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이동욱입니다. 89년생이며 나이가 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수업을 들은 이유는 평소 관심있던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내정치체계 등과는 달리 취약한 분야였던 정치철학이나 역사를 졸업 전에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IT와 정치의 접점인 사이버 이슈에 가장 관심이 많지만 국제관계를 논하기 위한 전쟁과 평화의 역사 지식을 쌓는 것이 보다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는 유럽 사상에 대항하여 저는 전쟁이란 형벌의 연장이라고 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삼국끼리는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장기적으로는 미일동맹을 끊어지게 하고 중화질서의 조공 시스템에도 편입되지 않는 균형 있는 삼국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주를 외친다는 점에서, 자주를 위해 미국과의 전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저는 우파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제가 평화주의자라고 묻는다면 제가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입니다. 20세기의 냉전 시기가 가장 안정된 평화 시대인 것은 전쟁 직후의 세력 균형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관심있게 보고 있는 정부간 기구인 TCS 삼국협력사무국은 바로 세력 균형을 위해 존재할 뿐 EU와 같은 제도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재 위안부 역사 논쟁을 다시 끌어오는 것은 지략가들의 대의와 형벌의 논의로 유교권에서는 전쟁 직전의 단계인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형벌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전쟁을 일으키겠지만, 형벌이 필요 없다면 전쟁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명섭     14/03/08 10:32

전쟁이 형벌이라고 하면 먼저 죄가 있어야 하는데, 유죄와 무죄의 판정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강현주     14/03/09 18:02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노어노문학과 3학년 강현주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생각하는 전쟁이 '형벌'의 개념에 가깝다는 점에 동의하는데요, 이동욱선배님의 '형벌의 연장'개념에 조금 더 제 의견을 덧붙이자면 유럽, 특히 서유럽에서의 전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일종의 '과격한' 대화수단이라면,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도(道)나 의(義)라는 기준에 따라 국가가 흥하고 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개념인 것 같습니다. 일찍이 오자병법(吳子兵法) 제1편에서 전쟁을 이기는데 중요한 제 1원리로 도국(圖國), 즉 통치자의 도(道)와 통치가 올바르고 합리적일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적국의 통치가 올바르지 못하고 道에
강현주     14/03/09 18:09

적합하지 못할 때 반드시 승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손자병법에서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라고 하며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동양에서는 전쟁이 물리적인 파괴력을 통해 적진을 파괴시키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도(道)와 치(治)를 두고 국가들끼리 경쟁하는 개념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요. 이동욱 선배님 말씀대로 전쟁이 '형벌의 연장'개념이었다면 그 '죄'를 판명하는 기준은 도(道)였으며, 그것을 판정하는 자들은 전통적인 통치의 근원이라고 믿었던 민생,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학자(관리)들이
강현주     14/03/09 18:10

었을 것입니다. 선배님 생각이 제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부족한 의견 덧붙여봅니다.
이동욱     14/03/10 09:56

유죄와 무죄의 판정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장군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그 둘에게 정세와 향후 전략에 대해 조언한 지략가가 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략가들은 적국 지략가들과 근대 국제법의 틀 사이에서 만나 논의하지는 않았고 철저히 자국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 의견은 명분을 만들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명분을 역사로 기록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외교관들이 실리만을 논의하여 힘의 우위를 따졌지만 동양은 명분에 실리를 끼워맞추는 일에 좀 더 힘을 쏟았습니다.
이동욱     14/03/10 10:04

한편 1592년 임진전쟁(임진왜란)의 배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의 다이묘들이 통일 일본의 세력을 명까지 확장하며 명과의 감합(명과의 무역을 위한 허가증) 무역을 재개시키고 힘을 외부로 확장시켜 일본 내의 체제 안정을 도모하는 것으로, 임진전쟁은 자국의 실리에 따라 판단한 정치의 연장입니다. 여기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편에 섰던 다이묘들은 결국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이 조선에 적용되지 않고 조선은 유죄라는 판정을 국내에서 만장일치로 하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보였습니다.
이동욱     14/03/10 10:06

유죄와 무죄의 판정은 국내의 지략가나 외교관이 시작하고 국내 전체의 동의를 얻어 무력을 집행하는 사람이 전쟁을 개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기서 국내 전체의 동의를 얻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하며,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메이지 천황이 이끄는 제국주의 세력은 일심단결하여 명분을 세웠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주변국과 함께 유죄/무죄 판정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입니다.
김명섭     14/03/12 02:45

그렇다면 유죄로 판정되면 바로 사형, 즉 전쟁이어야 할까?


또 댓글 달아야지 ㅎㅎ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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