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tcollege.ee


이번 여행의 중요한 랜드마크인 Skype 본사를 찾았다. 아쉽게도 회사 내의 관광객용 견학 코스는 없고, 견학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왜 견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가지고 사전에 메일을 보내야 한단다. 내가 그렇게 준비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카운터 직원과 소소한 얘기만 하고 돌아갔다. 안에 인테리어는 정말 세련되었고 일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저 건물 뒤에 skype 있다



짜잔 여기가 skype 본사



짜잔 여기가 skype 본사



Skype 본사 내부 살짝 몰래 찍어옴



이 차들이 전부 skype 직원들 차.



Skype 본사 정문. 딩동 한 다음 문 열어주면 들어간다.

참고로 Skype 본사 건물 바로 옆에는 탈린공과대학 건물이 있다.


에스토니아 정보기술대학 (Eesti Infotehnoloogia Kolledž)은 안의 인테리어만 보아도 창의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IT 분야임을 알 수 있게 생겼다. 미국을 필두로 한 집중적인 투자와 인력 교육은 태동하는 에스토니아 경제를 낳았다.



에스토니아 정보기술대학 복도



IT 도움 요청실 문 앞. 이 사람들에게 한자란 우리에게 아랍어와 같은 존재..



교실 내부 스샷 찍어놓고 앵그리버드 AR 장식



리눅스 개발에도 큰 공헌을



연간 일정표



소강당에서도 한창 수업중



건물 안은 진짜 이쁘게 생겼다!!
NHN그린팩토리보다 아담하고 가벼운 인테리어.



카페테리아는 하프라이프 ㅋㅋ



이곳 에스토니아정보기술대학이 오늘 가본 곳(탈린경제대학, 탈린공과대학) 중 가장 많은 행사 공고가 이루어지는 곳



이곳 에스토니아정보기술대학이 오늘 가본 곳(탈린경제대학, 탈린공과대학) 중 가장 많은 행사 공고가 이루어지는 곳



벽 장식으로 건물 안내를 하는데 인테리어에 공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시간표는 이렇게 TV에 나온다. 공항 비행기 출발 안내처럼.



에스토니아 정보기술대학 (Eesti Infotehnoloogia Kolledz)를 후원해주는 수많은 국내 및 글로벌 기업들




BoGa pott는 내가 있었던 레스토랑 옆의 미술관 겸 카페의 AP다. 사람들은 AP에 비밀번호를 걸지 않는다. 이것은 탈린 시 혹은 에스토니아의 정책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무지에 의한 것일까.



TallinnWIFI라고 써있는 와이파이는 와이파이 존 팻말이 붙어있는 곳에서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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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딩녀 2013.02.14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여^^ 제 짧은 체류 경험으로 에스토니아는 자체적으로 와이파이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와이파이를 우리나라 같이 기업의 개인적 상품으로 안보고 일종의...공공재로 열어주는 것이죠... 공항에서도 몰에서도 호텔에서도 와이파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짜입니다... 에스토니아가 유명한 것이 IT이고 전자정부등...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요.. 속도는 좀 느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IT강국다웠습니다.. 핸드폰 플랜도 한달 15유로 우리돈 2만원 정도면 3G 무제한에 전화도 한달은 어느정도 쓰고 통신사간 메세지도 무제한이랍니다...전 한국오니..꼭 자기네 통신사 이용해야 쓸 수 있는 모든 레스토랑, 음식점, 기타등등의 와이파이존.. 모든 사업들이 이익에 급급해 멀리 못보는 것 같아 안타깝던데요..^^

http://www.ttu.ee



이런 joint platform이 있다면 바로 한국과 에스토니아가 손을 잡아야 한다.



한국과 비슷한 대학 건물 내 풍경



교수 정보



한국 전자신문에도 소개된 바 있는 핏츠닷미(fits.me)



IBM 발트지부 비즈니스 컨설팅 부문 공모전 공고 (주최국은 라트비아)



디자이너 공고 포스터는 디자이너스럽게



IT경영학과




good web marketing specialist!



시만텍 구인공고



유럽 애들은 방학때 다른 유럽국가 가서 인턴을 하고 온다.



탈린공대 세미나 시간표



구인공고



건물 소개



카이스트 전산학과처럼 학술 활동도 하고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머 급구 !!
이런 모습이 한국이랑 똑같다는 거다.



탈린공대 컴퓨터공학부 건물 입구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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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팻말이 아직도 있다.



바로 요게 스타트업 사무실 인큐베이터 가장 최신 건물



이 유리문을 지나면 스타트업 사무실이 즐비하다.



먹는데도 잘 되어 있고



이렇게 이쁘게 생김



기업 대상 행사들도 많이 진행한다. 이 건물은 보안이 철저해서 계단도 못 올라간다. 엘리베이터와 건물 내부 유리문은 전자키를 대야 작동한다.



다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건물은 최근에 만들어서 외관도 안에도 이쁘게 생겼다.



5층이 에스토니아 내무부 정보기술개발부. 정부 부처와 스타트업 사무실이 같은 건물에 있다. 정부의 마인드가 어떤 마인드인지 감이 온다.



다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건물은 최근에 만들어서 외관도 안에도 이쁘게 생겼다.



이건 인큐베이터 건물과 같이 IT 산업단지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물. 인큐베이터보다 한단계 낮은 기업들이 상주한다. 일부러 옆면과 뒷면을 같이 찍었는데 그건 공산주의의 과거도 같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IT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사무실 건물. 제일 처음에 생긴 건물이고 작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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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mk.edu.ee




보면 알겠지만 IT의 비중이 매우 크다.



요게 바로 전자칩 신분증 리더기
made in china
http://www.hidglobal.com/



이렇게 핸드폰으로도 인증할 수 있다. UI는 세련된 건 아니지만 전국민이 이렇게 쓴다는 게 놀라운 점이다.



전자칩 신분증 프로그램 DigiDoc3



에스토니아 전자칩 신분증으로 전자문서 보는 프로그램 DigiDoc3



시간표 보여주는 키오스크 (웹사이트 기반)



시간표 보여주는 키오스크 (웹사이트 기반)



영어를 잘하면 크던 작던 글로벌 기업으로 간다.



구인공고



평생교육(IT가 대부분임) 시간표



과별 졸업생들 사진
여자가 더 많다.



과별 졸업생들 사진



이곳 학생들은 모두 에스토니아인인듯



그날의 시간표는 LCD TV로 보여준다. 시앙스포의 A4용지와 대조되는 모습.



국내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여러가지가 있다.



정보처리학과 사무실



방송통신대학교 느낌의 이곳에서 요런 HTML이 기본 교양과목이다.



탈린경제대학 안에 시스코 네트워킹 아카데미 프로그램
이 친구들은 IT를 국가의 미래로 생각하고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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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국립도서관도 당연히 와이파이존
인증절차 따위 쿨하게 없다




Tallinna Majanduskool 탈린경제대학
도 와이파이존




무료 와이파이존은 탈린의 자랑




요 wifiee 마크가 있는 주변은 인증조차 필요없는 오픈 와이파이존이다.




저렇게 wifiee 라는 표시가 있는 곳에는 와이파이 우산이 3개 이상 뜬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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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서 퍼질러 자는 게 아니라 우아하게 개인용 무인 침실로 들어가 자는 선진국형 서비스 napcabs를 사용해보았다. 독일 뮌헨 공항 게이트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과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문화의 정점에 있는 서비스였다.


사용 순서는 다음과 같다.

- 화면에서 언어를 선택한다.

- 요금 안내를 받는다.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8시간 이용하면 다 합쳐서 10유로이며, 그 외의 시간대에는 1시간마다 15유로이다.

따라서 나의 경우처럼 전날 한숨도 못 자고 오전 8시에 공항에 도착한 사람은 1시간마다 15유로를 내고 자야 한다. 따라서 6시간-7시간을 여기서 보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하지만 2시간까지는 쓸 수 있다.

- 요금 안내를 다 읽었음을 확인하면 바로 카드를 집어넣고 100유로의 보증금을 결제한다. 화면 언어는 영어지만 카드 결제기의 전광판 언어는 항상 독일어다. PIN 코드를 언제 입력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문제가 있었다.

- 보증금 결제가 끝나고 카드를 다시 뽑으면 잠깐 방을 나간 뒤 다시 들어올 때 입력할 임시 비밀번호를 설정한다. 임시 비밀번호는 한번만 입력하는데 왜냐하면 방 안에 들어가서 있는 화면에서 비밀번호 보기 버튼으로 내가 입력한 4자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다음에는 문의 잠금장치가 풀린다. 문을 당겨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손님이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문이 잠기며 방 바깥의 화면에는 '사용중'이라는 표시가 된다.


방안에는 침대, 조명, 난방, 테이블, 220V 전원 콘센트, LAN선, 블라인드, 그리고 500ml 물병과 컵이 갖추어져 있다. 캡슐호텔보다 조금 편한 기숙사식 호스텔 수준의 시설이다. 


침대의 발쪽에 있는 화면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조명 켜기/끄기: 현재 설정된 무드조명/형광등을 끄거나 켤 수 있다.

- 휴식 모드: 이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검정색 배경으로 바뀌어 어두워진다. 검정색 배경 화면의 아무 곳을 클릭하면 다시 원상복귀된다.

  - 휴식 음악 켜기/끄기: 랜덤으로 설정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켜거나 끈다. 휴식 음악을 바꿀 수 없는 것은 그 누구도 휴식 음악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휴식을 위한 음악을 들으면 듣지 클래식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피곤해 죽겠는데 버튼을 조작할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무드조명 켜기/형광등 켜기: 버튼을 눌러 두 가지 조명을 전환할 수 있다.

- 각성 모드: 이 버튼을 누르면 '잠깐 나가기'와 '체크아웃'의 두 버튼 선택 창으로 바뀐다.

  - 잠깐 나가기: 이 버튼을 누르면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며 밖으로 잠깐 나갈 수 있다. 나가는 손님에게 다시 주지시키기 위해 방 안의 화면은 다시 방으로 들어올 때 미리 설정한 4자리 번호를 입력하라고 알려준다.

  - 체크아웃: 이 버튼을 누르면 나가는 손님에게 짐을 모두 챙기고 나가라고 알려준다. 

- 알람 설정: 알람을 켜거나 끄고 시, 분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체크아웃 절차는 다음과 같다.

- 방안의 짐을 모두 챙기고 나와 바깥의 화면에서 체크아웃 버튼을 다시 누른다.

- 체크아웃 확인을 위해 체크인 시 사용했던 카드를 다시 집어넣는다. 이때는 따로 PIN을 입력할 필요가 없다. 전산 처리가 끝나면 총 몇시간을 사용해서 얼마가 청구되었는지가 화면에 나오고 이에 따라 보증금에서 얼마가 깎인 뒤 얼마가 환급되는지를 알려준다.

- 영수증을 이메일로 받을 건지 여부를 선택한다. 영수증을 받는다고 한 다음에는 이메일주소를 입력하는 쿼티 키패드 화면이 나온다.

- 두 가지 기준의 만족도 평가를 한다. 각 기준에 대해 웃는 얼굴(좋다) 무표정 얼굴(그저 그렇다) 삐진 얼굴(나쁘다)의 세 가지 평가를 한 뒤 확인 버튼을 누른다.

- 체크아웃 절차가 다 끝나면 화면은 '청소 및 정리 요망' 화면을 띄우고 관리인이 나중에 들어와 청소 및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비밀번호 입력으로 알릴 때까지 그대로 있는다.


 이렇게 생긴 사용 절차를 가진 서비스이다. 매우 사용하기 편리했고 방해받지 않는 안정감을 주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인터페이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 현재 방을 얼마동안 사용하여 요금이 얼마가 나왔는지 방 안의 화면에 표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이 기능을 뺐을 수도 있다. 피곤한 사람이 현재 얼마나 돈을 썼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면 좀 더 자자는 심리 때문에 돈을 더 벌 수도 있고, 현재 내가 돈을 얼마나 쓰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손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TOEFL 시험의 Reading 남은 시간 보이기/숨기기 버튼에서 알 수 있듯 사용자의 마음은 UI가 속단할 수 없다. 사용자의 마음에 따라 사용자가 UI를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해주어야 한다.

- 방을 잠깐 나올 때 4자리 번호를 크게 띄워주면 손님이 혹시나 번호를 까먹을 가능성을 아예 없애주어 더욱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가 되지 않을까.


 UI 외에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은 다음과 같다.

- 냉방은 잘 되는데 난방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에 이곳을 이용한 나는 냉난방을 끄고 2시간 동안 자다 나왔다.

- 벽의 방음이 되지 않아 수시로 나오는 게이트 탑승 안내방송의 시그널 음향과 나레이션을 그대로 들어야 했다.


 아울러 방에 몇명이 들어가는지를 감시하는 센서는 없다. 마음만 먹으면 남녀 둘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 여자친구와 같이 들어간 뒤 여자친구를 재우고 나만 나오는 경우도 가능하다. 누군가의 핫 플레이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http://www.napcabs.net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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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Antoine Jacob의 "Les Pays Baltes, Indépendance et Intégrations"(발트해 국가, 독립과 통합. 출판사 ALViK EDITIONS) 의 7장 'Les Réformes à Bras Le Corps'(용감한 개혁)을 번역한 글이다. 

 이 장은 IT나 전자정부만을 내용으로 삼고 있지 않지만, 에스토니아가 왜 전자정부 시스템을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구축하는데 성공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토니아의 독립과 경제발전부터 차근차근 답습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장 전체를 번역하였다.




 탈린 안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의 한가운데, 1944년 3월 9일 붉은 군대에 의해 피격당한 건물의 잔해들은 소련의 잔인함을 기억하기 위해 폐허 상태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한가운데에서 가속화된 개혁을 생각해볼 때 천장이 뻥 뚫린 상처의 존재는 더욱 더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약 12년만에 예전 한자 동맹국가의 계산대 노릇을 했던 이곳은 가장 현대적인 장신구로 도시를 감싸며 상업활동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과거를 되살려보고자 온갖 노력을 했다. 그 장신구는 맨눈으로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다. 누가 비극적인 과거의 잔해들로 넘쳐나는 이 탈린이 어느 곳에서도 무선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액세스포인트가 바둑판처럼 감싸고 있는 와이파이 존임을 의심하겠는가?

 

 노란 빛의 실내등이 붙어있는 페가수스 카페에서 쿠션 의자에 눌러앉은 Linnar Viik는 앞에 걸쳐둔 작은 노트북으로 최근 도착한 메시지를 찾아보고 있다. 대머리의 큼직한 검정 스웨터를 입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 에스토니아인은 IT 구루와 같은 모습을 하고 1990년대 후반에 핀란드나 스웨덴에 등장한 혜성같은 존재이다. 제시한 개념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여유,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는 능력, 최신 유행의 앵글로색슨 계열 저자들의 글을 인용하여 뻔한 문장을 우회하는 예술.


 에스토니아 정부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인터넷, 과학, 연구 및 개발, 대학, 시민사회) 전직 자문관이었던, 아직 40살이 되지 않은 Linnar Viik는 그의 나라의 변신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주변 발트해 국가들보다 더 에스토니아는 이미 독립국으로서 5년간의 계획경제에 박혀있던 시대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시장경제로 뛰어오르기 위한 개혁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젊은 정치인들의 새로운 세대가 선출한 당시 32세의 Mart Laar를 총리로 하여 약 15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 나라는 가장 시장경제적인 이론을 가감없이 포용하였다.


 1992년 6월 20일,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보다 1년 먼저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크론(kroon)을 사용하기 위해 루블 사용을 폐지했다. 국민들은 길에 세워진 수백 개의 환전소에서 오래 된 지폐를 교환하기 위해 이틀을 보냈다. 새 화폐는 그것이 이 작은 경제를 대표하는 경기 불안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한 화폐 중 하나였던 독일 마르크와 직접적으로 연동되었다. 도박은 시작되었다. (1999년 1월 1일 크론은 고정 환율로 유로와 연동되었다) 국가 재정 운영의 원칙에 어긋날까 걱정하며 의회는 적자 예산 구제방안을 모두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하였다. 국가의 보조금은 지하 감옥에 갇혔다. 관세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물가는 1990년부터 완전 자유화되었다.


 이 구조적인 혼란 속에서 서양의 투자자들은 특별히 국가가 아끼는 대상이 되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경제 안정과 동의어였고, 당시 경제부 장관의 말대로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후임 정부는 따라서 외국의 투자회사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법과 재정을 바로세우는 데 만전을 기했다. 병영이 본국 송환을 기다리는 수천 명의 러시아 군인들로 꽉 차있던 나라에 투자하도록 외국 회사들을 설득하는 일은 진중한 근거를 필요로 했다. 마지막 본국 송환은 1994년 8월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또한 에스토니아 수뇌부는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 인색하지 않았다. 기업의 소득이 바로 재투자되었을 때 세금을 면제하였고, 파산 그리고 에스토니아 투자자 및 외국인 투자자의 동등 대우에 대한 효과적인 법을 채택하였다. 정부는 개인사업자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소득세는 26%로 항시 고정되었다.


 1991년부터 조금씩 시작한 사유화 단계는 해를 갈수록 그 크기를 더해갔다. 에스토니아는 빠르게 헝가리와 체코공화국과 함께 인구수 대비 가장 많은 외국인직접투자를 받는 구소련 블록 국가 집단으로 올라섰다. 특히 은행은 핀란드와 스웨덴과 맞물려 돌아가는 투자를 끌어왔다. 인접한 이 두 이웃 국가는 이들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그 후로 남쪽의 영역으로 확장된 사냥터로 생각한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입지를 차지했다. 전화 사업자, 호텔, 전자 부품 공장, 직물 및 농산물 관련 기업은 북유럽의 돈주머니로 들어갔다. 독일 및 러시아의 기업들이 그 뒤를 이었다.


 정부가 기대했던 것처럼 이 충격요법은 국가 경제를 요동치게 했다. 관세로 더이상 보호를 받지 못한 지역 산업 전반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실업률의 증가는 사회보장의 실질적 강화를 전혀 동반하지 못했다. 외국 상품의 대규모 수입은 GDP를 적어도 10% 하락시켰고 국가의 경상수지에 구멍을 내었다. 인플레이션은 거의 1000%까지 상승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근면한 에스토니아인들은 1995년을 기점으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2년 뒤 연간 경제성장률은 10%를 넘어섰다. 소비자물가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충분한 성과는 예전 소비에트 공화국을 1997년에 헝가리, 폴란드, 체코공화국 그리고 슬로베니아 옆에서 유럽 연합으로의 가입 논의를 위해 초청받은 첫 번째 집단으로 올려놓았다. 작은 에스토니아는 그 질주를 계속하여 2003년에는 22번째로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는 국가로 분류되었다. (제네바 세계경제포럼 2003년 국가경쟁력보고서 기준)


 "토론은 우리가 국가 발전의 특정 단계를 뛰어넘을 줄 아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Linnar Viik는 커피를 마시며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다른 인구 집단이 그 수준에 도달하기를 기다리며 주어진 수준에 머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우리는 근대화 기간이 20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근대화 이후 시대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인가?" 푸른 눈을 가볍게 굴리고 윗입술을 내밀면서 스웨덴 회사로부터 되사들인 인터넷 서비스 기업의 전 공동 설립자는 기쁨으로 그의 국가가 진화하는 모습을 이론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에게 에스토니아 인구는 칸막이로 구획되어 있다. "우선 최초 독립국을 알고 오늘의 삶을 과거의 삶과 비교하며 젊은 시절의 초원은 더욱 푸르렀다고 생각하는 노인층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정신적으로 온전히 소련 시대에 머물러 살고 있으면서 루블과 코펙으로 셈을 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현재 발생하는 빠른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시장경제 개념으로 진화할 줄 아는 사람들, 승리자들,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젊은이들과 같이 '글로컬' 한 사회에 속한 젊은 층이 있습니다. 이 세대들은 상호작용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의심없는 충돌의 부재 - 에스토니아의 성격은 물의를 빚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 가 있지만 아예 망설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1995년 의회에서 개혁을 주도한 Mart Laar에게 의원들에 의해 가해진 모욕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2001년에 이전 10년 간 소비에트 최고위원회의 의장을 지냈던 Arnold Rüütel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투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이러한 사건은 내정에 대한 권력의 부족 탓이다. 하지만 공산당의 과거 당수의 선출 (간접 선거) -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지지하는 편에 속해 있었다 - 은 성장을 향한 광적인 국가 경제에서 한 박자 쉬어가고자 하는 에스토니아인들의 필요를 반영했다.


 그의 전 대통령 Lennart Meri는 반대로 절제할 수 없는 변화의 의지를 상징했다. "그는 언제나 기존 제도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규약을 어기고, 의도적으로 우리 인구의 크기에 따라 사용해야 마땅한 공간보다 더 큰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그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그 시대에 가장 필요로 했던 안목을 가지고 사람들과, 적어도 국가 수뇌부와는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생관에 가까웠습니다." 라고 Linnar Viik은 강조한다.

 12세에 가족들과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역사학자 Lennart Meri는 러시아를 너무도 잘 알아서 러시아에게 조금의 호의도 가지지 못했다. 정교하고 예의 바르며 여러 언어에 능통하다고 인정받은 이 지식인은 퇴임 전 그가 국가원수 직책에 있던 9년 동안 (1992-2001) 러시아에게 결의에 찬 모습을 보여주고 국제 무대에 대한 근엄한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시작하는 것의 장점은 늦게 시작한 사람이 단계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에 득을 보며 자신의 결여된 것을 메울 수 있다는 점이다. 단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스스로에게 줄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자신의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하고자 하는 열의가 별로 없으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핀란드의 비호를 받으며 에스토니아인은 - 적어도 그들 중 가장 열려있고 호의적인 - 새로운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기뻐하며 발견하였다. 북유럽 은행들이 현지 기업들을 되사들일 때 가상 세계의 혁명은 북유럽 지역에 이미 잘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소련 시대를 빠져나오자마자 잘 정립된 발트 국가의 기업들은 역설적으로 이미 큰 도약을 위해 성숙해 있었다. 고객들 역시 대다수가 손에 서양식 수표를 전혀 들고 있지 않았다..


 2003년에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에스토니아인의 26%가 전 12개월 동안 인터넷뱅킹 업무를 수행하였다. 조사 대상인 32개 국가 중 덴마크와 핀란드만이 더 높은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16세에서 74세의 연령대에 속한 에스토니아인의 약 36%는 인터넷을 통한 행정 서비스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접근해본 경험이 있고, 이 비율은 체코공화국 다음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결과는 각각 14%와 12%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에스토니아인들은 매우 빠르게 휴대전화를 받아들였다. 당시 인구의 70%가 이미 휴대전화 서비스를 갖추고 있었다. 십여 개의 통신 회사들은 2001년의 경제 자유화 이래로 이 작은 시장에서 서로 싸워오고 있다.


 에스토니아 인구의 절반이 컴퓨터를 점점 더 자주 사용하는 반면 다른 절반은 전혀 컴퓨터를 만지지 않는다. 이것은 지방뿐만 아니라 95%까지 러시아어권 소수 민족이 거주하며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실업의 악영향을 받고 있는 북동부 지역에도 해당되는 현실이다. 이 '정보 격차'에 대하여 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는 개입주의 기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분야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대한 교육 사업을 장려하고 사람들의 생산성을 늘려줄 수 있는 목표를 그것이 현실주의적이지 않더라도 설정함으로써 정보 격차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현재까지의 최근 사업으로는 농장 전체를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도록 구비하는 사업, 국가의 중재 하에 관심있는 거주민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빌려주는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의 공고는 운좋게도 2004년 슬로바키아에서 동유럽 국가 대표들과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다음날 탈린의 몇몇 언론사는 승리에 찬 목소리로 미국의 억만장자가 에스토니아를 도와주기로 한 '약속'을 지면에 기술했다. 조금 더 겸손하게 경제부 장관 Meelis Atonen은 고문을 통해 빌 게이츠가 장관과 '2미터 떨어져 앉은 채' 그러한 구상을 빌려준 것에 대해 만족해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장관이 일대일로 만나는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아 빌 게이츠는 만족하지 못했다.


 수만 명으로 공무원 수가 줄어든 에스토니아의 행정은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소련 치하의 기간 동안 정보화를 거치지 않은 에스토니아는 1991년부터 인터넷 프로토콜과 개인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만을 알고 있었다. 독립에 뒤이은 첫 몇달 동안 대학생과 작가 중에서 채용된 외교부의 200명의 직원들은 3대의 개인 컴퓨터만을 공유해서 사용해야 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건설해야 했습니다."라고 Linnar Viik는 이야기한다. 또한 Mart Laar가 2000년에 권력 회복에 성공한 다음 Linnar를 불러 신기술 분야에 대해 그를 도와줄 것을 요청했을 때 Linnar는 당시에도 역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던 인터넷 서핑 수단을 조사하였다.


 10년 전에 발급된 신분증의 대다수를 바꾸는 기간에 정부는 다수의 속성값을 가진 공식 문서 칩을 사용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 칩을 소지한 사람은 전자 서명 자료를 통해 개인 컴퓨터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 세금이나 서비스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이 플라스틱 직사각형은 운전면허증과 자동차 보험 서류로도 활용된다. 약 30만 명의 에스토니아인들이 이미 이 칩을 소지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기존의 법을 개선하거나 변경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위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오늘은 내가 결정한다'를 런칭했다. 이 공식 포럼에는 약 9000명이 등록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제안에 댓글을 쓸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제안에 투표할 수도 있다. 어떤 제안이 부정적인 표보다 긍정적인 표를 더 많이 받으면, 그 주제에 관련된 정부 부서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답변을 하기까지 한달의 시간을 가진다. 정부 부서가 제안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부서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어김없이 우스꽝스럽거나 대충 제시된 제안들도 때때로 나타나지만, 곧 웹마스터에 의해 삭제된다. 하지만 몇몇 법은 이러한 방법으로 제안된 이후 제정되었다. 시간 변경에 관한 법, 학생 조합이 외부에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 법 등..


 그리고 에스토니아에는 '전자 장관회의'가 있다. 2000년 8월 8일부터 에스토니아 정부는 가용 기술을 차용함으로써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장관들은 Toompea 언덕 위에 걸친 총리 공관인 Stenbock House에 모인다. 손에 서류 가방 하나 들지 않고 팔에 서류 하나 들지 않은 채 모든 것은 컴퓨터를 통해 진행된다! 총리실의 정보화기획관 중 한명인 Tex Vertmann은 스웨덴 출신 Jakob Pontus Stenbock 백작에 의해 18세기 후반 세워진 건물의 2층에 있는 회의실을 관리한다.


 천장 위로는 이날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탈린의 근교 지역으로 빠져드는 창문이 있고, 회의실은 특히 그 간결한 특성으로 충격을 준다. U자 모양으로 생긴 큰 테이블 위에는 14개의 평면 LCD모니터가 자리하고 있고 바로 옆에 호리호리한 검은 색 마이크가 붙어있다. 각 장관마다 사용하는 모니터인 것이다. 중앙에는 에스토니아의 미니 국기(파랑, 검정, 흰색) 그리고 근대성이 단 하나 양보한 떡갈나무 망치가 국가원수의 자리임을 알게 한다. 망치 받침대가 내는 둔한 소리는 자연스럽게 회의에서 나온 '전자 결정'을 채택함을 의미한다.


 2000년 여름의 정부 기조 변화 이래로 이 소리는 회의실 내에서 확실히 덜 자주 난다. 사실 회의가 시작할 때 수요일 논의할 안건의 3분의 2는 이미 그 결과가 정해져 있다. 설치된 시스템 덕택에 장관과 측근의 고문들은 미리 온라인으로 의사 일정을 참고한다. - 대중에게도 똑같이 공개되어 있다 - 그들은 토론할 사업에 대해 공부하고 결국 찬성표를 던진다. 한 장관이 특정 사항을 반대하거나 문서를 작성할 책임을 가진 동료의 설명을 희망한다면, 그는 회의에 참석하면서 정보시스템 안에 서면으로 반대하는 내용과 소견을 적어 알게 한다. 그리하면 사항에 관련된 장관은 반박이나 정확한 설명을 장관회의 이전에 준비할 시간을 가진다. "이러한 운영 방법은 각료들로 하여금 '집에서 숙제'를 하게 하지요."라며 Tex Vertmann은 농담을 던진다. 전세계 어디서든 이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 출장을 나간 각료들에게도 이 운영 방법은 예외가 아니다. 수요일 아침 전까지 아무런 반박도 있지 않다면 논의된 사항은 자동으로 채택된다.


 매주 다루는 40여개의 주제 중 회의는 문제를 제기하는 몇 개의 주제만을 논의한다. 화면 위에서 장관들은 법제 관련 서류를 상세히 열람하고 원한다면 마우스를 클릭하여 하이퍼링크와 참고문헌이 곁들여진 통합 버전을 볼 수 있다. 회의가 기록을 위해 녹화될 때 방 구석에서 각자의 화면 앞에 앉아있는 언론 관계자들은 결정이 끝날 때마다 질의를 하고 이는 20초 이내의 형태로 공식 언론매체와 정부 공식 사이트에 전달된다.


 장관회의는 예전에는 매주 2시간에서 10시간이었지만 이제는 평균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고 거의 모든 회의를 보조했던 Tex Vertmann은 말한다. 시간이 줄어드는 이점을 차치하고 국가는 종이 사용을 절약함으로써 기술 투자의 수익을 빨리 창출해내야 한다. (매년 약 80만 크론, 유로 환산시 51,000 유로) 외국에 있는 공식 대표들 또한 탈린에 와서 자국 기업인 MicroLink가 개발한 기술 아키텍쳐가 반영된 이 전자정부의 구체적인 사례에 영감을 받고 간다.


 자체만으로 놀라운 전자정부 시연은 몇몇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가장 민감한 결정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다른 정당의 여러 임원들에 의해 미리 토의되고 채택된다는 점에서 공적인 악명을 얻는다. 장관회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전에 발제자 간에 결정된 큰 노선에 따라 실행에 옮겨질 사안만을 찬성한다. 그 외에는 매주 수요일 밤 장관들은 Stenbock House의 작은 방에서 화면도 마우스도 녹화 장치도 없이 모여 앞으로 가질 정치적 방향성과 그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방법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논의한다. 이 경우 알력이 작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발트해 연안 국가의 집권 연합은 대부분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Juha Parts의 고양이 Mismu가 슬쩍 들어온 회의실을 나가 옆의 집무실로 가는 길에 많은 동료들과 같이 37세의 나이인 젊은 총리는 다른 질문을 받는다. 어느 지점까지 인간적인 소통은 기술 뒤에서 지워져야 하는가? 공화국의 대표, Juha Parts의 정당은 2003년 갑자기 찾아온 정부 내의 작은 위기 이후에 질문을 제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터넷 만능주의는 장관들 간의 직접적 대화를 두 번째 순위로 밀리게 하고, 이것은 부분적으로 연합이 거의 실패했다는 사람들 사이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무능함 때문이다. Tex Vertmann은 이 논의를 과장되었다고 잘 판단했고 소극적인 성향의 에스토니아인의 신기술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잘 지적했다. 그의 깊은 고민은 중세의 벽을 따라 탈린의 시내로 내려가면서도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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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토요일 오전에 파리 4구 마레 지역으로 쇼핑을 나갔는데 우연히 파리고문서관(Archives de Paris) 안 정원에서 어떤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행사의 이름은 Le Forum National de la Généalogie, 한국어로 하면 '족보 박람회' 정도 된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족 계보를 확실히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핵가족인 우리 가족에는 집에 '족보'라고 생긴 책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 친가 외가 할아버지께 여쭤봐도 집에 족보가 없었다.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나 유교적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내려온 사람들은 집에 족보를 꼭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가족처럼 기독교인 집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과 동시에 족보와 같은 책을 보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1501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모든 출생, 사망, 혼인신고에 따른 가족 계보를 꾸준히 관리하여 région(한국으로 치면 '도') 단위로 가족 계보를 저장해왔다. 그리고 이 정보는 계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정부 관계자에게 의뢰하여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렇게 여러 개의 부스로 나누어서 각 région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찾아가서 서비스를 받도록 되어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60대 이상의 프랑스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간혹 30-40대 프랑스인이 있기도 했고 나같은 관광객은 마레 지역에 쇼핑하러 왔다가 정원이 예뻐서 혹은 현지인이 많아 신기해서 들어온 경우에 속했다. 하도 종이를 좋아하는 프랑스 행정을 접해서일까 나는 이곳에는 절대로 IT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외국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 차원에서 토종 프랑스인을 위해 만든 행사인데, 오는 사람들 중 20대는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를 논할 수 있나 생각했다. 각 부스마다 있는 컴퓨터는 짐작컨대 정부 관계자들이 가져온 컴퓨터였는데 사람들은 빈손으로 부스 테이블에 앉아 직원과 대화를 해서 원하는 내용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정부 관계자들이 쓰는 데이터베이스 말고 국민들이 이 족보에 관련하여 쓸 수 있는 것들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은 족보에 대해서도 구비되어 있었다. http://en.geneanet.org/ 에서는 여러 민간 족보 수집가들과 국민들이 위키 방식으로 족보를 제작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중에서도 자신의 지역과 성을 입력하여 가족관계도를 보면서 위를 클릭하면 조상, 아래를 클릭하면 자손과 같은 식으로 가족관계도를 왔다갔다할 수 있게 해놓은 게 있었다. 몇가지 분석 및 저장 기능을 추가한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도 CD로 팔고 있었으며 가격은 90~110유로였다.

 

 가장 IT와 먼 것 같은 영역에서 IT의 유용성을 찾아냈을 때 기분이 참 좋다. 유럽 사람들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행태는 빠른 속도나 하드웨어 호환성에 중점을 두지 않고 그들이 백년 넘게 유지해놓은 시스템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상태로 남아있다.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에 초점을 두고 불편한 UI에 특별한 기능을 담아놓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웹 서비스들은 최고의 편리함과 확장성으로 세상을 장악했으나 대부분 플랫폼에 그친다. 실제 컨텐츠나 기획의도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 있고 유럽은 그중 아직 개척해야 할 땅이 넓은 대륙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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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펜하겐 공항에 왔다. 덴마크라는 나라가 워낙 작아서 공항 또한 그리 크지 않고 북유럽 감성 때문일까 편의시설도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다음날 오전 8:30 비행기를 타기 위해 12시간 넘게 공항에서 죽치고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못배길 기세였는데, 마침 Wi-fi가 무료라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 아주 기쁘게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라인에 들어가서 일본 친구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다 하고, 심지어 TeamViewer로 들어가 한국의 집에 있는 컴퓨터로 어제 찍은 사진을 옮겨다 놓는 일도 했다. 일단 인터넷이 되기만 하면 그 이후는 내가 어느 나라에 있던지 항상 내방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열고 CPH Hotspot 이라는 AP를 선택하면 다음과 같은 창이 뜬다.



여기서 SIGN UP FOR A MEMBERSHIP으로 들어간다. 유료 회원가입일 것 같지만 유료가 아니다. 공항은 매우 관대했다. 무료로 공항 회원으로 가입하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이 공짜로 Wi-fi를 쓰게 해준다니.. 한국의 인천공항만 해도 무료 Wi-fi zone이 아니라 각 통신사에 가입한 사람만 쓸 수 있는 AP가 아니던가. 덴마크에는 텔리아소네라가 있지만 텔리아소네라 가입자 전용의 Wi-fi zone같은 외국인에 차별적인 AP는 없었다. 이 공항 AP 하나로 빵빵하게 모든 승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정보를 후딱 입력하면 아래와 같이 창이 뜬다. 여기서 필수사항 중 이메일 주소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충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몇번의 transaction을 거친 후 위와 같이 화면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지금 Wi-fi에 접속한 기기로 15분 동안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이 15분 내에 자신의 이메일 웹사이트로 들어가서 인증 메일의 링크를 클릭해야 한다.




메일의 인증 링크를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사이트가 표시되며 그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속도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걸로 보아 매우 빠르다. 10Mbps 정도 되는 듯하다.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AP를 사용하고 있어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덴마크는 생각보다 인터넷이 잘 깔려있는 도시였다. 관광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밖으로 안 나갈 것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인상을 받고 프랑스로 떠날 수 있어 기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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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1일 La Croix의 기사입니다.

 디지털연대기금(FSN)은 2005년에 세네갈의 대통령 Abdoulaye Wade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기금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설립 멤버 국가들(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쿠바, 도미니카공화국을 제외)에 의해 각국이 최대 30만 유로를 지원하면서 운영된다. 파리, 리옹, 제네바, 발라가, 다카르, 론-알프스 지역, 피에몽 지역 역시 설립 멤버에 포함된다.
The 1% principle
 디지털연대기금은 지방자치단체의 IT 장비를 공공부문 시장에 수출한 기업들에 의해 수출 대금의 1%를 지원받는 식의 새로운 재원 조달 메커니즘을 제안한다.
 이 메커니즘은 2008년 11월 29일에서 12월 2일까지 열릴 도하 개발아젠다 회의에서 국제적 기준으로 인정받을 예정이다. 135개국 이상이 이미 디지털연대기금에 가입했으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수행해야 실질적 효력이 발휘된다.
 디지털연대기금은 원격 진료 부문과 낡은 정보통신기기 물질 재활용 부문에 똑같이 관여한다. 이는 부르키나파소와 부룬디의 에이즈 퇴치 운동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또한 쓰나미 이후의 인도네시아의 Banda Aceh 지역의 인터넷망 재구축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0년은 UN에 의해 교육의 해로 지정되었다.
 11월 25일부터 28일까지는 유네스코의 주재 하에 국제 교육 회의가 제네바에서 열리며, 소외되었던 국가들이 밀착형 교육(education inclusive: 쉽게 말해 IT를 활용한 교육)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프리카에는 인구의 2% 미만만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다.

현재 이 디지털연대기금은 Digital Solidarity Fund-Fonds de Solidarité Numérique (DSF-FSN)이라는 이름으로 웹사이트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이트의 Digital Divide(디지털 격차)에 대한 하위 페이지를 보면 아래의 표가 나와있는데, 한국이 없다는 게 참 섭섭하다.
Distribution of access to the Internet in 2005

 한국은 이 DSF-FSN에 어느 정도로 참여하고 있을까?
 
 프랑스는 이 기구에서 의장국을 맡고 있다. Founding Members 안에도 프랑스는 국가 자격으로도, 비정부기구 자격으로도(국제프랑스어권기구 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Francophonie (OIF))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자격으로도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다. 의장 1명과 부의장 2명으로 이루어진 이 기구에서 부의장은 도미니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 출생이다.

 IT강국 한국이 가장 잘 참여할 수 있는 국제기구라고 생각하는데, 정부 주도의 노력은 바라지 않더라도 UN 산하기구 부문에서 더 적극적인 관심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정작 참여를 하지 않고, 전통적으로 국제기구 분야에 강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는 행위자들만이 신흥국가들과 손을 잡고 세력을 넓히고 있다. 기술력은 가장 강한 협상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TAG IT, UN,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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