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하는 우리의 책상, 그리고 우리의 시간

 나와 같은 20대 소년 소녀 대학생들은 끊임없이 기존에 자기가 몸담고 있던 곳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지독하게 듣고 들었던 '창의'와 '도전'과 '혁신'을 땀과 눈물을 짜내며 계속해 나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삶의 많은 부분을 헌신하고 있는 곳은 바로 책상 앞이 아닐까 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인생의 1/3은 잠으로 보낸다고 해야 맞지만 우리의 마음의 고향은 역시 편안하고 정겹고 그래서 때로는 잠도 잘 오는 낡은 책상 앞이다.  (개별 사진 출처: Flickr)

 그리고 한번 내 방 책상에 앉으면 1시간 정도 있다 이내 졸려서 즐겁게 싸이월드나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잠에 들 날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정말 올바르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몇 시간에 걸쳐 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싶기도 한다. 그중에는 가끔씩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거나 혹은 책에 몰입하기가 너무나도 쉽거나, 공부하는 게 유달리 재미있게 느껴져서 그에 따른 흥분에 취해 서너 시간 동안이나 지치지 않고 책에만 몰두할 때도 있다. 이런 경험은 천재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충분히 가져본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책상에 앉은 지 얼마 정도 지나면 눈앞의 컴퓨터 화면에서 드넓게 펼쳐진 정보의 바다가 나를 유혹하거나, 마루에서 TV를 보시는 엄마, 아빠, 오빠, 언니가 침묵의 추파를 던지는 식으로 (같이 보자~)이내 자리를 떠 애써 모아놓은 주의와 집중을 마치 검은 콩을 실수로 바닥에 좌르르 쏟아내듯 흩뜨리곤 한다. 마룻바닥 깊숙히 들어간 검은 콩은 주워담기도 힘들다.

 집중은 주변 환경이 조금만 움직여도 깨져버리고, 따라서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박수를 보내야 할 천재들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참 고민이다. 특히나 나는 도서관이나 조용한 로비보다는 내 방에 있기를 좋아하는데 이 세상은 나만 사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책상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20대 80 법칙

 이탈리아의 유명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 빌프레드 파레토가 소득 불균형의 20대 80 법칙을 주장하였으나, 이는 비단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영계의 담론을 거쳐 모든 종류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모든 영역에서는 이러한 20대 80의 법칙이 인간의 불완전성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작동하는 듯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책상 앞에서의 20대 80 법칙'도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도서관에서 자신을 환경적으로 고립시켜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들은 다른 지역 사람 얘기같이 낯설게 들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 공부를 하거나 자취방에 있는 이들은 언제나 복잡다단하고 예상할 수 없이 변하는 주변 상황에 마음이 홀려 공부를 하다가 금방 다른 일을 했다 이내 다시 의자 앞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즉 몇 시간 계획을 해 놓고 '오늘은 오후 내내 4시간 동안 여기 앉아서 책 어디서 어디까지 보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어도, 정작 그 책을 열심히 몰입해서 읽어보는 시간은 4시간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800미터 달리기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 시간, 한 곡의 재즈에서 후련한 드럼 솔로를 내지르는 시간, 혼자 있는 오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 생각을 휘갈겨 적는 시간, 하룻밤의 사랑에서 절정에 이르는 시간(나는 아직 경험은 없다만), 협상 테이블 맞은 편 상대에게 숨막힐 듯한 제안으로 비수를 꽂는 시간,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책을 제대로 보는 시간, 모두가 전체를 아우르는 시간의 20%도 못 되는 시간이다.


우리는 나머지 80%의 시간에는 도대체 무얼 하는가?

 이런 질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괜히 우쭐해지기도 하고 왜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냐며 건강한 자아를 의심하기도 한다. 서너 시간 책상에 앉아있노라 계획한 그 시간 동안 내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처럼 온전히 꿋꿋하게 앉아 있지 않고 분명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딘가를 막 돌아다녔던 게 분명하다면, 돌아다닌 시간이 얼마이며 그동안 나는 무얼 했는가에 대해 아주 정밀하게 기록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기관리에 관심이 없는 낙천적인 사람은 쉬엄쉬엄 하는 스타일이 더 맞기도 하여 이런 일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있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분명히 중간에 목이 마르지 않는데도 부엌에 나가 물을 마시고, 물을 마시니 먹고 싶어지기도 하여 바나나나 쥬스나 과자 등을 집어먹기도 하고, 할머니와 함께 집안일을 잠깐 도와드리고, 끝나고 마루를 지나는데 갑자기 눈앞에 TV가 보여 괜히 뉴스 한번 틀어보고, 뉴스가 별거 없으면 노트북을 켜 네이버로 들어간다. 그리고 네이버가 짠. 하고 뜨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는다. 여기저기 기쁨을 찾아 돌아다니는 눈먼 나그네, 어디 갈 수 있는 사이트가 네이버 뿐인가. 다른 사이트로 가보면 내가 평소에 관심 갖고 있던 자료가 펼쳐지고, 언젠가는 꼭 보아야 하겠다는 진로에 관련한 정보도 들추어 보게 된다. 그럼 또 스크랩 하고... 이 뜻밖의 여행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친구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에 그닥 취미가 붙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책상 앞에 앉은 나를 유혹하는 환경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기본적인 책과 연필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이와 같은 홀림에 빠져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홀림을 철저한 자기 통제로 완벽히 제압하여 장시간 동안 오직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근성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도서관이 아닌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무조건 내방 책상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내 책상은 열람실보다 아늑하고 쾌적하며, 다양한 장비와 도서를 펼쳐놓고 작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경우에는 분명 자율적인 활용이 가능한 책상이 좋다.) 하지만 자기 주변의 환경을 통제하고 자신의 행동 패턴을 수정한다면 그러한 홀림은 상당량 줄어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홀려 계속 돌아다닌 그 80%의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여 나중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고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위치와 한 일이 변할 때마다 그 추이를 간략하게 적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로그(log)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는 3시간, 4시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자기의 행동 패턴에 대한 자기 주도적 실험이다. 마치 심리학이나 기타 사회과학 분야의 실험과 같이 변인 통제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로그 작성을 위한 조건>


 1. 책상에 장시간 앉아 무언가를 하도록 계획을 해놓은 상태여야 한다

 2. 최소한 10분마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주변에 큰 시계가 있거나, 전자 시계나 핸드폰 등으로 알람이 설정되어 있거나, 중간에 책상에서 빠져나오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10분 이상 시간을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지 (예. 시간을 정해놓고 해보는 모의 test) 않는 등. 가장 좋은 방법은 실험 시간 동안 손목시계를 차는 것이다. 꼭 10분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10분+-5분 정도의 간격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20%의 집중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계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시계를 보고 활동을 기록하는 일이 그리 집중을 산만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책상에서 계획해놓은 일 외의 일을 의도하는 순간 로그를 적어야 한다 - 일을 하는 도중 혹은 하고 나서 로그를 적는 것과 병행, 이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4. 타인의 부름이나 강요에 의해 이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이렇게 되면 절대 자신의 시간으로 회복할 수 없는 시간들까지 로그 안에 포함되어 실험의 변인 통제가 훼손된다

5. 장시간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책상에 돌아왔을 경우 바로 이전의 일에 대하여 로그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 다른 일의 소요시간이 너무 길면 안 된다


 이렇게 실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실험을 실시하여 로그를 작성해 보고 장시간 책상에 앉아있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로그 작성을 반복해 본다면 자기가 어떤 일 때문에 주의를 흩뜨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후 눈에 띄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일은 더이상 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조작하고, 집중하는 시간은 더욱 확대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간헐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를 한 덩어리로 모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든다. 아직 나에게도 이 실험같지 않은 실험은 계획 단계에 있다. 하지만 분명 실효성은 있으리라 믿으며, 보완할 부분은 실험의 순조로운 진행 가능성에만 국한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실천에 옮길 기회가 생기면 그때 한 번 해보아야겠다.


희망찬 결론은 산뜻하게

 대학생으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책상 앞이기 때문에, 나는 내 삶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고 그와 더불어 모두의 삶도 소중하기에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각박해지는 이 현실을 여러 가지 자기관리 기법을 통해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88만원 세대'같은 이야기는 훗날의 빛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 정도로 보이리라.

대학생들!! 모두 힘냅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