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 1129번 버스를 탔다. 광고지를 붙였다 다시 떼어 하얀 종이가 붙어 있던 유리창, 계속 바뀌어 덧붙여지고 헐거워진 버스 노선도,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깔끔한 오렌지색 의자와 말끔한 바닥만이 남았다. 어수선하던 버스기사 아저씨 좌석에 있던 동전 상자와 교통카드 개표기, 그리고 그 밑에 실뱀처럼 늘어져 있던 전기 코드도 예쁘게 정리되었다. 옛날에 종로 주변을 배회하는 파란 저승강장 버스에 탔을 때 광고지 하나 없는 깔끔한 내부에 반한 적이 있다. 간선버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지선버스에도 옮겨오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종로와 광화문 주변의 거리 풍경을 둘러보아도 서울이 많이 깔끔해졌다는 이미지를 받을 수 있었다. 광고가 없다는 것이 도시 미관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광고가 없으면 도시 미관보다 오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활동 영역이 그만큼 좁아지고, 통일된 환경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낸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의 경우 한국처럼 마음대로 간판을 만들어 붙일 수 있게 하지 않는다. 그 나라의 정부에서 도시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개입을 하는데, 정부 차원의 노력이 통일된 색조의 거리를 만들고 통일된 재질의 건물숲을 만들어낸다. 간판이 대표하는 상업성이 정부의 힘 앞에 굴복하였기 때문에 가게나 사무실의 이윤 증가를 막는다는 염려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어떤 영업소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간판이 없어도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이미 가지각색의 커다란 간판이 외벽을 뒤덮고 있는 서울의 한 건물에서 맥도날드가 1층에 새로 개점한다면 빨간 간판때문에 더욱 어지러운 외관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개업한 맥도날드는 정부의 규제에 의해 고유의 빨간 간판을 금색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거리에는 특히 의류 매장이 많았는데, 그 매장의 간판을 모두 금색 계열로 만들자는 정부와 기업 간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본 버스 또한 그 디자인이 마치 정부에서 규제해놓은 것처럼 모든 버스에서 공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통일성은 정부에서 관리하지 않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받아들여도 충분히 가능하다. 1850년 파리의 도시 계획을 주도한 정치가 오스만(Haussmann)은 도시를 이루는 도로와 철도와 다리, 심지어 도시의 대칭성과 가로등과 야외 화장실까지도 정밀한 디자인과 계획을 통해 개편하고 창조했다. 그가 너무나도 독재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갔기에 루이 나폴레옹이 취임한 제2제정기에 25년간의 정치 생활을 끝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고풍스런 고딕 양식의 도시는 지금까지 남아서 파리 시민과 외국인들에게 경제적으로는 관광 수입을, 정서적으로는 '파리의 낭만'을 선사해주고 있다. 서울 또한 마음대로 기업에게 도시 외부의 풍경을 좌우하도록 방치하기보다는 약간의 규제를 통하여 일관되고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 우선 광고와 간판 없애기부터 시작해야 될 듯하다. 낡은 시설을 예쁘게 보수하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2007.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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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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