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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6월 말 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크게 노는 날을 보냈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 스스로 그 기쁜 날을 돌아보기 위해서고, 후배들이 민족제가 뭔지 대충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야.

 그때 아마 나는 선도부에 있어서 미스민족을 준비하고 있었을 거야. 하라랑 매주 토요일마다 3시간씩 춤 연습을 했지. 다른 선도부 친구들이 의상과 가발, 화장품을 준비할 동안 우리들이 저 충무관 2층에서 얼마나 열심히 땀을 흘리며 Britney Spears의 Me Against the Music을 연습했는지 몰라. 그때 나는 춤이 무엇인지 대충 깨닫는 듯 했고, 몸치였던 하라는 내가 계속 끌고 나갔지.

  민족제 날 아침부터 나는 아마 사무침 연습을 한번 더 했을 거야. 축제는 조용히 시작되었어. 저 민족교육관에서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속에서 우리들은 아이들 앞에서의 첫 공연이라는 설레임을 가지고 맘껏 두드려댔어. 생활한복을 남색으로 맞춘다는 걸 까먹고 1층부터 5층까지 한복을 찾아 돌아다니던 내가 생각나는구나. 오전 10시 쯤 모든 학생들이 학교 다산관과 충무관 사이에 모였어. 교장, 교감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축제는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엄청난 재미가 뒤이을 것이라는 암시는 어느 곳에도 없었어.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야외에서 있었는데, 아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해 주었지. 나는 그런 오케스트라 악기는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더욱 신기하기도 했고, 그냥 내가 고등학교에서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기만 했어.

  오전에는 나는 애플파이의 별자리 암실에서 시간을 보냈어. 그 아이들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한 선생님의 방이 별의 향연의 자리로 바뀌기까지 그 피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어. 아마 축제 2주 전부터 2자습 내내 본드 냄새를 맡아가면서 그 친구들은 열심히 축제 준비를 했을거야. 태근이가 내 룸메였으니까 나는 대충 짐작할 수 있지.

  그리고 정오가 되니까 슬슬 배가 고파지더라. 문기부의 먹거리마당은 우리를 만족시켜 주었어. 카페의 garcon과 웨이트리스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나는 문기부에 들고 싶다는 잠깐의 부러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지. 사진을 찍어주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던 역기부 아이들을 잡아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따가운 햇살에 사진이 번질까봐 조심조심 흔들던 나의 모습은 그 때의 산들바람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구나.

  오후가 되자 드럼을 조금 쳤어. 마치 프랑스의 음악 축제가 생각나더구나. 그리고 나서 역기부의 보물찾기를 또 했지. 405호 아이들과 준이랑 이렇게 한 조가 되어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나는 즐거움과 함께 역기부 아이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어. 축제를 즐겁게 하는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지.

  슬슬 4시가 되자 하늘이 나른한 노오란 빛을 띠기 시작하고, 조금씩 서늘해지기 시작했어. 산들바람에 실려 올라가듯 그렇게 나는 다시 기숙사로 올라가 미스민족 사회자 역할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하라랑 체육관으로 갔어. 그리고 미스민족 참가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그 친구들이 열심히 자기를 망가뜨리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지. 6시부터 7시까지 나는 밥도 안 먹고 체육관에서 밴드의 리허설을 들으며 보냈어. 그때 해가 다 지고 초저녁이었어.

  이제 본격적인 축제의 막이 올랐지. 처음에는 인문반 형 누나들의 춤으로 시작했는데, 얼마나 멋있었는지... 그때 나는 결심했지. 축제 때 나도 저기에서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추겠다고. 이 학교는 공부만 하는 학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깊게 내 뇌리에 주사하는 순간이었어. 그리고 미스민족이 시작되었지. 나는 사회자를 했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의외로 시끄러워서 좋았어. 내가 그때 소위 '이쁜 남자' 도 아니었고 그때 아마 나는 공부만 하는 소심한 아이 쯤으로 여겨졌나 봐.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서 미스민족을 끝내고 나는 친구들과 선배님들의 웃음 섞인 한마디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왔어. 그때 체육관의 조명은 외부에서 준비해 온 조명이어서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 주었지.

 밴드의 공연은 정말 멋있었어. 마치 동그란 탁자에 앉아 어른들이 맥주를 마시며 여름밤을 보내는 듯했다구. 그 때 내가 들은 음악이 아마 Skid Row의 I Remember You였을거야. 축제는 점점 끝을 향해 치닫고, 마지막으로 신나게 사이킥 조명 아래서 모두들 춤을 추었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축제는 찾아올 거고, 나는 또 2학년의 나로서 축제를 즐기겠지? 이번에도 정말 즐거운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어. 기대하는 사람 실망도 크다 하지만, 내가 참여하는 일에 기대를 한다는 것은 그 일이 수포로 돌아가더라도 실망보다는 보람이 있는 것을 의미하지. 이번에는 내가 참여하는 행사도 많고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구나.

2006.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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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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