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의 나를 완벽주의자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프랭클린 플래너를 들여다보면 나의 모든 생활은 계획되고 계산되어 있다. 시간 일분을 버리지 않고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에서의 능률을 높여왔으며 의미가 있는 모임과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모임을 구분하여 적은 노력으로 많은 인간적 유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나를 디자인해 왔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계산적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흔히 대학교 1학년생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나 직업적 성취의 정도는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데에 신경쓰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잘 이해하고 그들과 잘 어울리는 것에만 주력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완벽성에 과도한 신경을 써서인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잘 못 쓰는 나의 이기적인 이야기와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나는 집안에서도 내 주위의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이 누구의 생일이고, 오늘 나의 학교에서는 단체로 어떤 일을 추진하고 있는지 등을 순간 까먹어 내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다. 실제로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보이스카우트 내에서 수련회에 관해 새로 변경된 일정을 나만 기억하지 못해서 수련회 첫날 집에서 자고 있던 나를 위해 80여명의 아이들이 20분간 기다려주었다가 결국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났던 경험이 있다. 지금의 나는 물론 그러한 유치한 실수는 하지 않지만, 아직도 초등학교 때의 어리석은 모습이 남아있는 기색을 내 스스로도 엿볼 수 있다. 교수님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 일을 하라고 자신의 의도를 깔아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시면 나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할지에 대한 방법, 즉 내가 주도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에만 신경을 잘 쓰지 교수님의 의도는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까먹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중에 교수님께서 나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등의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건대 나는 나를 이해하는 데에는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필요 이하로 무능력하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흔히 우리가 '눈치'라고 하는 능력을 나는 정말로 결여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여러 사람들과 계속 부딪치고 끊임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면서 눈치를 점점 쌓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서 나의 판단 착오로 사소한 실수를 범할 때가 자꾸 일어난다. 내가 아닌 남들은, 가족들을 포함한 모든 '나 아닌 사람들'은 내가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다고 해서 그것을 칭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나의 '나를 위한 완벽성'은 나에게만 득이 될 뿐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한 완벽성'을 결여할 경우 그러한 결핍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며 나는 그때그때 질책을 받는다.


     이제부터는 나의 완벽을 위한 노력이 다른 사람을 향하도록 나를 디자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완벽성은 나중에 슬슬 연구하기 시작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한 완벽성은 지금 당장 체득해야겠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나의 능력,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치'를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내 자신에 대한 경멸로 가득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나를 발전시켜왔는가? 가끔 이렇게 뉴욕의 국제무역센터가 자살 테러 비행기에 의해 폭삭 주저앉듯이 자기에 대한 존중감이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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