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토요일 오전에 파리 4구 마레 지역으로 쇼핑을 나갔는데 우연히 파리고문서관(Archives de Paris) 안 정원에서 어떤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행사의 이름은 Le Forum National de la Généalogie, 한국어로 하면 '족보 박람회' 정도 된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족 계보를 확실히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핵가족인 우리 가족에는 집에 '족보'라고 생긴 책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 친가 외가 할아버지께 여쭤봐도 집에 족보가 없었다.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나 유교적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내려온 사람들은 집에 족보를 꼭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가족처럼 기독교인 집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과 동시에 족보와 같은 책을 보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1501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모든 출생, 사망, 혼인신고에 따른 가족 계보를 꾸준히 관리하여 région(한국으로 치면 '도') 단위로 가족 계보를 저장해왔다. 그리고 이 정보는 계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정부 관계자에게 의뢰하여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렇게 여러 개의 부스로 나누어서 각 région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찾아가서 서비스를 받도록 되어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60대 이상의 프랑스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간혹 30-40대 프랑스인이 있기도 했고 나같은 관광객은 마레 지역에 쇼핑하러 왔다가 정원이 예뻐서 혹은 현지인이 많아 신기해서 들어온 경우에 속했다. 하도 종이를 좋아하는 프랑스 행정을 접해서일까 나는 이곳에는 절대로 IT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외국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 차원에서 토종 프랑스인을 위해 만든 행사인데, 오는 사람들 중 20대는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를 논할 수 있나 생각했다. 각 부스마다 있는 컴퓨터는 짐작컨대 정부 관계자들이 가져온 컴퓨터였는데 사람들은 빈손으로 부스 테이블에 앉아 직원과 대화를 해서 원하는 내용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정부 관계자들이 쓰는 데이터베이스 말고 국민들이 이 족보에 관련하여 쓸 수 있는 것들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은 족보에 대해서도 구비되어 있었다. http://en.geneanet.org/ 에서는 여러 민간 족보 수집가들과 국민들이 위키 방식으로 족보를 제작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중에서도 자신의 지역과 성을 입력하여 가족관계도를 보면서 위를 클릭하면 조상, 아래를 클릭하면 자손과 같은 식으로 가족관계도를 왔다갔다할 수 있게 해놓은 게 있었다. 몇가지 분석 및 저장 기능을 추가한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도 CD로 팔고 있었으며 가격은 90~110유로였다.

 

 가장 IT와 먼 것 같은 영역에서 IT의 유용성을 찾아냈을 때 기분이 참 좋다. 유럽 사람들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행태는 빠른 속도나 하드웨어 호환성에 중점을 두지 않고 그들이 백년 넘게 유지해놓은 시스템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상태로 남아있다.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에 초점을 두고 불편한 UI에 특별한 기능을 담아놓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웹 서비스들은 최고의 편리함과 확장성으로 세상을 장악했으나 대부분 플랫폼에 그친다. 실제 컨텐츠나 기획의도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 있고 유럽은 그중 아직 개척해야 할 땅이 넓은 대륙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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