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커뮤니티에 올린 글


  아무튼 합주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고쳐야 할 점, 개선해야 할 점이 묵묵히 스네어만 때리던 저에게도 하나둘씩 떠올랐습니다. 저는 밴드 생활을 몇년씩 한 어울림 형 누나같이 밴드 경험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밴드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연습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나름의 실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적어봅니다. 이 글을 적는데는 중학교 때부터 아빠 따라 갔던 합창단 연습 관람,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 4부성가대 연습 참가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저는 락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적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음악적 목표 외에도 우리 어울림을 비롯한 많은 동아리는 물론 동아리로서의 가치-친목, 화합, 이해, 도전-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가치들은 음악적인 가치들과 동등한 지위에 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어울림과 같은 음악 동아리가 갖는 음악적인 측면에 대해서만 의견을 피력해 보려 합니다.


  대학생 아마추어 락 밴드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중 가장 정점에 위치한 것은 원곡의 음과 악상과 느낌을 그대로 재연해 내는 것, 즉 완벽한 모방입니다. 자기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연주를 따라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그때 자신들이 얻은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색깔을 입힌 곡을 새로 짓고 그 곡을 무대에 올릴 수도 있겠지요. (갑자기 올해 대동제 때 어울림 전에 공연을 한 인문학부 99학번 락 밴드가 떠오르는 이유는 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밴드의 실력은 원곡을 충실히 재연해내는 능력과 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끔 중간이나 절정 부분이나 후반부에 자신만의 느낌을 살려 애드립을 넣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좋다고 평가되기 이전에는 이미 밴드 전체가 원곡을 충실히 모방했다고 평가가 되어 있겠지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이곳 어울림 멤버들은 다함께 완벽한 카피를 위하여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우선 락 밴드의 합주를 할 때에도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이상 필요합니다. 합창단이나 성가대에는 지휘자가 있습니다. 지휘자는 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각자 맡은 부분적인 음악, 그리고 음악에 대한 표현의 의지 등을 하나로 규합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도록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락 밴드에는 지휘자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멤버와 멤버 간의 화합이 합창단이나 성가대에 비해 신속히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우리들도 가끔 합주를 하다가 화합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각자 악보를 숙지하고 원곡을 많이 들어본 다음 모여서 연주를 해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원곡의 느낌이 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락 밴드에는 지휘자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가끔씩 원곡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어느 정도는 맞다고 봅니다.


  제가 어느 정도는 맞다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험이 많은 밴드 멤버들은 각자 곡을 들어 본 다음 곡을 어떻게 재연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고 충분히 연구를 한 다음에 다 함께 모여 처음 연주를 해도 어느 정도 화합이 잘 됩니다. 각자 따로 떨어져서 곡의 음악적 특성을 익혀도 각 멤버들이 익힌 음악적 특성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렇게 화합이 잘 된다면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멤버들에게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것은 이렇게 고쳐야겠다' 등의 말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경험이 없는 밴드 멤버들은 각자 곡을 연구한 후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나 내용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부분은 어떻게 연주해야겠다는 지침이나 지시는 자기가 곡을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내리는데, 그러한 지침이나 지시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휘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연주를 하다가 중간에 자주 멈추어서 수시로 일관성 있는 지침이나 지시를 모든 멤버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관성 있는 지침과 지시에는 상당한 강제력이 수반되는데, 이러한 강제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지휘자의 능력에 있습니다. 지휘자가 곡을 충분히 숙지하고 음악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원곡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오기 위한 일관된 지침과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밴드의 모든 구성원이 곡을 완벽히 숙지하여 자기 세션뿐만 아니라 다른 세션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면 합주를 하면서 연주에 대한 평가와 개선점을 말할 때 여러 명이서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질 높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한 명이었을 때 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면을 다른 사람이 보충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모든 멤버들이 이러한 막중한 '지휘자'의 역할을 도맡아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밴드 멤버 중 적어도 한 사람은 밴드 전체를 아우르는 수준의 능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연주를 하다가 잘못된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이 보일 경우 지휘자는 바로 말을 해주어야 연주를 하는 사람이 바로 고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들 합주실을 빠져나와 같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그러한 잘못된 점을 말하는 것은 상당히 힘듭니다. 음악을 말로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다들 악기를 손에 가지고 있을 때 음악과 함께 한 설명을 통하여 문제를 바로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침의 전달을 신속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밴드 멤버들은 일정한 약속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곡의 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호를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가대에서는 지휘자가 '테너, 주의 자비 부분부터 다시 합시다' 라고 말하면 바로 그 부분부터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자도, 베이스 알토 소프라노 파트의 단원들도 모두 똑같은 악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휘자의 말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든 사람들이 신속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락 밴드의 멤버들이 각자 맡은 세션에 해당하는 악보만 가지고 있거나 어떤 사람은 악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는 모든 멤버들이 어느 특정한 부분부터 다시 연주해 보아야 할 때 상당히 애를 먹습니다. 그래서 약속이 필요하고, 그 약속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곡의 구성을 Intro, 1절, 2절, Bridge, Ending 등으로 크게 나누고, 그 나누어진 구성에 영어 알파벳으로 기호를 붙입니다. 그리고 모든 멤버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악보에 알파벳을 써놓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지휘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우리 Letter C부터 다시 해보자'라고 했을 때 바로 문제점을 고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기호를 만들고 약속을 하기 전에 모든 멤버들이 곡의 커다란 구성을 숙지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결론은 지휘자 혹은 음악감독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다 같이 모여서 악기를 잡고 있을 때 그때 바로바로 해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합주가 빨리 끝나고, 서로 같이 놀고 먹고 마시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밴드든 오케스트라든 사물놀이패든 합창단이든 고등학교 대취타대든, 모든 음악단은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고 신경을 써주고 서로의 생각과 신호를 맞추려 노력하는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어울림도 그런 자세를 뿌리 깊게 가지고 있는 멋진 동아리가 됩시다.



 다 아는 내용이긴 하지만 이렇게 나름 논리를 갖추어 글을 써놓으면 그 '다 아는 내용' 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써보았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머리가 아프다. 좀 자고 다시 학교로 가야지.


2007. 8. 30.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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