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물건을 함부로 집 안에 들여놓지 않는다. 그들은 구입을 할 때나 주변 사람에게 선물을 받을 때에도 집 안에 물건이 들어갈 때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1.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물건의 출구가 확보되어 있는가?
  2. 저장되는 공간과 사용되는 공간을 모두 가지고 있는가?
  3. 물건의 사용과 이동을 위한 도구를 이미 가지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애초부터 물건을 함부로 반입하지 않는다. 부피가 큰 물건의 설치의 경우 더욱 그러하고, 인테리어 공사나 배선 등의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세 가지중 무시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한 후 신중히 결정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절차에 따라 생각한 후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물건을 가져올 줄만 알지 버리는 방법을 확보해놓지 못해 집 안을 어지럽게 채워넣거나 설치해 놓은 물건을 긴 시간 동안 애물단지로 만들어놓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내가 동네 뒷산(수락산)을 올라갔는데 해발 300m 정도 되는 곳에있는 절 옆 콘크리트 건물 안에 커다란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는 어떻게 이 무겁고 큰 물건을 이 곳에 가지고 왔을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소방방재용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피아노를 들어서 상공에서 운반하는 모습이었다. 분명 피아노를 가져다 놓기 위해서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피아노가 만약에 고장나거나 혹은 아예 못 쓰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버릴 것인가? 버릴 방법이 없다면 그 물건은 버릴 수 있는 쓰레기보다 열등한 무가치 재화에 불과하게 된다.

 언제나 이 세 가지 조건을 확보하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물건의 소비는 점점 사치가 된다. 물건의 가격이 높아도 점점 사치재가 되지만 이러한 비가격 기준을 통해서도 사치의 여부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건은 집안이나 사무실 안을 거치면서 일종의 여행을 한다. 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나가는 곳도 있어야 여행을 끝낼 수가 있다.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버리게 되어 있다. 산업공학에서 말하는 source node와 sink node는 사소한 집안의 물건 배치와 인테리어에도 분명 적용된다. 배수구, 접지선, 쓰레기봉투와 수거차량, 자연부패 등 무엇이든지 소멸되는 구멍을 필요로 한다. 만약 다용도실이나 화장실에 배수구가 없다면, 집안에 쓰레기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끔찍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분리수거다. 조금만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 분리수거는 엄청나게 복잡한 작업이 될 수 있다. 재질에 따른 분리를 해야 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의 재질 종류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PP, PET, LDPE, PS.. 그냥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땡인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에 아무 관심이 없겠지만 실제로 물건을 밖으로 버리는 입장에 있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참고로 대학생 시절 편한 생활만을 영위했던 나도 군대에 와서 버리는 방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길거나 큰 물건을 비치하려면 문이나 창문이 충분히 넓어야 한다. 부피가 큰 물건이나 여러 재질이 결합한 제조품일 경우에는 다른 물건보다 더욱 더 나중에 어떻게 버릴지를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무로 된 가구(대표적으로 소파)를 가져왔으면 나중에 버릴 때 통째로 버릴 수 있는지를 먼저 고려하고, 분해하고 버려야 한다면 못을 뽑을 장도리와 칼을 준비해야 한다. 무거운 고철을 버리기 위해서는 트럭의 도움이 필요하다. 작은 물건을 버리기 위해서는 쓰레기봉투만 집안에 비치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쓰레기봉투를 준비했다면 쓰레기를 버리는 목적을 달성하도록 봉투를 묶을 투명테이프와 전화번호를 쓸 유성매직이 옆에 있어야 한다.

  정기간행물, 정기적으로 받는 사은품을 비치해 둘 것이라면 최근 몇 주 혹은 몇 달 이내의 것들만 비치한다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저장되는 공간에 계속해서 여유분을 남겨놓으려면 정기적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물건들에 대해 일정 기한을 정하고 물건의 부피 한도를 정한 뒤 새것이 들어오면 헌것을 버려야 한다. 옛것을 계속 축적했을 때 가치를 갖는 재화는 생각보다 매우 적다. 대표적인 것이 문헌자료, 신문, 그리고 골동품 정도다. 그 외의 것은 굳이 축적하여 공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물건은 또한 물건 그 자체로 사용가치를 갖지만 저장과 보관을 위하여 보조적인 도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모든 물건은 저장되는 공간과 사용되는 공간의 두 가지 공간을 파생시키고, 사용되는 공간만 있으면 당연히 집안이 어지러워진다. 집안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 공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용되는 공간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러하다. 책이나 잡지나 신문을 가져왔으면 그것들을 꽂아놓을 수 있는(저장) 책장이나 잡지 스탠드나 커피테이블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 쓰는 노끈이 필요하다. 책장이 있다면 Bookend가 필요하다. A4 문서를 인쇄했다면 클리어파일, 낱장파일 등의 서류가 필요하다. 문구류를 가져오면 연필꽂이가 있어야 한다. 음식이 들어온다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음식을 추가로 조리해야 한다면 주방에 충분한 수의 도구가 있어야 하고, 배달음식이나 가공식품의 경우에도 커피믹스를 만들기 위한 커피포트와 물통, 일회용 용기를 데우기 위한 전자레인지, 세척을 위한 세제와 수세미와 싱크대가 필요하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봉투나 쓰레기통이 옆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보조적인 도구가 없다면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면 안 된다. 그것은 죄악이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를 하다 보면, 혹은 자신의 돈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소비는 공간적으로 어떤 식의 소비를 하든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자본주의 시대의 비자본적, 비가격적 측면을 간과하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된다. 계획적으로 소비하고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물건을 운용하느냐 (어떻게 돈을 쓰느냐는 당연히 중요하니까)도 중요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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