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망각

칼럼/관계 2008. 7. 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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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서 그렇게 많이 서로를 화나게 하고 섭섭하게 하지만, 언제나 흘러가는 시간과 그에 따른 '망각' 때문에 사람과 사람은 다시 친해진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우리가 흔히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하는 개념을 달리 풀이하면 '망각에 따른 인간관계의 회복과 증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그 사람 앞에 가까이 가서 손으로 그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든 그 사람의 눈을 뚫어지게 보며 말하든 갖가지의 대면을 해야 한다.

  나의 모습이 내 앞의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걱정하지 말라. 그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그 사람을 익숙하고 편안하게 대한다는 사실이 느껴지는지가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편하게 행동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많은 신경을 쓰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순간 신경을 쓸지는 몰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 '망각'때문에 인간관계 구축에서의 사소한 실수는 모두 용서된다. 나는 상대가 그 순간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경을 쓸 필요 없이 편하게 다가가면 된다. 지속적으로 편하게 다가가다 보면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특별하게 어필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한 특별한 어필이 쌓이고 쌓이면 사랑과 우정이 된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불알친구' 들과 '영원불멸의 커플'들이 항상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한푼의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그들은 계속 부딪치면서 싸웠을 것이다. 단 사소한 문제들로 말이다. 커다란 문제로 서로 싸우는 경우는 어떤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인간관계에 해가 되는 행동을 저질렀음을 필수 전제로 삼는다. 사소한 문제는 대부분 의도적이지 않게 터진다.

 사소한 문제가 항상 터지는 모습은 처음 계곡으로 나가 뜰채로 미꾸라지를 잡는 도시 소년의 풍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소년은 처음부터 대뜸 미꾸라지를 잡아올릴 수 없다. 아직은 낯선 미꾸라지는 쉽게 잡히지 않고, 소년은 뜰채를 휘두르다가 미끄러운 계곡 바닥에서 휘청거려 흠뻑 몸을 적시기도 한다. 그래도 별 탈 없이 결국에는 미꾸라지를 뜰채로 들어올린다. 사소한 문제는 인간관계에 대한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도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일단 다가가고 보라. 좋은 모습만 기억하고 나쁜 모습은 금방 지워버리려는 인간의 당연한 속성은 사람과 사람을 분명히 이어줄 것이다. 사람이 절대로 쪼잔하게 모든 대인행동을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지 않고 느긋하게 '망각'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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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든 오늘날의 방대한 인간관계가 얽혀있는 사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쉽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큰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매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자기 동네에 있는 여자라고 해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혼하지 않는다. 대학에 처음 와 같은 반에 소속되었다고 해서 같은 반에 있는 사람들과 모두 다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다른 과에 있고 다른 지역에 있으며 나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평소에 별로 만날 기회가 없더라도, 그 사람만의 두드러진 매력이 나 자신에게 각인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간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누구에게 관심을 주어야 하는지는 조금은 애석하고 냉혹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는, 혹은 자신이 살다가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단점을 보고 나에 대한 관심을 끊고 돌아서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모든 사람의 서로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운 시대에서 그러한 걱정과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대학생 새내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내가 만나는 동기 친구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친구와 만나지 말기로 마음먹은 친구를 속으로 구별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보다 나의 매력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하여 걱정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그 결과 나의 1학년 1학기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굳어졌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다 보니 나는 내 마음이 가는대로 나를 놓아주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이 함께 보여지는 사람이 정상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며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데, 나는 완벽하지도 않은 화법과 처세술로 나를 꾸몄다.


 사실 새내기 시절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걱정을 한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2학년이 되어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떻든 상관없이 결국에는 좋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술만 먹여서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반 선배는 내 옆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친구를 몇 시간동안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결국 나에게는 두 번째 인상이 기억되었고 그 선배와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끼리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면서 살다 보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상대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호의를 표하는 등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첫인상으로 무관심 세 글자를 상대의 눈 안에 박아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장점은 단점에 우선하여 기억되고, 매력은 추태보다 우선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저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같이 시간을 보내며 부대끼기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절친한 친구와 예쁜 커플이 생겨나는 것이고, 이것이 긍정의 힘이다.


 좋은 모습이 더 오래 남고, 좋은 모습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주된 이미지로 각인된다는 사실은 참 기쁘고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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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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