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소년들에게 갑자기 철학이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질문했을 때 쉽게 그 질문에 답할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끊임이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적인 철학의 정의가 없었다. 하지만 철학은 단어의 뜻을 규정하고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인간의 내면 세계와 외부의 자연 세계에 대한 질문을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가장 먼저 논의를 하는 사람도 철학자들이다. 나는 누구인가, 시간이 무엇인가, 젊음은 영원한가와 같은 고정된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질문들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철학의 흐름이 설명해 준다.

  철학은 고대 그리스 어의 philosophia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지혜를 사랑한다’ 즉 지혜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인간의 활동을 지칭한다. 이오니아 학파, 엘레아 학파 등 그리스와 지중해 쪽에서 많은 초기 서양철학자들과 함께 동양에도 공자, 맹자, 주자 등의 사람들이 동양에 맞는 철학을 만들어 온 것으로 보아 인간의 사유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존속되어 왔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항상 해답에 새로운 비판을 가하고 토론이 중단되지 않는 것도 철학의 특성이다.

  철학의 또 다른 특징으로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한 가족 유사성이 있다. 초기의 철학, 즉 기원전 4세기의 철학에 의하면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가장 먼저 있었다. 그리고 중세 시대를 거쳐 과학이 대두되면서 자연 현상을 탐구하는 철학이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고, 과학의 무절제한 발전이 전쟁의 폐해를 심화하고 평화를 해친다는 위기의 의견이 조성됨에 따라 인간이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 즉 실존철학이 20세기 초에 대두되었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철학의 주된 주제는 변화해 왔다.

  철학을 발전시켜 온 사람들은 정당한 논리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열중했다. 고대 그리스에 소피스트들이 모여 연구한 수사학을 그 시초로 하여 철학적 논증의 수련이 점점 그 중요성을 더해갔다. 한 소피스트와 그의 제자 사이에 벌어진 공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이유를 취하여 법정의 승소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그들의 변론을 통해 dilemma의 개념이 등장했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논의를 통해 순환 논리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모순 혹은 패러독스가 없게 하기 위해 논리를 점검하였다.

  시대가 진보하여 18세기 즈음에 철학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치적인 면에서의 철학은 존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봉건주의에 반하여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민주사회 정치인들에게 철학은 반봉건주의와 평등주의이다. 물론 봉건주의 또한 과거의 인간 발달사에 따라 생겨난 철학 사상이지만 말이다. 마르크스가 영국의 노동자·자본가 계급에서 발견한 모순을 지적하고 러시아 시민들에게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주장한 것도 그의 개인적인 사색을 통한 사상의 정립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공산주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19세기 초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돈 많은 자본가와 돈 없는 노동자의 모습을 긍정하는 사람도 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마르크스는 자신이 그 모습을 부정하고 그의 나라 사람들도 그 모습을 부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주장했다. 한편 그보다 일찍 활동했던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생각으로는 자본주의가 인간 삶에 많은 도움을 주므로 자본주의를 지지했다. 이들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세우고 자신들의 사상을 천명하였을 것이다. 이 근거를 세우고 주장을 확립하는 과정이 곧 철학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은 사람들에게 사상을 고취시켜 사상적 단결을 완성할 책임을 지닌 정치가들에게 요구된다.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유일무이의 답은 존재할 수 없다. 워낙 학문의 영역이 방대하고 항상 인간의 머리속 생각의 참과 거짓을 다루어 개인마다 조금씩 견해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물리학을 위한 기초 과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신학에서 시작하여 신 중심의 생각에서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옮겨온 현상에서 연유한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철학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이 없다. 시간은 비가역적(非可逆的)인가에 대한 논쟁을 예로 살펴본다면, 우리 인간이 멈춰있는 시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시간은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자연과학은 명쾌한 답을 그 학문 속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학문이다. 그보다 조금 덜 객관적인 사실로 만든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은 인간이 사회 현상을 관찰하여 빈번히 발생하는 현상을 이론으로 정리한 학문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장 주관적인 생각을 다루고, 주관적으로 정의한 개념에 대한 싸움을 동반하는 철학이 있다. 객관성이 떨어지는 학문이라 정확하고 널리 인식되는 정보가 만연한 현대 정보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과 사상을 다루는 철학은 고대 시대에 비해 많이 쇠퇴하였다. 답이 없는 학문, 몇몇 사람들의 논리적인 의견을 배우고 그 의견을 끊임없이 반박하고 재반박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의 특성 즉 끝없는 반박 때문에 철학이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잃지는 않는다. 철학은 정신적으로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생각을 하고 논리를 계발하도록 유도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은 이렇다.', '여러 사례에 비추어 보아 세계는 가장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와 같이 철학자-누구라도 철학자가 될 수 있다-의 주체적인 발상으로 주장이 생겨나고, 그에 따른 근거가 만들어져 토론의 장에서 그 철학자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결국에는 그의 주장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통설로 굳혀진다. 이러한 과정은 철학 발달의 과정이며,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이 빚어낸 자연스런 결과이다. 꼭 절대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인간은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하는 컴퓨터와 같은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주체가 된 생각을 그 근본으로 하는 철학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그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2006.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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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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