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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Musician」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의 중대한 시험, 혹은 나에게 부담을 주는 여러 의무가 싹 사라졌다. 수능도 기말고사도 이제 저편으로 떠나가 뒷모습만 보인다. 나는 모든 의무를 다 견뎌내고 이제 당당히 놀려 한다. 정당한 이유에 의해 '나는 이제 놀러 나갈게요~' 하고 활짝 웃으며 소리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오늘은 귀가를 하는 날이다. 다른 어떤 수십 번의 귀가보다도 값진 이번 귀가라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이번 귀가에는 진정으로 놀아볼 수 있고, 긴장이 완전히 풀린 행복한 마음으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완전한 유희를 즐기는 인간으로 드디어 등극하게 되었다.
 
  어제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농구를 조금 한 뒤 나는 본격적으로 재즈 피아노 악보 만들기에 돌입했다. Ray Bryant Trio의 Blues Changes가 바로 내가 악보를 만들려 하는 곡이다. (음악 카테고리에 올려놓았다) 워낙 흔치 않은 음악이고 옛날에 출시된 음악이고 또한 블루스라는 장르 때문에 고정된 악보 또한 없는 실정에, 내가 채보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평소에 재즈 피아노를 한 곡이라도 끝까지 쳐 보려고 했던 나는 한국에 어엿한 재즈 피아노곡 악보 하나 없어서 실망했지만 이번에 많은 공을 들여 악보를 하나 완성함으로써 내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블루스 스케일을 알고 있다고 그로부터 파생된 화성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피아노를 칠 수가 있지. 하고 감탄하면서도 사운드 편집 프로그램의 음성 그래프를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며 열심히 Cakewalk의 피아노 롤에 음표를 찍어나간 결과 지금 80% 정도 완성한 상태이다. 저음으로 깔아주는 멋진 콘트라베이스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의 악보를 완성하여 친구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한편 오늘 아침에는 정은이가 디카를 가지고 경제 시간에 나를 포함해서 인문반 친구들과 사진을 열심히 찍고 다녔다. 나는 처음에는 디카를 새로 산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다닌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정은이의 사진 찍기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도는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제 정든 고등학교를 떠나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자신을 같이 세워두고 수백장의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정은이의 인간적인 생각에 감동하며 다음주 경제시간에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로 다짐했다.
 
  오전수업만 있었지만 1교시부터 4교시 학급회의 후 자유시간에 이르기까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사람이 순간 할 일을 잃으면 이렇게 방황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나의 이러한 나태함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 나에게 더이상 의무가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억눌렸던 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했다. 옛날에는 하늘 높이 뛰어올라도 천장에 머리를 박아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어 답답해하고 우울했지만 이제는 덤블링에 풍덩 뛰어들어 푸른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수능 수험표를 가지고 쇼핑을 좀 할까 한다. 다음달에 있는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약간의 '정비' 가 필요하기도 하고 수험표의 효능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전국고교증권경시대회가 남아있어서 아직 내 의무가 완전히 끝났다고는 하기도 그렇다. 하지만 증권경시에 대한 준비는 이미 다 해놓았다고 자부할 수 있고, 또한 현실에서 나의 의무는 아직 안 끝났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미 의무에서 벗어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다. 진정 당신이 즐길 수 있을 때 즐길 줄 안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성공한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다.
 
 
 
*요즘 블로그 today 수가 소폭 사그라들었다.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이 기말고사를 보는 기간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아주 약간 서운하다.

2006. 11. 24.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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