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거의 1년만에 다시 편지를 쓰면서 나는 지금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 도구의 홍수 속에서 편지를 왜 굳이 써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미 전화로도, 싸이월드 방명록으로도, 미투데이 글로도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와 나인데, 전달이 오래 걸리고 바로 답을 받아볼 수도 없는 편지만이 가진 아름다운 매력은 무엇이기에 나는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일까? 나는 편지지에 한 문장 한 단어 써내려가며 편지 아니면 안될 말들만 걸러내고 추려서 정성어린 깨알같은 글씨를 새겨넣어 가며 이 시대의 편지의 역할과 입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두가 손글씨보다 키보드가 편한 이 시대에 어려운 손글씨는 그만큼 정성을 나타낸다. 나의 타자 실력은 이제 550타를 거뜬히 넘게 되었다. 블로그는 잠시 쉬었지만 미투데이라는 걸 하면서 군생활 중 정말 짧게 주어지는 몇 분의 시간 안에 평소 가지고 다녔던 농축된 말들을 빠르게 풀어나가는 일이 하루의 일상이 되었다. 문서의 서식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디자인 요소를 넣어서 사람들 앞에 예뻐보이게 하는 기술도 컴퓨터를 항상 끌어안고 사는 지금의 일 때문일까 상당히 성숙해졌다. 하지만 나의 손글씨는 바쁘게 전화 내용을 대충 끄적거릴 때에나 써서 그리 예쁘지 못하다. 평소의 날림체가 나의 급한 성격과 웬만한 사소한 일은 대충 처리하려는 습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그 순간 펜촉에 시선이 집중되고 마치 표적지를 바라보며 사격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나는 긴장을 하였고 볼펜에는 힘과 정성이 들어갔다. 한장을 꽉 채웠을 때에는 뿌듯했으며 이 글 쓰려면 시간 꽤나 걸렸겠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 한 장의 글을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적으면 모니터의 반 장 정도밖에 채우지 못할 정도로 졸렬할 뿐이다. 하지만 손글씨로 쓰여진 글은 문장력에 상관없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노력이 느껴지는 것처럼 손글씨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에서 정성과 진실함이 느껴진다.

  편지는 아날로그다. 잉크가 만들어낸 글씨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라가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비공개를 하고 '비밀이야' 체크를 하더라도 결국은 서비스 공급자의 서버에 그대로 저장되고 누군가는 네트워크 장비와 서버를 침투해 들어와 내가 꽁꽁 숨겨둔 글을 훔쳐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더구나 그 훔쳐보기를 경험해보고 인터넷 네트워크에 올라온 정보의 기분 나쁜 공개성에 흠칫 놀란 나로서는 더욱 더 아날로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친구와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를 통해 쪽지나 방명록을 주고받을 때에는 그 친구와 단둘이 닫힌 방 안에 있는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 방에 아무도 없고 분명히 그와 나의 이야기를 엿보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사람 북적거리는 명동에서 20m 밖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편지, 이 편지는 나의 손을 떠나면 꽁꽁 봉투에 담겨져 있다가 그의 손에 바로 쥐어진다. 편지는 매체를 통하지 않으므로 가장 사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에 가장 사적인 내용을 채워넣으면 그 편지의 독보적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나 오늘 ..했다?' 혹은 '지금 나는 이러이러한 기분이 들어.' 같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하기에는 편지지가 너무나 아깝다.

  과거에 잠깐 생각났던 건데 전화로 말하거나 방명록을 통해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면 느긋하게 편지로 이야기하면 된다. 앞뒤 맥락도 없이 외워놓은 대본을 갑자기 낭독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 지금 현재 그와 내가 긍정적으로 지내고 있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된다거나, 명랑한 대화만 주고받던 그녀에게 응큼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평소 말싸움이 잦아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피하는 상황에서 사과를 빨리 해야 하거나 할 때 편지는 해답이다. 일상 대화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이 편지에서 나온다. 편지에서는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지연을 남긴다. 아무리 바로 옆 동네로 편지를 써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가 걸린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거나 전화를 하고 있거나 둘 다 네이트온에 로그인해 있을 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쪽에서 대답이 오지 않으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왜 대답을 안 하냐는 생각에 상당히 걱정되고 불안해지고 불쾌해진다. 싸이월드 방명록 역시 우리가 언제나 24시간 접속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지연을 남기지는 않기 때문에 편지와 조금 다르다. 편지에서 하는 말은 상대방에게 대답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본 다음 하라는 숨겨진 당부의 말을 같이 한다. 편지에서 내가 어떤 화제를 꺼내더라도 그것이 생뚱맞을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모든 감정은 평소의 의사소통보다 더욱 진해지고, 생각은 더욱 더 질서와 논리를 갖추게 된다. 철학적인 사색이나 공상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해줄 때에도 편지 이외에는 적합한 수단이 없다. 일상 언어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정한 주제의 에세이 형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자 할 때, 충분한 설명을 통해 한번 내 뜻을 전한 다음 오해의 피드백이 생기지 않을 것을 간절히 원할 때, 그때 편지를 쓰면 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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