말지, 양보를 받고 탈지, 양보를 거부할지를 정한다.
타면 -2점 (상대가 탈 수 없는 상태라면 0점)
상대방이 타서 내가 못 타면 +1점
양보하면 +1점 (단 상대가 탈 수 없는 상태라면 양보해도 0점) 내가 탈 수 없는 상태라면 항상 양보. 양보는 미래의 여러 회에 대해서도 미리 할 수 있다.
양보 받고 타면 -2점
양보 거부하면 0점
탄다고 했다가 갑자기 취소해도 -2점
탄 다음에 차가 고장나는 등으로 다음 회에 상대가 못 타게 한다면 탄 사람 -5점
사정이 있어 둘 다 못타면 둘 다 +1점
둘 다 타면 둘 다 +1점

그 다음 게임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 사람에게 1점을 더 주고 시작한다.
동점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1점을 더 준다.
이렇게 무한하게 게임을 반복하다 보면 각자가 가능한 시간대에 최대한 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두 사람과 차 사이의 거리가 같다.
- 주유비, 차량정비 비용은 각자가 탄 만큼 정확히 내거나 제3자가 모두 낸다.
- 차를 탈 수 있다면 항상 타는 것이 각자에게 편익을 준다. 차를 타는 일은 귀찮은 일이 아니다.

나중에 방해받지 않고 연속된 날에 차를 쓰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선이 되었을 때 계속 양보하면서 점수를 쌓으면서 점수 격차를 벌인 뒤 연속된 날의 시작에 차를 연속해서 쓸 수 있고, 차를 다 타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양보하여 상대방이 타도록 하는 행동은 점수차가 아닌 상호간 합의에 의하여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완전한 경쟁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은 두 행위자가 취하는 비배제성, 비경합성의 공공재가 무한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위와 같이 했을 때 문제점이 생긴다면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자구요.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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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무서운 속도로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 '명량'을 중계CGV에서 봤다. 평일 낮에 한가롭게 갈 수 있는 방학이 정말 소중하다.

영화는 30%-60%-10%로 명량해전 이전의 상황-명량해전 당시-명량해전 이후의 상황으로 나뉘어 있었다.

쪽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환경을 이용할 줄 아는 꾀와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적용시켜보면서 용기를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타이밍..

이순신 장군 자신의 판단력과 군사와 백성들이 하나된 단결력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다음의 단계가 필요했고, 영화는 이 단계를 10-15분 단위로 고조-해소의 패턴을 반복하며 보여주어 문제를 해결하고 점점 승리에 가까워지는 (게임으로 따지면 스테이지를 깨는) 조선 수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의 자세한 묘사는 스포일러라 생각된다.


1. 장군들을 불러모아 지시를 하지 않고, 배를 전진시키지 않고 닻을 내리고 그대로 기다린다. 이때 물살이 강했다. 일자형으로 고정된 배들은 소신기전과 화포를 쏜다. 구루지마 1군이 물살에 휩쓸리면서 저들끼리 부딪쳐 침몰한다.

2. 물살이 약해졌다. 구루지마 2군이 출병하여 장군선을 에워싼다. 갈고랑쇠를 장군선의 사방에 가져다대고 판자를 대어 장군선 쪽으로 넘어온다. 갑판의 모든 병사들은 판자로 건너오는 일본군을 창으로 찌르고 위에서 백병전을 치른다. 그 사이 노꾼이 있는 2층으로 화포를 모두 내려보내어 사방으로 화포를 한 포문 당 대여섯 개를 겹쳐 쌓아 갑판이 아닌 2층에서 화포를 사방으로 쏜 뒤 장군선을 에워싼 4척의 배를 떨어뜨린다.

3. 구루지마 측에서 보낸 화약선 1척만이 홀로 조선 수군을 향해 온다. 이것이 화약선임을 알게 해준 조선인 덕분에 주변 지역 백성들의 안전을 확인한 뒤 화포로 쏘아 폭발시킨다.

4. 조선 수군 쪽에 초요기를 들어 장군들을 불러모으고 양쪽으로 펴지기를 지시한다.

5. 회오리가 강하여 장군선이 침몰할 뻔할 때 뗏목을 탄 백성들이 갈고랑쇠로 장군선을 잡고 열심히 노를 저어 장군선을 회오리로부터 구출한다.

6. 물살이 조선 수군 측에서 순류로 바뀌자 세 척 정도를 가지고 돌격하여 충파를 한다. 충파로 일본군 아타카부네 몇 척을 부순 후 다시 백병전이 펼쳐지자 측면에서 대기하고 있던 판옥선으로부터 화포를 대거 쏘아 다른 배도 부순다.

7.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와키자카 측 배는 후퇴한다.


그때 그때 대응하는 임기응변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계획된 전술이 주를 이루었다. 주위에서 이순신을 도와주는 손길도 무시할 수 없지만 환경은 변수로 계산되었다. 큰 문제를 잘게 쪼개어 단계별로 헤쳐나갔고 대응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한번에 적이 몰려오게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게 쪼개어 계획을 세워야겠다.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실제 고증과는 상관없는 설정일 것이지만 일본군 배 안에는 찻상이 있었다. 찻상과 타타미가 있는 지휘관 좌석은 아름다웠지만, 결국 전투 중에 차를 마시는 여유가 없는 쪽이 승리했다. 나도 평소에 여유를 놓지 않고 살아온 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가지 불만은 왜 일본군의 장식과 아타카부네의 외관은 화려하고 깔끔한 데 비해 조선 수군의 진영과 장식은 전혀 그렇지 못하는가, 그리고 백성들은 모두 얼굴이 까무잡잡한가다. 물질적인 풍요가 승리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점과 조선의 승리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인 건 알겠지만, 항상 나는 조선 또한 화려하고 깔끔한 디자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성균관 스캔들, 황진이, 궁 류의 드라마 외에는 그러한 스타일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불만이었다. 광해나 왕의 남자가 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영화인 이유다.


명량 일본반응(2ch) http://blog.livedoor.jp/nico3q3q/archives/68185512.html

위의 명량 일본반응 관련 한국 기사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07113748741508008

명량해전 한국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B%9F%89_%ED%95%B4%EC%A0%84

명량해전 일본 위키피디아 http://ja.wikipedia.org/wiki/%E9%B3%B4%E6%A2%81%E6%B5%B7%E6%88%A6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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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평방미터의 공간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드넓은 공간을 끊임없이 여행하며 정처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뿌리박고 있는 공간의 반경 1미터에 있는 사람들과 어찌 되었든 같이 살고자 부대끼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전자는 유유상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후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100평방미터를 쏘다닐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다면 유유상종의 성격을 가지고 살면 된다. 내가 필요할 때 그 범위에 있는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특정한 종류나 성향을 더욱 드러내보여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열광하게 만든다. 


인터넷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의 성향을 더 드러내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인터넷에는 자유분방하고 마니아스럽고 고집이 센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의 발달은 시간과 돈의 제약을 없애주어서 대면 커뮤니케이션일 필요가 없는 영역의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넓은 범위를 돌아다닐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각자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이 만날 수 있는 20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가정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20명을 원하는 시각과 장소에서 만나고자 할 때 자신이 있는 곳 주변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특정한 종류나 성향을 강조하면 나와 종류나 성향이 다른 사람이 나를 피하게 되므로, 나는 어떠한 종류나 성향도 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백색의 그릇처럼 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유유상종이 맞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유유상종은 이상에 불과하고 현실은 자기 주변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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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좋아하는 그 친구를 위해


여성들에게 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육체를 자각하는 방법으로, 이런 의미에서 자기-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답에 응한 여성들에게 육체에 대한 의식은 종종 육체가 특별한 표현수단이라는 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들은 춤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언어로 체험한다... 게다가 설문에 응한 여성의 과반수가 이러한 활동은 원초적 에로티시즘, 또는 원초적 자기-에로티시즘(auto-érotisme)을 일깨우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의식은 쾌락으로 체감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저도 제가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죠... 춤은 내 자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탐구, 나 자신을 육체적으로 발견하는 것이죠" "그것은 육체를 통한 감각.. 일종의 말하는 방식이지요. 꽤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죠" "일종의 자기-주장입니다..." "나는 춤추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내 자신을 자각할 수 있지요. 언젠가 2년가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계속 무언가 모자란듯한 기분이었어요.. 춤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에요"


- 새로운 스포츠 방법의 목록 - 리브레리 알터나티브 출판사와 파라렐레즈 출판사에서 공동 출판한 『방법의 목록』에서 발췌


상처를 발견한 걸까. 상처를 발견한 다음에는 더 춤을 추고 싶어지는 걸까.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욕망은 상처를 더욱 강하게 느끼고 싶은 욕망과 섞여 있다. 어쩌면 다친 채로 지금의 슬픈 자아를 계속 끌고 살아가는 것에서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온몸이 성하고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 심심함과 불안감이 찾아오는 적이 있듯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춤을 좋아하는 그 모습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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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됨

칼럼/관계 2013. 9. 20. 14:08

 기업 회장, 외교관, 예능인, 그리고 그 외에 우리가 싹싹하고 말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글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세련됨이 무엇인지를 규범과 같이 소개하는 17세기 프랑스 에세이다.


사교계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모르는 일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이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진짜 사교계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전문적인 장인(匠人)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멋있는 신사라면 자신이 하려는 일에 완벽을 기하기보다는 그러한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는 생각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고 멋진 생활 습관을 가진 데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여유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어려운 일에 휩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은 자신에게는 별 일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레, 『매력에 관해』


 전문적인 장인을 엔지니어로, 사교계 사람을 컨설턴트라고 하면 지금의 버전이 될까?

 하지만 그 둘의 접점에 설 수 있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세련됨 역시 위에서 말하는 멋있는 신사의 자질일 것이다.


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글이 있었으니 소개해볼까 한다.

새로운 문화 매개자들(문화활동 지도자, 놀이와 문화의 지도자 등)이 이루어낸 혁신적 방법의 대부분은 일상적인 학교교육 방식을 거부하고 있는데, 기성 쁘띠 부르주아지계급이 학력자본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문화적 유산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인 반면,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예술가도 이들에 포함된다)는 문화유산은 많은 반면 학력자본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사실을 간파한다면 그 이유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지식을 시험해보면 파리의 초등학교 교사들(지방의 소규모 초등학교 교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경영자들, 지방의 의사 또는 파리의 골동품상들은, 언제나 학교를 통한 취득 방식에 따라 다니는 신중함이나 조심스러움, 절도(節度)에 대한 의식(意識)과 같은 요소보다는 오히려 자신감과 후각(Flair) 더욱이 지식을 덮어서 감추기 위한 허세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함을 알 수 있다. .... 아주 특징적인 모습이나 외양, 언행, 자세, 독특한 말투나 어투, 매너나 상투어를 갖고 있는 한 리셉션이나 회의, 인터뷰, 논쟁, 세미나, 위원회, 협의회 등 오늘날 가장 중시되는 시장에서 그 나름대로 하나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최종철 옮김, 새물결, p. 178.


 회사 채용을 할 때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형 직원을 채용하고자 하는 기업은 학점을 별로 안 보고 면접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난 기업이 CJ E&M이었다) 아울러, 기성 쁘띠 부르주아지계급과 같은 사람을 원하는 곳에서는 학력이 높을수록 좋을 것이다. (고시를 보는 모든 직종과 대학원 이상의 유명 대학 학위를 선호하는 기업 및 연구원) 자기 성향을 알고 그에 따라 내가 취득할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그렇게 목표를 달성한 나를 원하는 일자리가 곧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임을 보장하기 위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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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자유사상 멘토의 세속적인 계약 : ‘스타의 강의

크레비용 2세의 « 몸과 마음의 탈선 »(1738)* 에서

 

 

     크레비용 2세의 « 몸과 마음의 탈선 » 안의 세번째 부분에서 보여지는 스타의 유명한 대화는 교양 소설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방법을 구성한다. 성공한 남자인 베르삭은 경외의 대상이며 젊은 영웅 메일쿠르를 매혹시키고 이 글 안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탈선하고 규칙을 위반하는 전형을 가진 이 유혹자는 그가 정복하고 오해한 여자들에게 아첨을 받으며 그의 젊은 생도에게 사회생활의 성공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메일쿠르가 처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그에게만 예약된 지식은 젊은 인간이 받은 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베르삭의 견해는 그 견해의 밑바탕이 되면서 그 견해를 돋보이게 하는, 바로 이전 세기의 정직한 이론가들과 도덕가들이 제시한 견해와 이어진다. 베르삭의 모든 실증은 세상적인 것은 타락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베르삭에 따르면 그의 저서에서 정의된 예의범절의 규칙, 특히 슈발리에 드 메레의 저서에 있는 규칙은 젊은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계약 속에 이상화된 우주로 착각한다면 무지한 젊은이를 오로지 실패와 조롱거리로 이끌 수밖에 없다. 베르삭 그리고 소설의 화자에 따르면 정직은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직은 사회 속에서 욕망의 참혹한 현실과 세속적인 이야기를 장악한 이득이 보이지 않게 덮는 예의바른 용어들의 집합이다.  17세기 자유사상이 갖는 전형적인 관점에서 베르삭의 강의는 거짓된 가치를 낱낱이 드러내고 정직한 인간들의 사회가 가진 허울뿐인 성격에 대한 품위 있는 비판이다.

 

     그의 제자를 깨우치기 위해 베르삭은 우선 관찰하는 태도를 추천한다. 그것은 젊은이를 스스로 완벽하게 하고 우수한 형태를 정의하는 가치체계에 자신을 내맡기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그로 하여금 궁금한 것을 밝히고 단순화시키는 지식을 공유하게끔 하는 태도이다.

내가 오로지 너를 깨우치게 하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의 의심을 해소하는 것에 항상 진심으로 기쁨을 느낄 것이고 […] 그리고 네가 보아야 하는 그대로의 세상을 네게 보여주는 것에 기뻐할 것이다. (208)

     베르삭은 따라서 예의범절의 교수 역할을 하며 사회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 세상의 학문 »(ibid.) 의 기초를 젊은 영웅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 진심으로 » 반대하는 « 방법들 »을 가르쳐준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에 대한 걱정 혹은 도덕적인 고려 없이 외면에 대한 존경을 요구한다. 메레에 의하면 정직이란 또한 연구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유쾌하게 만들고 측정할 수 있는 자질을 확실히 굳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슈발리에에 의하면 정직과 도덕성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오네똠은 좋은 도덕성에 대한 영감을 유발하고 도덕성으로 가는 지침을 제시할 이성을 가지고 있는다. 반대로 베르삭은 그가 제자들에게 전수할 학문의 수많은 원칙들이 « 명예와 이성에 상처를 입힌다 »고 생각하며, 정직을 굉장히 폄하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정직은 오해를 통해 알게 되는 « 자질구레한 일들 »의 퇴적물에 불과하다. (ibid.)

     라 로슈푸코처럼 메레의 정직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 행동을 규정하는 규범의 목적론적인 관점을 제안한다. 때때로 미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로 쓰이는 우수함은 정직의 기반을 구성하는데, 이는 정직이란 관습이나 대화 상대와의 조화에 대한 걱정이 지배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순응적인 태도의 한 형태이며 하지만 그 자질이 선입견이나 용도 및 전통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애매모호함은 라 로슈푸코의 저서에서 특히 강조된다. 그의 많은 규범들은 이득과 위선이 지배하고 선보다 악을 더 신뢰하는 사회적 우주를 구성한다. 하지만 잘못을 각성하는 이러한 관점이 냉소적인 실용주의로 연결되는 대신, 다른 규범들과 특히 특정 몇몇의 고찰들은 참된 미덕을 기르는 사회적인 행동의 이상향을 설명한다.

     베르삭의 견해는 순응적 태도로서의 정직이라는 생각을 왜곡하지만 또한 자유사상의 세속에 대한 이론가들이 관심갖는 것을 지각하도록 허락한다. 표상의 주제인 오네똠은 그의 판단이 갖는 자유로움을 좀 더 잘 보존하기 위해 intus et libet, foris ut decet이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외면의 놀이로 표현된다. 슈발리에 드 메레의 라 로슈푸코와의 대화내용이 담긴 편지에서 격언들의 저자로부터 따온 주제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장소의 관습들에 몇가지 빚을 지고 있다. 그 관습들이 나쁜 것들일지라도 대중의 존경심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면적으로만 빚을 진다. 우리는 그 관습들을 실행해야만 하며, 관습들을 비판하는 전지구적인 이성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관습들을 수용하도록 유지해나가야 한다.

   크레비용의 소설은 베르삭의 역할에 관하여 젊은 메일쿠르와의 대화에 등장하는 통찰력이 있는 교육가의 모습과, 화자에 의해 외면적으로 표현된 그대로 허영심 많고 경박한 성공한 남자의 모습 사이의 대조를 증거한다.

그가 끊임없이 속이고 고통을 준 모든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허영심 많고 강압적이며 경솔한 그는 우리가 이전까지 보아왔던 사람 중 가장 대담한 댄디 보이이며, 결점들이 서로 대립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같은 결점들에 의해 여자들의 눈에 아마도 가장 소중하게 여겨진 사람일 것이다. […] 그는 있는 그대로이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다. […] 그는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의 정신이 갖는 우아함과 같은 우아함을 구성해주었고, 우리가 잡을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특징적인 멋을 낼 줄 알았다. […] 이 행복한 무례함은 자연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처럼 보였고 그에게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72-73)

     감탄하는 젊은 남자의 눈에 비친 베르삭은 성공으로 온몸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유혹적이고, 특이하고, 무례한 그는 자연스럽기 때문에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한 강의는 부분적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이 성공은 계산과 책략의 걸작이며, 외모는 극단적이라는 점을 깨닫도록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메일쿠르와의 대화를 시작하며 심각한 어조로 놀라는 그는 갑자기 선생과 제자 사이에 자리잡는 관계를 상세히 설명하며 대답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깨우치고자 하는 필요성은 나로 하여금 네게 나는 생각하고 사색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게 압박한다. 나는 뿐만 아니라 내가 네게 말하는 것들과 내가 네게 말할 것들에 대해 네가 가장 단단히 비밀을 유지할 줄 알 거라는 헛된 기대감을 갖는다. (209)

     베르삭에게 순응주의의 필요성은 두 개의 보완적인 태도를 갖는데 성공하기를 원하는 인간을 요구한다. 첫 번째 태도는 세계를 관찰하고 성공이 의지하는 두 개의 영역을 특별히 연구하는 태도이다. 두 개의 영역 중 첫째는 명성을 쌓거나 무너뜨리는 여자들이며 둘째는 시대의 특징적인 « 용도, 흥미 그리고 실수 »이다. (ibid.) 두 번째 태도는 인간의 본성의 해체에 내재해 있다. 베르삭은 예의바른 외모로 부패한 우주를 감싸는 위선자의 견해에 대한 지지로서의 이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정직이 갖는 특정 단면들을 강조한다. 멋을 실재하는 자질들의 결과로 생각하는 메레, 라 로슈푸코와 라 브뤼에르와는 달리, 베르삭은 세상에서 덕성, 멋 그리고 재능은 […] 순수하게 임의적이다” (209) 고 확신한다. 세속적인 가치들의 허위를 조금 더 잘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신용이 있는 조롱이라는 표현으로 그것들을 지칭하며, “변덕에 종속된” “변하는 주제들”, 그리고 일시적이며 심지어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 위험한 것들로 그것들을 정의한다. (ibid.) “조롱이라는 용어는 세속적인 판단의 자유와, 외면과 유행에 판단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일 사이의 단절을 강조한다. 우리가 조롱거리라고 판단하는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그의 제자들에게 베르삭은 뻔한 역설로 대답한다. “생각하고, 자주 사색만으로도 그들이 내재적으로 가장 많이 비판하는 실수에 빠지는 이들이여, 당신들에게 먼저 한 마디만 하지. 거의 모든 경우에서 우리 중 가장 깊게 사유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정신에 치욕을 주는 부조리한 의견들과, 형상을 망치고 제약하는 현상 유지의 책임을 지운다.” (210)

     이 모순에 대한 해명은 세속적인 것이 제안하는 마지막 일들에 내재해 있다. 즉 사회에 잘 보이고, 그를 통해 평판을 얻는 일이다. 정직에 대한 이론가들의 어휘는 새로운 뜻 정의의 표적이 되고, 그때는 라 로슈푸코의 특정 몇몇 격언식의 정의를 생각나게 하는 방식에 의해 비방하고 단순화를 한다. “조롱이 우리를 즐겁게 할수록 조롱은 우아함이고, 멋이고, 하나의 정신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조롱을 한번 사용해야만 우리가 싫증이 나며, 그래야만 우리가 사실상 조롱에 걸맞는 이름을 지어준다.” (210-211)

     설명된 정체성의 관계는 의미 작용들을 가져다 쓰고 있는 사회의 관점에 의해 바뀌는 의미 작용들의 상대적 성격을 강조한다. 단어와 사물 및 사상 사이에 변화하는 관계는 정직에 대한 견해의 기반이 되는 이상주의, 그리고 여기서 위선의 원인처럼 보이는 것을 문제삼는다. 예의를 차리고 고귀한 전통으로부터 세속받은 감정 관련 어휘는 크레비용 그리고 마리보의 작품 안에 등장한다. 이는 마치 의미들만이 혹은 허영만이 역할을 수행하는 편리한 관계의 장막과 같다. 두 저자들의 작품 안에서 발견되는 예의바른 언어에 대한 비판그리고 모든 언변의 상대적이고 동기부여를 받은 성격에 대한 증명은 여기서 세속적인 관계 총체에까지 펼쳐져나간다.

     이 세상은 가식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성공을 향한 길은 성공의 해체를 통해 뚫려있다. 베르삭은 오네똠의 이상향 안에 들어있는 환상, 자연스러움의 환상을 잡아낼 기회를 노린다. 메레와 라 로슈푸코의 작품 속에서 오네똠은 그의 본성을 완벽하게 하고 부자연스러움을 피함으로써 얻어지는 미적 성공을 구성한다.

     베르삭에 따르면 사기 치는 덕성과 표면적인 자질들의 거짓된 화폐가 오가는 우주 안에서 성공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의 행동에 완전히 영향을 주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자유사상 멘토는 세속적인 정직 안에 들어있는 모순을 새로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복종하는 것은 진정성과 반대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형상을 일그러뜨려야만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 (209) 하지만 그것은 본성을 더럽힐뿐 아니라 본성을 다시 한번 아예 타락시켜야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항적인 원칙은 잘못된 의견 하나를 고치면서 원칙이 제시되는 상황으로부터 그 권위를 끌어온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성에 대한 무지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항상 명성과 재물을 전혀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항상 덕망 있고 자연스럽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 마음과 정신은 서로 상하게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받으며, 그 과정에 모든 유행과 가식이 있다. (ibid.)

     이 부패는 신중함의 결과인 것처럼 제시된다. 세속적인 성공과 자기만족의 걱정은 우수함이나 때때로 세속적이고 미적인 완벽에 대한 탐구의 형태로 참가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사회적 특권이 필수불가결한 요구사항을 구성하는 우주 속에서 서로 유지하기 위한 필요성에 대응된다. 이 신중함과 성공에 대한 탐구 사이의 연계성은 궁정에서의 삶이 갖는 요구사항을 생각나게 하는데, 특히 그라시안의 Oraculo Manual 안에 형성된 것과 같이 생각나게 한다. 베르삭의 견해는 한편으로는 궁정의 삶이 갖는 특징을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의 전통을 비판하는 움직임에 속하는 현실주의 사상의 노선에 속해있다. 자연법의 문제에 적용되는 홉스의 반이상주의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칙의 영역에서 이곳에서 그의 동등한 대상을 찾는다. 행동의 규범은 끝에서부터 혹은 인간의 완전함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고, 대신 규범에 영향을 끼친 행동들로부터 연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보존할 방법을 찾으며 세속적인 사람에게는 생존이란 획득하고 유지하고 심지어 명성을 쌓아나가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먼저 신중함과 그가 소중하게 얻은 것들을 보존하고자 하는 걱정에 의해, “방법이 […]  부족한것은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간은 스스로의 형상을 일그러뜨려야 한다. (208) 덕성과 공공에 노출된 자연스러움은 그것들을 애매모호하게 소유하고 있는 이를 비난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ibid.).

     사회적 거리두기 현상의 전략적인 수용에서 자기만족의 예술이 생긴다. 이러한 멋에 대한 경멸적이고 실용적인 관념은 사회에서 도달하기 쉬운 목표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데 왜냐하면 그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완벽에 대한 탐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메레와 그라시안이 제기한 우수함과 모방할 수 없는 게 뭔지 모른다는 사고방식에 의해 베르삭은 충분히 잘 확산되지 않고 실행에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는 몇가지 규범들을 대체한다. (211).

     그 규범들의 첫째는 외면적으로 세속적 삶에서 여자들의 힘에 굴복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삭에 의하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동시에 가장 멋있는 방법보이는 여자들에게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 안에서 오로지 여자들을 유혹하는 자만이 멋있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정신의 종류는 사실 무엇이 되었든 여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유일한 주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ibid.) 이 조언에서 멘토는 세속적인 삶 안에서 여성적인 영향력의 배타적이면서도 임의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그는 냉소적이고 폭로적인 방법으로 여인들의 상업활동을 탐구하는 데 정직하게 성공하고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슈발리에 드 메레의 몇몇 원칙들을 언급한다. 이 이전 세기의 작품들은 여인들을 찬양하면서 고급스러운 시류 이후에 귀족 사회 안에 널리 퍼진 여성들의 이 역할을 말해준다. 섬세함의 결정자인 여자들은 도덕의 제련 활동에 참가한다. 사랑받는 대상에 대한 존경을 요구하는 예의는 궁정의 사람과 오네똠의 섭렵이라는 이상향에 매우 잘 맞는 욕망과 정서의 통제를 제안한다. 하지만 크레비용의 시대에서는 이 이상주의가 욕망과 허영의 회전목마를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지목하도록 예정된 단순한 일상 언어의 지지와 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상주의의 가치는 분명히 떨어진다.철학자들의 내각에서 마리보는 이러한 언어를 감언이설의 사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이 언어가 없다면 조잡하고 악하게 보일 것들을 번역하고 사랑스럽게 고치는 역할을 한다. 환상을 깨는 이러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세속적인 삶에서의 여성의 헤게모니는 더이상 실재하는 자질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없다. 정확히 베르삭의 세속적인 자유사상은 변경과 조정의 행태가 권력의 의지에 따른 행위의 기반이 된다 생각하는 임의성의 비판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건 단지 여자들이 원하는 대로 모두 해주도록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마침내 그들을 지배하기에 이르는 행위이다.” 라고 베르삭은 그의 대화 상대에게 선언한다. (ibid.)

     세상에서 지배적인 허위와 우발성은 자유사상의 실행에 필요한 조건들이다. 위선자로 비판을 받은 정직에 대한 견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사상적 조정자의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견해는 타인들을 간파하려는 방법을 찾으며 궁정의 삶이 갖는 특징적 태도를 숨기는 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타인들을 속이기도 해야 한다. 이 충격적인 조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정의된 신중함의 예술이 갖는 논리적 수순과 같이 보인다. 라 로슈푸코는 격언 245에서 자신의 사교적 기교를 숨길 줄 아는 것은 매우 큰 기교다라고 분명히 인정하며, 그라시안의 Oraculo Manual« 무지한 척할 줄 알기 »를 언급한다. 베르삭은 동일한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타인이 조금 더 스스로를 드러내게 유도하고 타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스스로의 판단력과 정신을 상기시켜주지 않기 위해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을 숨기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이 네게 보여주는 악덕에 의해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 말고, 절대로 사람들이 너를 간파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발견했다고 자랑하지 마라. 자신이 아는 것들을 모두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정신에 대한 열등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보통 더 낫다. 고찰로 이끄는 것에 의지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척하며 숨기는 일과, 너의 이득을 위해 너의 허영심을 희생하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211-212)

     또한, 순응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간파하는 데 실패하면서 조금 더 확실히 다른 사람들을 추측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것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타인의 의향과 열정을 숨기도록 언행을 조심하는 예술은 타인에게 적용되는 이득과 감정을 발견해야 하는 아첨꾼의 필수 요건이다. 하지만 베르삭의 냉소적인 조언들은 임의적 조정의 끝을 보는 이전 세기의 도덕가들이 가진 신중함의 원칙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궁정인과 오네똠이 갖는 이상적이고 심지어 유토피아적이기도 한 몇몇 개념들을 반박한다. 사실 베르삭은 대화 상대에게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을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그들을 알기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시험을 보려는 정신을 상기시거나 그들에게 교훈을 주는 체하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다. 이성적인 사람은 악덕함을 비판하는 대상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기보다는 대상의 결점을 숨겨주며 지원하고 그 결점을 못본 체한다. 만약 인간을 공부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오로지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면서 발생하거나 타인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실수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때로는 타인을 보다 확실히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을 따라하는 것처럼 행동하라. 우리가 갖는 최선의 예시와 우리의 찬사를 통해 그들로 하여금 우리 앞에서 발전하고, 우리의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의견에 기울일 수 있도록 하게끔 도와주자. 이는 자신을 버릇없는 체하게끔 놓아두어야만, 다른 사람의 버릇없음이 전혀 빠져나가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ibid.)

     이와 비슷한 영역의 관련 서적에 등장하는 궁정의 삶과 세속적인 삶의 도덕화는 베르삭의 체계에 비추어보았을 때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그 영향력이 17세기의 정직에 대한 계약에 의해 결정된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의 책은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깊게 젖은 궁정인의 역할에 대한 이상주의적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궁정인은 폭군의 « 교화 »를 꾀하고 그의 조언들을 통해 도덕적, 정치적 악에 대항하여 싸우기 때문에 철학에 좀더 가까이 가려 한다. 이 권력의 도덕화는 또한 정신론의 논의에서 오귀스트를 마치 부정의, 불관용 그리고 잔혹성이 재물에 대한 호의로 잊혀질 수 없는 폭군과 악덕한 참모들에 둘러싸인 사람으로 묘사하는 슈발리에 드 메레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메레에 의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의해 놀라지만 « 폭군의 재능 »에서 « 더 위에 있는 가치를 잡아낼 줄  아는 » 사람들을 구별하게 되는데 이는 « 정직이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듯 » 통치하는 사람들의 « 부정의한 야망 » 의 결과이다. 타인을 만족시키고 예의범절에 굴복할 것이라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카스틸리오네도 그의 뒤를 따른 메레도 낡은 철학의 유산인 권력과 사회적 관계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는다.

     베르삭이라는 인물에게는 세상에서 좋은 성공이나 나쁜 성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명성을 쌓고 유지하는 단 한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더욱 잘 지배하기 위해 임의적인 규칙에 굴복하는 것이다. 세속적 행동의 규범과 도덕적 선입견 사이의 극명한 단절은 젊은 메일쿠르를 위험한 환상으로부터 치워내는 것만큼이나 쉽게 그를 설득하는 자유사상가가 완전히 가정하고 있다. « … 세상과 (도덕은) 항상 서로 합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은 보다 더 자주 우리가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홀로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217-218)

     지배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회 내에서의 생존을 위한 조건처럼 보여지는데 이는 특권의 상실이 사회에서 죽음의 한 종류와 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특권이 순수하게 임의적이고 실재하는 자질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특권은 자질이 아니라 방법 혹은 테크네에 의해 얻어진다. 베르삭은 그의 대화 상대에게 특권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얻어 정리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특권에 의해 생산된 효과에서 벗어난다. 이 실용주의는 궁극적이지 않고 기계적인 인간관계의 관념에 의해 지지받는다.

베르삭은 사람들은 그들을 놀라게 하는 것에만 감응하고, […] 특이성만이 인간들에게 그 효과를 생산해낸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특이해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닮고자 하는 대상이 사상이건 방법이건 너무나도 아무도 닮지 않는 척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하는 오직 하나의 결점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장점보다 더욱 더 많은 정직함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의 걸작품이란 특이성,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예술에 대한 보다 높은 차원의 의문의 대상이 된 모방 능력의 동맹 관계이다. 이 특이성이 없으면,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놀라게 할 수 없으며 그로 하여금 모방하게 하는 정신의 유연성 없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만족을 가져다줄 위험을 갖는다. 프로테가 말했듯 그래서 사람은 모든 형상을 취하면서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 “멘토의 단언에 따르면 당신이 모든 것이 됨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쉬운 데는 전혀 변함이 없다.” (212) 진실하지 않음과 순간에 따른 변화는 이 보여지기 위한 예술에서 핵심 요건이다. 성공한 사람은 시늉만을 하면서 시늉의 대상이 갖는 실수와 결점에 대해 그 자신은 관람자가 되고 그래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을 확신한다.

     효과를 생산해내는 것에 관하고 결과를 추적하는 것에 관하지 않은 베르삭의 방법은 세속적인 삶의 다른 영역들에 적용된다. 대화 속에서 대화를 독점하고 관객들에게 재고할 시간을 남기지 않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야 한다.” (216) 베르삭은 비방을 계속한다. “좋은 말투의 핵심은 설득하기 위한 방법이므로 세심함 없이 실행되어야 한다. 사실, “아무것도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지 않고, 아무것도 당신의 쾌락과 당신의 정신에 대한 더 고상한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219) 좋은 동료로서의 말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베르삭의 견해에 따르면 정직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 세속적인 의미로 해석되든 도덕적인 의미로 해석되든 상관없이 더 이상 정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방에 더욱 집중하며 우리는 서로를 두려워하므로 서로를 구별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한 멍청이가 악의를 향해 자신을 바꾸었을 때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정신의 소유자보다 더욱 더 존경을 받는다…” (ibid.) 정직을 연구하는 이론가들은 정직이 타인을 상처입힐 수 있을 때 조롱을 비판하는 데 합의한다. 베르삭은 정직이 협박의 효율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모른 체하기, 가식 그리고 경박함은 잘 지내는 사람들의 관계 유지를 위해 차용되어야만 한다. 정직의 원칙들은 이 세속성의 강의에서 가치를 잃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비방하려는 동기에 의해 이미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좋은 말투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아야하고 또한 현학적인 태도에 반대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경우거나 아니면 그의 경박함, 무지 그리고 정신의 메마름을 장점의 한 가지인 척하는 경우이다. (220-221) “좋은 말투는 억제된 집단 내에서 차별화를 가져오는 특징, 혹은 카스트와 같은 인식을 위한 적절한 규약의 한 종류처럼 보인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의 말투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말투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서만 그 좋은 말투를 찾을 수 있다고 제대로 결정되어 있다.” (218)

     오네똠의 귀족적인 모른 체하기, 카스틸리오네에 의해 정의된 스프레짜투라의 유산인 여기에서 우아한 건방짐은 교만한 태도의 신호인 지배적인 영역에서의 선입견의 효과인 것처럼 표현되었다.

아주 많은 겸손과 함께하는 깊은 수준의 무지는 진실로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극도의 자만과 함께라면 나는 당신께 그 무지는 아무런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나저나, 당신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걱정될 정도라면 당신은 보통 누구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219-220)

     여자들 사이의 관계들은 베르삭에 의해 동일한 냉소주의로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대소동이 있어야만 그들의 관심을 상기시킬 수 있고 재고할 기회가 부재해야 어떤 불가항력적인 열정이 그들을 이끌 수 있다고 그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게 더 어울린다. (217) 귀족 계층을 기리는 점진적인 상승의 예술은 여기서 공감의 한방에 희생당한 유혹당한 여자를 설득하고 그에게 손쉬운 핑계를 제공하는 무모함과 끝이 없는 파렴치함에게 공간을 내준다. (ibid.)

     세속적인 관계는 부패를 만드는 주인에 의해 만들어지며 이는 권력관계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때는 지배받는 것이 지배받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므로 관계가 아무렇게나 가치를 정하여 지배하게 된다. 이는 정직에 대한 연구가들의 원칙들이 사상의 거짓됨에 의해 쉽게 속지 않기 위해 해체해야 하는 사상들처럼 표현된 이유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겸손에 가치를 매기려는 걱정, 남들을 만족시키려는 가장 큰 걱정은 세상 속의 위험한 태도처럼 낙인찍힌다. 그 태도는 그 태도를 연약함의 위치에 놓아두는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 태도는 대화 상대들의 지배적인 의향이 자유롭게 파고들 공간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213) 베르삭에 따르면,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한다고 당신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조금 더 겸손하면 당신은 그들의 허영심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ibid.) 세속적인 관계에 대한 탈 환상적인 이 세계관은 실행에 옮기기에 위험이 따를 뿐더러 거짓됨으로 얼룩진 미덕을 보는 관점에 대한 의심이라는 필연적 귀결을 낳는다. 재물이 많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라 로슈푸코의 몇가지 특정 격언들을 회상하게 한다.

나는 [..]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가치를 매겨야 한다고 생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입을 다물면서 그 자신이 사회에 대해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비판받아야 하는 대상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겸손하기로 강요받았다고 믿는 교만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지 알지 못한다. (ibid.)

     베르삭의 조언들은 간접적으로 거짓된 덕성을 드러내는 견해가 냉소적인 태도의 전초기지로 기능할 수 있는 사실을 조명하고, 세속적인 도덕가들이 문제삼을 수 있었던 의심을 이해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짜 정당화는 베르삭의 견해에 의하면 지배의 위치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의 관점에서 부차적이다. 세속적인 행동은 한 가지 선택지, 지배하는가 지배당하는가 중 하나만을 갖게 한다. 신중함, 남을 불만족시킬 것에 대한 두려움, 배려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능욕하게 북돋우며, 평판에 대한 자비가 없는 이 싸움은 전략적으로 공격적인 태도 외의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은 그들을 쉼없이 우리의 자존심이 원하는 대로 정화시키는 것보다 더욱 확실하다. […]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을 호의적으로 만들려 애쓰는 광경을 볼 때보다 우리를 심각하게 판단하는 경향을 갖는 때는 없다. (ibid.)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장면을 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장면을 강요해야 하는 필요성은 다른 위험을 동반한다. 자신의 자존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려는 진실된 사람은 성공이 그의 열정에 대한 영구적인 통제를 요구할 때 위험하다. 베르삭의 만족감에 대한 찬양은 순수하게 이런 행동의 바깥에 존재하는 특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장점을 내적으로 방지당하지 말자. 나는 그것을 원하지만 그것을 가진 체할 뿐이다. 특정한 자부심이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말투에, 우리의 몸짓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에 묻어나오게끔.” (ibid.)

     여기서 설명하는 인물은 극장과도 같이 보이는 공동체의 공간을 전복시키고 때때로 관객 혹은 희극인과 같은 느낌으로 오네똠의 이미지를 왜곡한다. 이 인물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예상하며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는 기다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베르삭의 견해에서는 사회적인 놀이의 수락은 세속적 가치의 몰이해와 열정의 섭렵에 대한 걱정에 기반한 이중성의 일정한 태도와 함께 한다. 성공하려는 자에게 필요한 결점인 자만심을 찬양하며, 멘토는 젊은 영웅에게 다른 사람에게 속아넘어감으로써 스스로에게 더이상 속아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선의로서 건방지고 원칙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자만심을 사유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유혹의 손길에 바쁘고 무례함이 갈때까지 가서 성공 자체에 절대 취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큼 성공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선의의건방진 이, 진정성으로 허영심을 가진 사람은 그의 열정에서 멀어지게 하는 힘에 치인다. 자유사상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인정하고 이를 지배 전략의 기반으로 삼는다면, 그 사상가는 그의 본성을 숨기고 열정과 가식을 더럽히고 다른 사람을 조종하기 위한 옳은 태도를 선택하려는 계율의 결과인 내재적 자유를 확인한다. “나는 내가 겉으로 보이는 것, 극렬한 아픔 없이는 내가 정신을 망치는 결과에 다다를 상황과 굉장히 다르게 태어났다.” (214)

    자아는 전략적 목표에 의해 거짓을 꾸미고 행하는 열정의 모방을 채워야만 하는 빈 공간처럼 보인다. 베르삭에 의해 정의된 세속성의 이상향은 금욕적인 사람이 주는 깨끗한 본성으로부터 박탈당한 채 남을 속이고 조종하는 능력 안에서 분명함과 권력을 찾는 사람이다. 현학자인 멋진 청년의 신앙고백은 이 관점에서 모순적이다. 세상에서 얻은 신용, 배려심 그리고 성공은 순전히 임의적인 기준 위에 놓여있으며 곡해할 수 있는 규범들에만 대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삭은 제자들에게 거짓된 것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특히 여자들을 유혹하고 정복 리스트를 늘리기 위해 소유해야 하는 능력의 특출난 성격을 강조한다.

정신 속에서 다양성, 그리고 스스로 찾은 순간이 당신을 요구하는 성격을 갖기 위한 항상 제약 없는 확장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상냥함이 있는 부드러움, 풍성한 관능, 교태 섞인 수작은 어떻게 가질 것인가감정 없이 열정을 가지고, 측은함 없이 울고, 질투심 없이 동요하는 이런 것들이 당신이 즐겨야 하는 역할들이고, 당신이 되어야 하는 역할들이다. (215-216)

     세속적 성공이 유혹된 아름다움의 카탈로그에 펼쳐지는, 많은 재물을 쌓은 이 사람은 오네똠에게 적절한 변태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유연성시기적절함에 대한 센스 그리고 예의바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적인 역할의 레파토리를 사용하는 것은 위선과 조작에 속한다. 베르삭의 실증은 특정한 특징들이 잘 알려진 가치의 비방과 규범으로의 복종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형상을 찾는 연구 사이의 모순을 이해하도록 허락하는 현실주의적 사상에 붙어있다. 전통, 저서 그리고 옛날 것의 철학이 갖는 이상주의의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는 모든 사회적 행동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의심을 품게 한다. 우리가 사실처럼 생각하는 것들을 위한 이 기본적인 가치들의 거부는 효율성, 권력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확신하기 위한 방법을 지키기 위한 능력, 그리고 하나의 영웅심의 형태를 추구하는 데서 끝난다. 마키아벨리부터 시작하는, 정치 및 법 철학의 영역에서 끝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고 대신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적 조류는 에너지와 힘에 대한 찬양으로 이끈다. 홉스에 따르면 자유주의적 사상을 선포하는 쾌락주의적 및 공리주의적 개념에 따르면 강한 권력이 시민의 안전과 편안한 삶을 보증한다. 그라시안에 따르면 오네똠과 초인은 개인적인 권위의 환상에서 탈피한 연구에서 같은 개념으로 합치한다.

     크레비용의 시대에서 이러한 현실주의적 조류의 영향력은 소설 속에서 고전적 이상주의, 귀중히 여겨진 가치들 그리고 영웅들과 오네똠의 인물들에 의해 확대된 귀족사회에 대한 패러디와 비판으로 이끈다. 특히 마리보와 크레비용의 작품 속에서는 진실을 담지 않는 예의범절의 언어에 대한 반항을 설명하지만 이 안에서 애매모호한 활용은 부패한 고귀함으로 스스로를 이끄는 자유사상가들의 견해의 특성이다. 처세술의 규칙들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다시 쓰여지고 예의바름과 도덕성의 세련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에 고귀함을 특징짓는 징후들은 소설과 희극이 반영하는 사회적 상상 속에서 가치를 크게 잃은 것처럼 보인다. 1737년에 초연된 거짓된 친구에서마리보는 백작 부인의 칭호를 경멸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조명하고 사회적 조건의 덕성을 구별해낸다. 희극의 유일한 귀족 등장인물인 백작이 필요한 경우 하인들을 매수하여 돈으로 산 결혼을 종결지으려 할 때 돈에 의해 부당하게 취급된 열정적인 영웅들의 역할은 피폐해진 평민 도랑트에게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 인물, 이 능동적인 의지와 조물주와 같은 차원의 조종의 예술의 에너지를 보유한 사람은 하인 뒤부아다. 크레비용은 젊은 멋쟁이들과 수작부리는 여자들이 때때로 동앙젹인 장식과 환상적인 고가구에 관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귀족의 세계에 한정짓는다. 그는 풍자적이고 가치를 절하하는 방법으로 고전적인 이야기의 예의범절의 틀 속에 머물러 있고, 몇몇 이야기의 외설적인 특성은 언어의 정직함과 이야기의 목적이 되는 상황들의 외설 사이의 어긋남을 정확히 제공한다. 행복에 대한 개인적인 도덕성, 부르주아의 영웅들, 갑자기 출세한 사람이라는 주제 등은 로마네스크적 세계에서 낯선 것들이다. 사회적 변이를 반영할 수 있는 가치들에 대한 행동 규범에 기반하지 않은 채, 자유사상 멘토의 인물상은 전통적 도덕성과 고전적 이상향에 반대되는 우수함과 영웅성의 형태에 대한 연구와 함께 세속적 관계의 냉소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세계관과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한다. 라클로와 사드의 세기에서의 나중 시대처럼 크레비용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그의 이야기에서 가능한 대상과 같은 센티멘탈리즘과 부르주아적 정직에 대한 거부를 강조하며 부패한 귀족 사회를 표상한다. 만약 이전 세기의 오네똠의 인물상이 특정한 가치 절하를 겪었다면, 베르삭의 강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만족시키고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의해 강요된 매혹을 주장할 것이다. 오네똠과 자유사상가는 방법의 외면성과 선입견으로 무마된 판단의 내면성 사이의 단절이라는 같은 전통에 관련되어 있다. 각각은 이 적응성과 소피스트와 궁정인을 특징짓는 타인을 추측하는 재능을 소유한다. 그의 마지막 소설 아테네의 편지에서 크레비용은 메레가 젊은 청년들의 귀감이라고 생각하던 알치비아드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1771년에 표현된 이 인물은 오네똠의 자질에 대해 스스로를 변장시키고 유혹하는 능력만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의 세속적 성공은 양성간의 전쟁에 의해 획득된 승리에 한정되어 있다. 다중의 재능을 가진 영웅은 공허함과 반복으로 비판을 받는 잔인한 유혹자가 되었다. 1738년에 베르삭의 견해는 전 세기의 이론가들이 가진 오네똠의 이상향과 위험한 관계 속의 비극적인 궁지 사이의 한 단계를 강조하는 듯 보인다.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사회적 기능을 잃었지만 소설의 독자에게 꿈을 꾸게 할 힘은 잃지 않은 궁정 귀족의 옛날의 전유물인 거대함과 영웅주의와 우아함에 대한 미적 가치들의 향수를 설명한다.

 

캬롤 도르니에



* 알랭 몽텅동 편집, « 오네똠과 댄디 » (튀빙겐, 1993, Gunter Narr Verlag), 107-121쪽에 등장.


  이 글을 번역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만나는 인간 사회에도 베르삭의 가르침과 오네똠의 정의가 그대로 적용됨을 느낀다.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부류의 사람들은 가식적이고 무례하다. 그때그때 말하는 게 다르다. 내 주위에는 오네똠이 너무 많다. 번역을 하면서도 주위의 몇명이 현재 상황에 그대로 대입되는 걸 느꼈다. 

  17세기에 등장한 자유사상은 내가 좋아하는 '쿨함'과 잘 연결되는 느낌이다. 도대체 쿨해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이 글과 같이 쿨함을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하나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면 참 멋있겠다. 이러한 설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고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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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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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조성


프랑스어 공부를 할 때에 띄울 인터넷사이트: 네이버 프랑스어사전, 구글 번역, 구글 이미지검색, 트위터 요렇게 네가지.

다음은 프랑스어 공부를 위한 나의 준비물이다.

- 불한사전 (네이버 프랑스어사전 추천)
- Concise 불영-영불사전 (Collin's 아이폰 앱 추천)
- 구간반복이 가능한 스마트폰/MP3플레이어/컴퓨터
- A4 7등분 단어장
- 받아쓰기 공책

프랑스어->한국어 단어장과 한국어->프랑스어 단어장은 별개의 것이다. 필요하다면 2개 다 만들어야 한다. 

공통


프랑스어를 들은 다음에 바로 머릿속으로 한국어로 떠올리는 건 굉장히 나쁜 습관이다. 이 습관을 끊기 위해서는 영어로 된 토론 영상을 몇 개 시청한 다음 프랑스어 토론 영상/음성을 들으면 된다.

프랑스 일반인의 캠핑/요리/여행/음악/미술/스포츠/인테리어/등산/낚시 등에 관심이 없어도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학문이 아니라 생활이 프랑스다워야 언어가 는다.

모르는 단어 하나는 잘못 읽은 메모리로 인해 발생한 CRC 오류 하나와 같다. 프로그램에서 예상치 못한 오류 하나는 프로그램을 종료시킨다. 모르는 단어는 듣기/읽기 전체를 마비시킨다.

프랑스 방송을 볼 때에는 동시통역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면 절대 안 되고 내가 프랑스 네이티브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언어는 프랑스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문제의 vrai/faux/on ne sait pas를 어떻게 분류하는가? 이것 아니면 저것일 경우에는 vrai/faux로 바로 갈릴 수 있다. 이것이라고 제시했는데 사실 이것이 아니라 저것이라는 것도 알려줬다면 faux다. 하지만 이건 이렇다. 라고 했을 때에는 섣불리 faux라고 할 수 없다. 이게 이렇다는 말을 안 한것뿐이지 아직 거짓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거짓이 확실할 때에만 faux고 처음 듣는 소리인데 듣기에서 언급을 안 했다면 on ne sait pas다.

프랑스 뉴스레터를 읽을 때에는 요약된 글이 1-2문단으로 정리되어 있으면 그것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뉴스레터를 읽는 목적은 독해력 향상이 아니라 다양한 프랑스 관련 분야에 대한 컨텐츠를 여러 개 동시에 접함으로써 그 나라의 현지의 느낌을 잃지 않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링크 타고 들어가 글을 끝까지 보며 내용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자. 현지의 이야기는 내가 지식으로 축적할 필요가 없다. 다만 프랑스어에 대한 감각만은 체득해야 한다. 마치 영화관이나 병원에서 잠깐 눈에 띈 팜플렛을 슬쩍 넘기는 것처럼.

프랑스어는 속으로 번역할 때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 바로 한글로 번역할 수 없다. 영어로 번역할 때 english accent를 상상하면 더 잘 된다. 왜냐하면 내가 한영 통번역을 공부할 때 american accent를 상상하며 공부했기 때문이다. american과 english를 구분함으로써 한글과 프랑스어가 충돌되지 않게끔 하자.

프랑스어와 영어에서는 우리나라만큼 자유롭게 ..화, ..적 등의 말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쉬운 말로 풀어서 말하고 쓰는 방법이 훨씬 낫다.

TCF를 풀 때의 느낌은 예전의 TOEFL을 풀 때의 느낌과 같다.

DELF 후기/팁은 프랑스 사이트에 많다. 구글에서 검색하도록 한다.

프랑스어 단어의 특성을 보고 내가 듣기와 읽기만 주로 할 단어라면(이런 단어는 내가 외우는 총 단어의 70%를 차지한다) 불->한 방향으로 외우고(한글 부분을 가리기), 내가 쓰기와 말하기를 주로 할 단어라면(30%) 한->불 방향으로(프랑스어 부분을 가리기) 외운다. 

1단계. 불한사전으로 한글 뜻 파악해가며 읽기 가능
2단계. 들으면 한글로 이해가 가능(듣기 가능)
3단계. 고심한 후 한국어로 의도한 내용을 쓰기 가능
4단계. 즉각적으로 프랑스어로 의도한 내용을 말하기 가능
당신이 알고 있는 프랑스어 단어들은 각각 어떤 단계에 있는가?
단어들이 각각 몇 단계인지에 대한 자료를 종합하여 도수분포표로 나타내면 4단계-3단계-2단계-1단계 순으로 도수가 커질 것이다. 아래 단계에 있는 단어들을 조금 더 많이 접할 기회를 만들어 그 단어들의 단계를 차근차근 올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어 단어 암기의 단계는 대략 이렇게 생긴 것 같다.
1단계. 그림/일러스트와 함께 물질적인 단어를 관련된 것끼리 묶어서 정리해놓은 교재를 통해 암기
2단계. 간단한 회화/표현을 통해 문장성분으로 쓰이는 단어 암기
3단계. Concise 사전(외국어->한국어)을 찾아보면서 암기 + 문법책 공부를 통한 단어 암기 보조
4단계. Concise 사전(한국어/영어->외국어)을 찾아보면서 암기 + 실제 외국어로 써진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
5단계. 정밀한 사전(외국어->한국어)을 찾아보면서 암기
5단계까지 가면 그때부터는 외국어 단어를 암기하는 방법이 고정된다. 그때부터는 본인의 끈질긴 노력이 중요해지게 된다. 

트위터에 써진 한글이나 영어를 바로 프랑스어로 바꿔보아라. 막히면 네이버 프랑스어사전에서 한->프 검색을 한다.

TIME에서 프랑스어 번역이 안되는 문장은 구글 번역기로 돌리자. 

모르는 문제는 막판에 모두 찍어야 한다.
 

Compréhension Orale 듣기[각주:1]


프랑스문화원에서 프랑스 DVD를 빌린 뒤, 집의 DVD플레이어의 지역코드를 해제하고 프랑스 DVD를 넣고 프랑스 자막을 켠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프랑스어 자막을 넣어놓은 DVD가 많다) 그리고 맥북에어로 프랑스어사전을 켜놓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바로 검색한다. 프랑스 자막이 없는 DVD라면 인터넷에서 script를 구해서 TextEdit이나 메모장으로 띄워놓는다.

뉴스와 토론 기사를 먼저 보고 그 주제를 다룬 오디오를 들으면 듣기가 훨씬 수월하다.

코미디영화는 구어를 쓰고, OST가 없고, 항상 대사가 이어져야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가장 적합한 장르다. 그 나라 영화/드라마를 그 나라 언어 자막과 함께 보는 것은 언어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의 경우 프랑스어 자막을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물론 영화 avi파일도 구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자막은 진짜로 어딜 가도 못 찾는다. 따라서 따로 구한 자막 smi 파일을 avi와 싱크를 맞추려고 고심하는 수고를 더하지 말고 자막 혹은 시나리오를 찾는다면 인쇄를 해서 영화를 볼 때 같이 보고, 자막이나 시나리오가 없으면 유료 서비스이긴 하지만 canal+같은 VOD 사이트의 청각장애인 대상 버전을 찾아보자. 사실 실제로 내가 canal+에서 그러한 동영상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굳이 canal+가 아니더라도 다른 VOD 서비스에서 분명히 제공할 것이다.

듣기가 안 된다면 90%는 단어를 몰라서다. 본토 느낌이 나는 단어들을 프랑스 시와 프랑스 가사를 통해 익히자.

DELF B2 듣기 연습을 위해서는 깔끔한 발음과 표준어를 구사하는 뉴스 기사가 아니라 대학교 학생 라디오방송을 듣는 게 훨씬 낫다. 보통의 프랑스인이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를 생각하고, 그 보통의 사람이 하는 말을 최대한 많이 들으려 해야 한다. + france culture 

최근 프랑스어를 들은지 이틀 이상 지난 뒤에 프랑스어를 들었을 때 다시 적응하기 위해서는 15분 이상 계속 들어야 한다. 초반 15분간은 한국어 귀가 프랑스어 귀로 변하는 과정이라 잘 안들릴 수 있으나 단어의 이미지화에 중점을 두어 꾹 참고 들으면 어느새 안정을 찾고 편하게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어 그냥 틀어놓기는 이해도를 높여주지 않고 다만 유지할 뿐이다.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듣기 후 듣기 관련 문제를 풀어봐야 한다. 그리고 주관식 서술형에 답하기 위해 방금 들은 문장이 어떤 내용인지 그대로 혹은 다른 문장으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단기기억력을 활용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B2 듣기 자료는 가장 프랑스다운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프랑스의 6시내고향 같은 TV프로그램을 많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Brushing up on French culture and current events definitely helps. 

프랑스의 사단법인+NGO 사이트에 다 들어가서 이 기관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자료를 다 읽자 - Comprehension Orale을 위한 준비.

퀘벡식발음 toi 토이 ca 써 faire 파이르 dire 디레 : 영어를 배울 때 호주식 발음을 같이 배우는 것처럼 퀘벡식 발음도 익혀야 한다.

아주 조악한 음질로 듣기 연습을 해야 - 조악한 음질로 나오는 구린 이어폰을 끼고 듣기. 실제 시험에서 음질은 상당히 다양하다. France Inter나 TF1, Europe1 등의 인터뷰는 깨끗한 음질을 가지고 있지만, Telerama나 지역방송처럼 완전 조악한 음질의 지문도 튀어나올 수 있다. 

프랑스어 듣기는 바로 따라하되 분명하게 큰 소리로 지르면서 따라하라. Crazy English와 비슷한 방법. 분명하게 따라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는 건 그 부분의 단어/문법을 내가 몰라서 그렇다. 이 문제(자신감의 결여)는 script를 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면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문장을 하나 듣고 그것을 다시 내 입으로 똑같이 암송하는 훈련은 매우 중요한데,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발음, 빠른 말에 정신이 팔려 내용의 기억 활동이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프랑스어는 연음 문장으로 듣고, 단어 하나하나로 쪼개면서 그 단어의 문장성분/품사를 파악하라.

프랑스어 듣기를 하면서 그 상황 묘사를 상상해라. 상상력이 이해력이다. 없는 영상을 기존에 본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라. 그리고 상상력은 배경지식에 의존한다. 

구어체 단어나 숙어로 빠르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많이 듣고 그와 많이 이야기해야 프랑스어 듣기의 마지막 과제가 완성된다. 속된 표현과 유머는 현대인의 언어 활동 중에서도 정점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부를 위해서는 영화를 보거나 직접 현지인과 함께 살아보아야 한다! 구어는 머리가 아니라 반복과 생활화로 본능적으로 외워야 한다. 구어는 여러 뜻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짧은 단어들이 조합하여 압축적으로 뜻을 만드는 말이므로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방금 들은 문장/절에 대한 이해는 오로지 프랑스어로만 하고, 절대로 한국어로 통역/번역하지 않는다. Listening과 Speaking에서는 통역/번역을 하지 않는다. Reading과 Writing에서는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Listening과 Speaking에서도 통역/번역을 하게 된다. 한국어 방송을 들으면서 방금 들은 문장을 말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프랑스어도 이처럼 해야 듣기가 완성된다. 반드시 한국어를 거치는 과정이 없어야 듣기의 빠른 습득에 성공한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현지로 직접 떠나는 이유는, 외국어만을 쓰는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주변 환경을 외국처럼 꾸미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국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영어로 생각하기 위해 그림과 도식을 활용하는 Arrow English는 참 좋은 교재다. 그렇다면 프랑스어판 Arrow English는 어떤 교재일까? 한번 찾아볼 가치가 있다.

다만 모든 듣기를 이런 식으로 한다면 너무나 공부량이 과중해지기 때문에, 그냥 틀어놓아서 배경음악처럼 듣는 것도 필요하다. dictation이나 recite를 하는 듣기자료는 script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 듣기자료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게 적당하고, 나머지 70%는 iTunes podcast나 프랑스 사이트의 정기적으로 업로드되는 컨텐츠를 자연스럽게 휴일에 TV 보듯 보는 식으로 보고 듣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

듣기의 해답을 알 수 있는 key 혹은 답 그 자체는 다음의 위치에 있다.
que (key), sur le (key), au lieu de (답), il y a (답), 동사수동태 de (답)
답이 historique(형용사)라면 key는 historiquement(부사). 답이 technique(형용사)라면 key는 technologie(명사)
답이 une deuxieme raison이라면 la deuxieme .. 다음 문장
답이 밑줄 형태로 된 것에는 문장을 통째로 들어서 키워드만 가지고 다시 가공하여 내 말로 답한다.
1분동안 문제를 읽을 때 질문 문장을 읽고 키워드에 밑줄을 치거나 한글로 번역하여 문장 오른쪽에 써놓는다. 모든 문제에 이 과정을 적용한다. 1분이 지나기 전에 script가 어느 순서로 문제에 대한 key와 답 그 자체를 내놓을 것인지 예상해본다. 적의 예상 경로를 추적한다. 1분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므로 스톱워치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여유있게 1번과 2번의 과정을 끝낸다.
1 분이 지난 다음에는 적의 공습이 시작된다. 적이 하고 있는 말이 현재 어떤 주제 안에 있는지를 재빨리 파악하여 그 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11~13문제 중에서 바로 찾아내서 눈길을 돌린다.(이것은 정말 빨리 진행되어야 하며 그래야 key와 답 그 자체를 듣고 바로 메모할 여유가 생긴다.)
현재 말하고 있는 내용과 관련된 문제에 눈길을 돌린 상태에서 key와 답 그 자체를 들었다면 그것을 답 밑줄에 바로 써넣지 말고 질문 문장 오른쪽 여백에 속기로 메모한다. 체크박스는 웬만하면 들은 즉시 체크하는데, 체크박스도 그 3개 체크박스에 써있는 단어가 그대로 script에 나오지 않았다면 script에서 들은 것을 여백에 메모한다. 속기는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장 닮은 자연스러운 방식이어야 한다. 나의 경우 답이 francais라면 fr로 쓰고, soixante-seize가 헷갈린다면 60 16 이라고 쓰고, million은 mn, milliard는 md라고 쓴다.
그 렇게 4번과 5번의 과정을 적의 페이스에 맞추어 끝내고 나면 어느새 듣기 script가 다 끝나 있다. 끝난 직후에 스톱워치를 다시 켠다. 이후 3분동안에는 정답일 것으로 100% 확신하는 문제들의 답을 완성하고 확신 못하는 문제들에 별표를 친 뒤 그 문제들에 대한 1번과 2번의 과정을 다시 끝낸다.
3 분이 언제 끝날지는 또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3분이 지나면 다시 적의 2차 공습이 시작된다. 확신 못하는 문제들에 언제 눈길을 돌려야 하는지는 최대한의 긴장을 통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4번과 5번의 과정을 다시 끝낸다.
마지막 5분 동안에는 곰곰이 생각하여 모든 문제들에 대해 답을 적었다면 100% 확신, 100% 확신이 아니라면 나중에 찍도록 최종적인 마무리를 한다. 

전치사 de같은 것을 높은 톤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말할수도, n'a 같은 부정동사처럼 중요한 것을 슬쩍 낮은 톤으로 얘기하며 쉭 지나갈 수도 있다. 억양은 문장의 이해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장의 끝과 문장의 시작, 절의 끝과 절의 시작은 연음이 될 수도 있다. 방금 들은 게 뭐였지 생각하는 순간 그 다음 단어들은 싹 날아간다. 연음, 일시중지, 말의 속도는 문장 성분 단위의 리듬과 일치하지 않는다. 프랑스 현지인들에게는 그것이 일치하는 리듬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de 앞에 무조건 한 박자 쉬는 사람도 있다. .(온점), ,(반점) 뒤에 한 박자 쉬는 것도 사람 마음이다.

프랑스어 듣기의 핵심은 듣기 자료의 stream을 올바르게 packet(조각, 혹은 단어)으로 쪼개는 일이다. 앞/뒤 음절을 잘못 들어서 packet을 잘못 쪼개면, 즉 다음 단어에 이전 단어의 끝 음절을 포함시켜 이해하거나 앞 단어에 다음 단어의 첫 음절을 포함시켜 이해하면 그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stream도 잘못된 packet으로 쪼개지게 되고 이는 연쇄적인 잘못된 packet으로 이어진다. 한글 메일이 7비트 문자로 깨지는 것처럼 내가 인식한 단어의 뜻이 모두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방금 들은 걸 바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면 듣기를 하는 즉시 머리 속 모니터에 단어들이 바로 타이핑되는지 확인하면 된다. 뇌로 들은 소리 정보를 문자 정보로 바로 변환하는 능력은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또한 들은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기 위해(성대모사) 구간반복을 이용하여 들으면 발음과 억양의 심화된 이해가 가능해진다.

A-B 구간반복재생시 재생 -> 듣기 -> 일시정지 -> 이해 -> 말할 준비 -> recite 의 순환과정을 충실히 밟아야 하며,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하나도 없는 채 들은 내용을 바로 recite하면 효용이 없다. recite가 어려운 부분은 수시로 dictation으로 전환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recite가 되려면 말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이는 말하는 사람이 말하려는 것에 대해 자체적/독립적으로 단어와 표현을 조합하면서 이루어진다. 듣기의 script와 recite는 고로 100% 일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서로 100% 일치한다면 recite하는 사람은 script를 100% 이해했다는 뜻으로, 매우 훌륭한 듣기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사실 한국어로도 앵커의 뉴스 한 문장을 들은 다음 방금 들은 내용을 똑같이 말하라면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recite는 단기기억력(흔히 말하는 7 chunks)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언어가 모국어인가, 외국어인가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컴퓨터에서 처리하는 파일의 종류가 아닌 RAM 용량에 따라 성능이 좌우되는 경우와 같다.

기존에 내가 말했던 recite/dictation 이후의 script를 보는 듣기 방법에 비해 조금 더 쉬운 듣기 방법이 있다. 바로 script를 보면서 듣는 것이다. 이때는 script에 가상의 커서를 만들고 마치 노래방에서 가사의 색깔이 바뀌는 것처럼 듣기 자료가 재생되면서 어느 단어까지 말했는지를 가상의 커서로 계속해서 따라간다. 이렇게 해서 계속 듣다가 어느 순간 script를 보지 않고 들으면 눈앞에 script가 없어도 머릿속에는 script가 가상의 커서와 함께 출력되고 있을 것이다. 이 느낌이 든다면 그 듣기 자료는 상당 부분 이해에 성공한 것이다.

Production Orale 말하기


말하기를 위해 준비를 하는 메모지에는 개요를 반드시 프랑스어로 보기 좋게 써야 한다. (매우 중요하다) 면접관은 이 메모지에 25점 중 5~7점을 할애하는 것으로 보인다. 절대로 개요를 한글이나 영어로 작성하지 않도록 하고, 마인드맵이나 낙서처럼 쓰지 않도록 한다. 즉석에서 터져나오는 언변을 믿기보다는 개요를 보기 좋게 자세히 써놓고 실제로 말할 때 개요를 슬쩍 보면서 말하자.

BD(Bande Dessinee 만화)는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글로 써진 구어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학습교재다. 프랑스문화원 미디어도서관에 많다.

인터넷으로 만난 프랑스인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프랑스어로 영상편지 UCC를 찍으면 Speaking이 확 는다. UCC 촬영은 내 기준의 완벽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해주고, 그를 통해 내 집중력을 팽팽하게 당겨준다. UCC촬영을 한 후 프랑스어 듣기를 하면 평소때보다 훨씬 잘 된다.

프랑스어로 말하는 속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빨라져야 한다 - 빠르게 말할 수 있어야 빠르게 말하는 게 들린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단어를 잘 외워놓았다면 빠르게 말하는 것도 프레임의 누락 없이 캡쳐가 가능하다.

이해가 끝나고 말할 준비를 하기 전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주어는 무엇인가? 동사는 무엇인가? 목적어는 무엇인가? 부사구는 무엇인가? 문장의 요소를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요소를 가지고 놀(말할) 수 있고, 내가 말하는 문장을 즉석에서 머릿속에 일러스트로 그려낼 수 있다. 이 일러스트는 문장 단위이다. 즉 한 그림이 하나의 문장으로 풀이된다. 말하기 전에 생각한 행위의 결과물은 절대로 특정 외국어 단어의 조합이 되면 안 된다. 내가 알고 있어야 말을 하는데 알고 있다는 것은 '단어 조합'이 아니라 '그림'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recite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때에는 말을 부풀리지 않고 문장의 요소를 선명하게 그려낸 뒤 그려진 것들에 한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문이나 형식이 반복되어 기계적인 문장이 뽑아져 나와도 상관없다. 말해야 할 거리가 많아지면 그같은 반복은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저의 경우


듣기-RTL+Europe1+TF1+CanalAlpha+France Culture (Podcast와 TV다시보기 사이트를 주로 이용), 읽기-Le Monde+La Croix+블로그+인터넷서핑, 말하기-면접책, 쓰기-미투데이+트위터. 
하지만 시험에 붙기 위해서는 DELF 수험서로 공부하는 게 필수. 위의 자료는 DELF 수험서가 가진 빈틈을 메워주는 보완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keep my feet wet - 계속 프랑스어 관련 문물을 접하고 촉을 잃지 말자. 프랑스문화원 미디어도서관에 프랑스 음악 CD가 많아서 2주에 한번씩 가서 4개씩 빌려 리핑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계속 들었다.

언어활동 능력은 분야에 대한 전문성에 따라 달라진다. 나의 경우 문학, 영화, 음악, 금융에는 약하고 정치, IT, 과학기술에는 강했다. 즉 전자의 분야에 대한 듣기 자료를 들으면 이해가 잘 안 되고 모르는 단어도 많았으며 들은 후에 내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해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자에 대한 듣기 자료는 듣는 즉시 느낌이 왔고 듣자마자 보충설명을 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평소에 자신이 읽는 잡지, 블로그 글, 방문하는 웹사이트, 일을 하면서 보게 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배경지식이 구축되며 이 배경지식의 구체적인 구축 정도에 따라 언어활동 능력이 결정된다. 약한 분야는 관련 잡지의 특정 월/주 간행물 구입으로 배경지식을 보충해야 하겠다. 잡지를 선택한 것은 말하기의 핵심이 토론이기 때문이다. 앞서 두 번째 포스트에서 말했듯 시사잡지는 토론의 내용을 그대로 써놓은 것으로서 토론을 배우기 위해 가장 좋은 자료이며, 시사잡지는 대개 간행물이다.

말이 빨라서 이해가 안 되는 경우는 없다. 중3때 나는 영어듣기를 130%로 해서도 문제를 풀었으니까, 그 과거가 그를 증명한다. 중요한 건 내 노력인 것 같다. 

  1. 내가 듣기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으므로 듣기에 관한 내용이 제일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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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젊었을 때 최대한 다양한 일을 열정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고, 스케일이 커지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에도 멋있게 보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점점 줄여나가야 하는 나쁜 습관이나 잘못된 행동도 있게 마련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그 와중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증가시켜야 하는 것, 계속해서 감소시켜야 하는 것, 증가와 감소의 폭이 점점 커져야 하는 것, 그 폭이 점점 작아져야 하는 것을 정하면 어떨까. 고등학교 때 등비수열을 배우면서 진동, 수렴, 발산의 그래프를 다들 그려보았을텐데, 그래프의 X축을 시간으로 했을 때 대응하는 Y축의 값에 우리 삶에 관련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가치를 대입해보면 재미있는 그래프가 많이 만들어진다.

 나에게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진동: 돈의 씀씀이 (진동 폭이 클수록 좋다. 단 취업 이후는 다름.)
 돈은 적게 벌고 적게 쓰기보다는 많이 벌고 많이 쓰고 싶다. 아직 젊어서인지 저축에 대한 개념은 그리 없다. (열심히 쓰되 쓰기 위해 구입한 물건이 장기적으로 내가 계속해서 사용할 물건으로서 자본투자와 같이 느껴진다면 나는 월말 잔고가 0이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예 저축을 안 한다면 그것은 게으름이기 때문에 어머니께 계좌이체로 대신한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사람은 시간과 돈의 그래프에는 나타나지 않는 '자본'과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씀씀이가 크기 때문에 세상의 문물을 더 넓은 범위로 접할 수 있다. 교환학생을 가서 돈을 많이 쓰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이 나중에 장학금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많이 벌어야 나중에 많이 쓴다는 명제는 항진명제이지만, 많이 써야 나중에 많이 번다는 명제는 어디에 쓰냐에 따라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경험이 주는 달콤함에 이끌리고 싶다.
 
수렴: 각종 욕망, 진정한 친구
 20대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특히 자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초반에 항상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신의 욕망은 어느 라이프스타일의 소비를 할 것인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돈이 필요한 여가를 즐길 것인지, 어느 정도의 번화가를 주로 놀러갈 곳으로 삼을 것인지, 집안에는 어느 정도의 여가를 위한 물질을 구비할 것인지 등으로 나누어 목표를 설정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목표에 맞추어가는 식으로 수렴되게 한다. 욕망은 끝이 없다 하지만 계획된 욕망은 일정한 수준으로 수렴할 수 있다. 수준의 높고 낮음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스스로가 주관적으로 규정한 수준 상에서는 수렴할 수 있는 Y축 위의 값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수렴은 진정한 친구의 수이다. 아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겠지만 그중에 진정한 친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진정 나에게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게 되는데, 진정으로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게 되면서 예전에 자신에게 어울린다 생각했던 여러 것에 관련된 친구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꼭 그 친구들이 싫어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고 자신과 어울리는 한두 가지에 더 깊이 빠져드니까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면서 넓은 그물망을 바다에 던졌다면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물을 추스려 맛있게 먹을 고기만 건져내고 다른 고기들은 그들이 원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하여 보내주어야 한다.

발산: 과거의 기록(+), 취업 이후의 재산(+) 
 가장 중요한 양의 발산은 무엇보다 과거의 기록이다. 지난 학기 때 썼던 수업자료, 내가 쓴 보고서, 예전에 받은 상장, 다운로드받은 설치파일, 친구들과 찍은 사진, 예전에 듣던 음악, 모두가 현재의 나를 만든 재료들이다. 언제든 과거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그 준비는 체계적인 축적과 분류와 쉬운 접근성 확보를 위한 적당한 매체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거의 기록을 잃어버리면 현재의 내가 앞으로 갈 길을 정함에 있어 이미 갔던 과거의 길을 다시 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항상 가지 않은 길, 그러면서도 더 좋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간의 업적과 그간의 노정을 쌓아놓고 굳혀놓아야 한다.
 그리고 첫 취업을 한 이후부터는 저축의 비중을 분명 늘리게 될 것이며 재산이 양의 발산을 하도록 열심히 살 것이다.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특별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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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이상

칼럼/삶 2011. 5. 18. 12:13

  이상(異想)의 사전적 정의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각주:1] 이다. 철학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절대적인 지성이나 감정의 최고 형태로 실현 가능한 상대적 이상과 도달 불가능한 절대적 이상으로 구별할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이상이란 공부와 일에 치여 사는 대학생이 연애를 하고 싶어할 때, 그 연애에 대해서만 분야가 한정된 이상이다. 異想이라는 한자가 바뀌지는 않으며 다만 직역하면 '다른 생각'이라는 점에 미루어보아 평소의 공부와 일 중심의 라이프스타일과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 이 '이상'이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소개팅을 나갈 때나 평소에 이성적으로 호감을 갖던 여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만나러 갈 때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나의 사상과 라이프스타일을 180도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해야 상대방을 만났을 때 평소보다 많이 웃게 만들고 남자로 느껴질 모습도 많이 보여줄 수가 있었다. 평소 집-학교-집의 경로를 밟으며 공부와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때 나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이성을 배척하고 '쟤 좀 이상해'라는 말을 들을 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굉장히 까칠한 외로운 4차원 괴짜이다. 그래서 그 모습을 바꿀 필요가 있을 때 나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자아의 전환을 추동해야 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그 격차가 크지는 않더라도 나름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일상생활 속에서 제일로 추구하는 가치와 제일 기분 좋다고 생각하는 사물과 분위기와 태도가 연애의 이상 세계로 넘어갈 때 어떻게 바뀌어야 타당한지를 고민하였고, 그 결과 아래의 비교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면접 준비에 관해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면접용 자아, 면접용 라이프스타일로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가 나에게 해준 말은 면접을 하기 이틀 전부터 그 회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고, 평소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과 논쟁의 성격을 가진 말을 많이 하고, 평소보다 옷차림과 화장품 사용에 신중을 기울이라는 조언이었다. 자연스러운 전위를 가진 나에게서 면접 합격이라는 강한 양(+)의 전위를 끌어내기 위해 그러한 사전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마음가짐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오래 소요되지는 않는다. 선배와의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이처럼 면접용 자아도 있지만 소개팅용 자아, MT용 자아, 교수님 면담용 자아도 다양하게 산재한다고 확신했다. 사람은 겉으로 자신이 다중 자아, 다중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지만 분명 속에서는 자아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게 나에게 해당되는 일상과 이상의 비교표이다. 

  일상

 이상

 낮

 밤

 정돈됨

 흐트러짐

 클렌저

 향수

 커피

 칵테일

 지적, 묘사

 반어, 상상

 사실적

 비현실적

 플래너

 낙서

 일렉트로니카

 어쿠스틱

 자존심

 즐거움(쾌락)

 배려

 애정

 부족에 주목

 풍족에 주목

 형광등

 백열등/할로겐

 사무실, 마을

 거리, 공원, 산, 바다

 친절

 밀고 당기기

 개운함

 나른함

 연설

 속삭임

 나를 사랑, 나에게 관심

 너를 사랑, 너에게 관심

 지적 욕구

 식욕, 성욕, 美에 대한 욕구

 



이 비교표는 아직 상당히 미흡하며 더 추가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있는 항목이 삭제되지는 않을 것 같다. 여러분의 일상과 이상 비교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평소 자신이 하던 일을 잘 하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렇게 굳이 표를 만들어보고 자아를 돌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각자 비밀 수첩에 중앙선을 긋고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1.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본문으로]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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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 중 한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내가 스스로 개설한 대학 과목과도 같다. 대학교에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수강신청을 하고 최대 18학점, 20학점 등의 한도를 정해놓고 2학점, 3학점 단위의 과목을 신청하듯 내가 스스로 과목의 개수, 각 과목의 학점, 내가 들을 최대 학점을 정한다. 이러한 방식의 계획은 현재 내가 휴학중일 때에 매우 유용하다. 휴학중이어도 재학중인 것 같이 탄탄한 스케줄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일 안에는 우선순위 A와 B가 뒤섞여 있다. 시간관리 매트릭스의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소중한 일)이 모두 들어 있다.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C)은 들어있지 않다. 이 일에는 공부도 있고 여가도 있다. 오늘의 우선업무에 적어넣는다면 하루 중에 한번에 끝나는 일도 있고(소요시간과 양을 측정 가능), 하루 중에 자투리 시간을 조금씩 써먹는 일(소요시간과 양을 측정 불가능)도 있다. 이 일은 아직은 소요시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일의 형태로 쓰여 있지 않은 대신 대학교의 과목명의 형태로 쓰여 있다. 소요시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일의 형태는 오늘의 우선업무에서만 볼 수 있다.[각주:1] 몇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정기적으로 할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부분집합이다.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종합하여 계획할 수 있는 일의 다이어그램을 새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이 다이어그램은 시간관리 매트릭스에 몇가지 분류를 추가하여 만든 다이어그램이다. 철저하게 대학생의 관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공부가 일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우선순위 C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누면 1번부터 14번까지의 영역이 나뉘게 된다. 이제 자신의 계획과 평소 하던 일과 라이프스타일을 돌이켜보면서 1번부터 14번까지의 영역에 어떤 일들을 집어넣을지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보자. 나의 경우 1번부터 14번까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자잘한 독서(사회과학, 공학, 프랑스 책)
2. SAS통계패키지, 수학 복습, JSP프로그래밍, 프랑스어 단어장, TCF, 읽을 책 목록에 있는 책 중 사회과학, 공학, 프랑스 책의 독서
3. 1주일에 한번씩 하는 영어번역, 1주일에 3편씩 올라오는 TV5MONDE 7 jours sur la planete exercices, 매주 월요일의 Le Monde+L'Express+La Croix 신문기사
4. 매주 월요일 17:00에 발행할 블로그 포스팅
5. 트위터 Timeline 보기+프랑스 tweet, HanRSS 구독
6. 자잘한 독서(음악, 미술, 인문학)
7. 자잘한 독서(주력분야 밖의 기타 분야)
8. 수면보충
9. 웹서핑목록(살면서 이거 찾아봐야겠다 싶은 걸 키워드 형태로 써서 축적해놓은 종이) 보면서 웹서핑
10. 웨이트트레이닝
11. 주말 TV편성표 확인
12. 미투데이, 기타 악보 따기+연습, 테니스, 탁구, 당구, 볼링, 자전거 등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할 운동, 여행정보 웹서핑 후 스크랩
13. 친구를 만나서 하는 모든 일들, Torrent 다운로드
14.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하지 않을 운동

 2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 요즘 뭐 공부하고 있어'에 해당되는 일들이다.
 8번, 9번, 12번, 13번에 무엇을 집어넣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이 피곤한 사람이다. 조금 더 여가를 즐길 필요가 있다. 단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인생이 피곤하다고 단정지어질 수는 없다. 자연스럽게, 혹은 본능적으로 놀거나 쉬는 활동은 1번부터 14번까지의 어느 영역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즉 계획할 수 없다. 이러한 활동을 충분히 하고 있다면 인생의 피곤함은 느끼지 않겠지만 놀거나 쉬는 것도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이렇게 목록을 만든 다음 2번, 3번, 4번, 5번, 9번, 10번, 11번, 12번만을 가지고 키워드를 뽑아내면 다음과 같다.
 SAS, 수학, 프랑스어, 영어번역, 블로그, 트위터, HanRSS, JSP

 그리고 이 키워드를 우선순위에 따라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어, 영어번역, SAS, 수학, 블로그, 트위터, HanRSS, JSP
 이것이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이며 내가 만든 과목이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은 최소 1달 단위로 유효하다. 목록 안에 있는 일을 다 끝마쳤다면 목록에서 없앤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추가한다. 목록은 이번 학기의 수강신청 내역이나 이번 달에 방송하는 드라마 목록과도 같다.

 이 목록에 있는 일들을 오늘의 우선업무에 추가했을 때의 소요시간이 얼마까지 가능할까 측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한계를 알아낸 다음 한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이 목록 안의 일들을 마치 양동이에 물을 넘치기 직전까지 붓는 것처럼 채워넣어야 한다. 한계는 목록에 있는 일들을 일주일의 오늘의 우선업무에 측정할 수 있는 형태로 써넣었을 때 매일의 우선업무가 모두 실행 가능한지를 따져봄으로써 알게 된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한계는 이렇게 계산한다. 우선 24시간에서 기본적인 먹고 씻고 자는 시간을 뺀 후 직장/대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하거나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시간, 즉 스스로 계획할 수 없이 얽매여있는 시간을 뺀다. 이제 남은 시간을 가지고 다음의 일을 하면서 보내면 된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 지속적이지 않은 일, 계획 없이 놀거나 쉬기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낸 뒤 완료 혹은 진행중(미완료)인 업무에 한해 이 세 가지 시간 중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합계를 내면 그 합계가 곧 한계이다.

 자투리시간을 이용하여 계획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자투리시간은 스스로 계획할 수 없이 얽매여있는 시간 안에 조금씩 나뉘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한 일도 오늘의 우선업무에는 적는다. 단 그 일을 끝내기 전 혹은 끝낸 직후에 적는 게 아니라 하루를 다 마무리한 다음 오늘 한 일을 반추해보는 도중에 적는다. 따라서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기록할 수 있다.

 남은 시간은 가용 시간, 내가 주도하여 계획하며 쓸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고정되어 있다. 직장이 08시부터 17시라면 그 시간은 평일에 항상 그 시간으로 고정되어 있다. 대학교의 요일별 시간표는 고정되어 있다. 매번 변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시간과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시간의 비율이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과 지속적이지 않은 일은 측정할 수 있다. 하루 중에 한 번에 끝낼 수 있고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적이지 않은 일은 측정할 필요가 없다. 측정을 하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한계를 알아보는 것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측정은 전자시계의 스톱워치, 고3때 쓰던 타이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만약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 지속적으로 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면 측정을 중단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할 때 측정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자투리시간에 하는 일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도구를 통해서는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자투리시간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스톱워치나 타이머를 꺼낸다는 것은 매우 의도된 행동이기 때문에 꺼내야겠다고 기억이 잘 날지 의문이 든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시간은 측정할 수 없다.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워서 음료수도 마시고 친구랑 수다도 떨고 네이버나 동아리 클럽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하는데 이러한 활동(일이 아니다)을 스톱워치로 측정하고 있을 것인가.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활동의 측정은 정신건강에 해로울뿐더러 전혀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계획 없이 놀거나 쉬는 시간은 측정될 수는 없는 대신 계산될 수 있다. 가용 시간은 고정되어 있고,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시간은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뺄셈을 하면 된다. 따라서 측정할 필요가 없다.

 오늘의 우선업무 목록을 작성할 때에는 우선 위에서 뽑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을 보고 우선순위를 고려한 다음 측정이 가능하도록 양을 정하여 업무를 하나씩 적는다. 예를 들자면 지속적으로 하는 일 중 '수학'을 보고 '수학의 정석 몇페이지부터 몇페이지까지 복습'이라는 업무를 적는다. 그 업무를 끝마치고 나면 소요시간을 업무 칸 맨 오른쪽에 적어넣는다. 진행중(미완료)이어도 소요시간을 적는다. 하루가 끝나면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의 합계를 낸다. 나는 모든 소요시간을 분 단위로 적는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초기의 지속적으로 하는 일 목록에 쓰인 일을 최대한 다 하려고 노력하면서 소요시간의 합계를 내면 내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 안에 최대 몇 개의 일을 써넣을 수 있는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이렇게 주별 소요시간 합계에 대한 자료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면 내가 요일별로 평균 몇 시간 몇 분을 지속적으로 하는 일을 위해 쓸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요일별 평균값은 누적평균으로서 일주일이 지나면서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특정 주의 소요시간 합계를 막대그래프로 그리고 지금까지의 주별 소요시간 합계의 누적평균을 꺾은선그래프로 그리면 자신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는 일에 치중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수치화된 그림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그래프 그리기는 프랭클린플래너가 할 수 없으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이 역할을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각각의 업무별로 예전의 실제 소요시간은 오늘의 예상 소요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오늘의 우선업무를 (ABC)(업무)(예상 소요시간)/(실제 소요시간) 의 형태로 써나갈 수 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예상 소요시간을 써놓고, 업무가 끝난 뒤 실제 소요시간을 써서 예상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꽤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고, 매달마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의 목록을 갱신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얽매여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계획적으로 살 수 있다면, 혹은 그 시간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이처럼 스스로 계획할 여유가 없다면 계획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체계적인 계획은 어디까지나 자유롭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잉여상태'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방지책으로 기능하며 계획하는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게끔 도와줄 뿐이다.
 

<별지: 조금 더 정밀한 소요시간 측정>
 오늘의 우선업무 목록 안의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또한 좀 더 정밀하게 그 일을 구성하는 단위로서 소요시간을 측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책을 한 장(章) 읽는 일이 있으면 한 쪽 단위로 소요시간을 측정할 수도 있다. 한 문제, 한 건, 한 문단 등 단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구상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버튼을 누르면 1/10초 단위 시간 측정이 시작되며 다시 버튼을 누르면 앞선 측정값이 저장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간 측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간 측정을 다 하고 나면 저장된 여러 개의 순차적 측정값이 목록으로 제시되며 첫번째 측정값에 레이블을 붙이고 두번째 측정값은 엑셀의 셀 값 자동 채우기를 하듯 자동으로 채워진다. 첫번째 측정값이 85쪽이었다면 두번째 측정값은 86쪽..과 같이 채워진다. 목록의 측정값들은 기존에 저장해놓은 다른 목록에 뒤이어 합쳐질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다른 목록으로 이동될 수도 있다. 이처럼 기능이 단순하기 때문에 공부나 일을 하면서도 쉽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 소요시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목표(일이 아니라)의 형태는 월간 주요 업무 리스트의 '월간 목표'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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