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따로 정해져있다는 걸 나중에 알아서 계륵이 되어버린 쪽글 ㅋ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프랑스의 경제체제가 얼마나 비경제적인 동기들로 작동하는지를 느낀 뒤로, 한국의 70-80년대의 경제개발 시대에 나타났던 아는 사람과의 거래, 직업 소개에서 기존의 가업이나 직업공동체나 마을, 교회 등의 영향력 등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치경제론이 기본적으로 미국 중심의 이윤 추구의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인을 가정한 현상 설명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현재의 모습에도 이것이 적용될 소지는 많이 존재한다.

 가져온 것의 반 이상을 공동체를 위해 내놓는 베르그다마인의 모습에서는 현재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떠올랐다. 오늘날의 기업은 단순히 기업 구성원하고만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추후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집단, 그리고 기업의 경영 활동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집단을 하나의 공동체로 아울러서 그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베푸는 활동을 한다. 대기업인 삼성은 예전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마을 건물 재건 등의 보상을 실시하였고, 젊은 대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전자제품을 제공한다. 이는 선심성 행위가 아니며 정치경제 공동체를 구성하는 상호성의 원리에 의한 행위이다. 정치경제학을 공부할 때 봉사나 기부 그리고 이윤 추구의 동기를 제외하고 현재의 기업 활동을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호성의 원리는 가부장적 질서가 한국에 오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했다. 안주인의 역할인 내조가 그것이다. 한 가족이 경제 활동에서 부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시장에 참여하는 남편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국 사회 전체가 인식했던 시대가 한국의 전후 재건시대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역시 남성과 여성의 직업 선택이 평등해지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고 소득을 얻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하면서 상호성의 원리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상호성의 원리의 약화는 인재 채용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인재 채용은 그동안 개인의 비물질적 가치로 쌓아온 명성과 평판에 따라 스카우트 형태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모두가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공개채용 전형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는 사람끼리의 네트워크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등가물을 교환할 수 있는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인재 시장이 국내 교역 시장으로 확대됨에 따라 신뢰를 절차에 의해 차츰 형성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가격에 의한 자기조정 시장은 경제활동의 역사를 돌이켜볼때 18세기 영국을 필두로 그 당시부터 등장한 최근의 경향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모든 인간이 희소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와 한계효용에 기반한 수요와 공급을 형성하고, 그래서 재분배의 원리 또한 이제는 세금 제도 정도로만 국한되었다. 자본주의 시장의 등장은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고, 책에서 말하는 '국내 시장'은 이제는 그 범위가 전세계로 확대된 상태다.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확대를 주도한 국가에게 유리한 구조적 권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남북 문제와 동서 문제가 세계화 시대의 화두가 되어 지금도 국가들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고대 역사로부터 보면 지금의 시장경제 체제는 인간의 본성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앞으로 태어나는 우리 후대 세대의 아이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모두가 시장 앞에 평등하다는 가정 하에 이윤 추구의 동기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을까.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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