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지금 격정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에스프레소 같은 삶에 비유하고 싶다. 데미타스 속의 그 강렬한 원액의 향기는 오래도록 남고, 맛은 매우 쓰다. 그와 같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열정을 갖고 농축된 노력으로 성과를 하나하나 이루어가면 이 고등학교 생활을 의미있는 삶이라며 나중에 어른이 되어 한가한 마음으로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같은 삶과 반대되는 삶을 나는 녹차같은 삶이라고 하고 싶다. 웰빙의 요소에 빠질 수 없는 몸에 좋은 녹차는 은은한 향기로 차분함과 휴식을 선사해 준다. 하지만 녹차에는 열정이 없다. 무언가 피터지게 노력하여 장렬히 지식을 갈구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녹차의 티없이 맑은 물에서는 볼 수가 없다. 녹차같은 삶에 안주하다 보면 자칫 내 마음의 녹차가 맹물이 되기 십상일 것만 같다. 특히 많은 공부량에 수면 시간을 줄이고 학과 외에도 많은 지식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 지금 이 시점에는 더 그러하다.

  전혜린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에서는 독일 뮌헨의 춥고 어두운 날씨 속에서 건강을 희생해가며 학문에 열을 올리는 독일 학생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혜린 또한 뮌헨대 독문과 학생으로서 공부에 인생을 바친 때가 바로 그 때였다. 그 또한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기 위해 건강을 해치는 방법이지만 '터키 커피'라는 아주 작은 컵에 마시는 강렬한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 커피로 그는 수많은 글을 쓸 수 있었고,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모여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그는 회고하고 있다. 나는 그의 경험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바로 나도 에스프레소와 터키 커피와 같은 쓰고 강렬한 삶으로 학생 시절을 보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비록 이런 커피가 건강에 매우 안 좋고, 자야 할 때 못 자게 한다는 사실이 그 인위적인 특징 때문에 결국 사람을 신체적으로 황폐하게 한다는 것도 나는 주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에스프레소의 강렬한 향기를 고등학교 삶의 공간에 내뿜고 그 속에서 짙은 고동색 유채화를 그리는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잠시 저 푸른 숲속으로 떠나 긴 시간 동안 눈을 감고 한가한 낮잠을 취할 생각일랑 일절 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어떤 일이든 열정을 다해서 해 나가겠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 그 때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차차 깨닫고 녹차같은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충분히 성숙해지고 발전하여 더 이상 지식을 채우려 몸을 혹사시킬 필요가 없을 때에, 그 때 나는 지금의 고등학교 생활을 한가하게 돌이켜 볼 것이다. 힘들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고, 그래서 일단 지금은 나의 모든 영혼을 하얀 데미타스 안의 깊고 쓴 갈색 원액에 침잠(沈潛)시켜 에스프레소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2006. 5. 8.

'Cafe Macchiato > 자아찾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이상형  (0) 2008.07.27
만인의 사랑과 단 한 사람의 사랑  (0) 2008.07.26
스스럽다  (0) 2008.07.26
聚頭閑話 취두한화  (0) 2008.07.26
지식을 구하러 다니는 한 마리의 푸른 용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