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 4학년 때의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 도쿄를 다시 찾았다. 친구들과 만나서 한 이야기들 외의 혼자 다니면서 얻은 여러 가지 작은 단상들을 잊지 않기 위해 써둔다.

피치항공, 하네다 공항

 인상깊었던 것은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프랑스와 독일 대학생들이 3박 4일로 인천을 출발해 도쿄로 가는 여행 일정을 짜고 같은 대학교끼리, 혹은 다른 대학교와 같이 모여서 많이 가는 모습이었다. 완전 파리식의 빠른 속도의 프랑스어를 너무나도 오랜만에 접해서 거의 들리지 않아 절망했다는..
 그리고 스튜어디스는 갈 때도 올 때도 전원 일본인이었는데, 키가 작아서 기내수하물 수납 칸의 덮개를 닫기 위해 통로측 좌석의 옆에 붙은 발판을 딛고 올라가서 닫는 모습이 뭔가 귀여웠다. 한국 항공사는 예전만 해도 채용 규정에 키 몇cm 이상이라는 제한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없어진 걸로 안다.
 비행기를 타면 안에 배경음악을 무슨 경쾌한 비트의 남자 가수 노래로 한곡반복으로 틀어주는데 그것도 귀여웠다. 찾아보니 ケツメイシ 케츠메이시 라는 가수다. (http://utaten.com/news/index/8097)
 하네다 공항에서는 한중일 삼국 국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처음 건네는 말이 항상 일본어였다. 우선 ‘안녕하세요.’ ‘다음 손님 오세요.’ 는 일본어로 한다. 그 다음에 승객이 일본어를 하면 쭉 일본어로 말하고, 영어를 하면 쭉 영어로 말한다. 일본어를 하긴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승객에게는 긍정적인 내용과 들어도 안 들어도 그만인 내용은 일본어로 이야기해주고, 부정적인 내용(무엇은 하면 안 됩니다, 지금 무엇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어떻게 하셔야 됩니다 등)이나 필수적인 고지는 영어로 이야기해준다. 
 
남자 때를 밀어주는 아줌마

 새벽 3시에 리무진버스가 아사쿠사의 공중목욕탕에 도착했다. 내가 간 곳은 8층짜리 쇼핑몰 건물의 맨 위 2층을 이용하는 한국의 찜질방과 같은 시스템의 장소였다. 마침 때를 밀어주는 코스의 입장권이 있어서 그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3시 반부터 1시간 때밀이로 카운터에서 예약을 했고 직원은 가지고 있는 시간표에 자와 연필을 사용하여 내 이름을 빈칸에 적어넣었다. 때밀이를 하는 곳은 남탕으로 들어간 다음 그 안에 있는 방이었다.
 한국과 같이 샤워를 하고 탕에서 몸을 불린 뒤 때밀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는데 뭔가 한국과 달리 불투명 처리를 한 유리창이 있는 방이다 보니 자연스레 제공된 옷을 입고 들어갔다. 이때까지는 안에 아줌마가 계시다고 알지 못했다. 방에 들어가자 아줌마께서 계셔서 나는 흠칫 놀랐으나 ‘저, 3시 반에 예약한 사람입니다만’ 이라고 일본어로 말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혹시 한국분이세요?’ 라고 한국어로 답해주셨다. 카운터에서는 아무런 설명을 못 받았는데 알고 보니 때를 밀어주시는 분은 아저씨가 아니라 아줌마였다. 그래서 불투명 처리가 된 유리창이 있었구나, 생각하고 옆의 문 앞의 표지판을 보니 개방 금지 (열지 마시오) 라고 써있었다.
 부산 억양을 쓰시는 아줌마께서는 일본인과 결혼하여 파트타임으로 이곳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중요한 부분만 수건으로 가리고 나머지는 알몸인, 게다가 테이블 3개 중 방 안에 나와 아줌마만 있는 경험이 처음 1분 정도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웠지만 이내 내가 필요한 서비스만 받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줌마도 사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20대 남자가 여기 오는 건 드물지만 40-50대 아저씨들은 전 과정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방문한다고 설명해주셨다.

아카사카의 호텔

 처음에 호텔을 예약할 때는 단순히 서울의 종로 느낌의 장소를 찾고 싶어서 2년 전 호텔인 한조몬에서 가까운 아카사카를 선택했다. 이곳이 한조몬보다는 조금 더 번화가인 것 같아서 예약했다. 그 이유뿐이었는데, 실제로 도착해 보니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 눈에 보였다. 신오오쿠보만 도쿄 내의 한인 타운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이전에 고급 한식당이 종류별로 들어서 있던 곳이 아카사카라고 한다. 오래 거주한 개인사업자처럼 보이는 부동산 사무소, 법무 사무소, 네일아트 전문점, 마사지 전문점 등도 함께 위치해 있었다. 대학생과는 다른 성숙한 어른의 정서가 물씬 풍겨서 좋았다.

 내가 머물던 Centurion Hotel Residential 정문을 지나는 길의 이름은 Esplanade Akasaka. 프랑스를 그리워하는 동양인들의 정서는 내게 참 가깝고 친근하다. 아르누보 양식을 약간 따온 듯한 가로등의 디자인과 같이 이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서래마을의 주된 도로도 이곳처럼 폭이 좁고 아스팔트 대신 돌길이었다면 훨씬 운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TechCrunch Tokyo 2016

 한국에서도 하는 행사라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지만, 하나 한국과의 차이점이 있었으니 바로 ‘부동산 건설업체의 부스’ 다. 도큐부동산 이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도쿄 내의 사설 철도를 운영하면서 철도와 역사, 그리고 역사 주변의 빌딩 건축을 담당한다. 한국도 코레일의 자산개발사업 부문이 있으니 비슷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도큐부동산이 부스에서 보여준 조감도 영상은 젊은 감성의 원대한 포부를 담고 있었다. 시부야 히카리에를 필두로 시부야 근처의 비슷한 느낌의 고층빌딩을 4개 더 짓고, 그 모두를 주상복합 건물로 활용하고, 시부야 역과 지하로 연결하고, 그리고 스타트업을 위해 작은 사무실 형태로 분양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시부야 109 (동대문 밀리오레 같은 빌딩) 쇼핑몰 건물도 도큐부동산이 지은 건물이라 하였고, 소개 영상에 대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제시대부터 이 회사는 시부야를 거점으로 하여 건설 사업을 진행해 왔다. 자사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한다.

호우세키바코 宝石箱

 마츠다 세이코와 나카모리 아키나를 거쳐서 오카다 유키코, 키쿠치 모모코, 모리타카 치사토 등의 음악을 들어오며 아, 자드 이전에 이런 음악 세계가 있었구나 하고 기뻐하던 나는 2013년 드라마 아마짱 의 하루코 (주인공인 아키 의 어머니) 의 고향 집 2층 다락방, 혹은 하루코가 20대 초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도쿄 안의 아이돌 카페와 같은 곳이 있나 찾아보았다. 아마짱 드라마 안의 아이돌 카페와 같은 모양의 간판을 쓰는 동명의 카페가 있었으나 내부가 별로여서 더 찾아본 결과 시내에서 조금 멀지만 가장 풍부한 물건 진열로 분위기를 낸 곳을 찾았다. 세타가야구 치토세카라스야마 千歳烏山 라고 하는 생소한 주거지역에 덜렁 하나 있는 카페다. 
 이 카페의 이름은 ‘보석상자’ 이다. 하루코의 다락방과 같은 컨셉이다. (드라마 이후에 카페를 열었는지 못 물어봐서 트위터로 멘션을 해봐야겠다.) 시부야에서 1시간 걸려 도착한 뒤 안에 들어가니 아르바이트생인 점원 1명과 여자 손님 2명이 있었다. 내가 들어와 자리에 앉고 20분 뒤에 대학교 2학년으로 보이는 연애 초기처럼 보이는 학생 2명이 들어왔다. 안에는 80년대에 출판된 소설책과 만화책들이 약간 있고 지금도 월간 잡지 형태로 나오는 레트로 문화 잡지가 쌓여있었다. 

 나는 자주색 크림소다를 시켜서 마시면서 (크림소다가 얼음 위에 소다를 쏟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건지 이때 알았다)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나중에 읽어보기 위해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배경음악은 한번은 여자 곡, 한번은 남자 곡으로 성별이 번갈아가면서 나왔는데 가끔씩 내가 아는 곡도 나와서 좋았다. 나중에 찾아볼 곡은 음성녹음으로 갈무리해두었다.
 계산하고 나오기 전에 점원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로 이곳에 나같은 뜨내기 관광객도 오냐고 물어보니까 근처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온다고 했다. 점원은 내가 유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둘째로 트위터에 가끔씩 일찍 가게를 닫는다는 트윗이 있어서 이번에도 조마조마하며 확인하고 왔다고 왜 가끔씩 일찍 가게를 닫냐고 물어보니까 아르바이트생이 자기 한명밖에 없어서 자기가 다른 일이 생기거나 아프면 가게를 닫는다고 한다. 오모테나시와는 다른 뭔가 쿨한 느낌의, 단골 해달라고 무언의 강렬한 추파를 던지는 듯한 카페의 아우라에 끌렸다.

게이오 대학 축제 三田際

 게이오 대학 친구들과 알고 지낸 지가 4년이 넘었으나 그들이 대동제를 모르듯 나도 그들의 대학 축제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때가 겹친 만큼 직접 찾아가서 경험해보고 친구들을 축제 장소로 불러서 상징적인 장소에서의 재회를 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세 가지, 외부 주류 반입이 허용되지 않은 점과, 기업의 상업활동을 위한 판촉 부스가 없다는 점, 그리고 졸업생으로 보이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축제를 보러 왔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가 한국 대동제와의 차이점으로 보인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보니 80년대에는 한국도 기업의 판촉 부스 없이 순수한 대학생들의 기획으로 축제 전체를 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80년대의 대학축제를 되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입맛만 다셔본다.



 내가 갔던 날은 축제 마지막 날인 일요일이었다. 행사 시간이 10시부터 18시라고 해서 나는 에이 설마, 18시 이후에도 뭔가 계속 뒷풀이 같은 게 있겠지 했는데 정말 18시 정각에 끝났다. 17시부터 시작한 ‘후야제’ (전야제가 있다면 후야제도 있다) 가 정확히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축제 집행위원장인 남자 대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희열의 절규를 하며 축제에 와준 재학생들, 졸업생들, 집행위원들에게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내가 있던 한국 대학교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여행 후

 잘 놀고 의미있는 만남을 갖고 집에 왔는데 후쿠시마 지진과 한일정보보호협정 두 가지에 가슴이 아프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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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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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3국의 노래방, 별실, 요정을 보면 관계가 있는 사람들끼리 폐쇄적으로 만나는 숨기는 문화가 보인다. 영미권은 반대로 넓은 풀밭의 야외 좌석, 바닷가에서 즐기는 파티, 선상 회합, 동네 앞 펍과 같이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서로를 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콩고는 어떤가? 콩고는 동아시아 3국과 같이 겉으로는 좋은 것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레스토랑과 바를 숨기고 있다.

 겉보기에는 매우 허름하고 투박해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금으로 장식한 벽면, 외국의 멋진 장소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장식, 30년이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큼지막한 가구, 주인의 생활과 세월이 녹아있는 옷과 식기구가 가득하다. 간판도 어두운 밤에는 잘 안 보여서 찾기가 힘들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서라기보다는 프랑스어권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곳의 간판은 형광등이 안에 들어간 한국식 네모 간판도 네온싸인도 아닌 나무 위에 페인트로 글씨를 쓴 간판이 대부분이다. 조명이 있어도 백열등이나 할로겐등 몇 개를 옆에 달아놓을 뿐이다.

 벽은 또 어찌나 높은지 기본으로 3m를 넘는다. 그 위에는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망, 전기선, 깨진 유리병 조각 등을 잔뜩 심어놓았다. 한 공간과 그와 이웃한 공간 사이에는 신용을 찾아볼 수 없다. 신용은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뿐 그 신용이 물질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도둑질에 관대한 문화는 그 반작용으로 도둑질이 쉽지 않은 물질적 환경을 만들었다. 대신 벽의 바깥쪽은 모든 것이 소멸하는 폐허의 공간이지만, 그만큼 벽의 안쪽은 모든 것이 축적되는 공간이다.

 군부대같은 벽과 허름한 간판만 보면 가지는 선입견을 깨야만 킨샤사 구석구석의 좋은 곳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양철로 만든 커다란 문을 열고 보석상자를 열고 들어가면 당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세간에 떠벌리지 않았던 레스토랑과 바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안에 들어앉은 사람들은 안에 화려한 보석이 충분히 있으니 보석상자는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혹은 화려한 보석을 누구에게나 쉽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혹은 화를 면하기 위해 일부러 겉을 후줄근하게 방치해둔다.

 일본어에 ギャップ萌え(갭 모에)라는 말이 있다. 저 사람은 남성적일 것 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여성적인 면이 있다거나, 저 사람은 평소에는 투박해 보이는데 데이트를 할 때는 의외로 앞서가는 패션을 보여준다거나 할 때 겉모습의 선입견을 가끔씩 깨주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때 갭 모에가 있다고 말한다. 킨샤사라는 도시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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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정윤 2016.12.14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왔는데...콩고에 있다니 깜놀...열심히 잘 살고 있군요...파리 오면 연락해요 ^^

 벨기에에 대한 콩고인들의 인식은 아직도 좋다. 보두앙 1세와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배는 가혹했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서양식 식사예절, 주거 형태, 의복, 파티 문화 등은 아직도 건재하고 콩고 상류사회의 코드로 남아있다. 독립 이후 잔류한 벨기에인들의 조차지였던 UTEXAFRICA는 지금까지 주로 백인인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단지로 남아있다.


 EUSEC은 MONUSCO의 보조기관으로서 북동부 KIVU 지역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EU 수도가 브뤼셀인 만큼 벨기에의 영향이 큰 정부기관이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가족 중에는 벨기에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벨기에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사람들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관대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20세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차원으로 정부가 제도로 정착시켰다. 브뤼셀 안에는 마통게(Matonge)라는 콩고인 밀집지역이 있으며 도심에 위치해 있어 도쿄의 신오쿠보를 연상케 한다. 킨샤사 안에도 마통게 라는 quartier(한국의 洞) 가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자이르가 되기 전까지, 즉 벨기에령 콩고로 남아있을 때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최대 2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원래 쓰던 링갈라어와 스와힐리어를 쓰면서도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를 건너뛰고 네덜란드어를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안트베르펜(앙베르, Antwerp)은 전통적인 다이아몬드 유통의 중심지이다. 여기서 유통되는 다이아몬드가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와 남동부 그리고 다른 서아프리카 국가들(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시에라리온을 포함) 에서 채굴되는 것들이다.


 땡땡(틴틴, Tintin) 만화 중에 Tintin au Congo 편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벨기에가 콩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Monsieur를 Messie라고 말하고, 프랑스어 맞춤법이 틀린 미개한 흑인이 사는 곳에 백인이 자연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도착하고, 그 백인은 고장난 증기기관차를 고쳐주고 엽총의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그에 따라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된다. 흑인이 국가 건설의 주체가 되어 독립을 이룩하기 전에 나온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스토리다. 그런데 독립 후에도 콩고민주공화국은 독립 이전의 캐릭터를 수용하고 복제하고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 나무 조각품을 판매함으로써 벨기에에 대한 호의를 전파한다. 분명 일제강점기에도 만화가 있었을 것이고 경성에 여행을 하며 황국신민들의 존경을 받는 일본인 캐릭터가 있을 것인데, 독립한 대한민국은 그러한 캐릭터를 철저히 무시하고 은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대한민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의 태도는 여기서 갈린다.


 하지만 콩고 사람들이 비판을 제기하는 벨기에의 유산이 있다. 벨기에 식민 지배자들은 광신적인 기독교 교회가 번창하는 것을 방치하였다. 기독교를 들여온 사람은 벨기에인이고, 흑인 유대교(Lasalien 이라고 하는 흑인들이 유지해 온 종교)와 차별화되는 기독교는 벨기에의 식민지배 수단이었다. 전통 신앙인 주술을 미개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를 비판하는 종교로서 기독교를 정착시켰는데 기독교 교회의 콩고인 목사가 과도한 헌금을 걷고 국민들의 일요일 생활을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바치게 하여도 벨기에는 이를 비판하고 교정하지 않았다.


 결국 벨기에는 병 주고 약 준, 콩고민주공화국을 유럽과 연결시키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킨샤사에는 땡땡 나무 조각품으로 장식한 많은 레스토랑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VILLA TRICANA로, 포르투갈과 콩고 요리를 파는 곳인데 레스토랑 제일 안쪽에 야외 바와 연못이 있다. 직선으로 쭉쭉 뻗는 조명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탁 트인 수영장이 아니라 은은한 백열등을 간접조명으로 비춰주는 사방의 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연못. 이곳의 종업원들은 대사관 직원들을 주된 고객으로 받아서 그런지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고 유럽과 동아시아 선진국의 소식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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