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나였다. 공부는 내 심심한 머리에게 뜀박질 할 기회를 주었고, 모범생 이미지가 싫어 홍대 근처의 드럼 연습실에서는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꼭 나의 친구들과 함께 긴 하루동안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만의 밀실에서 조용히 나를 섬세하게 조각해나가고, 언젠가는 매끈한 다비드상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인생을 넘겨 왔다.

  하지만 오후 6시까지 신과대학 도서관에서 혼자 신문과 계간지와 정치학 교재 따위를 읽고 있던 나는 내게 즐거움을 주는 글에 풍덩 빠져 있다가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순간 몸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지하 2층, 이 늦은 시간에 나라는 인간은 커다란 도서관 안에 덩그러니 놓여 1시간 동안 앉아있었던 것인가. 나는 거만하게도 혼자만의 별 볼일 없는 글 읽기에 빠져 그 넓은 도서관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학대학원 소속의 사서는 '이제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하고 나에게 조용히 외쳤다.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할 줄은 몰랐다. 공부는 좋은 일이지만 왜 나는 일부러 말끔하게 한산한 곳을 그것도 혼자 찾아갔는가.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밀실'은 갑자기 나에게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낯선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직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 남아있는 캠퍼스였지만 점점 초저녁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 대학 캠퍼스를 아무리 쏘다녀도 나의 친구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갔겠다는 사실을 체감하자 나의 마음에는 꽃샘추위가 몰아닥쳤다. 조금만 나의 성향을 바꾸고 조금만 더 내가 계획을 세울 때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도록 유도했다면 오늘과 같이 쓸쓸한 1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밀실에서 나를 섬세하게 조각하는 일은 그동안 신비롭고 매력적인 일로 나에게 기억되어 항상 나를 유혹했지만, 이제는 나도 갑자기 밀실이 낯설어진다. 수백명의 친구들이 모여있는 작은 광장의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자꾸 생겨난다. 사람들과 손을 잡고 본능에 따르는 어린아이로 되돌아가고 싶다. 대학 생활의 쓴맛과 삐걱거리는 세상에 대한 진지한 토론으로 모두들 우울한 분위기에 잠길 수도 있지만 학우들의 맑은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즐거울 것 같다. 외로움이 아무 이유없이 찾아온 오늘, 그 이유가 혹시나 내 자신에 있는 것은 아닌지 멍하니 앉아 생각해본다.


2007.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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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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