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간은 활자로 인쇄된 책만을 읽고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완벽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활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그 활자를 읽고 내가 어떤 풍경이나 상태나 동작을 영사기에 투사하듯이 이해의 도면을 구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17세기 유럽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인간의 모습과 그 주위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요란하게 바뀌는 TV의 화면과 같은 것들과 접하지 않는 사람은 글만으로 이해하는 세계의 영역을 좁게 한정지어 놓기 마련이다. 형이상학적인 저서는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세계를 묘사하여 주므로 활자를 읽으면서 단순히 생각만 함으로써 완벽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수필이나 소설이나 희극과 같은 대부분의 글에서는 글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배경 지식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우선적으로 직접 경험을 통해 자기 주위의 세상이 가진 모습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직접 경험으로 얻은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은 책을 읽어서 활자만으로도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그렇기에 단지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전에 내가 과연 그 책 속의 활자를 통해 '완벽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배경 지식이라 함은 곧 이미지를 말한다. 한국에서 살던 사람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갖고, 따라서 한국에 대한 배경 지식을 저절로 쌓을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한국에 관한 문학 작품이나 혹은 한국의 시사 이슈를 밝히는 글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한국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미 직접 경험을 통하여 일차적으로 알고 있기에, 올바른 영상을 바탕으로 활자 하나하나에 상상력의 흐름을 주입시켜 완벽한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6세기의 중국에 대한 소설을 읽는다면, 나는 똑같은 글을 읽고도 6세기 중국에서 생활해온 사람과는 다른 영상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은 완벽한 이해에서 약간 멀어지게 된다. 약간 멀어지는 이유는 내가 그래도 6세기 중국 사람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추측하여 떠올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어렸을 때 만화나 TV 등을 통해 중국의 문화를 간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만 주의할 점은 여기서의 간접 경험은 오직 활자만을 통하여 얻는 간접 경험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중국 소설의 예를 가지고 계속 논의를 전개하자면, 한국 사람인 나는 6세기 중국의 참모습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활자를 통해 이해를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내가 영화나 만화나 TV 등을 통하여 중국 사람들의 복식이나 중국의 자연 경관, 혹은 건물의 모습,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한 인터뷰 등을 많이 접해보고 간접 경험을 많이 할 수록 활자를 통한 이해의 반경은 더욱 넓어진다는 사실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다양한 매체와 끊임없이 접하여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생활하는 세계를 벗어난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도 간접 경험을 통해 확실한 이미지를 쌓아 놓아야 하는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와 영화 감상을 좋아하고, 자신의 서재나 연구실에 외부 세계의 문화를 상징할 수 있는 조형물이나 장식품을 놓아두는 이유도 곧 그들이 간접 경험을 자연스럽게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앞서 정의한 배경 지식이 하나도 없더라도 활자만을 통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영역은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영역은 형이상학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고, 논리의 싸움이 전개되는 토론의 장이거나 학습이 선행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영역이다. 하지만 흔히 추상 명사라고 하는 단어들과 한자로 이루어진 많은 관념적인 동사들-우리가 논술에서 많이 볼 수 있는-또한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을 이미지로서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결국 그 단어들의 조합인 한 편의 글 또한 이해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간단하고 당연하기까지 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협상' 이란 단어를 읽고 나서 조금 더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악수를 하는 장면이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 좋다. FTA협상을 진행하는 TV 뉴스를 평소에 보아 두었거나 학교의 임원으로서 협상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활자에서 '협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있다.
 
  결국 어느 장르의 글에 상관없이 인간은 활자만으로는 상상력으로 대표되는 생각을 깊게 전개할 수 없고, 따라서 항상 다양한 매체와 접하면서 오감을 모두 이용하여 활자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책보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보다 여행을 좋아한다. 간접 경험은 아주 조금만 있어도 괜찮다. 티끌만한 간접 경험의 씨앗을 바탕으로 하여도 거대한 한 권의 책을 완벽하게 이해할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 때 티끌만한 씨앗은 나의 순수한 상상력에 의해서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고, 그 나무는 가지에 알찬 이미지를 담고 있는 열매를 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열매의 껍질을 까서 활자와 함께 섭취하여 '완벽한 이해'에 도달한다. 인간이 아무리 생각을 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아무런 input 없이 진리를 향한 output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인간은 활자를 통해 생각의 날개를 펴기 전에 다양한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과 자신의 곁에 있는 세계를 통한 직접 경험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물론 교양인이나 지식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느끼면서 만족하는 데 그치고 말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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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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